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 - 내 이름의 새로운 철자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디플롯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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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오랜 세월 사랑하고 연대하고자 했던 모든 여성들을 위한 한 편의 신화다!

오드리 로드의 별빛 같은 언어에 빚을 진 이유로나는 그것이 실현되고 있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자미는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시인흑인이자 페미니스트이며 레즈비언으로 평생 인종주의와 성차별동성애혐오에 맞서 싸운 전사이자 영원한 아웃사이더였던 오드리 로드의 자전신화다니그로슈바르츠다이크 등 그 시대에서 가장 불온한 이름으로 불려야 했던 유색인종이자 소수자의 딸로서흑인이자 여성이자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형벌이었던 시대 속에서, ‘지배자의 도구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결연히 나아가고자 했던 그녀는 놀랍게도 분노나 저항이 아니라 사랑을 이야기한다.

 

 

 

  “내가 사랑한 여자들은 저마다 나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내 목소리에 담긴 힘을멍든 살갗의 수포 아래서 문득 거품을 일으키듯 부풀어 오르는 강인한 나를 만들어준 이들은 누구인가내 생존의 상징들을 만들어준 이들은 또한 누구인가? ‘오늘의 나라는 여성이 되기까지 나는 어떤 이들에게 빚을 졌는가질문하고 확인하고부서져도 무너진 것들을 다지며 끊임없이 자신만의 집을 지어나가려 했던 여정 속엔 오직 사랑만이 가득하다껴안음으로써 몸에 새겨진 사랑의 흔적그 고유의 힘으로 불가해한 역사를 뛰어넘고 행복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그러한 이유로 이 책은 한 흑인여성해방운동가의 분투기가 아닌 아주 오랜 세월 사랑하고 연대하고자 했던 모든 여성들을 위한 한 편의 신화가 된다.

 

 

 

마디빈프렌딩자미(서인도제도의 속어로

레즈비언을 지칭하는 단어다), 캐리아쿠 여성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은 그레나다의 전설이며,

그들의 힘과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 29p

 

 

 

  오드리 로드는 줄곧 자신의 정체성이 캐리아쿠의 여성들과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어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캐리아쿠 여성들은 바다로 나간 남편 없이도 독립적으로 살아가며 생존에의 힘을 키울 줄 알았으며이웃하는 여자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함께하는 삶을 영위했다문을 열면 상쾌한 아침과 뜨거운 정오에 풍기던 과일 향기가 달큼하게 밀려들어오던 그 신비로운 낙원에서여성들의 강한 연대 속에서 단단하게 성장했던 나의 어머니그래서 오드리 로드는 자신 역시 어머니처럼 강한 여성이 되기를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진 가장 강하고 풍부한 면모들을 받아들여 지구가 언덕과 산봉우리를 품듯 자신의 몸에 골짜기와 산맥이 공존하기를 바랐다그렇게 오드리 로드는 지도 위에 포착해내지 못한목을 졸라 교과서의 페이지 사이에 가두지 못한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그들만의 공간 캐리아쿠를 늘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상상이 무너진 자리에는 늘 소음과 흥건한 땀으로 가득한 할렘의 현실이 눈앞을 어지럽혔다인종봉기 이후 할렘의 똥통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바로 그곳에서 이민자로흑인으로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통제 불가능의 연속이자 결코 단순해질 수 없는 삶의 반복이었다어머니와 아버지는 미국에서 흑인들이 겪는 현실과 미국의 인종주의라는 엄연한 사실로부터 아이들을 가장 안전히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그것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거나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을 택했다백인을 믿지 말라고 가르치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그들이 품은 악의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다마치 관심을 주지 않으면 그 일들이 없어지기라도 한다는 것처럼하지만 세인트캐서린학교에 입학한 최초의 흑인 학생이자 반에서 제일 똑똑한 학생이라는 자부심 따위가 반장선거에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니그로에게 집을 빌려주는 신세가 됐다는 허탈감 때문에 집주인이 자살을 한 일을 전교생 모두가 알게 되었다면인종주의란 결코 무시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일찍이 알아버린 그녀는 내 심장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를 그리느라 아프고 또 아팠다고 자신의 유년시절을 고백한다.

 

 

 

나는 어둠 속 내 자매들 옆에 눕는다길에서 나를 알아보지도 인정하지도 않고 스쳐 지난 자매들이 중 얼마만큼이 벗겨지지 않는 보호용 마스크의 역할을 맡은 거짓 자기부정이고또 얼마만큼이 우리를 갈라놓고자 계획된 증오일까? / 103p

 

 

나는 젊고흑인이고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한다대체로 내가 진실과 빛과 열쇠를 지니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괜찮았지만그럼에도 대체로 순전히 지옥 같았다.

