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
존 M. 렉터 지음, 양미래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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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넓은 지형으로 바라본 악의 본성!

나와 타인의 경계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경계에 갇히지 않는 성찰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책!

 

 

 

 

  존 M. 렉터는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제시한 동굴의 비유로 포문을 연다플라톤은 인간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깊은 동굴에 갇혀 사는 죄수와 같으며그 깊은 동굴에서도 목과 다리에 족쇄가 채워진 채 똑같은 저리에만 머물기 때문에 바로 앞에 있는 동굴 벽만 바라볼 수 있을 뿐이라 했다이는 많은 것을 관찰하고 경험하지만 그것들의 표면만 보는 경향이 있으며어떤 존재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가 그 존재의 진실을 대변한다고 섣불리 가정하는 우리의 태도를 가리킨다.

 

 

 

  저자는 이 비유야말로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에서 강조하는 핵심 개념즉 대상화와 연관된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고 강조한다여기서 말하는 대상화란타인을 주체가 아닌 사물로 바라보고 사물처럼 대하는 심리적인 과정이다저자는 타인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타인을 총체적인 존재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뜻이며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이 지닌 심오한 진실까지 왜곡하게 되어 악이 실현될 가능성을 증대시킨다고 주장한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대상화의 본질을 비롯해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나 의식·무의식적인 활동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그로 인해 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이는 저 플라톤의 동굴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인간이 타인을 대상화하는 경향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알아보기 위함이자역설적이게도 선을 지향하고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면 어떨지를 상상해보는 행위는 인간성의 핵심을 이룬다.

이는 연민의 본질이자 도덕의 시작이다. - 이언 매큐언 / 43p

 

 

 

  타인을 수단화한다는 의미에서 대상화는 경미한 수준에서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범위를 아우른다대상화 스펙트럼의 가장 최저점에 위치한 일상적 무관심은 대부분의 인간이 대부분의 시간에 경험하는 현상이며이때 우리는 극히 소수의 타인만을 소중한 주체로 간주한다고 한다대상화 스펙트럼에서 가장 넓은 중간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유도체화는 타인을 우리의 필요욕구두려움소망에서 파생한 한낱 대상으로 간주하는 현상이다유도체화 과정이 진행되면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타인을 희생시키면서(여성을 대상화한 광고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유도체화가 극단적으로 발현될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감정적 둔화라 하는데전시 상황 혹은 폭력적인 문화 속에서 발현되거나 정상적인 공감이 불가능한(정신병무능의 부차적인 결과로 나타난다고 한다.

 

 

 

  대상화 스펙트럼의 최고점에 위치한 비인간화는 극단적인 대상화를 가리키며특정 사람들의 인간성을 부인하고 그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닌 존재로까지 간주하는 현상을 말한다대체로 제노사이드의 전조를 여기에 분류한다이처럼 넓고 다양한 수준의 대상화 스펙트럼을 살펴보다보면 우리 내면에 이토록 다양한 자아 경계가 존재한다는 것을삶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균형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사는 일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특히누스바움이 제시하는 대상화가 구현되는 일곱 가지 방식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의식의 여부와 상관없이 수시로 타인을 대상화하는 일을 빈번하게 해왔음을 직시하게 된다.

 

 

 

대상화가 구현되는 일곱 가지 방식을 설명한다.

  • 대상화의 주체가 타인을 본인의 목적을 위한 (한낱도구로 대한다.
  • 부정대상화의 주체가 타인을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이 결여된 존재로 대한다.
  • 대상화의 주체가 타인을 행위성이 없거나 행동을 취할 역량이 없는 존재로 대한다.
  • 가능성대상화의 주체가 타인을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 교환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존재로 대한다.
  • 가능성대상화의 주체가 타인을 경계 완전성이 결여되어 침해하거나 망가뜨려도 되는 존재로 대한다.
  • 대상화의 주체가 타인을 다른 사람이 소유하거나 사고팔 수 있는 존재로 대한다.
  • 부정대상화의 주체가 타인을 마치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경험과 감정(존재한다면)을 지닌 존재로 대한다. / 40p

 

 

어떤 집단은 다른 집단의 인간성을 부정한다인간성이 부정된 집단에 속한 이들은 동물해충곤충질병 따위와 동일시된다비인간화는 인간이 살인에 대해 느끼는 정상적인 혐오감을 압도한다비인간화가 이루어지는 수준에서는 피해집단을 비방하기 위한…… 혐오의 프로파간다가 동원된다. - 그레고리 H. 스탠턴 / 70p

 

 

 




 

 

 

 

