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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평점 :

우리의 뇌는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
뇌과학을 통해 스토리텔링의 방법론을 제시한 참신한 책!
어느 날 문득, 우리 아이가 “엄마, OO이랑 OO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섬에 도착했는데……”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섬을 탐험하고 그곳에서 탈출하려는 방법을 겨우 구했는데, 그곳에서 살고 있던 괴물이 깨어나 잡아 먹혔다는 뭐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이 어린 아이의 머릿속에 벌써 이야기라는 구조가 생성되고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뛰어나거나 완벽한 것과는 별개로 저마다 이야기를 짓는 능력을 타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자이자 소설가인 윌 스토 역시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도록 태어났다고 한다. 인간은 본래 이야기와 감정을 즐기도록 타고난 존재라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는 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뇌에는 잠재적인 드라마가 장전되어 있으며 삶을 구축하는 다양한 방식을 본떠서 이야기를 창작하려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이야기 창작 이론가들이 서사에 관해 설명하는 몇 가지 개념이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이 우리의 뇌와 마음에 관해 연구한 내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해 낸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뇌과학 기반의 스토리텔링에 관해 연구해 온 그는 자신의 책 『이야기의 탄생』을 통해 ‘뇌가 우리의 생각과 현실을 구축하고 왜곡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할 때, 좀 더 생생한 인물과 매력적인 이야기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안나 카레니나』, 『남아 있는 나날』, 『대부』, 『라라랜드』 등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 문학과 영화, TV 드라마 작품들이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를 뇌과학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과학적 스토리텔링이라는 상당히 참신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야기의 탄생』은 우리의 뇌가 이야기에 반응하고 스토리텔링에 미치는 영향을 각기 다른 층위로 탐색한다. 1장에서는 작가와 우리의 뇌가 저마다의 생생한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는지 알아본다. 저자는 우리의 뇌는 인간의 환경을 통제하도록 진화되어 왔는데, 많은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변화’의 순간에 시작된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야기 흐름에 예기치 못한 순간을 불어넣어서 주인공의 주의를 끌고, 나아가 독자나 관객의 관심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야기의 비밀을 밝히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변화의 의미를 알았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반전’, 곧 극적 전환점이 극에서 가장 강력한 순간이라고 주장했고, 스토리 창작 이론가이자 드라마 협회 회장인 존 요크는 “모든 TV감독이 현실이나 허구에서 항상 찾는 이미지는 클로즈업한 인간의 얼굴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정보’를 통해 정보에 대한 갈증을 자극하는 데에서도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시 말해, 주인공에게 예기치 못한 변화가 일어나거나 정보의 격차가 벌어지는 사이 우리도 같은 상황에 처하고 우리의 집중력에 불이 켜진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뇌에서 모형을 생성하게 하여 책 속의 상황이 현실인 것처럼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나 인과관계의 논리가 모호한 지점을 통해서 호기심을 유발하는 법도 소개한다.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C. S. 루이스는 1956년에 젊은 작가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어떤 것이 ‘끔찍하다’고 말하지 말고 독자가 끔찍하게 느끼도록 묘사하라. ‘기쁘다’고 말하지 말고 독자가 읽고 ‘기쁘다’고 말하게 만들어라.” ‘끔찍하다’나 ‘기쁘다’와 같은 형용사에 담긴 추상적 정보는 모형을 구축하는 뇌에는 묽은 귀리죽과 다르지 않다. 인물의 공포나 기쁨, 분노, 불안, 슬픔을 경험하려면 뇌에서 이런 감정 모형을 생성해야 한다. 뇌는 어떤 장면의 모형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책 속의 상황이 현실인 것처럼 경험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이야기의 장면이 독자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 51p
우리가 사는 세계를 구축하는 신경계의 환각 모형은 작고 개별적인 모형으로 구성되고(공원 벤치, 공룡, 이스라엘, 아이스크림, 그리고 모든 것의 모형), 모형마다 저마다의 과거가 얽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대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함께 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함께 느낀다. 우리가 주목하는 모든 대상이 감각을 깨우고 대개의 감각은 의식 바로 밑에서 미묘하게 경험된다. / 65p
모든 작가는 어떤 독자를 타깃으로 정하든 간에 서사를 지나치게 통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고 방치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치게 설명을 늘어놓는 것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는 말로 표현하기 보다는 보여줘야 하고, 설명하기보다는 암시해야 한다. 아니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식어버리고 독자나 관객을 지루해진다. 나아가 이들이 이야기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독자나 관객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유롭게 예상하고 방금 그 일이 왜 일어났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자기만의 감정과 해석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 81p


