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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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함이 언어의 무게를 배반하는 순간유머가 발생한다!

그래서고급 한국어는 언제 내주실 건데요

 

 

 

 

  얼마 전 김경일 인지심리학 교수의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다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복합감정문화라는 특수성을 지닌 이들이라 진단한다일례로 한 외국인 교수가 그에게 섭섭하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고 한다사전에 따르면 이를 sorry 혹은 disappointed로 정의하는데사실 이건 애석하다고 표현하기도 마땅치 않고실망스럽다고 표현하기에는 어쩐지 과하며 친밀한 관계 속에서 상대가 나의 기대에 어긋난 행동을 해서 못내 아쉽고 서운한…… 그러니까 한국인인 우리로서도 이 미묘한 뜻까지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말이다외국인 교수는 결국 난해한 표정으로 그렇게 돌아갔고이후 시간이 흘러 다시 김경일 교수를 만났을 땐 이번에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또 한번 물었다고 한다. “섭섭하다까진 어떻게든 이해하겠는데그럼 이건 뭐야시원섭섭하다?” 이거 참.

 

 

 

  그러고 보니 중급 한국어』 속에서 글쓰기 강의를 맡은 지혁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생명과 인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한글 단어 을 보면 흥미로운 자음들이 보입니다인데요미국에서 한국어 수업 시간에 이 단어를 처음 알려 주었을 때 학생들이 보였던 반응이 생겨납니다간단한 단어에 뭐가 이렇게 많이 들어 있냐는 거였죠.” 우리가 이렇게나 복잡하고 예민하고 복합적인 정보를 지닌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었다니그러니 이 이 고단할 수밖에섭섭하다 못해 시원섭섭하기까지 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이 땅덩어리에서 말이다그래서 또 다시 감탄하게 되는 것은그 수많은 값을 지닌 언어를 찾고 고르고 골라 지우고 복원하기를 반복하며 오랜 부침 끝에 한 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들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한 인간들인가 하는 점이다돈 텔벗 쇼좋은 글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음으로써 말하지 않고 보여줘야 하는 것이기에좋은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그 끝없는 분투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제가 너무 복잡하게 말했나요이 책당신의 글이 참 좋다고 말하려고 하다 보니 길어졌네요.

 

 

 

중요한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작가즉 현재의 조이스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일 거예요어린 소년을 화자로 선택해서 조이스가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은 단순한 기억의 나열이 아닙니다사실 관계의 확인도 아니죠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통찰깨달음더 나아가서는 내 과거에 대한 해석과 논평일 겁니다커넥팅 더 닷츠인생이란 점을 선으로 잇는 과정이라고 하잖아요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그런 겁니다점과 점을 잇는 선선을 그리는 것그 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내는 것.

…… 여러분의 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 62p

 

 

 

  『중급 한국어는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시간강사이자 소설 작가인 문지혁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소설은 지혁이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의 향상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를 해독하고그에 따라 자신의 글을 써봄으로써 한 권의 책을 완성해가는 수업의 커리큘럼에 따라 진행된다강의의 첫 번째 시간에서는어떤 글이든 우리가 쓰는 글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이라는 점에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탐독해보기로 한다이는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이 동명인 것처럼소설 중급 한국어가 본질적으로 작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독자에게 일러주는 신호가 된다실제 글쓰기의 과정과 기술’, ‘유년’, ‘사랑’, ‘대화’, ‘일상’ 등에 이르기까지 글쓰기 강의 속 커리큘럼들이 지혁의 삶 곳곳에서 긴밀하게 연결되는데이는 마치 글쓰기의 실전편 같은 인상을 준다.

 

 

 

소설이라는 실험실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소설의 인물들은 옳고 바르고 정의로운 인간이 아니라실패하고 어긋나고 부서진 인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애초에 소설이란 윤리로 비윤리를 심판하는 재판정이 아니라비윤리를 통해 윤리를 비춰 보는 거울이자 그 둘이 싸우고 경쟁하는 경기장이 아닐까요? / 93p

 

 

이건 카프카 생전에 발표되었던 변신의 표지입니다이 작품이 출간될 때 카프카는 출판사에 한 가지 부탁을 했다고 해요절대로 벌레의 모습이 보여서는 안 된다고여기서도 그렇죠남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있고(이미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죠.) 반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것은 어둠뿐입니다아무것도 없어요아니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보이는 것은 무섭지 않습니다정말로 무서운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죠. (진정한 공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텅 빈 공간에서 비롯됩니다.