  우리가 타인을 대상화하는 요인은 무엇일까저자는 애착과 갈망분리나는 옳고 타인은 그르기를 바라는 욕구소유와 존재를 동일시하는 삶 등 타인을 대상화하는 경향에 기여하는 인간의 기질적(내적요인과 더불어 상황적(외적요인에 주목한다사회가 부여한 역할이 대상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상당히 충격적이다이 모의 교도소 실험은 학대적인 교도소 환경이 각 교도관과 수감자가 지닌 성격에서 기인한 부산물인지 아니면 유해한 환경이 낳은 결과물인지를 파악하고자 실시된 것이다선발된 실험 참가자들은 24명의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젊은이들로 동전 던지기를 통해 수감자와 교도관으로 나뉘었다이들은 어떤 식으로 교도소 내에서 행세를 해야 하는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그런데 6일 차가 되던 날이 실험은 돌연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도저히 이 실험을 진행할 수 없을 만큼 교도관 역할을 맡은 이들이 대상화 스펙트럼 중에서도 상당히 진행된 유도체화 수준으로 가혹한 폭력과 성적 학대를 일삼았고수감자 역할을 한 이들은 그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무기력과 우울의존적이며 수동적이며 억압받는 경험들에 시달렸던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하거나 악한 것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으며상황적 조건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다시 말해 좋은 자아는 언제나 나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반적인 통념에 경고를 날리는 사례로, ‘악이란 단지 사이코패스나 폭군도착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밟게 될 수 있는 지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우리가 악을 선의 반대 개념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가해자가 받아들이는 권력의 의미가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을 설명하는 하나의 중요한 변수라고 말한다그러면서 강제수용소처럼 절대권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머지않아 폭력이 새로운 언어로 군림하게 된다고 주장한다어떤 지역이 고립되어 있을수록 폭력의 하위문화는 더 거리낌없이 발전할 수 있다강제수용소-특히 폴란드에 위치한 강제수용소들-에서 복무한 나치스 친위대원들은 전쟁 이전의 삶을 보냈던 익숙한 풍경과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그들은 민간의 생활 풍경이 존재하지 않는 강제수용소라는 곳에서 본래 일종의 규제로 작용했던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또한 그들은 이렇게 고립된 환경에서 전능감을 느꼈다. / 72p

 

 

애착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부정적인 혹은 적대적인 감정적 몰두라는 형태를 띨 수도 있다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원한에 사로잡히거나 누군가를 증오 또는 원망하는 감정에 극도로 몰두할 수도 있다한편 일상에서 어떤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깊은 즐거움이나 만족감을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애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애착은 주로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인지하고 인정할 때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인지하고 인정할 때어떤 사물이나 사람 없이는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고 여길 때 생겨난다그러므로 핵심은 욕망하거나 경멸하는 사물 혹은 사람 그 자체보다도 그러한 사물 혹은 사람에게 투영된 감정의 유형 및 깊이와 결부되어 있다. / 188p

 

 

삶을 평가하는 기준을 물건의 소유와 동일시할수록 우리는 자아의 영향과 세상을 대상화하는 경향에 더 쉽게 좌우되며이에 따라 우리 자신과 타인의 본질은 흐려진다반면 존재의 실존양식은 취득과 소비보다 존재경험관계를 강조한다존재의 실존양식에서는 경험의 풍요로움을 다른 무언가를 위한보다 갈망하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서 목적으로 본다그러므로 존재의 실존양식은 모든 존재의 깊이를 이해하는 깨달음과 동일하다그리고 이는 타인을 대상화하려는 우리의 경향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해독제를 제공해준다. / 227p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플라톤의 동굴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저자는 이를 유신론과 비신론적 접근법이른바 깨달음의 스펙트럼으로 지칭되는 일상적 관심과 상호연관성 그리고 합일의식 등을 제시한다여기서 가장 높은 스펙트럼에 위치해있는 합일의식이란 경계를 초월하여 세계와의 연결성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자신이 사실 이 세계와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고존재의 다른 측면과 통합되기를 제안한다이러한 방법은 자칫 심오하고 종교적이며 낭만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으나다른 존재들과 연결되는 느낌을 자주 나누고 참된 감사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경험에 마음 깊이 몰두하는 순간들 체화하다보면우리는 타인을 대상화하려는 경향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작들과 (대중서나 한번 읽고 마는’ 문학작품과 상반되는훌륭한 문학작품을 읽는 행위는 인간됨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문학작품의 독서는 독자가 이야기에 몰두하기만 한다면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한층 북돋아준다위대한 문학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주제를 다루고 깊이와 모순을 지닌 인물들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유지된다더불어 독자들이 주인공은 물론 악인과도 동일시해보고 본인의 내적 복합성과 천사 같은 경향 혹은 그림자도 조명해보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타인을 더욱 섬세하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383p

 

 

 

  한나 아렌트가 강조했던 것처럼 얼마든지 외부 환경과 꼬리표 이미지사회 역할에 따라 악의 평범성에 빠질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대상화 문제는 일상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일이고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는 대상화에 동일시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악의 본성을 들여다봄으로써 나와 타인의 경계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경계에 갇히지 않는 성찰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유의미한 책이다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고참신한 해결책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아쉬울만한 면면도 있는 책이다하지만 유독 자아를 강조하는 현 시대에 경계 너머의 세계와 합일을 독려하는 책의 메시지는 아무리 낡은 것이어도 지속적으로 전해져야 하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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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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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둘러싼 문제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성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공정과 정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갈망이 계속되는 한 이 책은 계속 읽힐 것 같다!

