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 - 강세형의 산책 일기
강세형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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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나섰을 뿐인데 내 마음이 훌쩍 자라버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 현관 너머의 세상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상상했다!





  총 2547.20km, 3,813,458걸음. 하루 평균 6.96km, 10,419걸음, 걸음걸음으로 쌓아온 1년이란 시간들. 강세형 작가의 산책일기,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는 매일 현관문을 열고 나가 마주했던 어떤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싫증을 잘 내고, 포기가 빠르고, 모든 것을 편식하는 사람. 베체트의 발병으로 바깥세상의 소요를 잘 견디지 못하는 데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지나치게 좋아해서 히키코모리 같은 삶을 살던 저자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 걷기 시작한 건 아주 사소한 우연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제 조금씩 운동을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다던 의사 선생님의 말, 모든 페이지에 운동 부족이 찍혀 있던 건강 검진 결과지, 코로나가 잦아들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 즈음 자꾸만 현관문에 시선이 갔다고….




  그렇게 현관문을 나서고 나니 어제와는 또 다른 사계의 언어들이, 어제는 체력이 다해 가보지 못한 횡단보도 너머의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이, 공원 오솔길에서 만나는 검은 얼룩 고양이와 종일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붕어빵을 굽고 있는 아주머니의 오늘이 궁금해서 매일 현관문을 열게 되었노라 고백한다. 이따금 생각을 하기 위해 걷는 건지 생각을 멈추기 위해 걷는 건지 의아할 때가 있지만, 걷는 동안 나에게로 와 말을 거는 수많은 단어들이, 조금씩 나의 지도가 확장되는 듯한 기분들이 한 발짝 더 내디뎌 볼 힘을 주었던 게 아닐까.




요즘 나는 매일 현관문을 연다.

마음도, 머리도, 조금씩 딱딱해져 가는 내가 지루하다 느껴진 걸까. 무엇을 보고 웃게 될지, 무엇을 보고 또 아파할지, 내 안의 어린아이를 찾아 현관문을 연다. 놓치면 또 지나가버릴 오늘의 밤하늘을 기억하기 위해, 깜빡 눈을 감았다 뜨면 또 사라져 버릴 오늘 하루를 기억하기 위해, 한글창을 열고 기록을 남긴다. / 74p



길은 고요한데, 마음이 시끄럽다.

수많은 단어가 내 머릿속을 떠돈다.

내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오염된 단어들이 떠돌고 있을지, 조심스럽게 한 단어 한 단어를 꺼내 살펴보며 또 걷는다. / 271p









  산책을 하다보면 의외의 것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이를 테면 작고, 허름하고, 가여운 것들이…. 목적지를 향해 바쁜 걸음을 내딛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다. 받침 하나가 빠진 낡은 간판과 그 세월을 지키고 있었을 오래된 이름의 상호들, 사람을 피해 주차된 자동차 아래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길고양이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몸집의 종이박스를 굽은 허리로 나르는 할머니까지. 임시휴업 안내가 붙은 가게의 존폐를 걱정하고, 캣맘을 기다리는 듯 오도카니 앉아 있는 고양이가 신경 쓰여 괜히 한 바퀴를 더 돈다던 저자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내가 아무리 작고 약한 존재라 해도 세상엔 나보다 더 작고 약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조금만 무례해져도 나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는 약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품고 산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어느 가게 앞 화분들 위에 쓰여 있던 ‘화분 가져가지 마세요.’ 어느 골목길 어귀 가로등 밑에 적혀 있던 ‘여기에서 주무시면 안 됩니다.’, 어느 네일샵 앞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어깨 수술로 당분간 쉽니다.’ 그냥 ‘개인 사정으로 엽니다’라고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어깨 수술이라는 구체적인 이유를 써 놓은 글쓴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렇게 길에서 만나는 손 글씨에는 글쓴이의 기분, 글쓴이의 사연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늘 흥미롭다. / 100p



낮 산책이 조금 늦어지거나, 밤 산책이 조금 빨라져 저녁 6시와 7시 사이 길을 걷고 있을 때면,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보게 된다. 요즘은 그 시간에도 해가지지 않아 더 잘 보인다.

