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넘 숲
엘리너 캐턴 지음, 권진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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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의 사회적 이슈와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

거대 자본주의의 민낯과 그 속에서 훼손된 여러 가치들을 돌아보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






「인간의 필요에 응하며 재생하는, 계급 차별이 없고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직접 민주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보호할 것, 최대한 자본주의 구조 밖에서 활동할 것, 연대와 상호 협조를 실천할 것.」 / 156p





  게릴라 가드닝 단체인 ‘버넘 숲’은 시내 곳곳에 방치되어 있거나 버려진 땅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그곳에서 얻은 수확물을 회원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일부는 판매하여 다시 작물을 재배하는 비용을 마련하는 풀뿌리 공동체였다. 누군가는 이들을 이상적이고, 정의롭고, 필요한 일을 하는 단체라 여기기도 했지만, 대부분 추수하는 작물의 상당량이 공유지나 주인이 쓰지 않는 땅에 허락 없이 심은 것들이기 때문에 더러는 비밀스럽고, 이단적이고, 공상적인 사회개량주의자들이라 여기곤 했다. 버넘 숲의 설립자이자 원예가인 미라 번팅은 방치된 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최대한 자본주의 구조 밖에서 연대함으로써 사회 변화를 이뤄나가자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지만, 좀 더 지속가능성이 있는 단체의 발전을 위해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진과 산사태로 고립된 뉴질랜드 코로와이 구릉지대의 손다이크는 미라가 꿈꾸는 버넘 숲의 생존과 미래를 실현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적어도 봄까지는 버려져 있을 가능성이 있는 이 좋은 땅에서 들키지 않고 한 철 분량의 작물을 심을 수만 있다면 거기서 거둔 수익으로 버넘 숲의 재정적 자립 기회를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여 들키더라도, 생산적이고 사려 깊고 땅을 존중하며 선한 가치를 실현하려는 버넘 숲의 사명과 비전을 증명할 수 있다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손다이크를 답사하던 도중 미라는 또 다른 목적으로 손다이크에 온 드론 제조업자이자 CEO인 로버트 르모인과 마주친다. 손다이크에서 비밀스러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로버트는 미라가 들려주는 버넘 숲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하는데…. 로버트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미라는 버넘 숲을 지켜낼 수 있을까.




  『버넘 숲』은 버려진 땅에서 작물을 가꾸는 게릴라 가드닝 단체인 ‘버넘 숲’이 드론 제조업자이자 억만장자인 로버트 르모인과 뜻밖의 공모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파국을 다룬 스릴러 소설이다. 급진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성향의 버넘 숲 일원과, 자본과 기술을 이용해 개인과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로버트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사회적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서로를 이용하고, 결탁하고, 각자가 쥔 정보를 은폐하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위기가 시종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다.





비밀리에 모니터링해 오면서 르모인이 알게 된 많은 것 중 하나는 대부분의 경우 자연스럽게 섞이려 할수록 남의 이목을 더 끈다는 사실이었다. 훨씬 더 좋은 위장은 뻔한 고정 관념에 어울리는 의상을 골라 보란 듯이 입고 다니면서 사람들 생각이 대체로 고정될 때까지 일부러 그들의 판단과 편견을 부추기는 행동이다. 그러고 나면 거의 무엇이건 마음대로 해도 된다. 사람들의 의견을 형성할 때는 빠르지만 그 의견을 바꿀 때는 느리기 때문에-격언을 살짝 바꿔 말하자면-자기가 본 게 무엇인지 이미 결정한 사람보다 더 눈먼 사람은 없었다. / 121p



그 자연 보호 프로젝트는 그저 연줄을 통해 이익을 얻고 자기 사업을 돋보이게 하고 장비를 가지고 놀고 억만장자의 후광에 편승하려는 수단에 불과했다. 다비시는 자연 보호론자가 아니었다. 그냥 자기 잇속만 차리는 평범한 기회주의자인데, 오로지 정치적 편의와 운발로 기사 작위를 받았던 것이다. / 449p