우리한테는 어머니도 자매도 영웅도 없었다우리는 아마존의 자매들처럼다호메 왕국에서 가장 외딴 전초기지의 기수들처럼뭐든지 홀로 해내야 했다우리젊고 흑인이고 괜찮았고 동성애자였던 우리는 점심시간에 속마을을 털어놓을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 하나 없이 첫 실연을 이겨내야 했다우리가 행복하고 비밀스러운 미소를 짓게 하는 그 이유를실재하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줄 반지가 없었듯우리의 실험실 보고서나 도서관 문서에 얼룩지는 눈물에는 어떠한 이름이나 이유가 주어지지도공유되지도 못했다. / 306p

 

 

 



 

 

 

 

  하지만 오드리 로드는 어머니의 망명지였으나 이제는 어머니가 아는 것보다 거리 구석구석을 더 잘 알게 된 이 나라에서 그저 쓰라린 감정이 아니라 생산적인 소득을 얻고자 마음먹었다집을 떠난 뒤 그녀는 자신을 살아가게 해주는 여성들을 만나며 그들로부터 다른 사랑을 배웠다아픔이 무감각보다 낫다는 것을 가르쳐준 낙인찍힌 자들’, 사랑만이 지속된 결핍의 아픔을 치료해줄 수 있을 거라 믿는 굶주린 여자들한데 모이면 뇌우가 되어 터지는 요소들처럼 짧은 시간이지만 흠뻑 젖은 채 하나가 되어 에너지를 교환하고 전류를 나누었던 연인들그들은 비록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불안전한 존재들이자 혐오의 대상이 되곤 했지만적대적이기만 하던 세상 속에서 서로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행위만이 자신들을 살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그렇게 유색인종이자 레즈비언이기도 했던 오드리 로드는 관계와 그들과 나누는 사랑’ 속에서 자신을 재정의하고그들로부터 얻은 반향의 힘을 타투처럼 정서에 새겼다. 20년 뒤 여성운동에서 새로운 개념으로서 등장하게 될, ‘상호지지라는 관계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그 안에서 탄생되었다.

 

 

 

우리는 스스로가 유별나고 제정신이 아니라는 점을우리가 사용하는 특이한 잉크와 깃펜을 자랑스러워하는 낙인찍힌 자들이자 과격한 주변인들이었다고지식한 무리를 조롱하는 법을 배웠고우리가 가진 집단적인 편집증을 퇴학당하지 않을 선에서 멈출 수 있는 본능적인 자기보호에 이르도록 계발시켰다모호한 시를 쓰고불복종의 전리품인 우리의 괴상함을 아끼고 사랑했으며그 과정에서 고통과 거부가 상처를 준다는 걸 배웠지만그럼에도 그런 것들이 치명적이지는 않으며또 피할 수 없기에 쓸모 있다는 걸 배웠다우리는 아픔이 무감각보다 낫다는 걸 배웠다그 시절엔 괴로워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우리는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을 미덕으로 만드는 법을 배웠기에 낙인찍힌 자들이 되었다. / 141p

 

 

나는 유령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나는 살지 못한 삶들의 희망이었고

나는 텅 빈 공간 그리고 텅 빈 빵 광주리 안 공간이

남긴 사고의 산물이었고

나는 태양을 향해 뻗는 손

위안을 구하려 까맣게 타들어간……

 

그리고 애도의 나무 위에 그들이 날 매달았네

성난 사람들의 길 잃은 감정이

나를 매달았네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죽어갔는지

얼마나 오래 불멸로서 버텼는지

잊은 채로

내가 얼마나 쉽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

잊은 채로.

 

1952년 4월 20일 / 203p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제멋대로자신들에게 유리하지만 우리에게는 해가 되는 방식으로 우리를 정의하고 말 것이라 했던 오드리 로드그 별빛 같은 언어에 빚을 진 이유로나는 그것이 실현되고 있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나만의 불꽃을 빛내고 있을 이들에게 이 책이 부디 귀한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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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피아 3 : 엽기 상식 - 꼬리에 꼬리를 무는 400가지 사실들 팩토피아 3
케이트 헤일 지음, 앤디 스미스 그림, 조은영 옮김 / 시공주니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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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팩토피아를 모른다고뭐해빨리 팩트의 세계로 놀러와!

진짜 괴이하고 별나지만 알아두면 지식이 번뜩이는 어린이 백과사전!

아이 학교 가방에 챙겨 넣어주면 친구와 함께 깔깔 웃으며 읽는 재미가 두 배로 더 커지는 책!

 

 

 

  세상의 놀랍고 신비한 지식만을 쏙쏙 담은 신개념 어린이 백과사전팩토피아.

  다채로운 잡학 상식으로 꽉꽉 채워져 있던 1권과 2권에 이어, 3권에서는 우리 아이들의 호기심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줄 괴이하고 별난 엽기 상식이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이번 3권에서는 대뜸 우리에게 단단히 주의할 것을 경고한다불쾌하고질척대고끈적거리고오싹하고근질거리고역겨운 사실들로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으니까동물과 식물학문스포츠역사엽기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누구도 예상치 못한 엉뚱한 방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엽기 상식들에 금세 혀를 내두르게 될 테지만무척이나 기발하고 놀랍고 특별한 팩토피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테니 기대해보시라!

