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감정의 힘 - 공부 잘하는 상위 1% 아이들의 숨겨진 무기
김은주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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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면 당장에 읽어봐야 할 책!

부모의 불안과 속도 강박이 어떻게 아이의 긍정적인 공부 감정을 해치는지 예리하게 분석한 책!





  김은주 교수의 책 『공부 감정의 힘』 속에는 「2023년 가족실태조사 분석 연구」라는 이름의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자식의 성공은 곧 나의 성공과 같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비율이 2020년에는 46.9퍼센트였던 것이 2023년에는 58.9퍼센트로 증가했다는 것이었다. 자유롭고 부모와 아이의 인생을 분리 개별화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높다고 판단되는 우리 세대가 갈수록 더 높은 비율로 자녀의 성취를 자신의 성취와 동일시한다니,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 특히, 집단 가치관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만 소외되고 뒤처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성향이 높아서(포모 증후군), 아이들을 향한 과도한 기대와 통제도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부모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아이의 시간을 학원 스케줄로 빽빽하게 채워 넣고 선행학습에 몰아넣으면서도 아이가 혹여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건강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하지만 선행이 만연한 학원 시스템과 입시 경쟁이라는 교육 제도의 압박 속에서 우리 아이만 안 할 수 없다는 게 부모들이 가진 공통된 딜레마이자 현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바에야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해주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쪽이 오히려 낫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키워온 불안과 속도 강박이 내 아이의 공부 감정을 헤치고 있었다면? 좋은 대학에 못가면 인생이 망한 것 같고,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고, 등수와 시험 문제 한두 개에 스트레스 받는 아이로 키워지고 있었다면? 대한민국 사교육의 중심지인 대치동에서 아이들의 무너진 마음을 돌보며, 공부와 감정의 깊은 관계를 탐색해온 정신건강 전문의 김은주 교수는 지금은 사교육 로드맵이 아닌, 긍정적인 ‘공부 감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부 감정이란, 학습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 성취감, 자신감뿐만 아니라 불안, 좌절, 부담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포함한다. 즉, 공부 감정은 사고가 잘 작동하도록 도와주는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 책은 공부 감정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느냐에 따라 학습 효율과 동기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공부의 성패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부 감정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기질과 발달 그리고 내재 동기에 이르기까지 내 아이에게 꼭 맞은 학습 전략을 찾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에 주목해보시길 바란다.




‘유쾌’와 ‘불쾌’라는 감정 경험은 의식적으로 기억될 때도 있지만, 대개 무의식 속에 차곡차곡 축적된다. 그 결과, 아이들은 문제를 풀다 답이 헷갈릴 때, 머리로만 생각하지 않고 ‘감정적 신호’를 더해 직감으로 답을 고르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찍었다”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에 축적된 감정적·경험적 기억이 빠르게 작동해 가장 적합한 답을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사람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명확한 이성적 이유를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적 경험과 감정의 축적에서 비롯된 ‘직감’이 크게 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43p



우리 뇌에는 감정과 생각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부위가 있다. 이 부위는 ‘배내측 전전두피질’이라고 불리며, 감정을 느낄 때 몸의 반응뿐 아니라 어떻게 판단할지까지 함께 조절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감정과 사고는 서로 연결되어야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감정이 판단의 ‘방향타’ 역할을 해주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어도 실제 상황에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결국 아이가 학습을 잘 하려면, 지금 하고 있는 학습과 연결되는 유용하고 적절한 감정 상태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 47p












  아직 형식적 조작기에 이르지 않은 초등학생에게 추상적인 사고를 요하는 학습을 무리하게 선행시키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 이를 테면 선행학습 트렌드를 좇아 아이의 수준에 맞지 않는 수학 개념이나 영어 문법을 강제로 가르치면 표면적으로는 따라가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깊이 있는 이해 없이 기계적인 암기에만 그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겠다. ‘어느 학원, 무슨 반’에 속해 있는지만 들어도 그 아이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서열 구조의 학원 시스템은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협하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니기에 내 아이의 기질을 잘 고려한 학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유념해야겠다.