  ‘스릴러’라는 장르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동시대의 이슈와 갈등을 다룬 일종의 사회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베이비부머 세대를 대표하는 부모 세대를 향한 반감과 박탈감, 공공재의 민영화와 기술 만능주의를 향한 우려, 민주주의자로 가장한 숨은 파시스트들과 그들이 벌인 정치적 야합을 향한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집단 감시는 전체주의적이고 억압적이죠. 억만장자 계급은 그 존재만으로 연대를 잠식합니다. 그건 근본적으로 지속 불가능하고 시대에 역행하고 정의에 반해요. 시민권을 팔고 사면 안 됩니다. 저항 행위가 의뢰 가능한 일이 되어서는 안 돼요.”라던 토니의 목소리는, 거대 자본주의의 민낯과 훼손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치들을 돌아보게 한다.




미라는 옳고 그름이 명료하게 구분된다는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성장했고, 어른 대접을 받는 게 아이 취급을 받는 것보다 낫다는 걸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로운 기분이 들 때면 부모님에게 자신의 존재는 그저 파티 여흥 거리 같은 것, 즉 훌륭한 양육의 눈부신 증거, 미래의 믿음과 분별력이 아니라 당신들의 믿음과 분별력의 산 증거 같은 것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미라는 때로 사기 치는 듯한 괴로운 기분, 자기가 가장 쉽게 하는 일로 가장 높이 평가받는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 71p



셸리는 자기는 늘 지는 쪽에 있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데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었다. 뉴질랜드는 셸리가 투표권을 가지기 전부터 중도 우파가 지배하고 있었고, 셸리는 소위 대립한다는 정당들 그 어디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부모님 세대 사람이 주택 소유나 해외여행, 뜻밖의 소득, 교육 자체를 위한 교육, 치열한 경쟁 속에서 두 번째 기회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마다 숨 막히고 추한 패배감이 치밀어 올랐다. / 342p











  섹스 스캔들이 일어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소년 소녀들의 불안과 흔들리는 학교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이면서 정교하게 그려낸 전작 『리허설』이 그러했듯, 엘리너 캐턴은 이번 작품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그리고 테크놀로지와 환경이라는 민감한 이슈와 사회적 갈등을 대담하게 돌파해가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임을 입증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신념이 어떻게 시험당하고 또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통렬하게 보여주었다는 데에서 섬뜩하고도 무서운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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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팩트 커피, 커피 하는 마음 작고 단단한 마음 시리즈 1
김종진 지음, 김종필 사진 / 수오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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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끝내 버텼고, 그럼으로 인해서 나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묵묵히 매뉴팩트 커피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고, 나누며, 앞으로 나아갔던 마음을 담은 책!






  끝끝내 버텼고, 그럼으로 인해서 나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들에 유독 이끌리는 건 매순간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모르지 않을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내키지 않은 일도 감내하며, 수많은 감정의 낙차를 뒤로 하고 조금 더 버틴 오늘이 또한 성장이 되겠지, 하고 믿어봄으로써 부단히 마음을 삼켰던 존재들이 눈에 밟히는 요즘이다. 아마도 이 책 덕분에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마음’들을 더욱더 응원하게 된 것 같다. 작은 듯 보여도 무엇보다 단단한 그 마음들을.





10년이 넘는 시간,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내립니다



  직접 가서 맛보고 글로 남길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검색을 통해 눈으로 먼저 본 ‘매뉴팩트 커피’ 연희동점은 확실히 유니크한 매력이 있는 곳인 것 같다. 요즘에는 사람 발길이라고는 전혀 닿지 않을 곳에까지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분위기지만, 10년 전에 이곳을 방문했다면 정말 고개를 갸웃거렸을 듯하다. 『매뉴팩트 커피, 커피 하는 마음』은 바로 ‘매뉴팩트 커피’의 대표인 김종진, 김종필 형제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매뉴팩트 커피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고, 나누며, 앞으로 나아갔던 마음을 담은 책이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것의 기쁨과 슬픔,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는 풍경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업을 지속하며 변하되 변하지 않아야 하는 마음들에 대해 전한다.