 

 

 

팩토피아에 또 왔구나반가워!

만나자마자 경고부터 해서 미안하지만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이번 여행에서는 비위 상하는 일이 많을 테니까.

어떤 것들이냐고?

이번 엽기 팩토피아 여행에서 너희는 끔찍한 변기구역질 나는 세계 기록멀미할 것 같은 구토징그러운 역사를 만나게 될 거야.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긴장해야 할 걸? / 6p

 

 

 

  그럼 어디 샛길을 따라 162쪽으로 바로 넘어가볼까? 162쪽 ’ 편에서는 머리가 두 개인 뱀을 만날 수 있다머리가 두 개라니대번에 얘들은 샴쌍둥이인가봐.” 하고 말하는 우리 집 둘째의 눈은 벌써부터 반짝인다머리가 두 개인 뱀은 먹이를 두고 다투거나 심지어 서로 잡아먹으려고 한다지결국 한 몸인데 서로 다투는 모습이라니한 몸에서 태어났어도 더 잘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은 어쩔 수 없나보다. 114쪽의 ’ 편에서는 개에 관한 놀라운 습성을 발견할 수 있다개는 보통 북쪽이나 남쪽을 바라보면서 똥 누는 걸 좋아한다고지구의 자기장에 예민해서 방향을 알 수 있다고 한다하지만 왜 그러는지는 과학자도 모른다고… 그럼 오늘부터 개가 똥을 누려고 할 때면 어느 방향으로 누는지 자세히 살펴볼까?

 

 

 




 

 

 

 

엄마와 아이가 함께 꼽은 재미있고 유용한 상식들

 

 

토사물과 파르메산 치즈의 냄새는 같은 화학 물질에서 나는 거야.

어디어디냉장고에 있는 파르메산 치즈에서 정말 토사물과 같은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러 가볼까왠지 냄새를 맡고 나면 못 먹을 것 같지 않아크크.

 

플라스틱을 먹고 소화하는 미생물이 발견되었어어쩌면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처리해 줄지도 몰라.

세상에플라스틱을 먹고 소화하는 미생물이 있다니그러고 보면 자연은 참 위대한 것 같아인간이 버린 쓰레기마저 소화해내는 능력이라니무척이나 고마운 존재지만 이들이 소화해내기 벅찰 만큼 많은 플라스틱을 버려서는 안 되겠지?

 

과학자들이 그러는데 지구에 있는 모든 물은 공룡이 한 번씩 마시고 쉬한 것이라네?

뜨억그럼 지금 내가 마신 물이 공룡이 쉬한 물이야?

 

달팽이는 이빨이 수천 개나 돼다 셀 수는 있을까?

정말우리 팽팽이(집에서 키우고 있는 달팽이이빨이 이렇게 많았어잘못 만지면 물리는 거 아니야?

 

런던에 사는 한 남성은 17킬로그램이 넘는 구더기를 자기 입으로 옮겨서 세계 기록을 세웠지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여성은 발 냄새 맡기 세계 기록을 세웠어발 제품을 테스트하느라 5,600명의 발 냄새를 맡았다지 뭐야.

아니대체 이런 건 왜 하는 거야구더기를 대체 왜 입으로 옮기냐구발 냄새는 또 왜 맡는 건데세상엔 별난 기록이 참많다많아!

 

 

 




 

 

 

 

  『팩토피아』 시리즈의 장점은 어린이들의 시각적 재미를 자극하는 삽화까지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인데이번 엽기 상식’ 편에서는 그 재미가 배로 늘어난 듯하다또 브리태니커의 검수를 받아 참고 자료 및 사진 출처까지 하나하나 표기되어 있으니 우리 아이에게 믿고 권할 수 있는 책이라 좋다여기에 3~6학년 사회과학음악미술체육 교과 연계까지 가능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아울러 팩트력이 쑥쑥 올라가는 초성 퀴즈와 알쏭달쏭 OX 퀴즈팩트 꼬리 물기단어 찾기와 빙고 게임낱말 퍼즐 등 다양한 퀴즈 놀이로 독후활동까지 마무리할 수 있으니 재미와 상식지식 모두 챙겨갈 수 있는 책을 찾으신다면 팩토피아』 시리즈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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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메리 셸리 지음, 이경아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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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괴물은 누구인가?