 

 

 

 

  그야말로 공정이 범람하는 시대다한 포털사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7년 현재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공정이 1위를 차지한 바 있다이어 정의로운 사회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서는 편법과 잘못에 대한 공정한 처벌이 이뤄지는 사회가 1,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대가가 치러지는 사회가 그 다음을 차지했다고 한다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에 관한 이슈는 가장 민감한 화두 중에 하나다신재용 교수의 책 공정한 보상에 의하면 부도 신분도 대물림되는출구가 없는 이 세대(MZ)가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확보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레토릭으로 공정은 이 시대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임이 분명하다바로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판매부수만 놓고 보더라도 국내에서만 영미권의 20배가 넘는데다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읽히는 것을 보면 공정과 정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갈망이 얼마나 깊은지 느낄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정의에 관한 질문들

 

 

  지난 달한전의 임직원들이 받은 성과급에 관한 기사가 화제로 떠올랐다올해 상반기에만 14조 3천 원의 적자를 기록한 한국전력공사(한전)와 자회사들이 5년간 약 2조 5천억 원의 성과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매년 적자난을 겪는다며 전기요금을 올리더니 그렇게 걷은 국민의 혈세를 남의 돈처럼 펑펑 쓴 이들에 태도에 국민들은 분노했다이와 유사한 사례로 2008년 월스트리트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160억 달러의 보너스를 나눠준 적이 있다당시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7천억 달러의 구제 금융 승인을 의회에 요청한 상태였고이 돈이 납세자들로부터 나왔기에 미국인들의 공분을 샀다이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는 분노의 핵심은 그들이 실패를 포상했다는 점이다방만한 경영과 무분별한 투자로 기업을 파산으로 몰고 간 이들은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보편적인 견해에 따른 것이다그렇다면 반대로 경기가 좋았을 때 시장으로부터 부여받은 포상은 과연 정당한가부진한 작황이 날씨 탓이라면 날이 좋을 때의 풍요로운 수확이 유능한 경영자들 덕분이라고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처럼 오늘날 정치를 움직이는 공정과 정의의 문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그 모습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앞선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명예와 포상을 누릴 미덕이 무엇이며 좋은 사회가 장려해야 할 생활 방식이 무엇인가를 판단하기 위한 수많은 상황에 직면한다그렇다면 정의와 부당함평등과 불평등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을 둘러싼 주장들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성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까정의란 무엇인가는 바로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책이다다양한 사례와 도덕적 사고의 근간이 되는 철학가들의 사상을 통해 정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립하고비판적으로 검토하게 만들어 자신이 무엇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도록 하는 데 있다궁극적으로는 좋은 사회의 기반이 되는 태도와 기질인격을 길러내는 일이자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옳은 행위에 대한 견해나 확신에서 시작한다그러고는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근거가 되는 원칙을 찾는다그다음 그 원칙에 반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이러한 혼동되는 상황을 생각하고 이를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 바로 철학으로 가는 기폭제다.

이러한 긴장에 직면했을 때옳은 행위에 대한 판단을 재고하거나 애초에 옹호하던 원칙을 재검토할 수도 있다새로운 생황에 직면하면자신의 판단과 원칙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판단에 비추어 원칙을 재조정하기도 하고원칙에 비추어 판단을 재조정하기도 한다이처럼 행동의 세계에서 이성의 영역으로다시 이성의 영역에서 행동의 세계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 바로 도덕적 사고의 근간을 형성한다. / 53p

 

 

 

  마이클 샌델은 정의를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접근법을 제시한다첫 번째는 공리주의다영국의 도덕 철학자이자 법 개혁가인 제러미 벤담이 주장한 공리주의의 핵심은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의 극대화즉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다 많아야 한다는 데 있다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잘 알려진 이 개념은개인의 행복을 총합한 것이 사회 전체의 행복이라는 견해에 입각하여 어떤 법이나 정책을 집행할 때 정부는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할 것을 강조한다다시 말해 정의의 개념을 규정하고 무엇이 옳은 일인가 판단하려면 사회 전체의 복지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도 옳은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인간의 생명을 비롯해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다양한 가치를 하나의 잣대 즉, ‘더 나은’ 것을 묻는 이득이란 개념으로 획일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반박 또한 피할 수 없다.

 

 

 

때로는 도덕적 신념들이 서로 충돌하며 도덕적 딜레마가 생긴다예를 들어 전차 이야기에서 가능하면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되는가 하면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하더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라는 또 다른 원칙이 적용된다많은 생명을 구하자니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직면한다상황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고무엇이 더 적절한지 가려내야 한다. / 47p

 

 

 




 

 

 

 

