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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5.1.2 - no.58 ㅣ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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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와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대하여!
서로가 지닌 웅덩이의 크기와 간극을 가늠하고 끊임없이 이해의 경계를 좁혀나가기 위한 시도 속에 문학이 있다!
『Axt』 58호의 키워드는 ‘폭(Wide)’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쉽고 빠르게 연결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정작 ‘너와 나’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와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더욱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우리를 둘러싼 관계의 범위와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번 주제는 좀 더 특별한 듯하다.
이번 호의 포문을 연 백다흠 편집장의 글은 비상계엄 선포와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국내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기쁜 소식이 혼재했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본다. 과신과 불신으로 두서없이 흩어지고 분열된 각각의 태도를 하나의 올바르고 엄정한 태도로 정의하고 정립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과제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윌리엄 트레버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리뷰한 공현진 소설가의 글 역시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타인이 자신의 이해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발생하는 충돌과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손쉽게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는 결국 자신의 이해 속에서만 타인과 타인의 삶을 인정하게 되고, 타인을 그 안에 가둔다.’는 글귀가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데, 나의 오만한 이해 속으로 애써 타인을 끌어들이기 보다는 서로의 간극을 그 자체로 인정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더 겸손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소년이 온다』는 계속하여 묻게 만든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어떤 인간은 더욱 특별히 잔인하게 인간을 학살했고, 어떤 인간은 총을 갖고도 쏘지 않고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117쪽)다고, 자신은 총을 쏠 수 없는 인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양방향으로 향한다. 극악무도한 잔인함을 향하여, 그리고 그러한 잔인함 앞에 맞서는 용기를 향하여. / 공현진 소설가 <어떤 인간은>, 「소년이 온다」(한강) review 중에서 12p
먼지처럼 작은 우리가 광대한 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경이로운 것 같아요. 우주의 폭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곧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여정입니다. 우주를 알아가려면 알아갈수록, 우리는 그 크기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 박선경 <우주의 폭, 인간의 자리> issue 중에서 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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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박서련 작가와 김연수 작가의 새로운 단편작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이번 호에서는 김연덕 시인의 에세이 <사랑하는 은발에 대해>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계산해 만들어낼 수 없는 색, 미세하게 달라질 미래를 버티고 있는 색, 팽팽한 긴장의 빛으로 젊은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라 묘사하며, 언젠가는 이 머리칼이 나를 이루는 전부가 되어 ‘내가 노년의 세계와 뚝 떨어진 채 구분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도 희미해질 것’이라던 시인의 글 속에서 나의 미래를 엿본다. 젊은이도 노인도 아닌 상태의 나, 여전히 은발의 세계가 나와 무관하다고 믿고 싶은 나에게 그것의 한 올, 한 올이 공포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으나 이왕이면 나의 은발은 단정하고 따뜻해 보이면 참 좋겠다고 나름의 긍정 회로를 돌려본다.
어느 순간 흰머리가 한 올이라도 섞여 있으면 내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이곳과 저곳 사이에 우뚝 서 있다는, 그러니까 서성이거나 흐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지만 그 한 올을 뽑아버리고 나면 금방 고정된 흑발의 세계로 돌아와버리기 때문일까.
언젠가 이 머리칼이 너를 이루는 전부가 될 거야, 미래 한 올이 내 머리로 엎어지며 알려주던 표지를 곧 잊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돋아난 표지는 해가 갈수록 더 자주 나에게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노년의 세계와 뚝 떨어진 채 구분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도 희미해질 것이다. / 김연덕 <사랑하는 은발에 대해> essay-objects 중에서 85p
“이 사진은 제 인생의 보물이에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기억하려고 해요. 아기는 울고 있지만, 울고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그 시절, 저는 나뭇잎을 잡아당겼지만, 잡아당기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게 조금씩 바뀌기 시작해 저의 세계 전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어떠세요? 아기가 울고만 있지는 않다는 게 보이세요?” /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short story 중에서 164p
모두가 끔찍하다고 말해도 끔찍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다른 걸 보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 하는 일이야. 이 현실에는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다른 것에 집중할 때, 너는 네 인생을 바꿀 수 있어. 그 다른 것이 바로 꿈이야.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어. 알겠니? /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short story 중에서 1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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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천선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에게는 타인이 절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웅덩이가 있는데, 그 웅덩이가 사람 간의 폭을 만드는 것 같다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존재이기에, 대신 웅덩이를 사이에 두고 끝없이 소리를 냄으로써 함께 있음을 감각할 수 있는 거라고. 천선란 작가의 말처럼, 나는 서로가 지닌 웅덩이의 크기와 간극을 가늠하고 끊임없이 이해의 경계를 좁혀나가기 위한 시도야말로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학을 하는 사람이나 문학을 읽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Axt』가 문학하는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 터전이 되고, 문학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공간이 되길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