커피를 내리는 사람은 물과 압력과 시간을 다뤄 커피가 가진 본질을 드러내고 커피가 가진 또렷한 개성을 고객에게 전달한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커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손을 거쳐 우리 손에 쥐어진다. 좋은 커피는 공정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제 역할을 다할 때라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커피를 진지하게 하는 이유다. / 16p



기계에서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적갈색 커피가 흰색 머그잔 내벽을 따라 흘러내리고 칙칙 스팀을 내뿜으면 뭉근한 김이 천장 조명을 향해 떠올랐다. 바리스타는 에스프레소를 담은 컵에 데운 우유를 아주 천천히, 크레마 위에 물감을 풀듯 그려넣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피는 쟁반 위 소서에 올려졌다. 빠르지만 정확하고 섬세한 그들의 손놀림에 매료되었다. ‘커피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열린 순간이었다. / 26p











  한때 저자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그곳에는 뜻이 없었고, 오직 커피에 관심이 있어 커피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기도 해봤지만 현실적으로 커피가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녹록치 않았다고 한다. 진로상담 면담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지도교수에게 일단 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나중에 커피가게를 하겠다는 계획을 토로하자 교수는 이런 말을 한다. “꿈을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10년을 보낸다면 그 잃어버린 10년은 누가 보상해줄까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과 관련된 분야에서 몸담고 있어야 합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건 경험이니까요.” 이 말이 던진 파문은 곧 책을 읽는 나에게로도 전해졌다. 때가 되면, 할 수 있을 여건이 되면… 하고 주저했던 수많은 마음들에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놓쳐버렸던 걸까.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여건이 충분히 않아 망설이는 이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다.





어떤 일이든 숙련의 시간으로 일정 기간을 보내면 숙달이 되고 실력이 생겨야 마땅한데 커피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변수가 많은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커피는 농작물이라 재배 환경에 따라 수확의 결과가 매해 다르다. 날씨에 따라, 볶는 양에 따라 그리고 로스팅할 때마다 다르다. 물 온도나 에이징에 따라서도 커피는 내릴 때마다 다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사랑스러운 건 어쩌다 훌륭한 커피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고 그 커피를 고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기대와 설렘 때문이다. / 20p



그날도 테이블엔 커피가 있었다. 전시가 완성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그들의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참석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회의가 좋은 결과를 맺는 데 일조한 듯한 느낌이었다. 커피는 대화의 분위기를 말랑하게 하기도 하고 그들의 의식을 또렷하게 하기도 하면서 전시의 결과를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라 생각했는데, 그 너머에 있는, 커피가 갖는 효용의 가치를 처음으로 생각해본 날이었다. / 43p



내가 겪어온 경험의 파편은 몸과 정신 어딘가에 떠돌다 제 쓰임을 다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불필요해 보이는 경험도 다 쓸모를 찾아주었다. 그러다 보니 주어진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고 체계가 정립되었다. 매사에 긍적적으로 최선을 다하자는 좌우명 덕을 지금도 보고 있다. / 53p











   저자는 커피를 그림 그리는 일에 비유하며 커피도 붓질처럼 수천 잔의 커피를 내려 봐야 겨우 조금 알 것 같은 윤곽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양의 커피를 내리고, 운이 좋게 그것을 찾았다면 이를 표현하기 위해 커피를 지속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무언가를 지속하는 힘이란 이런 건가 보다. 수없는 반복, 그 지난한 시간을 견대는 힘, 그 속에서 설령 길을 잃는다 하여도 더 많은 혹은 새로운 길을 가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도해보는 것. 이것이 10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브랜드를 지킬 수 있었던 이들의 힘이 아니었을까. 계속될 이들의 이야기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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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개념어 사전
유정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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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역사 사전이라니, 반갑다!

조선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필수 용어들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







  “日서 돌아온 ‘경복궁 선원전 편액’, 라이엇 게임즈가 도왔다(출처: 국민일보)”

  『조선사 개념어 사전』을 읽던 도중 한 머리기사가 번뜩 눈에 띄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발로란트’ 등 e스포츠 대표 게임을 개발하는 라이엇 게임즈가 일제강점기에 반출된 국외소재 문화유산 ‘경복궁 선원전의 편액’을 국내로 환수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일단, 게임 회사가 국외소재문화유산 환수를 12년째 지원하고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고, 마침 환수된 품목이 경복궁 선원전 편액이라는 점이 또한 놀라웠다.