퇴근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저녁이. / 109p



밤에 길을 걷다 보면, 내 그림자에 내가 놀라는 경우가 생긴다. 분명 내 그림자는 앞에 있었는데, 가로등이 다른 각도에서 들어오는 순간 뒤에도 내 그림자가 생겨 나를 따라올 때 흠칫.

(…) 역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도,

제일 경계해야 할 존재도, 나인 걸까.

다른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닌. / 235p









  산책이란 단어의 어감을 좋아한다. 의도가 묻어 있지 않은, 여유로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그 무해함이 참 좋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무해함이 주는 다정한 기운들을 내내 생각했다. 고관절통증과 족저근막염으로 인해 한동안 잊고 지냈던, 꾸준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밟아 나아간 걸음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제껏 망설여왔던 걸음을 나도 내딛어봐야겠다. 현관문을 더 자주 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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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 - 노르웨이부터 아이슬란드까지 신비롭고 환상적인 북유럽 동화 32편 드디어 시리즈 6
페테르 크리스텐 아스비에른센 지음, 카이 닐센 그림,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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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만의 신비로운 매력을 담아낸 아름다운 동화책!




“우리가 늪을 건널 용기를 내지 못하면 

어떻게 햇빛을 찾겠어?” 

/ 무민 연작 소설 「작은 무민과 큰 홍수」 중에서



  책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에 따르면 이야기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여러 일화를 통해 보여주는 생존 기록’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실질적 지침의 역할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해결을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류가 축적한 지식과 지혜를 고스란히 담은 동화야말로 시대와 장소, 세대를 불문하고 이야기의 가장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위대한 자산이 아닐까 싶다. 불완전하고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동화 속에 담긴 사랑과 우정, 연대와 용기와 같은 삶의 중요한 가치들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는 노르웨이부터 아이슬란드까지 신비롭고 환상적인 북유럽 동화 32편을 수록한 책이다. 환상적인 이야기, 신비로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세계 3대 삽화가 카이 닐센의 유니크하고 매력적인 일러스트와 만나 한 권의 아름다운 동화책으로 탄생되었다. 밤에는 사람으로, 낮에는 흰곰으로 변하는 저주에 빠진 왕자를 자신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놓친 막내딸이 왕자를 찾아 모험에 나서는 이야기 <태양의 동쪽과 달의 서쪽>, 자신이 기르던 송아지를 진짜 아들이라고 여긴 어느 노부부의 웃픈 이야기 <황소 피터>, 선량한 마음으로 쥐에게 친절을 베푼 덕분에 마법에 걸린 공주를 신부로 맞게 된 <숲속의 신부> 등 재미와 교훈이 넘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럼 집에 도착하시거든 절대 멈춰 서지 마세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려고 멈추는 것도 안 돼요. 곧장 마구간으로 가서 말을 몰아 되도록 빨리 돌아오세요. 사람들이 당신을 막아서더라도 못 본 척하셔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음식을 드시면 안 됩니다. 제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시면 우린 둘 다 불행해질 거예요.” / <거인의 안주인> 중에서 52p



“이번에도 네 입으로 꺼낸 말이니 어서 하프를 가져거라. 이번 일을 성공한다면 왕국의 절반을 주겠노라. 내 딸과 결혼도 시켜주지. 다만 실패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전 추호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조차 한 적도 없고요.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으니 한번 해보겠습니다. 혹시 엿새만 여유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 <청년과 거인> 중에서 159p









  인류가 동일한 사고 체계로 무리지어 이동하며 문명을 일궈온 탓에 대체로 비슷한 형태의 서사가 전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곤 하는데, 이를 테면 신데렐라 유형의 이야기가 북유럽 동화에도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금을 만드는 맷돌 이야기와 같이 우리나라 전래 동화와 거의 흡사한 내용의 이야기가 먼 북유럽에서까지 등장하는 점도 신기할 따름이다. 여기에 특별한 조력자의 등장, 주인공을 방해하는 트롤들, 북유럽의 자연 경관과 신비로운 자연 현상 등 이야기의 다양한 요소들이 읽는 맛을 더하니 북유럽 동화만의 독특한 매력까지 즐길 수 있다.