  또, 최근에 아이가 갑자기 학교 오케스트라부에 지원해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고학년을 앞두고 학원 하나 더 보내기에도 아쉬운 마음이었던지라 내심 고민이 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을 바꿨다. 저자는 운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한 가지 정도는 아이가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활동을 취미로라도 남겨두는 편이 좋다고 조언한다. 나중에 공부가 기대만큼 잘 안 되어서 좌절할 때 ‘그래도 난 이건 할 수 있잖아’라고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영역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제 난도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굉장히 다르다. 실력은 낮은데 과제 난도가 너무 높으면 아이는 불안이 올라가서 의욕을 잃고 포기하게 되고, 한편 실력이 높은 아이한테 과제 난도가 너무 낮으면 지루해하고 권태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들이 내 아이를 잘 관찰하고 선생님과도 상의하면서 우리 아이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도전 의식을 갖는지, 또는 의욕을 잃는지를 파악한 다음 학습에서 작은 성공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려고 선행학습을 시키고, 레벨이 높은 반에 넣으려고 또 다른 과외를 붙이는 것보다, 작은 성공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학업 효능감’을 높일 때 입시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 184p



과제의 난도가 아이의 현재 실력보다 살짝 높을 때 뇌는 ‘이건 해볼 만하다’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고, 이때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자연스럽게 도전하게 된다. 도파민은 실제로 성공했을 때뿐 아니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와 예측의 순간에도 분비되기 때문에, 이 과정이 학습 동기를 강화한다. 따라서 아이에게 도전 의식을 자극할 수 있을 정도로 난도를 약간씩 조정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학습 설계 방식이다. / 186p











  얼마 전, 아이가 수학 문제를 풀다 막막함을 느꼈는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혼자 책상 앞에서 몰래 눈물을 흘렸던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잘 안 되니 마음이 답답해서 나는 종종 그렇게 혼자 울곤 했다. 그 생각이 떠올라 문제집을 덮고 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엄마는 혼자서 진짜 많이 울었어.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모르겠고, 계속 답답하기만 하고 힘들었거든. 그런데 있잖아. 너한테는 엄마가 있잖아. 모르는 건 당연한 거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엄마랑 같이 해보면 안 될까? 정 안 되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도 있어. 그러니까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힘들면 힘들다고, 왜 안 되는지 답답하면 계속 얘기하고 또 얘기해도 돼. 엄마는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고 들어줄 수 있어.”




  그날의 대화가 약간은 도움이 되었는지 아이가 다음날부터는 좀 더 끈기 있게 문제에 접근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관련 문제에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나간 공부 감정이 부디, 아이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 역시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 책의 메시지를 두고두고 기억하며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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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양육의 재발견 - 미디어를 중독이 아닌 몰입의 경험으로 만드는
에얄 도론 지음, 이은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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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AI 시대, 그러나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교육 방식에 과감히 의문을 던지는 책!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부모교육서!






  양육 환경과 그에 따른 과제는 시대에 따라 늘 변화해왔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우리 세대야말로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험과 과제 중심의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방식의 교육 제도 속에서, 치열한 입시 경쟁을 치르며 서열 중심의 양육 환경에 길들여진 우리 세대가 이제는 ‘AI 시대’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새로운 양육법과 그에 따른 과제를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매순간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 AI의 발전이 교육 시스템은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직업 환경을 바꿔놓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아이의 시간을 학습과 학원으로 빽빽하게 채워 넣고, ‘가르치는 부모’이자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관성처럼 수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AI 시대, 양육의 재발견』의 저자인 에얄 도론 박사는 그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양육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아이 스스로 탐색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하고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통제 중심의 자녀 교육에서 벗어나 각자가 자신만의 창의적인 양육 비전을 세워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간의 낡고 경직된 양육 경험들을 새롭게 조명하며, 부모와 아이가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육아 환경을 제시한다. 제한이나 비난이 아닌 ‘몰입’, 경쟁이 아닌 ‘창의’로 키우는 AI 시대의 새로운 자녀 양육법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에 주목해보시길 바란다.