  이 책에 따르면, ‘편액’이란 도성 문루, 전각, 사찰, 관아, 향교, 일반 주택에 걸렸으며 전각의 명칭 외에도 건물 관련 사항이나 문인들의 글씨가 적혀 있는 현판을 뜻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역대 왕들의 어진(초상화)을 봉인하고 의례를 지내던 경복궁 선원전의 편액을 환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니 참 고마운 일이 아닌가. 무엇보다 이 책에서 편액의 뜻을 미리 익히지 않았더라면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 거라 생각하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옛말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사전처럼 찾아 읽는 870개 조선사 개념어




  우리가 역사를 어려워하는 이유를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용어 때문이라 여긴 유정호 작가는 ‘모르는 용어가 이해될 때, 생소한 개념이 친숙해질 때,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정립될 때’ 정말로 역사가 재미있어진다고 말한다. 이에 500년 조선사에 등장하는 주요 870여 개의 용어를 사전으로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이 『조선사 개념어 사전』이다. 인물, 문화재, 서적, 정치, 제도, 사건, 지리, 문화 등 조선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필수 용어들을 알기 쉽게 정리해놓아 조선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사림_

성종이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재야에 있던 김종직 등을 중앙으로 불러들이면서 역사에 등장했다. 고려 말 유학자인 정몽주와 길재를 시조로 하는 온건파 사대부의 후예인 신진 사류로 유향소를 통해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훈구파와는 달리 유교 경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학을 중시하고, 도교와 불교 등 성리학 이외의 학문에 배타적인 모습을 보였다. 성리학적 명분론을 강조하며 부정·비리를 저지르는 훈구파를 견제하다가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를 겪으며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서원과 향약, 유향소를 기반으로 지방민의 지지를 얻어 선조 때 훈구파를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학문과 정치 운영을 두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붕당을 형성한다. / 192p

 


삼정의 문란_

조선 후기 전정, 군정, 환정(환곡)의 수취 과정에서 나타난 부정·비리를 일컫는 말이다. 전정은 토지세를 실제 소유하지 않은 토지에서 징수하거나, 실제보다 몇 배 더 많이 거둬들이는 부정행위를 말한다. 군정은 군포를 가족과 이웃에게 부과하거나 어린아이나 죽은 사람에게 거둬들이는 부정행위를 말한다. 환정은 강제로 곡식을 빌려주고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이 돌려받는 부정행위를 말한다. 삼정의 문란은 19세기 홍경래의 난과 임술농민봉기 등 농민항쟁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 211p












  평소 조선사 하면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붕당 정치와 각종 토지 세법과 관련된 것이었다. 서인, 동인, 노론, 소론, 북인, 남인 등 정치적 입지에 따라 형성된 집단인 붕당은 왕권 견제와 비판, 여론 수렴 등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었으나 자기 붕당의 이익을 우선해 국익을 해치는 부작용이 점점 커졌다. 어떤 당이 득세하느냐에 따라 정치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조선 중기는 사실상 이를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데, 워낙 복잡하다보니 나로서는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직전법, 과전법, 대동법 등 때마다 변했던 각종 세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이 점에 집중한 독서가 통했는지,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다. 통독도 좋지만 궁금한 단어를 중심으로 독서를 해도 좋은 이유다.




인징_

조선 후기 조세를 납부하지 못하고 죽거나 도망치면, 이웃이 대신 조세를 납부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인징으로 많은 백성이 이중삼중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향촌 사회가 붕괴하거나 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 373p











  두고두고 챙겨 읽다가 훗날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읽어보기를 추천해주고 싶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치르는 분들은 물론, 평소 조선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도 책장에 챙겨놓고 읽어보시면 좋을 듯하다. 이왕이면 조선사뿐만 아니라 삼국사 개념어 사전도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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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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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이 폭발한다, 이건 그냥 괴물 같은 소설이다!