  만약 우리가 세계적인 부자들의 돈을 그들의 동의 없이 가져간다면 그 이유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강제 행위이자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된다자기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이러한 근거로 재분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자유지상주의자라고 부른다공리주의가 공동체의 이익을 중요시한다면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요시하는데이것이 책에서 설명하는 정의를 접근하는 두 번째 방법이다자유지상주의자들은 규제 없는 시장을 옹호하면서 정부 규제에 반대하는데이는 경제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 때문이다이들의 핵심 주장은 우리 개인에게는 자유라는 기본권이 있으며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한 우리는 자신의 소유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에 있다자유주의자의 대표 철학자 칸트 역시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에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성을 지녔으며 자율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존중하고도구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 철학 사조에 들어서 자유주의는 특히나 각광을 받고 있지만여기에도 결함은 있다인도의 대리 출산과 앤드루 카네기가 남북 전쟁에서 자기 대신 싸울 군인을 고용한 사례처럼경제적 이유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이 선택이 완벽히 자유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낙오자들을 보호할 안전장치가 없는 간섭받지 않는 시장불평등을 해소하고 공동선을 장려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이 배제된 최소 국가합의를 완벽한 행위로 칭송하여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합의한 식인 행위나 노예 매매 등)마저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무지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미국의 정치철학자인 존 롤스는 자신의 인종이 무엇인지사회적 지위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무지의 장막)가 된다면 어쩌면 내가 억압받는 소수에 속할지도 몰라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혹은 자신이 앞으로 사회에서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자기 이익에만 동기 부여 되어 움직이지 않을 거라 말한다다시 말해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어느 누구도 우월하지 않고 평등한 위치에 있다면 우리가 합의한 원칙은 정당할 것이라 주장한다그래서 존 롤스는 기회 균등 및 자유 시장을 보장하는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을 주장하면서도자유 시장에서 소득과 부가 공정하게 배분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됨으로 이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질 수 있는 기회 즉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설득한다이른바 차등의 원칙에 따라 가난한 사람에게도 이익이 돌아갈 수 있게끔 조세 및 재분배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그의 주장은 선진 민주주의 복지 철학의 기초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고오늘날 정치적 자유주의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최소화하려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정치이념이 발달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렇다면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떤 원칙을 택하게 될까자신이 지독히 가난한 처지에 있을 경우에 대비하여처음에는 소득과 부의 완전 균등한 배분을 선호할 수도 있다하지만 이윽고 그보다는 나은 방법심지어 가장 하층 사람들에게도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약간의 불평등을 인정(예를 들어 의사에게는 버스 기사보다 더 높은 보수를 주는 식)하는 대신 빈곤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등 환경 개선을 제공할 수 있다이런 가능성을 허용한다면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는 롤스의 소위 차등 원칙을 우리는 받아들일 것이다. / 228p

 

 

롤스는 기회 균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자유 시장에서 소득과 부가 공정하게 배분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자유지상주의 체제에서 가장 정의롭지 못한 부분은 분배되는 몫이 도덕적으로 봤을 때 대단히 임의적인 요소에 부적절하게 영향을 받는 상황이 허용된다는 점이다.”

이 부정의를 바로잡는 한 가지 방법은 사회적·경제적 불리함을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다공정한 능력주의 사회는 제도적 기회 균등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조치들로 이를 실현하려 노력한다예를 들어 공정성을 해치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도 풍요로운 가정 출신 학생과 똑같은 기반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고르게 제공한다.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저소득층 대상 교육 지원 프로그램-옮긴이), 아동 영양 보건 프로그램교육 및 직업 훈련 프로그램 등을 통해모든 사람이 계층이나 가정환경에 관계없이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돕는다. / 231p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에 이어 우리가 정의를 이해하기 위한 세 번째 접근법은 정의란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주는 것즉 미덕을 포상하고 장려하는 방향으로 재화를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자격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시민의 미덕이 탁월한 사람공동선을 고민하는 데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는 정치란사람들에게 좋은 인격을 기르게 하고 좋은 시민이 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따라서 정의에 관한 논의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상적인 법의 본질[을 조사하기전에가장 바람직한 삶의 본질부터 밝혀내야 한다그것이 불분명하면이상적인 법의 본질 또한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주장은 결국국민의 정치의식(미덕)을 성숙시켜 그들의 판단력을 기르게 하고 공동선과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보살피도록 독려하는 데 의의를 둔다마이클 샌델은 바로 여기에서 공동체주의라는 개념에 힘을 싣는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현실의 인간은 고립된 주체가 아니다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정의라는 문제도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 풀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으며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에 생길 수밖에 없는 이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문화를 만드는 데 있다고 말이다시민들이 사회 전체를 염려하고 공동선에 헌신하는 태도를 함께 고민하며 정치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하기를 독려하는 것은 물론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선의 가치를 묻고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토론할 수 있을 때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공동체의 도덕적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는 길은 여전히 요원해 보이지만그래서 마이클 샌델이 책에서 던진 정의를 향한 화두는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응답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사실 정의를 명확하게 논하기란 쉽지 않고이 책 역시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리뷰라기보다는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만큼 어려운 게 사실이다하지만 철학가들의 입장에서 정의라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해보고나의 생각을 정립해보는 과정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또 우리 사회의 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하고 정착해왔는지 살펴보는 과정 역시 유의미한 시간이었다진입장벽이 어려운 것은 분명하나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고 또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혹시나 이 책이 책장 한 곳에서 묵묵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면 한 번쯤은 꺼내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린다정의를 논하는 일이란 결국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고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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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식객 허영만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캘린더 - CALENDAR & 컬러링 BOOK
허영만 그림 / 가디언 / 2022년 10월
평점 :
절판



 

 

 

 

제철 음식으로 건강 챙기고컬러링북으로 마음까지 챙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달력!

