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러키 스타트업
정지음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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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직장에서의 회한을 술로 푸는 친구의 손에 이 책을 꼭 쥐어주세요!

이 작가님최소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게 틀림없어.’ 공감 백배폭소 만점 시트콤 소설!

 

 

 

언러키 스타트업 제1법칙_

여기에선 모든 일이 어떻게든 망한다는 것,

희망은 사망하고 소망은 절망으로 화한다는 것. / 123p

 

 

 

  이곳은 헬시 닥터 제임스의 스트롱 뷰티’, ‘수면 닥터 제임스의 슬리핑 뷰티’, ‘청년 닥터 제임스의 청춘 뷰티란 이름의 인터넷 강의를 파는 스타트업국제마인드뷰티콘텐츠그룹이다아니정확하게 고쳐 말하면 언러키 스타트업이다아무리 봐도 스타트만 있고 업(UP)은 없는스타트업이란 단어에서 흔히 연상되는 가치-열정자유비전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참신함이라면 이수진 과장을 ‘Susan 과장’, 오지구 대리를 ‘Earth 대리’, 김다정 주임을 ‘DJ 주임이라는웃기지도 않고 어디 내놓기에도 부끄러운 영어 닉네임 정도랄까각자가 1인 팀의 유일한 팀원이자 팀장인 이들 세 직원은 오늘도 대표 박국제(자칭 박사 제임스)라는 어마어마한 리스크와 싱크홀을 메우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웬일로 새 디자이너가 들어왔다 싶었던 날아니나 다를까 티 없이 맑고 순해 보이는 이미지의 어린 여자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꼭 그런 부류의 대표들이 있다자신이 잘 키워보겠다며 나만 믿고 따라오면 많이 배울 수 있고 금방 성공할 거라는 호언장담을 내세우지만실상은 씹고 뜯기 좋은 만만한 사회초년생을 먹잇감처럼 채용하는 부류들 말이다박국제는 남자애들은 멍청하다는 이유로 남자 사원을 채용하지 않지만 사실 청일점이고 싶은 차별주의자에 불과하다는 걸 다정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사내 복지를 위해 안마 의자를 들여놓으며 온갖 생색은 다 내놓고(실은 대표방에 더 좋은 걸 넣고서정작 누가 앉기라도 하면 너 한가한가 봐?” 하고 눈치를 주는 부류라는 것 또한그렇게 다정은 오늘도 어김없이 스타트업 복지의 맹점은 생성만 되고 아무도 즐길 수 없다는 사실만 또렷이 확인하고 만다.

 

 

 

신기하게도 악덕 대표들은 꼭 업무적 설득이 필요한 순간마다 치사한 기 싸움을 걸었다일이야 개판이 되든 말든 직원부터 찍어 누르고 보는 게 그들이 알량한 자존심을 수호하는 비법인 것 같았다. / 54p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놀랍기도 했다박국제는 항상 회사를 무럭무럭 키우고 싶은 마음과 영원히 ‘5인 미만 사업장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무적이었다지키지 않아도 되는 노동법이 참 많기 때문이었다만약 5인 이상 사업장이 된다면 우리에게도 드디어 법적으로 보장되는 연차라는 게 생기는 것이었다. / 67p

 

 

 



 

 

 

 

  이렇듯 언러키 스타트업은 콩알만 한 기쁨으로 큰 모욕들을 견뎌 가며썩어 빠진 주니어로 성장했고하루하루 착실히 성격을 베려 가는’ 한 스타트업 직원의 분투기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담은 소설이다차라리 밤낮없이 일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기분 따라 변하는 상사의 무례한 말과 행동만큼은 참을 수 없는 회사원들무식한 데다 졸렬함과 분노를 유발하는 이기심을 두루 갖춘 사람이 어째서 한 회사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건지 오늘도 지상최대의 미스터리를 떠안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작가님최소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게 틀림없어.’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직장인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사연들이 리얼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언러키 속에서도 러키를 발견해내는 게 인간의 습성이 아니던가어쩐지 소설 표지에 쓰인 시트콤 소설이란 글귀가 예사롭지 않더라니정지음 작가는 다정이라는 인물로 하여금 이 고달픈 회사 생활 속에서도 웃음 포인트를 적재적소에 뽑아내 답답한 마음을 긁어준다이런 표현을 쓰기 차마 민망하지만 이 작가분 미쳤네.” 하고 키득키득 웃으며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게 만든다. ‘삶은 부당하지만 가끔씩 아주 멋진 인과응보를 보여준다던 소설 속 글귀처럼 이따금 박국제를 먹이는 한 방은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태연한 척했지만 실은 마음이 스산했다내가 스터디 카페를 모르는 만큼지원도 회사라는 세계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등학생 땐 분 단위 일상을 공유하던 우리였는데 이젠 100마디 얘기를 나눠도 각자의 일상이 서로에게 스며들지 못했다.

문득 자길 감정 쓰레기통으로 보냐던 지원의 항의가 떠올랐다내가 그 애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보는 것일까그 애가 내 감정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일까? / 108p

 

 

일주일간은 아무 일도 없었다그러나 일주일이 더 지난 후에는 새로운 폭풍이 몰아쳤다박국제가 대뜸 사무실 이사를 통보한 것이었다그는 이 웅장한 계획을 사옥 이전이라 칭했다창립 이래 내내 월세였고 이사 갈 사무실 또한 월세인데 어째서 사옥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 121p

 

 

수진 언니는 퇴근 후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에서 최신 사건 사고들을 설명하며 분통을 터뜨렸다박국제가 보정 씨를 신임할수록 수진 언니의 입지 또한 눈에 띄게 좁아지고 있었다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구국의 영웅이 득세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을 개국공신이었다. / 200p

 

 

저놈의 빈약한 자아는 탈세자일 때직장 내 괴롭힘의 주도자거나 방관자일 때어린 여성을 희롱하는 해충이 될 때 오히려 강해졌다왜인지 몰라도 박국제는 사회적 합의나 안정망을 구둣발로 박차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었다아니사실은 왜인지 알고 있었다짓밟아 부수고서도 책임지지 않는 것잘못하거서도 심신이 가뿐한 것그리하여 잘못을 반복해도 되는 자유를 다시 얻는 것……일련의 배덕을 박국제는 권력이라 믿었다. / 237p

 

 

 




 

 

 

 

  소설을 읽다보면 이 작가를 왜 이제야 알았지하는 의문이 들만큼 문장에 쫄깃한 맛이 있다회사 생활의 생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한 번씩 던지는 위트와 참신한 문장이 소설을 착감는 매력이 있다덕분에 정지음이란 작가의 이름을 내내 기억하게 될 것 같다아울러 이 소설로 하여금 정지음 작가를 기억하게 될 이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무엇보다 오늘도 직장에서의 회한을 술로 푸는 친구가 있다면이 책을 손에 꼭 쥐어주시길 추천드린다매일매일 자발적 퇴사를 꿈꾸며 탈출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도 이 책이 넉넉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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