다중추리와 거듭된 반전, 충격적인 설정으로 어디까지 나아갈지 종잡을 수 없는 극한의 상상력!





  『엘리펀트 헤드』가 국내에 출간되었을 당시, “악마 같은 소설”이라는 평가가 다수를 이루며 이 책만큼은 한사코 스포를 막으려는 독자들의 반응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순전히 독자들의 반응 때문에 이 책을 구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읽은 뒤의 나 역시 그들의 반응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이건 그냥 괴물 같은 소설이라고, 정말 미친 작품이라고.




극한의 상상력이 폭발한다



  가가조 의과대학 부속병원 정신과에서 환자를 진료한 지 23년째, 정신과 의사인 기사야마 세이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스스로는 의사로서 확고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은 물론, 배우인 아내와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큰딸, 지병에도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작은딸과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인생을 몇 번 다시 살아도 이렇게 멋진 가족을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런 행복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사야마는 격렬한 불안에 휩싸이곤 한다. 어딘가에 작은 균열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단 하나의 균열이…….




가족을 지키려면 어떤 균열도 방치해서는 안 된다. / 109p



  이따금 이런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평온한 나날이 지속되고 어쩐지 하는 일마다 순조롭게 진행되어갈 때쯤이면, 언제 이 일상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추락에 대한 불안 같은 것. 『엘리펀트 헤드』는 어떻게 해서든 가족의 평화를 지켜야겠다는 한 정신과 의사의 과도한 신념에서 비롯된 범죄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이러한 공포가 한계에 치닫으면 이야기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극한에 극한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여기에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다중세계와 타임 패러독스를 인용한 특수설정, 망상과 의식의 분열, 그 안에서 거듭되는 다중추리와 반전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작가의 필력까지… 독자가 무엇을 상상하건 미스터리 장르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치를 이 작품에 아낌없이 쏟아 부은 느낌이다.





“소문은 들었어요. 수상쩍은 이야기뿐이었지만요. 너무 큰 쾌락 때문에 살아갈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거나, 자신의 뇌를 긁어서 꺼냈다는 것도 그중 하나죠.” / 264p



“선생님은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다중세계 해석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이 세계의 온갖 일은 여러 가능성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선생님은 오늘 아침 분홍색 넥타이를 고르셨지만, 옆에 있는 노란색 넥타이를 고른 선생님도 동시에 존재하죠.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촌스러운 네이비색 넥타이를 고른 선생님도 있어요. 책상 화분에는 파리지옥이 심겨 있지만, 파인애플과인 브리세아가 심긴 세계도 있죠. 스피커에서 코카인 베이비스가 아니라 디즈니의 오르골이 흘러나오는 세계도 있고요.” / 371p











  다만, 이야기의 흐름상 필연적인 설정이었을지라도 우라시마라는 인물은 상당히 비현실적이어서, 섬세하고 완벽한 논리로 앞선 추리를 반박하고 깨부시고 나아가야 하는 다중추리만의 흥미로운 매력을 일부 손상시킨 듯한 아쉬움을 남긴다. 또 가학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설정 역시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미스터리 장르가 지닌 특수성과 마지막까지 도파민을 아낌없이 폭발하게 하는 상상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타부타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읽어보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품은 참 오랜만이다. 참고로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내 뇌가 분열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테이 마음 단단히 먹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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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5.1.2 - no.58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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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와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대하여!

서로가 지닌 웅덩이의 크기와 간극을 가늠하고 끊임없이 이해의 경계를 좁혀나가기 위한 시도 속에 문학이 있다!







  『Axt』 58호의 키워드는 ‘폭(Wide)’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쉽고 빠르게 연결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정작 ‘너와 나’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와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더욱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우리를 둘러싼 관계의 범위와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번 주제는 좀 더 특별한 듯하다.