조지프 캠벨은 “한 인간을 진실로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의 결함을 기술하는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야기와 현실에서 만나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하지만 현실의 삶과 달리 이야기에서는 그 인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처럼 고도로 사회화되고 가축화된 존재에게는 타인의 인과관계, 곧 남들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아는 것만큼 매력적인 경험도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2장과 3장에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의 스티븐스과 같이 결함이 있는 주인공들을 만나보고, 인물의 성격이 플롯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다. 이어 ‘이 사람은 누구인가?’ 혹은 인물의 관점에서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극적 질문이 극에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주인공의 잠재의식으로 들어가 인간의 삶을 기괴하고 복잡하게 뒤틀고, 우리의 이야기를 강렬하고 예상할 수 없고 감상적으로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기도 한다.
서양인들은 개인의 투쟁과 승리에 관한 이야기를 즐기는 데 반해 동양인들은 화합을 추구하는 서사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동양과 서양의 서사 양식에는 두 문화에서 변화를 보는 각기 다른 관점이 반영된다. 서양인에게는 현실이 개체와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위협적이고 예기치 못한 변화가 발생할 때 서양인은 이런 개체와 부분을 싸워서 길들이려고 애쓰면서 통제력을 되찾으려고 한다. 반면, 동양인들에게 현실은 서로 연결된 힘의 장이므로 위협적이고 예기치 못한 변화가 일어날 때 동양인은 요동치는 힘을 다시 조화롭게 다스려서 모든 힘이 공존할 방법을 찾아내는 식으로 통제력을 되찾으려고 한다. / 114p
우리가 인간 환경에서 보는 현실은 과거의 산물이자 자기만의 고유한 상처의 산물일 때가 많다. 우리는 뇌에서 무시하는 대상은 보지 못한다. 뇌가 우리 주위의 고통스러운 장면만 보도록 눈에 명령한다면 우리에게는 그런 것만 보일 것이다. 또 뇌에서 실제로는 무해한 사건에 대해 폭력과 위협과 편견의 인과관계를 지어내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그런 것만 경험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경험하는 환각의 현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경험하는 현실과 전혀 다를 수 있다. 누구나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며 그 세계가 친근한지 적대적인지는 주로 어린 시절의 경험에 달려 있다. / 226p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이야기의 힘과 의미를 들여다보고 강렬한 플롯과 결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살펴본다. 흥미롭게도 책을 읽다보면 나의 신경 모형이 어떤데 취약한지, 그리하여 어떤 이야기와 인물에 끌리는지 이해하게 된다. 또 뇌가 어떤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어떤 플롯에 안정감을 느끼고, 작가라면 어떻게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다.
실제로 이야기에 빠져든 순간에 뇌를 스캔하면 자아 감각과 연관된 영역이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야기가 우리를 아찔한 통제력의 롤러코스터에 태우면 우리 몸도 그에 따라 반응하면서 이야기 속 사건을 체험한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관이 팽창하고 코르티솔과 옥시토신 같은 신경 화학물질의 활성화 수준이 변하면서 감정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 빠져들어 내릴 역을 놓치거나 잠도 못 이룰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도취’라고 말한다. / 259p
잘못된 신념이 그 인물의 현실에 대한 신경 모형을 형성한다. 인물은 그 너머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이런 잘못된 신념은 인물이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데 일조한다. 플롯의 핵심은 인물의 신념을 검증하고 깨뜨리는 데 있다. 이것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 276p


이처럼 『이야기의 탄생』은 뇌과학과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독특한 시도로, 창작가들에게는 좋은 자극제이자 지침서가 될 만하다. 아울러 책이나 영화 등 각종 창작물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인물과 플롯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혹 뇌과학이라는 소재만 보고 이 책의 내용이 어려울 것이라 짐작하는 이들에게는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으니 일독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