“그럼 집에 도착하시거든 절대 멈춰 서지 마세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려고 멈추는 것도 안 돼요. 곧장 마구간으로 가서 말을 몰아 되도록 빨리 돌아오세요. 사람들이 당신을 막아서더라도 못 본 척하셔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음식을 드시면 안 됩니다. 제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시면 우린 둘 다 불행해질 거예요.” / <거인의 안주인> 중에서 52p



“이번에도 네 입으로 꺼낸 말이니 어서 하프를 가져거라. 이번 일을 성공한다면 왕국의 절반을 주겠노라. 내 딸과 결혼도 시켜주지. 다만 실패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전 추호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조차 한 적도 없고요.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으니 한번 해보겠습니다. 혹시 엿새만 여유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 <청년과 거인> 중에서 159p



배가 어느 정도 나아가자 선장은 갑판 위에 맷돌을 꺼내놓고 말했습니다.

“소금을 만들어내라. 아주 빨리, 많이 만들어라!”

맷돌은 소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곧 소금이 물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소금이 배를 가득 채우자 선장은 맷돌을 멈추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갖은 방법을 다 써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맷돌은 계속해서 소금을 쏟아냈고 소금은 산처럼 불어나 결국 배는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바닷물이 짠 이유는 지금도 바닷속 깊이 가라앉은 맷돌에서 계속 소금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 <바닷물이 짠 이유> 중에서 311p










  북유럽 특유의 신비롭고 매력적인 요소들이 담긴 동화를 만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소장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선물하기에도 좋은 책이라 주변에 꼭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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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5.3.4 - no.59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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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단단한 지대를 밝고 선 기분이란 건 이런 것이다!

애써 수고로움을 들여 정성을 다해 무언가를 보존하려는 마음들에 대하여!




* 피클링: 피클 만들기. ‘저소비 코어’를 이끌고 있는 잘파 세대가 배달 음식 소비를 줄이고자 보관 기간이 긴 절임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유행하며 알려진 말.



  왜 피클링인가. 비건 레시피를 소개하는 비건 인플루언서 정고메는 <수고로움으로 절여지는 소중한 것들>이라는 칼럼에서 ‘피클링이란 신맛을 바탕에 두고 단맛과 짠맛의 균형을 맞춘 절임 물에 채소를 보존하는 요리 방식’이라고 소개한다. 산성화된 환경으로 미생물의 활동이 억제되면서 채소가 물러지지 않고 고유의 식감과 풍미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숙성 과정을 통해 한층 부드럽고 깊은 신맛을 이끌어내는 요리법이다. 단순히 신맛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넉넉해진 제철 채소들이 빛을 잃기 전에 절임 물에 담가 둠으로써 오랫동안 계절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삶의 지혜가 여기에 녹아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지키고 보존하려면 

절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 51p



  이렇게 피클링에 대해 알고 보니 “애써 수고로움을 들여 정성을 다해 무언가를 보존하려는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것은 감정적 경험을 거의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던 이서수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책이야말로 일상과 기억, 감정과 경험을 켜켜이 담아 보존하려는 우리의 마음과 자연히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 덕에 우리는 누군가가 써놓은 책 한 권의 힘으로 삶의 생기를 되찾고 회복할 수 있는 마음의 자원을 얻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혹시… 매번 시간을 들여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나의 수고로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면, 나는 지금 책으로 하여금 내 안에서 절여진 생각들을 하나의 글로 정리함으로써 ‘나’라는 존재를 보존하기 위한 피클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쇼츠, 릴스, 2배속 시청처럼 점점 더 빨리 얻고, 소비하는 일에 익숙해진 요즘 세태에 이토록 성가시고 귀찮을만큼 긴 문장의 글을 쓴다는 건 어쩐지 미련해보이지만, 이 정성이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 것이라 믿기 때문은 아닐까. 느리지만 정성껏 시간을 들이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이번 호의 주제가 여느 때보다 크게 와 닿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번 호에서는 소설가 정수읠의 「이 시점에 문필로 일억을 벌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와 남의현의 「공과 놀이와 공놀이」를 인상 깊게 읽었다. 전작의 경우,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문학이라는 언어가 행정이라는 언어와 만나면 곧잘 무기력해지고 마는 현실이 냉랭하게 파고든다. 글로 벌어먹고 살기 힘들지, 라는 말을 나도 한때 밥 먹듯 하고 다녔으니까. 후작에서는 필사적으로 엄마가 죽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내려가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그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동안 정작 번번이 죽임을 당한 건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무거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너에게 공을 주면, 네가 다시 나에게 공을 주는 거야.”