공포스럽고 기괴한 괴물의 이미지에 이끌려 읽게 되었지만인간의 이기와 맹목적인 욕망에 의해 희생당하거나 배제된 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는 소설!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밤시인 바이런과 폴리도리퍼시 비셰 셸리메리 셸리 등의 일행이 한 자리에 모였다무료한 시간을 달랠 무언가를 고민하던 바이런은 손님들에게 각자 자기만의 무서운 이야기를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이때 퍼시 비셰 셸리는 어린 시절의 경험담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었고바이런은 흡혈귀를 소재로 소름끼치는 단편을 후딱 써냈다(훗날 이 자리에 있던 폴리도리가 바이런이 버린 미완성 단편을 기초로 뱀파이어를 써서 유명해졌다). 한편그 어떤 소재를 갖다 붙여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섬뜩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 메리는 우연히 퍼시와 바이런이 나누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당시 학계에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 갈바니즘(죽은 개구리 뒷다리가 전기 자극을 받고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한 이탈리아 의사 갈바니의 실험에서 유래한 혁신적인 요법)’에 관한 것이었다그때메리는 불경스런 기술을 지닌 창백한 얼굴의 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작품 옆에 무릎을 꿇은 모습을 한 환경을 본 듯했다그 작품이란 바로 인간의 신체 조각들을 모아 바느질하듯 기워 만든 괴물이었다그렇게 이야기는 탄생했다광기에 사로잡힌 학자와 그가 생명을 부여한 괴물에 관한 공포소설이.

 

 

 

창조주시여진흙으로 저를 사람으로 빚어달라

제가 당신께 청했습니까?

어둠에서 저를 건져달라 간청했습니까? / 실낙원』 중에서

 

 

 

  제네바 공화국의 명문가 자제로 태어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고대 과학과 자연철학에 심취해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생명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돌파해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고죽어서 육신이 부패하기 시작한 생명체에도 새로운 삶을 줄 수 있으리라는 열망에 사로잡힌 그는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방법에 몰두한다그렇게 2년 동안 건강을 돌보기는커녕 사랑하는 가족과의 만남까지 자제해가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그는 마침내그간의 난고가 결실을 거두는 순간에 돌입했음을 직감한다생명을 불어넣을 주위의 도구들을 모아발치에 놓여 있는 무생물에 존재의 불꽃을 일으키는 순간자신의 피조물이 누런 눈을 천천히 뜨는 모습을 지켜본다하지만 그토록 욕망하던 것이 이토록 악마 같은 존재였다니커다란 키허여멀건 눈구멍과 쭈글쭈글한 피부곧고 검은 입술과 대조를 이루어 무시무시해 보이는 얼굴그 모든 것을 한 데로 모은 창조물은 그 어떤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존재와도 비할 수 없는 그저 괴물일 뿐이다자신의 손으로 창조한 존재를 마주할 수 없어 참담해진 프랑켄슈타인은 그 길로 실험실을 뛰쳐나가고얼마 후 피조물 역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나는 생명과 죽음이 이상적인 경계로 보였다내가 제일 먼저 그 경계를 돌파해 암흑에 찬 우리의 세상으로 빛이 격류처럼 쏟아지게 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새로 창조된 종들이 나를 창조주이자 생명의 근원으로 축복할 것이다행복하고 빼어난 자질을 지닌 존재가 수도 없이 내 노력에 힘입어 세상에 탄생할 것이다세상에 나만큼 자식에게 완전한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아버지가 또 있을까이런 생각에 계속 몰두한 끝에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언젠가는 죽음을 육신이 부패하기 시작한 생명체에도 새로운 삶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77p

 

 

 

  프랑켄슈타인은 그동안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으로 자신이 괴물을 만들었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하지만친구 앙리의 따뜻한 우정과 변함없는 가족들의 사랑대자연의 경관이 주는 에너지 속에서 점차 회복하기 시작한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으로부터 비보가 들려온다동생인 윌리엄이 숨바꼭질을 한다며 숲에 들어간 뒤 살해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다윌리엄의 목에 남겨져 있었다던 살인자의 손자국프랑켄슈타인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내내 어쩌면 자신의 과오가 빚은 화살이 윌리엄에게로 향한 것이 아닐지 의심한다그리고 그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는다동생이 죽은 바로 그곳에서한 줄기 번개가 비추자 그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거인 같은 체구와 인간의 것이라기에는 너무나 흉측한 외모그 괴물자신이 생명을 불어넣은 더러운 악마라는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이다.

 

 

 

혹시나 내가 창조한 그 괴물이 어디선가 악행을 저지르지나 않을지 매일 두려움에 떨었다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막연히 들었다그 괴물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의 기억이 무색해질 정도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를 것만 같았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나는 항상 두려움에 갇혀 살아야 했다그자를 떠올릴 때면 이가 갈렸고 불이라도 난 듯 눈이 뜨거워졌다내가 경솔하게 불어넣은 그 생명이 어서 꺼지기를 열렬하게 빌었다그자가 지은 죄와 악의를 떠올릴 때마다 내 속에서 증오와 복수심이 한없이 터져 나왔다. / 146p

 

 

 



 

 

 

 

  이처럼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겠다는 욕망에 눈이 멀어 자연과 신의 영역을 넘본 젊은 과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손에서 창조된 흉측한 모습의 괴물이 서로의 목을 조이며 끔찍한 파멸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공포소설이다이 소설은 공포소설을 대표하는 고전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으며흔히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의 이름이라 오인할 정도로 문학사상 독보적일만큼 강렬한 캐릭터를 완성해냈지만실상 공포를 유발시키는 자극적인 장면이나 소설적 장치가 두드러지는 작품이 아니다엄밀히 말하자면 일부 낭만적인 요소를 비롯해 전반적으로는 19세기 과학이 지향하는 합리주의와 실천주의를 강조하며, ‘무엇이 악을 만드는가와 같이 선과 악의 근원적인 질문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작품이다.