 

 

 

  아들이 느닷없이 엄마크리스마스 얼마 남았어?” 하고 물었다크리스마스가 언제지하고 가늠해볼 때가 되면 한 해가 다 지나갔다는 것을 실감한다그러고 보니 2022년이 겨우 석 달이 채 남지 않았다그 말은 즉, 2023년에 사용할 다이어리와 달력을 주문할 때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그간 보험회사에서 서비스로 나눠주는 평범한 캘린더만 쭉 사용해오다 올해는 특별히 수채화 탁상 달력으로 포인트를 줘봤는데은근 분위기도 좋고 계절감까지 느낄 수 있어 유용했다그렇다면 다가오는 2023년에는 또 어떤 특별한 달력을 사용해볼까고민해보던 중 <2023 식객 허영만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캘린더>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인생 멋있고 맛있게 살자비싸다고 좋은 음식이 아니다.

아무거나 먹지 말고 제철 건강한 맛을 맛나게제대로 즐기자!

 

 

 

  명실상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화가인 식객 허영만. TV프로그램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과 책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 발품을 팔아 우리나라의 귀한 음식을 소개해주는 허영만 작가의 특별한 캘린더라니 기대가 되었다.

 

 

 



 

 

 

 

포인트 하나오늘 식사는 식객 허영만 님이 추천해주시는 제철음식을 먹어보자월별로 몸에 좋은 식재료와 몸에 좋은 음식이 소개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고 챙겨 먹어보자. (이를 테면 1월에는 시래기밥더덕구이매생이굴국밥문어숙회굴비조개구이 등을, 5월에는 산채비빔밥과 두릅숙회병어조림키조개삼겹살장어구이 등이 좋다고 하니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을 챙겨 먹어보자.)

 

포인트 둘각종 음식관련 기념일 챙기며 맛있는 하루를 보내자여느 달력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은 오삼데이(5월 3), 애플데이(10월 24), 가래떡데이(11월 21)도 챙겨볼 수 있다.

 

포인트 셋뒷장을 넘기면 허영만 작가의 스케치를 내 손으로 완성할 수 있는 컬러링북까지 수록되어 있으니 내 입맛에 맞게 색칠해보자.

 

 

 




 

 

 

 

  그저 날짜만 확인하는 게 아니라 제철 음식으로 건강 챙기고컬러링북으로 마음까지 챙길 수 있으니 2023년은 어쩐지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한 한 해가 될 것 같다건강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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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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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여성들의 자서전이 된 소설!

이름 없는 화자에게 나의 이름을 덧입히느라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몸살을 앓을 것만 같았다!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되려는 욕망은 죽여야 한다그것 아니면 고독. / 126p

 

 

 

  2022년 노벨문학상에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가 선정되었다.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는 평과 더불어 소설적 장치들을 포기하고 오로지 경험한 것만을 글로 쓴다는 그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관이 사뭇 궁금해졌다빈 옷장한 여자단순한 열정』 등 작가를 대표하는 다수의 작품들 중에 얼어붙은 여자를 택한 건 얼어붙은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함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혹여 그것이 독립적인 삶을 살기를 희망했던 한 여성이 사회가 정해놓은 성 역할에 따라 고립되고경직되어버린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놀랍게도 이 책을 집필하면서 작가는 남편과 헤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실제로 소설 출간 몇 해 후 이혼을 했다고 한다그만큼 전통이란 이름으로 사회가 정해놓은 성 역할 안에서 이내 얼어붙고만 한 여성의 이야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리얼하다결혼과 육아사회와 교육이 만들어낸 여성과 남성의 비합리적인 차이를 이토록 치열하게 다룬 작품이 또 있을까책에서 묘사된 얼어붙은 여자의 이야기는 그러한 이유로 세상 모든 여성들의 자서전이 된다.

 

 

 

수백 년 전의 그녀들이 그러했고수십 년 전의 그녀들이 그러했듯

 

 

 

  작중 화자는 남성과 여성에게 정해진 역할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일상을 공유했던 부모의 영향 아래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그녀의 아버지는 매일 집에서 커피와 식사를 준비하고설거지하고요리하고채소 손질을 한다스웨터 소매가 팔 위로 말려 올라가지 않게 그녀에게 손으로 소맷자락을 붙들고 코트 입는 법을 가르쳐준 것 역시 아버지다반면 작은 상점 겸 카페를 운영하며 장사하는 걸 더 좋아하는 어머니는 여자아이가 자신이 쓸모 있다고 여기는 기쁨사랑받기 위해서는 자기 방을 잘 정리하고 얌전하게’ 식탁을 치워주는 걸로 충분하다는 생각 따윈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별나고 우스꽝스러운 커플이란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들의 세계 속에서 화자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소녀로 자라난다.

 

 

 

  그렇게 넌 너만 생각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부모에게서 자란 화자지만가정이라는 작은 사회를 벗어나면서 성별에 따른 역할과 남녀 간의 차이로 가득한 세상의 논리에 시시때때로

상처받는다여성의 헌신과 희생을 자극하는 말몸은 불결한 것이고 재능은 죄악이라는 것내가 식료품점 주인의 딸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과 어린애를 애지중지하고 유아차를 미는 그 이상의 운명은 없으리라는 미래에 관한 말들내 에너지의 일부를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써야 하고그러지 않으면 어느 남자아이의 마음에도 들지 못할 것이며 사랑받지 못하며 사는 인생은 살 가치도 없다는 인식들. “너는 결혼 안 하고 늙을 작정이냐!”는 은밀한 압력 아래 나는 그저 혼자 사는 여자가 아니라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불확실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연속된 깨달음이렇듯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여성의 삶에 매겨진 공식에 가까운 관습들은 성장하는 내내 그녀의 발목을 붙든다.