  이번 호의 포문을 연 백다흠 편집장의 글은 비상계엄 선포와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국내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기쁜 소식이 혼재했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본다. 과신과 불신으로 두서없이 흩어지고 분열된 각각의 태도를 하나의 올바르고 엄정한 태도로 정의하고 정립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과제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윌리엄 트레버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리뷰한 공현진 소설가의 글 역시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타인이 자신의 이해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발생하는 충돌과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손쉽게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는 결국 자신의 이해 속에서만 타인과 타인의 삶을 인정하게 되고, 타인을 그 안에 가둔다.’는 글귀가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데, 나의 오만한 이해 속으로 애써 타인을 끌어들이기 보다는 서로의 간극을 그 자체로 인정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더 겸손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소년이 온다』는 계속하여 묻게 만든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어떤 인간은 더욱 특별히 잔인하게 인간을 학살했고, 어떤 인간은 총을 갖고도 쏘지 않고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117쪽)다고, 자신은 총을 쏠 수 없는 인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양방향으로 향한다. 극악무도한 잔인함을 향하여, 그리고 그러한 잔인함 앞에 맞서는 용기를 향하여. / 공현진 소설가 <어떤 인간은>, 「소년이 온다」(한강) review 중에서 12p



먼지처럼 작은 우리가 광대한 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경이로운 것 같아요. 우주의 폭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곧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여정입니다. 우주를 알아가려면 알아갈수록, 우리는 그 크기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 박선경 <우주의 폭, 인간의 자리> issue 중에서 57p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박서련 작가와 김연수 작가의 새로운 단편작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이번 호에서는 김연덕 시인의 에세이 <사랑하는 은발에 대해>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계산해 만들어낼 수 없는 색, 미세하게 달라질 미래를 버티고 있는 색, 팽팽한 긴장의 빛으로 젊은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라 묘사하며, 언젠가는 이 머리칼이 나를 이루는 전부가 되어 ‘내가 노년의 세계와 뚝 떨어진 채 구분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도 희미해질 것’이라던 시인의 글 속에서 나의 미래를 엿본다. 젊은이도 노인도 아닌 상태의 나, 여전히 은발의 세계가 나와 무관하다고 믿고 싶은 나에게 그것의 한 올, 한 올이 공포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으나 이왕이면 나의 은발은 단정하고 따뜻해 보이면 참 좋겠다고 나름의 긍정 회로를 돌려본다.




어느 순간 흰머리가 한 올이라도 섞여 있으면 내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이곳과 저곳 사이에 우뚝 서 있다는, 그러니까 서성이거나 흐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지만 그 한 올을 뽑아버리고 나면 금방 고정된 흑발의 세계로 돌아와버리기 때문일까.

언젠가 이 머리칼이 너를 이루는 전부가 될 거야, 미래 한 올이 내 머리로 엎어지며 알려주던 표지를 곧 잊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돋아난 표지는 해가 갈수록 더 자주 나에게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노년의 세계와 뚝 떨어진 채 구분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도 희미해질 것이다. / 김연덕 <사랑하는 은발에 대해> essay-objects 중에서 85p



“이 사진은 제 인생의 보물이에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기억하려고 해요. 아기는 울고 있지만, 울고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그 시절, 저는 나뭇잎을 잡아당겼지만, 잡아당기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게 조금씩 바뀌기 시작해 저의 세계 전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어떠세요? 아기가 울고만 있지는 않다는 게 보이세요?” /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short story 중에서 164p



모두가 끔찍하다고 말해도 끔찍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다른 걸 보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 하는 일이야. 이 현실에는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다른 것에 집중할 때, 너는 네 인생을 바꿀 수 있어. 그 다른 것이 바로 꿈이야.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어. 알겠니? /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short story 중에서 166p










  58호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천선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에게는 타인이 절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웅덩이가 있는데, 그 웅덩이가 사람 간의 폭을 만드는 것 같다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존재이기에, 대신 웅덩이를 사이에 두고 끝없이 소리를 냄으로써 함께 있음을 감각할 수 있는 거라고. 천선란 작가의 말처럼, 나는 서로가 지닌 웅덩이의 크기와 간극을 가늠하고 끊임없이 이해의 경계를 좁혀나가기 위한 시도야말로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학을 하는 사람이나 문학을 읽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Axt』가 문학하는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 터전이 되고, 문학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공간이 되길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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