한 가지 빼먹었네요.

백색의 종이……. / 132p

 

 

 




 

 

 

 

  지혁은 학생들에게 글쓰기란 일종의 여행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갔다가 반원을 그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마치 여행을 하듯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했다가처음 떠났던 원래의 자리로 귀환하는 구조다하지만 정확하게 떠났던 그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도착 지점에서 미세한 변화가 일어난다오랫동안 여행을 다녀온 우리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렇다면 돌아온 A는 무엇이 될까. B? C? 아니면 그대로 A? 지혁은 만약 A가 제대로 된 여행을 다녀왔다면 아마 A는 A가 있을 거라고 말한다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겪게 되는 것글쓰기는 바로 이러한 과정이면서 동시에 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렇듯 의심한다어째서 내 삶은 A는커녕 A-밖에 될 수 없냐고혹은 지혁이 스스로를 애매한 사람이라 정의한 것처럼, A와 A′ 그리고 A-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애매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거냐고고전적인 소설 창작론의 관념으로부터 배반된 삶그 안에 깃든 아이러니쓰기 전의 나와 쓴 다음의 나는 결코 같지 않다는데정말 그럴까 하는 자문그렇게 관념은 관념으로만 남아 기망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 무렵소설은 뜻밖에도 지혁의 딸 은채의 천진난만함을 통해 그곳으로부터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정형화된 언어 너머에 존재했던 ‘~’지금은 오래되고 익숙한 자장가 섬집 아기를 향한 애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3개월간 주구장창 들어야 할지 모를 BTS의 다이너마이트」 에나 마음 단단히 먹을 때라고알고 보면 관념의 밖’ 그 어디에서 진짜 나의 이야기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소설은 가장 미숙하지만 순수한 은채를 통해 보여준다.

 

 

 

쓰기 전의 나와 쓴 다음의 나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말했잖아요?

우리는 A에서 A가 되었으니까요. / 47p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글쓰기도 결국은 반복입니다반복에서 중요한 것은 되풀이 그 자체예요때로 우리는 희망에 도취해 반복을 벗어나거나절망에 빠져 되풀이를 그만두곤 합니다하지만 인생이 언제 그렇던가요오늘이 좋았다고 해서 내일이 찾아오지 않거나어제가 최악이었다고 해서 오늘 역시 그대로 끝나 버리지는 않죠어떤 날을 보냈든 내일은 또 찾아오고기어코 태양은 다시 떠오릅니다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요그러니 희망을 붙들지 말고 절망에 물들지 마세요그냥 하는 겁니다우리가 그냥 살듯이. / 166p

 

 

 




 

 

 

 

  천진난만함이 언어의 무게를 배반하는 순간그때 풉 하고 터져 나오는 유머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소설이다자가 격리로 인해 줌 강의를 하던 도중 은채가 우는 바람에 잠시 강의가 중단되자갑자기 모니터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스무 개의 얼굴과그들의 다정한 목소리와동아줄처럼 위로 줄지어 올라가던 작고 귀여운 이모티콘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광경을 독자에게 선물하는 이 작가의 글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그래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그래서고급 한국어는 언제 내주실 건데요? (고급이라니어쩐지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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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가 왔습니다
조피 크라머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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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가 닿지 못할 죽은 연인을 향한 메시지가 한 낯선 남자에게 전해지면서 새롭게 시작되는 러브 스토리!

읽는 내내 가슴이 설레고 한 번 손에 쥐면 내려놓을 수 없는 소설!

 

 

 

 

클라라_

 

잘 잤어사샤크로와상 먹을래?”

클라라는 눈도 채 뜨지 않은 상태로 갓 내린 커피 향을 만족스럽게 음미한다짧게 정돈된 까칠까칠한 벤의 수염이 자신의 쇄골에 닿으면서 깨어나는 아침을 무척이나 좋아했음을 떠올린다하지만 눈을 뜨고 나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그리고 곧잔인한 현실로 돌아온다다시는 클라라의 곁에 나타나지 않을벤이 없는 세계로벤이 가족들 앞에서 클라라에게 프러포즈를 했고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두 사람을 힘껏 끌어안으며 축복해준 게 불과 몇 주 전이었는데… 그런데 추락사로 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니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스벤_

 

스벤은 늘 자신이 운이 좋은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3년 전부터 일생이 자꾸만 삐걱대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경제부 기자라는 커리어에서 있어서만큼은 주변으로부터 많은 존경과 칭찬을 받고 있지만 그 외 다른 일들에서는 좀처럼 활기를 느낄 수 없었다피오나와 헤어진 일 때문에 무기력에 빠진 건가그는 스스로 문제를 제어하고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고심지어 피오나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다고 최면을 걸 듯 되뇌기도 했지만어떻게 하면 삶에 변화와 활기를 일으킬 수 있을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린다이름 모를 낯선 번호다.