오직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모가 되는 것, 그리고 우리 가족만의 개성과 습관, 루틴을 만들어가는 것이 오늘날 부모에게 주어진 진짜 도전이다. 가족만이 공유할 수 있는 직관과 내면의 언어, 특별한 취향을 나누며 하나의 팀처럼 함께 몰입하는 가족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며,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의 유형이다. 무엇보다 부모는 자녀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스스로를 재창조해야만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핵심 주제다. / 16p



오늘날 양육과 교육은 내가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아낸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배우기’에 기초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관습에 따라 자동으로 반응하는 태도를 내려놓고, 아이들과 더불어 생각하며 그때그때 답을 찾아가야 한다. / 54p












  이 책이 보다 특별한 이유는 수많은 육아서와 교육자들이 지향하는 ‘균형 잡힌 교육’이 아닌, ‘균형 잡히지 않은’ 열정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제한이 아닌 몰입의 기회의 중요성을 제공하는 교육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밤새 컴퓨터만 해요, 계속 악기 연습만 해요, 계속 읽던 책만 읽어요.’ 하며 어딘가 왜곡되고 주위 사람들에게 불안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아이의 행동을 억누르고 제한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몰입을 경험함으로써 우리 아이가 지금 무엇과 사랑에 빠져 있는지, 그 안에서 어떤 독특한 관점과 깨달음을 얻었는지에 집중할 것을 독려한다.




  또, TV와 게임은 무조건 차단하거나 해롭다고 단정 지을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볼지 시청의 질을 고려하면서 좀 더 복합적이고 비판적인 시청 습관을 갖추는 문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매 단계 목표를 수립하고 실패와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게임 역시 긍정적인 영향이 더 큰 만큼, 아이가 선택한 활동을 시간 낭비로 치부하지 않고 부모도 함께 관심을 가져볼 것을 제안한다. 아이가 화면 속 폭력적인 행동을 따라 할까 봐 염려하기보다는, 아이를 신뢰하고 좀 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미디어를 다룬다면 오히려 긍정적인 교육의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이번 주에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아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오늘 어땠어?” 같은 질문 대신, 이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이해하게 된 건 무엇인지, 이제는 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게 좋다. 그 내용이 아이 자신의 삶에, 또는 아이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도 나눠보자. / 146p



모든 아이들이 집에서 비디오 게임과 텔레비전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지만 차이는 부모의 태도에서 비롯됐다. 연구에 참여한 비영재 아동의 부모들은 텔레비전 시청 시간에 대해 아이와 끊임없이 협상하거나 제한을 뒀다. 반면, 영재 아동의 부모들은 아이의 텔레비전 시청을 거의 제한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부분에 집중했다. 그들은 아이와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해석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비영재 아동의 부모들은 아이가 화면 속 폭력적인 행동을 따라 할까 봐 염려했지만, 영재 아동의 부모들은 아이를 신뢰했다. 전반적으로 영재 아동의 부모들은 ‘화면’이라는 주제 자체를 훨씬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다뤘다. / 159p












  책에서 강조하듯,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내재적 동기를 제공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재적 동기는 즉각적인 보상 없이도 행동할 수 있는 능력, 만족을 지연시키는 힘, 남들이 포기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버티는 힘을 키워준다고 한다. 보상이나 외부 목표가 아니라 도전 자체에 자발적으로 뛰어들기 때문에 이런 힘이 쌓인 아이는 결국 삶에 대해 느끼는 만족감 및 행복감도 더 높다고 한다. 따라서 부모는 암기와 반복 학습에 초점을 두거나 성과의 양에 집착하지 않고, ‘원래 그런 것’이라는 고정된 규칙이나 관습을 전달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아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발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얼마나 오랫동안 보수적이고 통제 위주의 양육 방식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과제, 규칙, 지시만 들먹이며 정작 아이 스스로 탐색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힘은 길러주지 못했구나 하고 반성했다. 늘 내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라면, 개인의 고유성이나 자유를 지지하기보다는 통제와 지시가 익숙한 부모라면, 급변하는 AI 시대에 걸맞은 교육 환경의 변화를 고민하는 부모라면 이 책의 도움을 받아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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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대 호랑전 - 명절맞이 부침개 대결
정현진 지음 / 창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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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맛있는 그림책이라니!

