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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 법정 스님 법문집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 시공사 / 2020년 5월
평점 :

열반 10주기, 여전히 우리 시대에 깊은 울림을 전하는 법정 스님의 말씀!
끊임없이 밀려드는 번민에 중심 잡기 힘든 요즘, 따뜻하고 진실한 메시지에 귀 기울여보다!
이 글을 쓰기 바로 직전에 남편이 상갓집에 다녀와야 한다고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왔다.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인데 나 역시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 부고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인지 부러 캐묻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심 짐작되는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보내온 메시지에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안타까운 사인이 적혀 있었다. 모진 사람, 목숨을 끊을 용기가 있었으면 더 잘 살아볼 용기를 내어보라 할 것을 타박하고 싶기도 하나 이번 생에 미련이 없을 만큼 괴로운 일이 있었다면 그 선택에 뭐라 더 할 말이 있을 수 있을까. 그저 다독여주고 붙잡아줄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
세상은 이토록 시끄러운데 우리는 왜 자기 마음 하나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외로워하는 것일까. 너도 나도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앞다투는 세상인데 정작 내면은 나약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일까. 차고 넘치는 이 세상에서 만족하지 못하며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 같이 힘든 세상일 텐데 남이 사는 이야기는 다 재미있어 보이고 내가 사는 이야기는 참 재미없어 보이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이 수많은 질문 앞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삶을 올바르게 이끌고 세상을 치유할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임을 또한 안다.
우리의 마음이 가는 곳, 그곳이 바로 법당입니다
『좋은 말씀』은 법정 스님의 열반 10주기를 맞아 각종 법회와 대중 강연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었던 메시지들을 담은 법문집이다. 법정 스님이 타계하신 당시, 서점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나는 생전에 ‘법정 스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는 고인의 유언으로 인해 이제 몇 안남은 『무소유』를 구했노라며 자랑스레 부모님께 갖다드린 기억이 있다. 정작 그 책에 무슨 말씀이 쓰여 있는지는 모르고, 그저 ‘법정’이라는 이름 두 글자가 새겨진 마지막 책을 소장해야 한다는 데에만 달아올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이토록 진득하게 스님의 책을 마주하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어쩌면 가지고 싶은 것을 가져야만 마음이 충만해지던 혈기왕성한 시절이 아니라, 삶에 관한 갖가지 질문들로 번민이 차오르는 바로 지금에서 스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스님의 말씀은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혼탁한 위기의 시대일수록 우리가 반드시 구하고 찾아야만 하는 가르침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밝음의 배후는 어둠입니다. 어둠은 밝음의 뒷모습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둠과 밝음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고 서로 받쳐 주는 작용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둠만을 보려 하거나 밝음만을 보려고 합니다. 생과 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체와 전체의 상관관계 역시 같은 이치입니다. 삶은 죽음의 표면이고, 죽음은 삶의 이면입니다. 중생이 있기에 부처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은 바다 저 멀리에 홀로 떨어져 있는 섬과 같은 존재들이 아닙니다. 나무의 가지들처럼 서로 떨어져 있지만 뿌리에서는 하나로 이어져 있는 광대한 대지의 한 부분들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균형적인 리듬이고, 음양의 조화입니다. / 13p
우리가 입은 은혜는 반드시 되돌려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자손들이 다시 그 은혜를 입으며 삶을 이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대대로 자기들이 입은 은혜들을 되돌렸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현상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회향’이라고 합니다. 내가 받을 공덕이 혹시 있다면 그것을 모두 이웃에게 되돌린다는 의미입니다. / 19p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과 집에서만 생활하다보니 매일 휴대폰을 손에 쥐고 SNS를 반복해서 들어가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소유하지 못한 것들, 타인이 누리고 있는 시간들에 유독 마음이 허해질 때가 많다. 하지 않으려 해도 습관처럼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게 된다. 때문에 ‘각자는 자기 분수와 자기 틀, 자기 자리에 맞게끔 행동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정곡을 찌른다. 우리 삶에 어떤 표준이 있는 게 아니듯 저마다 자기 얼굴을 지닐 수 있으면 된 거라고. 