 

 

 

  이는 작가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이 어떻게 자의식을 갖게 되는지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나는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건만 당신이 기쁨을 앗아가버리고 말았어어딜봐도 행복이 흘러넘치지만 나 혼자만 그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없어나는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었어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든 거야나를 행복하게 해줘그러면 나도 다시 선해질 거야.” 비록 기괴한 외모를 지녔지만 괴물은 기본적인 인지 수준을 지닌 데다 모방하고 학습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시골 오두막에서 사는 가족을 몰래 훔쳐보며 그들을 흠모하고그들의 감정에 동요될 뿐만 아니라 여기에 소속되고 싶은 감정을 느끼기까지 한다이는 흡사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습득하고 알아갈수록 선명해지는 사실은그는 절대 인간과 섞일 수 없는 혐오스러운 존재라는 것 뿐때문에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고독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혐오한 데서 나의 악의는 싹텄다며 자신의 분노와 증오의 이유를 설명한다그렇게 메리 셸리는 악의는 타고나는 것이 아님을어디에도 마음 둘 데 없이 세상으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해버린 한 외로운 존재에게서 악의의 뿌리를 들추어낸다. ‘그렇다면 나는 괴물인가누구든 보자마자 도망치고모두에게 거부당한 이 세상의 오점이란 말인가?’하고 고뇌하는 괴물의 모습은 그 모든 사회가 적극적으로 소외해왔던 존재들을 대변하는 듯하다그런 의미에서 보면 진짜 악마는 저 흉측한 괴물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과신하다 못해 맹신했던 프랑켄슈타인은 아닐는지.

 

 

 

나는 그들을 우월한 존재로 우러러보았어그들이 장차 내 운명을 결정지을 사람들이 되리라고 말일세상상 속에서 나는 그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그들이 나를 맞아주는 모습을 천 번은 더 그려보았다네그들은 처음에는 나를 혐오하겠지만 내가 점잖은 태도와 온화한 말투를 보여주면 처음에는 호의를후에는 사랑을 얻을 거라고 상상했어.” / 186p

 

 

인간은 이토록 강력하고 고결하고 위대하면서동시에 어떻게 그토록 사악하고 비열할 수 있을까어떤 때는 사악한 원칙을 물려받은 자손에 불과한 것 같다가도또 어떤 때는 고결하고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나위대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인간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명예처럼 보이더군기록에 남아 있는 수많은 사람이 보여주듯이저열하고 사악한 인간이 되는 것은 최악의 타락으로눈먼 두더지나 해를 끼치지 않는 벌레보다 더 비참한 것으로 보였지.” / 194p

 

 

모든 인간이 내게 죄를 지었는데 어째서 나 혼자만 범죄자로 여겨져야 해왜 당신은 친구를 그토록 무례하게 문전박대한 펠릭스는 증오하지 않지자신의 친구를 구해준 나를 도리어 죽이려고 했던 그 시골 청년을 왜 비난하지 않는 거냐고그래그들은 도덕적이고 결점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지비참하고 버림받은 자인 나는 퇴짜를 맞고 발길질을 당하고 짓밟혀야 하는 쓸모없는 존재일 테고이런 부당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끓어올라.” / 372p

 

 

 




 

 

 

 

  윌북의 호러컬렉션’ 중 가장 먼저 읽은 작품이다공포스럽고 기괴한 괴물의 이미지에 이끌려 읽게 되었지만인간의 이기와 맹목적인 욕망에 의해 희생당하거나 배제된 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는 소설 프랑켄슈타인내 안의 프랑켄슈타인이 스멀스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면어디선가 자신의 몸을 숨기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를 괴물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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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감사해
김혜자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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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읽었을 뿐인데왜 배우님과 두 손을 마주 잡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오늘도 고단한 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과 위로용기를 전하는 큰 어른의 따뜻한 메시지!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또 해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눈이 부시게.