 

 

 

무엇이 어머니를 전시회며 중세의 시가지로느긋하게밖으로 나가게 하는 걸까왜 어머니는 가난하고 불구인 사람들을 방문하는 자원 봉사 노릇을 할까여자로서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 조용히 머무르기만 하면 안 되는 걸까내게 던지는 질문이라도 되는 듯나는 어머니가 완벽했다고 결론내렸다세상이란 거기에 뛰어들고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그 무엇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 42p

 

 

그중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도대체 저게 커서 뭐가 될까라고 한다경멸하는 어투위협나는 남자들의 대화를 엿들어본 적이 많아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한다하지만 뭐라고 응수해야 할지 모른다남자애들처럼 싸우기 좋아하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과그들 말처럼 잡년이 되는 것 사이에 어떤 확실한 관계가 있는지 그때까지 몰랐다상처받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최악은그걸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그에게 덤벼들어 때려주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 52p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몸에 도달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어느 남자아이의 마음에도 들지 못할 것이고절대 사랑받지 못할 것이고 인생을 살 가치도 없어질 것이다마음에 든다는 것과 사랑이라는 인수는 존재의 목적과 같다는 아름다움의 방정식이 성립하고그 방정식은 아주 쉽게그리고 ax² + bx + c = 0 라는 방정식보다 더 교묘하게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그 공식은 곳곳에 쓰여 있다. / 88p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봐야 진짜 여자가 되고 어른이 된다는 것결혼은 곧 완성을 뜻하는 또 다른 말임을 우리는 부단히 들어왔고 또 그렇게 믿으며 살아간다결국 화자는 결혼 이후의 불확실한 삶출산에의 공포까지 짓눌러버리는 저 당연해 보이는 말과 아름답고 지적인 커플의 결합이라는 감동적인 이미지를 받아들이며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남성과 여성에게 규정된 확고하고도 분명한 역할론 안에서 질식할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다른 여자들보다 미숙한 데다 식사 때 남이 차려놓은 음식을 편하게 먹으면 되는 시절을 그리워하는 게으름뱅이며달걀도 깔끔하게 깨지 못하는 쓸모없는 지식인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아직 말 못 하는 아이와 남겨진 빈방들의 고독내 삶의 모든 자유는 아이의 오후 수면 상태에 달려 있으며 모든 것이 세 살 이전에 결정된다는 정신분석학의 저주에 따르는 완벽한 양육에의 강박까지그러면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그럼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너희가 좋아서 아이를 낳은 거잖아.

 

 

 

정오와 저녁에 나는 냄비 앞에 혼자가 된다나는 그보다 더 요리를 잘하지 못했다그저 빵가루 묻힌 송아지고기 커틀릿초콜릿 무스나 할 줄 알았지특별한 것은 할 줄 몰랐다그나 나나어머니 치마폭에서 요리를 도운 과거가 없었다왜 둘 중에서 나만 이것저것 해봐야 하나닭은 얼마나 오랫동안 삶아야 하는지오이의 씨는 제거해야 하는지그런 걸 알아보려고 왜 나만 요리책을 탐독해야 하고그가 헌법을 공부하는 동안 당근 껍질을 벗기고저녁을 먹은 대가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가어떤 우월성을 명목으로 이런 일이 가능한가? / 181p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먹을 것과 똥거기에 세균과 아이 기분을 맞추기에 대한 강박관념물론하찮은 집안일을많은 사랑이 필요한 훌륭한 일 등으로 찬양하고똥을 미화해야 한다방울져 떨어진 우유의 흔적들더러워진 기저귀 속에서 시를 찾아야 한다. / 198p

 

 

심지어 여기에 더해완벽한 여자가 되려는 충동 속으로 빠져들었다살림아이 그리고 프랑스어 수업 세 개를 모두 홀로 감당하고가정의 수호자이자 지식의 분배자단순히 지적일뿐만 아니라간단히 말해서 조화를 이루는 슈퍼우먼결국 이 모든 것을 절충하고 긍지를 느끼는 여자가 되려는 충동. / 238p

 

 

 




 

 

 

 

  놀랍도록 섬세하고 신랄한 묘사들은 문득 잊고 지냈거나 애써 모른척하고 있었던 불편한 감정들을 들춰내 나를 섬뜩하게 만들었다또한 이름 없는 화자에게 나의 이름을 덧입히느라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몸살을 앓을 것 같기도 했다때문에 이 책이 출간된 지 40년이 흘렀지만책 속의 묘사된 남녀의 본질적인 부분들은 의외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낀다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인식은 점점 해소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타고난 성의 역할과 그 안에 내재된 모순 속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까닭이다그래서 아니 에르노가 묘사한 화자와 여성으로서의 삶은 우리 시대와도 깊은 공감을 이룬다무엇보다 아니 에르노는 처절했고치열했던 자기 역사의 글쓰기가 어떻게 문학이라는 장르로 탄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가란 생각이 든다덕분에 앞으로의 나의 글쓰기 역시 나는 나에게 얼마나 진실한가를 물어보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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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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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는 서술자가문학이 이 불완전한 시대 속에서 무엇을 품어야 하는지를 열정적으로 보여주는 놀라운 작가다!