“왜요?”

“그런 놀이야.”

놀이? 노올이이? 노오올이이이? 나는 그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되뇌었다. 처음으로 내가 공을 던질 수도 있다는 것을, 또 부모와 놀이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남의현 「공과 놀이와 공놀이」 중에서 148p


“그러면 저랑 캐치볼 하러 가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런 즐거움들은 언제나 언젠가는, 이라는 형태로 나에게 다가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멀어져갔다. 이후로 나는 틈만 나면 엄마에게 캐치볼을 하러 가자고 졸랐고 처음에는 엄마에게서도 “언젠가는”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몇 번이고 그와 같은 대답을 듣고 나서, 나는 참지 못하고 야구공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 남의현 「공과 놀이와 공놀이」 중에서 151p




  매번 느끼지만 항상 새로운 키워드로 다양한 종류의 글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큰 즐거움인 것 같다. 다음 호에서는 또 어떤 주제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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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 군함의 살인 - 제33회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작
오카모토 요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톰캣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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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 군함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

움직이는 밀실, 극한의 이상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해양 미스터리 소설!





  때는 1795년.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목이 달아난 지 2년이 넘은 해로, 영국과 프랑스가 한창 전쟁을 벌이던 중이었다. 영국 군함 헐버트호의 함장 데이비드 그레엄은 이번에도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징집 부대원들을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군함이 나타나면 항구 인근에 살던 뱃사람들이 혹독한 징집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육지로 도망치거나 비밀 은신처에 몸을 숨기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대한 인력을 필요로 하는 군함의 사정상 뱃사람이든 육지 사람이든 젊은 남자라면 가릴 것 없이 강제 동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소설 『범선 군함의 살인』은 고요했던 솔즈베리라는 도시를 깨우며 프레스 갱(18~19세기 영국에서 강제 징집을 시행한 부대)들이 들이닥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구두장이 네빌 보우트는 장인어른과 술잔을 기울이던 도중, 강제 징집을 시도하는 헐버트호의 프레스 갱들에 의해 끌려가고 만다. 곧 있으면 탄생할 아이와 보낼 행복한 시간만을 꿈꾸고 있던 네빌은 하루아침에 전쟁터로 내몰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여기에 가혹한 노동과 엄격한 군함 생활,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 환경과 군함이라는 밀폐된 공간은 멀쩡했던 선원들마저 기묘한 광기로 물들게 하는 곳이다. 반드시 살아남아 가족에게 돌아가겠다는 마음만으로 겨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저놈들은 프레스 갱(18~19세기 영국에서 강제 징집을 시행한 부대)이야. 뱃사람들을 붙잡아서 억지로 군함에 끌고 가는 해군 부대라고. 뱃사람들은 악마의 사자처럼 두려워하지.” / 22p



옷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 귀족은 실크 스타킹, 농민은 작업복, 신부는 사제복, 그리고 군인은 군복이라는 식으로. 이 옷을 입으면 정말로 수병이 된다. 구두장이 네빌 보우트와는 작별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그리고 마리아와 함께한 생활과도. / 39p



“살아 있으면 집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 그때까지 여기서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 40p










  제33회 야유카와 데쓰야상 수상작인 『범선 군함의 살인』은 18세기 영국 군함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소설이다. 움직이는 밀실이라 할 수 있는 군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아울러 군함에서만 가능한 독창적인 트릭, 한 편의 완전한 해양소설에 가까운 치밀한 고증과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시대적 배경이 인상적이다. 특히 전쟁이라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주인공인 네빌 보우트를 비롯해 징집에 동원된 여러 인물들이 드러내는 극한의 이상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덕분에 제한된 공간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유발되는 극적 긴장감이 연쇄 살인사건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지막 장까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부 다 미쳤어. 

이 배가, 아니, 해군 자체가 미쳤다고. 

내가 미쳤더라도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날 미치게 만든 거지. 

즉, 광기에는 광기로 대항하는 거야.” / 346p




  18세기 영국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해양이라는 물리적인 배경을 과감하게 미스터리에 녹여낸 작품으로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가혹한 운명에 처해 있으면서도 끝내 잃지 말아야 할 인간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메시지까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다가오는 여름, 바다를 배경으로 한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진수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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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고비에 꼭 만나야 할 장자
이길환 지음 / 이든서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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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인생에 훌륭한 이정표가 되어줄 장자의 말씀!