당신을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 드라마 <눈이 부시게나레이션 중에서

 

 

 

 

  3년 전쯤백상예술대상에서 김혜자 배우님이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통해 대상을 수상하면서 들려준 소감이 기억난다혹시 수상하게 되면 드라마 속 나레이션을 꼭 들려주고 싶었다며 대본을 쭉 찢어오셨는데그 글귀가 이 땅의 수많은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큰 어른의 말씀 같아 참 귀하게 느껴졌다대본이나 시놉시스를 보면 내가 이 역을 맡으면 세상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나를 먼저 생각한다는 배우님의 말씀처럼오늘에 늘 감사하고 내일에게선 희망을 바라보기를 바라는 당신의 바람이 숨결 하나하나에눈빛 하나하나로 전달되는 듯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김혜자 편에서 배우님은 또 한 번 특유의 선하고 말간 얼굴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생에 감사하다고내가 그토록 부족한 인간인데 나를 배우로 만들어주셨고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기 생활을 삶처럼 여기며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모든 것들에 감사함을 전한다고우리 각자가 생이란 무대에 올려진 배우라면앞서 그 무대에서 치열하게 살았고 여전히 그 위에 올라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님이라 더 깊은 울림을 주었던 바로 그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생에 감사해.”

 

 

 

네 힘으로 살아네 힘을 다 해.

 

 

  김혜자라는 이름이 너무 흔한 시절이었지만연극반이라 배우 같은 김혜자라 불렸다던 그녀는 어쩌면 진즉에 배우가 될 운명이셨나 보다그녀가 정말 배우가 되겠다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미쳤다며 모두 반대했지만미군정 시절 재무부 장관이자 대한민국 2호 경제학박사였던 아버지는 오히려 이런 말을 해주셨다고 한다. “유명한 배우의 한마디는 어떤 정치인이나 학자 못지않게 영향력이 있다. (좋은 배우가 되거라좋은 배우가 되면 톨스토이나 셰익스피어처럼 세상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다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라그리고 책을 많이 읽어라.” 배우나 가수를 딴따라라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그들만의 가치를 인정하고 부디 선한 영향력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던 아버지가 있었기에 지금의 배우님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배우인 엄마의 꿈을 지지해줬던 남편과 자식들그녀를 끊임없이 새로운 무대에 올려 보내준 연출가와 작가들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고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던 고백이 나의 마음을 울린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까닭 없이 우울하고 절망하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알았습니다책을 통해서도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모두 조금씩은 부조리 연극의 배우들입니다단지 그렇지 않은 것처럼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절망감과 우울증 속에서도 스스로 힘을 내어 살아가는 것입니다그것이 삶이고그것이 인간입니다. / 56p

 

 

봉준호 감독은 내가 마치 신인배우처럼 항상 불안해한다고 했습니다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내도 정말 오케이냐고 내가 계속 반문했기 때문입니다사실 나는 언제나 신인입니다그 역을 처음 맡아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매번 맡은 역마다 처음 사는 인생입니다. / 70p

 

 

 




 

 

 

 

  배우님은 기억력이 없어져서 연기를 그만둬야 하는 날이 언제올까그 순간이 오는 게 제일 두렵다고 말씀하신다대사는 자신이 하는 말인데 자기가 하는 말도 모르면 어떻게 연기를 하겠느냐고 말이다그만큼 배우가 하는 대사를 자신의 말처럼배우가 입는 옷을 자신이 매일 입는 옷처럼어떤 역할을 하는 연기자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인 것처럼 매번 혼신을 다했던 그녀다수탉이 온 힘을 다해 울다가 지쳐서 기절해 쓰러진 영상처럼있는 것을 다 뽑아내고 소리를 지르다 극이 끝나면 쓰러지듯 널브러졌다고 한다그럼에도 배우님은 여전히 자신에게 어떤 역이 더 주어질까 그 생각만으로도 설렌다며 해맑게 웃으신다배우는 이만큼 하면 됐다.’거나 이 정도면 성공했다.’라고 멈춰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채찍질했던 그녀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그런 마음을 품고서 해야 한다는 책 속의 글귀는 도리어 우리에게 이렇게 물어오는 듯하다너는 그만큼 온 마음을 다해 해본 적이 있느냐고.

 

 

 

몰입하는 순간 인생의 허무와 고통슬픔갈등부질없는 생각들을 다 잊을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그 순간에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한 나 자신이 되고 어느 때보다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생의 모든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내가 그토록 부족한 인간인데 나를 배우로 만들어 주셨으니까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기 생활을 정말로 그만둘 때가 되면 그것으로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문장을 대사처럼 외웁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내 인생은 매 순간순간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 25p

 

 

나는 직업란에 탤런트라고 쓰는 사람을 보면 무심결에 저이는 저걸 직업이라고 생각하는구나.’ 하면서 놀랍니다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 와서 그런지 나는 연기가 직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직업이라고 하면 왠지 자존심이 상합니다마더의 엄마가 아들 도준(원빈)한테 너는 나야.” 하듯이 연기는 나입니다숨 쉬는 것처럼. / 42p

 

 

내가 죽기 살기로 하면 그 뒤는 신이 책임져 주시리라 믿었습니다관객이 어떻게 봐 줄지는 모르지만이것이 내 마지막 작품이라는 마음으로 매달렸습니다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이 작품을 하면서 나 자신을 진실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120p