내가 왜 문학을 사랑하는지를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이 모두 설명해준다!

 

 

 

 

  “좋은 소설이란 그 외피가 스릴러이든 로맨스이든 상관없이 세상을 향해 지혜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작가란 자신의 신념을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태로 이야기 속에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올가 토카르추크는 그런 점에 있어 탁월한 서술가임에 틀림없다태고의 시간낮의 집밤의 집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로 이어지는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세상과 문학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자로서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자처해왔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그도 그럴 것이 범우주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존재론적 숙명과 실존적 고독인간과 동물 혹은 생태 전체에 관한 모럴리티소외되고 연약하고 힘없는 존재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 했던 일련의 시도들을 통해 그녀는 서술자가문학이 이 불완전한 시대 속에서 무엇을 품어야 하는지를 상당히 열정적으로 보여준다그리고 자신의 첫 에세이 다정한 서술자를 통해 그것을 다정함이라 명명한다이는 문학이야말로 물공기 다음으로 세상을 이어주는 다섯 번째 원소이며 세계를 구할 다정한 네트워크여야 한다는 문학의 소명에 관한 선언이다또한 우리가 왜 문학을 읽어야하는가에 대한 아름다운 찬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책을 읽기 위해서다

 

 

  여기세상의 경계에 선 한 방랑자가 있다프랑스 천문학자 카미유 플라마리옹의 책에 실린 목각화에는 지구의 영역 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조화로운 우주의 질서를 바라보는 방랑자의 모습이 새겨져있다이 목각화는 한없이 복잡한 우주 차원을 향한 탐구가시적인 한계 너머를 향한 경탄과 환희상상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한편으로세상의 끝에 다다른 방랑자는 이 오랜 여정이 끝났음을 예감하고야만다거대한 세계를 향한 무한한 상상은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되어버린 자에게 더 이상 관심과 열정을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 올가 토카르추크는 지금의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는 세상은 오히려 작아졌다고 말한다네트워크의 연결과 보편화된 원격 감시 체계로 인한 세계의 축소 및 유한성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파놉티콘에 가두었다그중에서도 우리 인간이 세상을 통제하고 있으며 창조의 주인이라는 인식은 이 세상의 놀라운 복합성을 이해하려던 시도를 완전히 멈추게 했다.

 

 

 

  이에 올가 토카르추크는 문학(이야기)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원소라고 강조한다상호 간의 영향과 연결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에너지가 문학만큼 강렬한 장르는 없기 때문이다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직조하며무한한 다채로움과 복잡성을 이해하게 해주고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하나의 존재로부터 또 다른 존재로 전달하게 만드는 문학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방랑자의 감각으로 살 수 있다또한 문학으로 하여금 중심적 관점을 과감히 포기하는 탈중심주의익숙한 사고방식이나 뻔한 행동반경을 벗어나려는 경향고질적인 의식이나 사고방식안정적인 세계관에 부합하는 공동체적 관습으로부터의 탈피를 꿈꾸는 카이로스적 사고를 지향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세계는 다시 드넓어질 수 있다이것이 우리 모두가 책을 읽어야하고서술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가능한 한 폭넓게 이해된다는 점에서 문학은 본질적으로 네트워크와 유사하다네트워크 덕분에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 사이에 광범위한 교감과 연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문학은 정교하고 특별한 인간의 소통 수단이며그 수단은 명확하면서 동시에 총체적이다. / 39p

 

 

새로운 용어로 가득 찬 도서관을 만들어 보자중심부에서는 결코 들어 본 적 없는 기발하고 괴상한 콘텐츠로 그 공간을 채워 보자결국 언젠가는 단어나 용어관용구나 숙어의 부족 현상이 발생할 테니 말이다누가 알겠는가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기록하고 묘사할 새로운 장르나 스타일이 필요하게 될지그때가 되면 새로운 지도는 물론이고 기존의 사전이나 백과사전의 지평을 넘어서는 세계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영역을 뛰어넘기를 주저하지 않는 방랑자들 특유의 용기와 유머가 우리에게 절실해질 것이다그 세상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보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 / 43p

 

 

 




 

 

 

 

  올림포스의 신들 중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날개 달린 신을 신고 두 마리 뱀이 감겨 있는 독수리 날개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는 신하면 생각나는 이가 있을 것이다바로 전령의 신이자 여행의 신상업의 신도둑의 신인 헤르메스다지상에서부터 지하까지 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지하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는 오직 그 뿐이다그는 소통의 행위가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난다올가 토카르추크는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이곳저곳에 퍼뜨렸던 이 신의 본질에게서, 언어를 통해 그리고 언어를 초월하여 사람들과 소통하고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인간의 경험을 전파하는 번역가들의 위대함을 들여다본다.