삶이 버겁고 흔들리기 쉬운 마흔의 우리들에게 아주 특별한 위로와 지혜를 전하는 책!





  마흔이라는 시간의 무게감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직장과 사회, 가정을 두루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비롯해, 안정적인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슬슬 초조해지는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문제들 앞에서 지혜로운 대처가 가능한 성숙한 어른이기를 기대하지만, 감정의 파고 속에서 나는 아직도 쉬이 흔들린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불확실한 것투성인 나. 마흔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길목 앞에서 어떻게 하면 중심을 잃지 않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불확실한 삶 속에서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법



  초월적 긍정주의 사고를 반영한 밈인 ‘원영적 사고’, ‘러키비키’가 화제가 된 적 있다. 그런데 수천 년 전에도 이에 못지않은 초긍정주의자가 있었으니 바로 장자다. 장자는 나를 옭아매는 집착이나 욕망, 갈등과 경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라는 메시지를 전파한 사상가다. 『마흔 고비에 꼭 만나야 할 장자』는 이러한 장자의 긍정주의를 바탕으로, 앞만 보고 달리느라 삶이 버겁고 흔들리기 쉬운 마흔의 우리들에게 아주 특별한 위로와 지혜를 전한다.




『장자』 「제물론」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물은 ‘저것’이 아닌 것이 없고, 또 ‘이것’이 아닌 것이 없다. 저것의 관점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 것도, 이것의 관점에서는 볼 수 있다.

그래서 말하기를 저것은 이것이 있기에 생겼고, 이것은 저것이 있기에 생겼다. 저것과 이것은 서로가 있기에 생겨났다. 그래서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마찬가지로 ‘가능’이 있기에 ‘불가능’이 있고, 불가능이 있기에 가능이 존재한다. ‘옳은 것’으로 말미암아 ‘그른 것’이 있고, 그른 것으로 말미암아 옳은 것이 있다. / 20p




  장자는 ‘세상 모든 만물은 상대성에 의해 존재함으로 이것은 곧 저것이 될 수 있고, 저것은 곧 이것이 될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 하였다. 즉, 이것과 저것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장자의 지혜를 빌려 저자는, 마흔에 이르면 선 긋기를 좋아하는 마음에 지우개를 들고 조악한 기준을 없애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좋고 나쁘고, 아름답고 추하고, 귀하고 천하고의 구분이나 편협한 시선을 지우고 세상을 바라보면, ‘비교’라는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상대의 생각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태도인지 알게 되면 우리 사회의 다툼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평소 타인과 나를 비교하느라 초조하거나, 타인의 시선에 쉽게 휘둘리는 이들이라면 장자가 건네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자녀에게 한 가지 길만 제시하고 따르기를 바라는 것은 금세라도 도둑맞을 지혜를 일러주는 일입니다. 생사를 결정짓는 위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언제든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야 합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지혜가 모여 결국 더 큰 지혜를 만들어냅니다. / 36p


장자는 책 전반에서 구체적인 명제를 던지는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 터득하고 깨우치는 ‘도의 자기 학습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만물의 상대성을 깨닫고, 인위를 거부하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삶을 재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묘리의 바탕에는 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 있습니다. / 63p


결국,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갈망하는 마음은 ‘불필요한 것’을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부러워할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갈망의 대상을 찾는 대신 자기에게 집중하고, 타고난 본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본성을 깨닫기 시작할 때, 시기와 질투심은 사라지고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 93p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이에게 날을 세우는 사람은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화살에 늘 초조합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는 세상에서 애써 한쪽에 치우쳐 적을 만드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은 그저 하나의 자연 현상일 뿐입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악행이 아닌 한,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 213p










  저자는 마음의 배를 비우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마흔은 평화롭다고 말한다. 결국 내 몸과 마음을 타고난 본성에 맞게 쓰고 있는지, 갈망의 대상을 찾느라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집중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듯하다. 대부분의 고통은 ‘나’가 아닌 외부로 시선이 향하고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란 귀한 가르침도 얻었다. 마흔이라는 시점에 이르러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지혜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저자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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