 

 

 




 

 

 

 

  ‘누구나 날개를 갖기를 희망합니다날개는 누가 달아 주지 않습니다내 살을 뚫고 나올 뿐입니다내 어깨에서 얼마나 아프게 나왔겠는가그 날개등가교환과 같은 것입니다날개깃이 살을 뚫을 때 얼마나 아프겠는가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공이 되고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뚫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20년 전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던 그 귀한 말씀처럼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뚫고 나와야 한다는 책 속의 말씀이 내내 기억에 남을 듯하다인생이라는 미끄럼틀 꼭대기 위에 서있을 때 우리는 내려갈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할 게 아니라 그저 타고 내려가야 한다는 것자신을 끊임없이 밀어 붙임으로써 내 온 힘을 다해 살 것단순히 자신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는 글이 아니라 오늘도 고단한 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과 위로용기를 전하는 큰 어른의 따뜻한 메시지에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뭉클했다순수하다 못해 너무나 솔직하고자신의 부끄러움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인정할 줄 아는 이 아름다운 어른을 배우로만 기억했더라면 참 아쉬울 뻔했다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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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 이동의 위기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6
전현우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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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지배하는 도시의 현주소!

이동에의 열망과 그로 인해 야기된 기후위기 시대를 향한 엄중한 경고!

 

 

 

 

  아주 고약한 우화 하나를 꺼내볼까 한다길과 도시를 만들기 위해 대지를 변형하고이렇게 변형된 대지를 활용해 부를 쌓은 사람들의 이야기다그들이 밀고세우고부서뜨리고높아 쌓아올리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더 빨리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그렇게 더 높은 도시와 더 빠른 길을 향한 사람들의 갈망이 극에 달했던 어느 날그들을 보호하던 고치가 무너져 내리고 이제껏 내밀쳐 있던 자연은 그제야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사람들을 몰아내기로 합심했다가지고 있던 자원을 무한히 확장하는 데 써버린 파멸적 후과로 사람도물건도에너지의 흐름도 멈춘 도시는 존재의 이유를 잃고 마멸되어 사라졌다이것은 기후위기 시대 속에서 소멸되어간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다.

 

 

 

이동의 위기로부터 납치된 도시 구하기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는 기후위기의 시대 속에서 도시와 인간의 삶을 사유하기 위한 시도로 쓰인 책이다그 중심에 이동’ 즉 교통이 있다교통철학 연구자인 저자는 어째서 인간은 끊임없이 이동에의 욕구를 실현하려 하는지이를 구현하기 위해 사회는 어떠한 시스템을 마련했는지그로 인해 야기된 기후위기의 문제점과 극복방안을 모색해본다도시계획의 역사와 맞닿아 있는 한국 현대사인간의 이동 욕구를 반영한 서양철학자동차 지배 시대의 도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각종 통계와 보고서에 이르기까지이동의 위기로부터 납치된 도시를 구하기 위한 종합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아주 특별한 저작이다.

 

 

 

나는 이 책에서 자동차가 우리 삶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자동차 지배라고 이름한다.

자동차 지배가 관철되고 있는 도시에서

우리는 납치된 처지다. / 18p

 

 

 

  우리가 이동하거나 멈추기 위해서는 여러 차원에 있는 존재자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저자는 이 존재자들을 크게 세 차원으로 분류하며 이들이 일정한 체계를 이루어 교통하는 과정 속에 우리의 교통도 존재한다고 설명한다첫 번째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이동성이다각 개인은 자신의 목적에 알맞은 수단과 경로를 구성하고 이동을 수행한다이는 각각 이동할 수 있는 범위이동에 동원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이나 지불 능력 등의 자원이동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에 대응한다.

 

 

 