흥미진진한 요리 대결과 그 속에서 함께 정을 나누는 즐거움을 배우게 되는 아주 특별한 그림책!






  “얘들아~ 명절맞이 전 부치기 대결이 펼쳐진대! 우리 구경 가볼까?”

  전 부치기 대결이라는 말에 두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웁니다. 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코끝에 지글지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요? 아이들도 마치 냄새를 맡은 듯 책 앞으로 모여듭니다. 아니, 그런데 토끼와 호랑이가 전을 부친다고요? 아이들은 뭔가 재미있고, 맛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합니다. 대체 어쩌다 토끼와 호랑이가 전 부치기 대결을 벌이게 되었는지 책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달큼한 냄새가 솔솔 퍼지는 것을 보니

인간들의 명절이로구나.

토 선생: 마을로 총총 내려가 파전을 날름 집어 먹으니 

이 맛이 으뜸이로다!

호 선생: 마을로 슬그머니 내려가 육전을 덥석 삼키니 

그 맛이 최고로다! 

/ 책 중에서





  명절날, 인간들이 사는 마을에서 맛본 고소한 부침개 맛이 자꾸만 생각이 난 토 선생과 호 선생. 서로 이 산에서 전으로는 자신을 따라올 자 없다 하며 마침내 요리 대결을 펼치기로 한다. 마을에서 소문난 전의 달인, 전 대감 댁 업둥이가 심사를 맡기로 하고 ‘육감’이라는 주제에 따라 해가 저물기 전까지 둘은 맛있는 전을 부쳐오기로 하는데…. 몸집은 작아도 손놀림이 시원한 토 선생이 이길 것인가, 덩치는 커도 손재주가 섬세한 호 선생이 이길 것인가. 과연 이 대결의 승자는 누구?!













“살살 무친 어린잎 채소 곁들이고

팔 색 고명으로 천지 만물 그려 내

눈에서도 입에서도 살살 녹는 육전 나왔소.

이름하여 살살 육전. 오감에 개성 한 아름 추가요.” 

/ 책 중에서





  이처럼 『토끼전 대 호랑전』은 토끼와 호랑이의 신나는 전 부치기 대결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맛있는 그림책입니다. 전통의 미가 살아 있는 아름다운 그림체와 요리 대결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생생한 묘사가 아주 매력적이에요. 여기에 판소리처럼 문장 하나하나에 리듬감이 살아 있어 읽는 맛 또한 즐겁지요. 무엇보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전을 부치는 과정 속에서 명절 본연의 의미인, 함께 모여 정을 나누는 즐거움을 배우게 됩니다. 문득, 책을 읽다보니 전 한 입 베어물고 기름 묻은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먹던 명절 풍경이 떠오르네요. 다가올 추석을 맞아 우리 아이들과 부침개보다 더 맛있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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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호르몬 - 나를 움직이는 신경전달물질의 진실
데이비드 JP 필립스 지음, 권예리 옮김 / 윌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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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호르몬 때문이라고?!

매일의 기분과 태도를 좌우하는 여섯 가지 호르몬으로 삶의 주도권을 찾는 아주 특별한 과학서!






  호르몬 이슈가 한창이다. MBTI 열풍이 사그라지는 듯싶더니, 이제는 에겐(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이냐 테도(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난데없는 호르몬 논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개인의 감정 표현이나 대인관계, 갈등 대처 방식을 호르몬으로 분류한다니. 언뜻 엉뚱해 보이지만 누구나, 직관적으로 나와 상대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꽤 그럴 듯하다 싶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아주 본격적으로 모든 것은 호르몬 때문이다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데이비드 JP 필립스의 인생은 호르몬은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자꾸만 움츠러들거나, 급하게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책상 앞에서 집중모드가 필요할 때, 우리의 감정과 태도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호르몬이라고 말한다. 알면 알수록 신비한 호르몬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에 주목해보자.