 

 

 

  유기체인 우리 인간에게 있어 번역가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번역가의 중재와 개입 덕분에 우리는 16세기의 작품을다른 세상의 언어를 현실의 감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번역가는 점점 노쇠해 가던 언어가 사장되지 않도록 그 언어가 다시 젊어지고오래된 씨앗에서 새로운 싹이 움트게 된다그런 의미에서 번역을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또는 하나의 문화를 다른 문화로 옮기는 작업일 뿐 아니라 일종의 원예 기술에 비유한 작가의 말이야말로 매우 절묘하다하나의 식물에서 가지를 잘라 내어 다른 식물에 접목한 뒤 새싹을 움트게 하고생장 에너지를 모아 본격적인 가지들로 뻗어 나가게 만드는 작업을 부단히 해왔던 번역가들덕분에 나는 늘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지금 이 순간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 누군가가 분명 있을 거라고나는 지금 그런 기적을 누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읽는’ 행위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지구 방방곡곡에 흩어진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헌은 각기 다른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가 발굴된 것이다이처럼 하나의 텍스트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연구되면서 같은 이야기의 여러 버전을 제공하는 언어학적 다성 음악이 만들어졌고그렇게 다른 하늘 아래에서 다른 방언으로다른 속도로 이야기들은 재생과 부활을 거듭했다위대한 헤르메스 또한 이런 식으로 활약하며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전 세계를 퍼뜨렸다. / 99p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잃고 집단의 언어가 사적인 언어를 모조리 집어삼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질병은 없다관료정치인학자성직자 들이 바로 이러한 질병을 앓고 있다이럴 때 유일한 치료법이 문학이다창작자의 언어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행위는 우리에게 일종의 백신과 같다즉흥적으로 만들어져서 일종의 도구처럼 남용되는 오늘날의 일그러진 세계관에 저항하는 백신고전을 포함해 문학 작품을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강력한 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문학은 집단의 언어가 한때 지금과는 다르게 기능했고 과거의 세계관이 현재와는 확연히 달랐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그러므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 105p

 

 

어떤 인물의 가장 미묘하고 복잡하고 세밀한 경험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또 다른 누군가의 앞에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게다가 그 모든 게 실존 인물의 삶보다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기적이라는 것이다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나는 독서의 기적에 대해 지금껏 어떤 심리학자도 완벽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그것은 지구 방방곡곡에서 매 순간 발생하는 보편적인 기적이다. / 109p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역사를 써나가는 개별적인 서술자들이다때문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문학의 가치와 독서 방법문학적 인물이 탄생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여정은 우리가 세상과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어내는 서술자로서 자신의 영토를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그 중에서 작가가 반드시 장려되고 소중히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기벽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의식적으로 지녀야 할 감각인 듯하다기벽은 지금껏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각에 대한 의식적인 탐색이다자신만의 참신함과 새로움으로 무장한 채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것과 간과된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점에서기벽은 서술자들이 간직해야 할 창의적인 마음가짐의 핵심이자 정수다주류의 안전함을 따르지 않고세속적인 우리 삶의 틈바구니 어딘가에 흩어져 있던 은유와 비유를 상상에 의해 끊임없이 소환할 수 있는 삶그러한 영토 속에서 우리는 진정 생동하는 서술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괴팍하고 기이한 성향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좋은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그래서 기벽은 장려되고 소중히 다뤄져야 합니다중심에서 멀어지려는 이 원심적 경향만이 기존의 사회적 지평 너머에서 존재하고 벌어지는 일들을 포착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중심 또는 주류에 머무르려는 성향은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편리하고 안전한 선택이긴 하지만 창의성의 측면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기에 현재 또는 미래의 작가들은 그 주류의 흐름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자신을 제어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지적 주류만큼 창작자에게 위험한 것은 없으니까요. / 259p

 

 

메탁시의 영토즉 중간 지대란 예술이 자원을 흡수하여 비축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영역입니다이곳에서 이미지가 생성되고은유과 상징이 탄생하며이를 통해 우리 내부가 외부와 접촉할 수 있습니다무엇보다 메탁시의 영토는 세상의 다차원적 복잡성을 투영함으로써 모든 것을 단순화하려는 인간의 사고로부터 세상을 보호합니다. / 328p

 

 

 




 

 

 

 

  무엇보다 다정함이야말로 이 세상이 살아 움직이고 있고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으며더불어 협력하고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힘이다다정함이라는 이 놀라운 도구인간의 가장 정교한 소통 방식 덕분에 우리의 다양한 체험들이 시간을 여행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에게까지 다다르게 된다어릴 적올가 토카르추크는 엄마의 사진을 보며 표정이 슬퍼보였던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엄마는 그녀에게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그리워하느라 슬픈 거라고’ 말했다내가 아직 세상에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날 그리워할 수 있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엄마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순서가 바뀔 수도 있어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그 사람이 거기 존재하게 되는 거란다.” 세상과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어내는 서술자를 탄생시킬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평범한 물질적 속성이나 인과 관계확률의 법칙을 초월하여 세상의 더 많은 존재들을 껴안을 수 있는 다정한 서술자가 보다 많아지기를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라본다.

 

 

 

  『다정한 서술자를 읽으면서 내가 왜 문학을 사랑하는지를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가깝게 느꼈다읽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고한 문장 한 문장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 꾹꾹 눌러 남느라 다소 읽는 데 시간이 걸렸다이 책을 읽기 전에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품 중 한 권을 꼭 먼저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그런 뒤에 이 책을 읽으면 그녀의 언어와 문장에서 더 큰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나는 앞으로 쭉 그녀의 작품을 쫓아다니며 읽게 될 것 같다그녀가 보여주는 세상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독자로 내내 머무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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