  두 번째는 물리적 차원에서 물질과 에너지 흐름이다인간은 근육을 넘는 대규모의 동력을 통해 교통 체계의 변화를 가져왔다수로를 만들어 고대 제국을 성립했고범선을 통해 대양을 넘는 항로를 개척했다철도는 증기기관의 동력에서 시작되었고자동차는 내연기관의 확산과 함께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다이에 사용되는 대규모의 금속인 철알루미늄구리 등은 교통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문명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세 번째는 사회적 차원에서 마련한 이동 시스템 구성과 사용 권리 보장이다이동은 개인의 과업을 넘어서 사회적 과업과 다름없게 되었다과거 보다 더 효과적인 이동 수단과 경로를 개발하고 제시하는 사회적 차원의 도움이 없다면적극적인 이동에의 목표를 실현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이처럼 우리가 계획하는 모든 이동은 세 차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현실에 구현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이동에의 열망과 교통 개발의 결과는 사람들의 몸과 생각이 뻗어갈 가능성의 공간을 넓혔지만앞선 200년 동안 팽창한 이동은 인류를 역설적인 상황 속에 데려다 놓았다자동차 지배 시스템지구적 항공망이 번영하는 사이 기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도리어 도시를 무너뜨릴 조짐을 보인다더 많은 교류를 위해 이동을 활성화하면 더 많은 탄소 배출이 유발될 것이고길은 결국 무너질 것이다이동의 힘을 확대하는 것이 곧 인간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며 교통수단을 무한히 확장한 결과우리는 2100년의 문명을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때문에 전 세계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고다른 분야에서는 탄소 배출량 감축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저자는 교통만큼은 사실상 요지부동이라 지적한다기후 대응 문제에서 실질적으로 주도권을 가진 유럽조차 에너지 변환산업건물 등 다른 모든 분야에서 탄소 배출량을 상당량 감축해 냈음에도 교통은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1가구 2자동차 시대대규모 주차장을 요구하는 건조 환경더 큰 차를 선호하는 현상은 탄소 절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조차도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신도시 개발의 역사적 변천의 결과 형성된 혼종을 나는 신도시의 도시 조직이라고 부르고 싶다이는 대규모 주차장을 확보한 아파트 단지 그리고 신도시를 둘러싼 고속도로망을 두 기반으로 하는 자동차 지배의 세포라고 규정할 수 있다. ‘재개발’ 과정지속적인 시가지 내부 도시고속도로와 간선도로 확장지하 고속도로의 개통을 통해 기존 시가지 속에도 이 조직이 유입되면서자동차는 시가지를 녹여 자신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변형하고 있는 중이다. / 98p

 

 

경부고속도로·고속도로망과 신도시의 도시 조직이 진행한 자동차의 도시 지배는 SUV를 필두로 하는 변화에 의해 한 단계 더 심화되었다. 2000~2010년대 SUV 시대의 개막과 동시에 세컨드 카즉 한 가구에서 용도에 따라 두 대 이상의 차량을 구입하여 활용하는 경우도 늘었다이에 따라 정부는 도로만이 아니라 추가 주차장까지 공급해야 하는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신도시 주변의 교통축을 따라 생긴 난개발’ 지역고속도로와 주차장에 의존하는 대규모 몰 같은 혼종들 또한 나타났다. / 101p

 

 

 

  공간은 더욱 귀해지는데 차량과 건조 환경은 자동차에 더 많은 공간을 할당해 달라는 요구는 여전히 높은 지금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동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까저자는 이 역시 도시의 삶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오늘의 교통은 도시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이에 우리는 먼저사람들이 이동을 선택하는 이유를 살펴보아야 한다그리고 그 가운데 어떤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어떤 부분은 애써 극복해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개인에게 참조할 수 있는 숫자와 계산방법을 제안하여 개인이 탄소 배출량을 점검할 수 있게 하고전 사회의 탄소 지출을 줄이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더불어 사회는 탄소 흡수(수입)를 늘리는 방법을 개발하고이 방법과 정합하는 선택을 개인에게 장려해야 한다또한 공공교통이 저소득층을 위한 분배에만 쓰이는 열등한 수단에 머물지 않도록 만들면서, ‘걷기를 장려하는 도시를 만드는 수많은 정책도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걷기로 돌아오자시민들이 도시를 이루는 자발적 질서를 창출하는 기반이자탄소 배출은 물론 토지 소비량에너지 소비량 또한 매우 적은 수단인간이 지금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종인 이상 결국 걷기가 이동의 기본일 수밖에 없다도시를 이루고 살기 위해서는 자동차에만 의존할 수 없고 결국 걷기를 장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그리고 이렇게 걷기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은 비로 미흡하거나 왜곡된 형태일지라도 우리의 도시 속에 살아 있는 아이디어다. / 171p

 

 

현실의 교통수단에서 반드시 필요한 균형감은 이것이다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없다면그것은 위험한 상황이다이 위험을 0으로 만들 수는 없더라도적어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멈춤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보다 우선이다그렇게 하지 않으면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는 반드시 찾아온다브레이크 먼저이동의 위기를 만드는 데 기여한 교통 기술을 계속해서 일종의 모형으로 활용하려 한다면속도감에 취할 것이 아니라 이 균형감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 / 231p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여러 조치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각자의 삶과 이유 속에서기후위기와 이동의 위기를 곱씹을 시간과 정보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교통개발로 야기된 이동의 위기납치된 도시의 현실을 이해하고 자신의 맥락 속에서 정보를 적용하여 최선의 방법을 찾는 작업은 결국 개인이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이다기후위기에 관한 경고를 자각한다고 해서 그간 습관처럼 해왔던 일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이러한 글을 부단히 읽고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 연속된 경험들은 곧삶의 방향성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기후 위기의 격변 사태를 불러일으킬 마지막 탄소 1kg이 바로 나의 배출일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말자나의 편의를 앞세워 인류의 미래에 눈감지 말기를 되새기고또 되새기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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