 




매일의 기분과 태도를 좌우하는 여섯 가지 호르몬

 



활력과 흥분의 핵심인 도파민

따스함을 전하는 옥시토신

안정감을 선사하는 세로토닌

스트레스를 방어하는 코르티솔

고통 끝에 기쁨을 당겨오는 엔도르핀

의지와 투지를 끌어올리는 테스토스테론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코르티솔, 엔도르핀, 테스토스테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이 주요 여섯 가지 호르몬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책은 먼저 25천 년에 살았던 가상의 조상, 덩컨을 데려온다. 아침에 일어나 배가 고파진 덩컨은 멀지 않은 습지에 군침 도는 산딸기가 먹고 싶다. 비록 습지로 가는 길은 험하고 제법 많은 덤불과 씨름해야 하지만 산딸기가 먹고 싶다는 일념으로 솟구친 그 무언가가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여기서 덩컨의 몸에서 발산된 호르몬이 바로 도파민이다. 사실 도파민은 동기, 추진력, 욕구, 쾌락을 유발시키는 것은 물론 장기 기억을 생성하는 큰 도움을 준다. 나아가 저자는 인간의 진화적 목적에 따라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파민이 매우 큰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한다. 그간 흥분과 쾌락을 유발하는 호르몬 정도로만 알고 있었으니, 도파민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한 일이겠다.

 



  한편, 옥시토신은 나와 타인, 사물, 어떤 위대한 대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형성하게 할뿐만 아니라 신뢰와 연민 그리고 친절함을 갖도록 도와주는 호르몬이다. 혼자였던 덩컨이 낯선 타인과 만나 유대감을 느끼고, 한 여인에게 사랑을 느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은 옥시토신의 분비 때문이다. 이외에도 안정감을 선사하는 세로토닌, 스트레스를 방어하는 코르티솔, 고통 끝에 기쁨을 당겨오는 엔도르핀, 의지와 투지를 끌어올리는 테스토스테론까지, 책은 이 호르몬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분비되고 어떻게 나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지 알고 나면 삶을 보다 주도적으로 가꾸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세로토닌은 사회적 지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밝혀졌다. 높은 지위를 누리는 사람은 세로토닌 양이 많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위협받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편안하고 건강하며 스트레스가 적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나 스스로 인지하던 지위가 위협받으면 그 순간 세로토닌 양이 줄어들고, 스트레스가 늘어나면 공격성이 튀어나올 수 있다. 자기 서열이 가장 낮다고 생각하는(또는 실제로 가장 낮은) 사람들은 세로토닌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자주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 95p


 

, 삶을 주도하는 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이다. 바로 고통을 피하는 힘과 쾌락을 추구하는 힘이다. 고통을 피하게 하는 것은 코르티솔의 역할로, “해야 한다는 말로 자주 표현된다. 반면 도파민은 쾌락을 추구하게 하는 힘으로, 도파민에 주도될 때 우리는 하고 싶다고 말한다. 둘 다 결과적으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게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는 경험들은 매우 다르다. / 124p

 










  동시에 여러 개의 도파민 자극원을 쌓아놓지 않을 것(도파민 스태킹에 주의), 취미 생활이나 학습 그리고 책 읽기 등으로 느린 도파민을 쌓도록 할 것, 외적 보상을 동기로 삼지 않을 것, 긍정적인 서사를 붙들 것, 통증은 무조건 나쁘기만 하다는 고정 관념을 버릴 것 등 책을 읽다보면 호르몬에 지배당하지 않는 여러 방법들을 터득할 수 있다. 게다가 상황별 호르몬 칵테일 맞춤 레시피도 마련되어 있으니 이왕이면 호르몬을 가장 효율적이고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법들을 배워보자.