자기다운 삶, 자기다운 생활 규범을 지니고 마음의 안정을 이루어 즐겁게 산다면, 스스로 자기의 얼굴, 얼의 꼴을 이루게 마련이라고. 자기답게 살지 못해서, 생활 규범이 없어서, 마음의 안정을 이루지 못한 채 늘 흐트러지기 때문에 자기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지혜를 일깨우지 못하고 늘 허둥지둥 사는 거라는 말씀은 지금의 내가 새겨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일 듯하다. 덕분에 오늘의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내 얼굴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고 있는지, 또 나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도 되돌아본다. 이래야 하는데, 저래야 하는데…… 실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조급함에 오늘도 허둥대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상처를 받지는 않았는지 혹은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도.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려면 첫째, 맑은 생활 습관을 익혀야 됩니다. 불자들에게는 공통적인 생활 규범이 있어요. 그것이 다서 가지 계, 오계예요. 산목숨을 죽이지 않겠다는 것, 주지 않는 남의 것을 훔치지 않겠다는 것, 자기 가정을 이탈해서 한눈 팔지 않겠다는 것, 진실한 말만 하겠다는 것, 취하지 않고 맑은 정신을 가지겠다는 것,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한 다섯 가지 생활 규범입니다. 살도음망주, 다섯 가지 계율이에요. 원래 계라는 것은 무엇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무엇 하겠다는 다짐이에요. 내가 어떻게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다만 율은 규정입니다. 그래서 계와 율을 합해서 계율이라고 해요. 하나의 생활 습관이에요. / 35p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세 가지를 평소에 몸에 갖추어야 돼요. 이 막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나름의 청정한 생활 규범과 질서를 가져야 돼요. 이게 계행의 옷이에요. 또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제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제정신 똑바로 차리는 선정의 옷과 성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지혜의 옷을 입어야 됩니다. 계행과 선정과 지혜를 평소에 몸에 익힌다면, 어떤 옷을 입더라도 거리낌이 없어요. / 95p
노년에 이르면 삶의 종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죽음에 대비해야 합니다. 대비한다는 것은 곧 배우는 일입니다. 젊어서 삶을 배우듯 우리는 죽음도 배워야 돼요. 친지나 이웃의 죽음을 보면서 내게도 다가올 그날을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에는 노소가 없습니다. 왜 그 많은 젊은이들이 죽을까요? 죽음에는 노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 내 차례가 올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젊건 늙었건 죽음에 대비해야 됩니다. / 101p


법정 스님 하면 ‘무소유’의 정신이 떠오르듯 법문집에도 역시 ‘청빈’ 즉 ‘맑은 가난’을 거듭 강조한 대목이 눈에 띤다.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은 인도의 위대한 시인 까르비가 노래한 대목을 하나 실어 놓았다. “너는 왔다가 가는 한 사람의 나그네. 재산을 모으고 부를 사랑하지만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너는 주먹을 쥐고 이 세상에 왔다가 갈 때는 손바닥을 펴고 간다.” 태어날 때는 주먹을 쥐고 이 세상에 올지 몰라도 갈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태어날 때 어머니의 몸을 버리고 나왔듯, 또 죽을 때는 이 몸을 버리고 간다. 버리는 데서 시작해서 버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인생이란 뜻이다. 그러니 아등바등 움켜쥐려고, 타인이 가진 것을 가져보겠다고 애쓰지 말자. 결국엔 다 내 것이 아닌 법인데, 미련을 가져서 무얼 하나.
업이란 그런 겁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당장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업으로 쌓여서 나의 삶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어떤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해야 돼요. / 146p
흙과 나무와 풀과 새와 짐승을 가까이하십시오. 또 구름과 별과 달과 바람과 이슬을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자연스러움을 함께 일깨울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돌아가 의지할 곳이 어디인지 가끔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173p
끝으로 “법당은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집에도 법당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는 곳, 그곳이 바로 법당입니다.” 라고 하신 스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려 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부처를 모시고 있다. 내 마음을 법당삼아 항상 청결하고 정결한 마음을 유지하려 할 때 부처는 그 안에 들어와 머무를 것이다.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그 안에 깃드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 또한 내 안에 있는 법이다. 그 말씀을, 그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