 



책상 앞 집중 모드_ 도파민+테스토스테론

공부할 땐 집중력을 강하게 유지하고 내용을 기억하기 최선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는 도파민이 도움이 된다. 공부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 공부 중인 주제를 배우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생각하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할 수 있다. 공부 전에 신체 운동을 해서 도파민 양을 늘릴 수도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멀리 치워서 빠른 도파민과 코르티솔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도파민은 짧은 시간 동안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호르몬이므로 40~60분 정도 공부했다면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공부 중에 자신감을 북돋우고 싶다면, 단원을 마무리하는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작은 성취를 축하하며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자극하는 방법도 있다. / 218p

 


현명한 선택의 비법_ 도파민+코르티솔(감소)

도파민이 잔뜩 분비돼서 천하를 주름잡을 듯 자신만만한 순간에 미래에 큰 영향을 줄 결정을 내린다면 비현실적인 목표 때문에 훗날 불안해질 수 있다. 반면 도파민 양이 너무 적을 때 결정을 내리면 너무 비관적이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임하게 되는 바람에 삶을 한 단계 전진시킬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건 도파민 양이 평균에 가까울 때, 세로토닌과 코르티솔 수치가 평균에 가까울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래야 결정이 평균적인 감정 상태를 반영하고, 부작용 때문에 힘겨워하는 일 없이 결정을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 / 225p




  책을 읽고 나서 필요할 때마다, 원할 때마다 감정과 내 상태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마음이 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제껏 우리의 의지와 행동력의 결과라고 여겨졌던 대부분의 문제들이 알고 보면 호르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스스로에 대한 비난도 멈출 수 있었다. 우리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여섯 가지 호르몬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설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인생 호르몬을 읽고, 건강한 마음가짐과 변화의 큰 동력을 얻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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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우정 -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김달님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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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노년이란 죽음에 가까워지는 시간이 아니라 끝까지 나로 살기 위한 시간이다!





  김달님 작가의 책만 하더라도 벌써 세 번째다. 꼭 읽겠다는 마음보다 자연스럽게 내게로 왔다는 쪽에 가까웠다고 해야 하나. 때문에 한 사람의 글을 쭉 읽는다는 건 마치 그와 인연을 맺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한 시절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던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가 그러했고, ‘연결’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던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가 그러했듯, 이번에도 김달님 작가는 특유의 진솔하고 살내음 나는 이야기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자신의 삶을 끝까지 돌보며 살아낸 시간들,

끝까지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갈 시간들



  『뜻밖의 우정』은 노년의 삶 그 안에서 길어 올린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은 에세이다. 태어나 줄곧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그녀였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가장 영향을 준 그들의 삶을, 가장 이해하고 싶은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써내려간 글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서 뭐할 거냐” 손사래 치면서도, 결국 자신의 삶 구석구석을 들려주다 기꺼이 마음을 내주고 끝내 인간적인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릴 수도, 혹은 자신의 노년을 상상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유독 노인들에게 시선이 머무는 마음, 그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앞에서 속절없이 약해지고 환해지는 마음은 오랜 시간 동안 길러진, 나의 고유한 감수성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의 타고난 운동 신경처럼, 음감이나 미감처럼, 내 안에서 예민하게 발달한 감각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 10p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나요?”

그리고 그 질문은 조용히 다음으로 이어졌다. 요즘 당신의 하루는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이 나나요. 그사이 어떤 기쁨과 슬픔, 놀라움과 두려움이 함께하나요.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여전히 곁에 있나요. 어떤 일을 소중하게 여기고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그런 당신이 끝내 이해하게 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 질문들은 결국, 나의 노년을 상상할 때 가장 궁금해지는 물음이기도 했다. / 12p










  문득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남다른 영어 사랑 때문에 소개된 76세의 강영희 할머니의 사연이 떠오른다. 온 집안을 자신이 쓴 영어로 빼곡하게 도배해가며 늦은 나이에도 영어 공부에 대한 대단한 열의를 보였기에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왠지 그쯤 되면 “내가 이제와 뭘 더 해서 뭐해.” 하고 많은 걸 놓아버리게 될 것 같은데, 영어에 진심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전력투구라니, 어쩐지 청춘에게만 어울릴 것 같은 이 말이 나이와는 무색하다는 걸 나는 시간이 흘러 이 책에서 또 한 번 느꼈다.




  예순일곱의 나이에 ‘국내 여성 최고령 검도 6단’을 취득한 권순자 할머님. 지난 30년 동안 아무리 고되어도 하루도 빠짐없이 도장에 갈 수 있었던 건 ‘스스로에게 죽지 말고 살자는 다짐이고 수련’이었다던 그 말이 나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할머니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 오디션에 참가한 강정열 할머님에게서는, 일흔이 넘어도 여전히 나도 모르는 내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해주면서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배우게 된다.




  또, 은퇴 후 어린아이처럼 다시 세상을 배움으로써 더 깊어졌던 우경 선생님과 늙을수록 마음 쏟을 일이 필요하다며 보고 싶은 영화와 책을 읽는 일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던 이승기 선생님의 사연에서는 내가 꼭 그렇게 살고 싶은 미래를 엿본다. 무엇보다 “너도 좋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라. 그런 다음 좋은 이야기를 쓰거라.”던 이승기 선생님의 말씀만큼은 내 것처럼 마음에 새기려 한다.





나는 홍자와 옥순의 이야기가, 서로의 노년에 새로운 존재를 획득하는 이야기라서 좋았다. 어쩔 수 없이 내게 소중하고 익숙한 것들을 차례대로 잃어가는 노년이 아니라, 그때에도 나를 깔깔 웃게 만드는 우정과 기쁨이 새로이 태어나기도 한다는 걸 알려주어서 좋았다. 멀리서 나를 보며 인사하는 친구를 보며 반가워하기. 여전히 귀엽다고 생각하며 하얗게 세기 시작한 머리를 쓰다듬기. 틈틈이 눈을 맞추며 둘만 아는 어떤 작당을 함께 모의하기. / 72p



아무쪼록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무대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 그건 내가 최애를 상각하며 가장 자주 꾸는 꿈이기도 했다. 그래야 나도 계속 응원할 수 있을 테니까. 마음껏 좋아할 수 있을 테니까.

내게는 너무 소중한, 최애를 향한 같은 마음을 가진 나이. 서른 여덟도 일흔여섯도 여든도 모두 사랑하기 좋은 나이다. / 150p


“이제는 내가 늙어서 집중력이 예전 같지가 않거든. 그래서 그날은 오직 강연을 위해서 전력투구해야 해. 시간 내서 와준 사람들에게 누를 끼칠 수 없지.”

“전력투구요?”

“그럼. 전력투구해야지.” / 163p













  하지만 이보다 피부처럼 가깝게 다가왔던 것은, 죽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나쁜 냄새를 풍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배우자를 먼저 보낸 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근심이었으며, 요양원과 병원을 전전하는 사이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일은 부디 없기를 바라는 바람이었다. 이 책의 소제목처럼,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될 테니까. 그래서일까, 여든셋의 정애자 할머님이 하신 말씀이 내내 생각난다. 조금씩 지금의 내 나이에 ‘적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끝까지 나로 살기 위해 어떻게 늙어가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적응하는 중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삶을 끝까지 돌보며 살아낸 그들의 시간만큼이나, 끝까지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함께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선명해진다. 동네를 걸을 때 혼자 있는 노인의 모습을 눈여겨보기. 자주 마주친 얼굴을 기억하기. 그렇게 ‘아는 노인’을 하나둘 늘려가기.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처럼, 한 노인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여러 눈길 중 하나가 되기. / 189p



아직은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떠올라 마음 한켠에 서늘한 바람이 일었다. 지금은 정 할머니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지만, 오래지 않아 희미해져 잊힐 것이다. 그다음엔 이름도, 우리가 나눈 대화들도 가물가물해지겠지. 그래도 어쩐지 그 말만은, 좋은 사람들이 있어 여전히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하다는 말은,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서 웅크리고 구겨진 한구석을 퍼주었으면 한다. 아직은, 이라는 말을 지지대 삼아 끝내 세상의 좋음을 믿고 살아온 한 사람의 말을 나도 믿으며 살아보고 싶다. / 244p





  “이것 좀 대신 해줄 수 있어요?” 요즘엔 어딜 가나 부모님 세대의 어르신으로부터 이런 부탁을 종종 받곤 한다. 휴대폰을 내밀면서 인증이나 앱 삭제를 부탁하거나, 키오스크 앞에서 뭘 눌러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이들에게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안부를 물으며,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친절해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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