 

 

 

자기야도대체 어디 있어잘 지내는 거야?

당신은 곁에 없지만 난 오늘 처음으로 다시 웃었어.

영원히 사랑해당신의 사샤가.

 

 

 



 

 

 

 

  소설 메시지가 왔습니다는 사랑하는 연인을 추락사로 잃고 깊은 상실감과 죄책감 속에서 헤매던 여주인공이 죽은 연인의 전화번호로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을 보내기로 하는 데서 출발한다클라라는 상담 치료와 함께 놓고 있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일상을 회복해나가지만불쑥불쑥 사무치도록 벤이 그리울 때면 휴대전화를 꺼내 하릴 없이 메시지를 보낸다그러다 이제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처럼 되어버려서벤에게 메시지를 보내 연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한편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스벤은 새로 바꾼 휴대전화로 매일 같이 의문의 메시지가 도착하기 시작한 날부터 마음이 뒤숭숭해진다처음에는 지인 중 누군가가 스벤을 놀리려고 보낸 것이겠거니 했지만점차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의 우울감과 마음을 다한 애정에 이입된다대체 사샤라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그녀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궁금해진 스벤은 이제 이 수수께끼 같은 문자가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문자를 읽고 나자 스벤은 그것이 자신에게 온 문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아무래도 가망 없는 로맨티스트가 메시지를 잘못 보낸 것 같았다그럼에도 내용에는 공감했다사랑에 빠진 사람은 바보가 된다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은 무뎌진다. / 28p

 

 

연인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던 한 젊은이의 인생이 비극적인 사고 한 번으로 망가져버린 사건보다 더 처참한 일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상을 나누던 단 한 명의 연인에 대해 사실상 거의 아는 게 없었다는 느낌보다 비참한 기분이벤은 얼마나 오랜 시간 불안을 겪었던 걸까? / 33p

 

 

 



 

 

 

 

  『메시지가 왔습니다는 독일 아마존의 베스트셀러는 물론, 2016년 그해의 독일 영화 흥행 순위 9위를 기록한 바 있는 작품이다여기에 소니 픽처스가 리메이크해 2023년 전 세계에 개봉될 예정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결코 가 닿지 못할 죽은 연인을 향한 메시지가 한 낯선 남자에게 전해지면서 새롭게 시작되는 러브 스토리이 기적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설레는 봄처럼 다가온다주요 스토리는 이렇듯 사랑을 잃은 여자와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가 운명처럼 이끌리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곁에 있는 사람들의 변함없는 애정과 믿음으로부터 상처를 회복하고 한 발 한 발 새로운 꿈을 성취함으로써 삶의 희망을 얻어가는 성장 이야기가 또 다른 감동을 전한다.

 

 

 

중요한 건 그런 신호가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네가 그것이 신호라는 걸

알아보느냐 그리고 그 신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아니겠니?” / 163p

 

 

 

  읽는 내내 가슴이 설레고 한 번 손에 쥐면 내려놓을 수 없는 페이지 터너의 매력까지 갖춘 소설이다덕분에 이 작품이 어떻게 영상화될지 벌써부터 무척 기대가 된다이 책을 읽고 오늘은 클라라가 그랬던 것처럼 가 닿기 힘들 것 같은 마음을 메시지에 담아 전해보시길이 따뜻한 봄날에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누고 있는 기적을 마음껏 품에 안아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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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 타코야키 - 김청귤 연작소설집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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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읽는 이야기!

어떤 절망의 순간에서도 잃지 말아야 하는 마음들로부터 다시 세우는 세계이것이 김청귤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멸망 이후의 미래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조금씩 녹아내리던 빙하가 어느 순간 빠르게 무너지면서 바다로 흘러들었다해수면이 상승하자 육지에 살던 생명체들은 발을 디디고 살 곳을 잃었고빙하 안에 있던 바이러스가 바다를 떠다니다 육지로 넘어와 생존을 더욱 위협했다하지만 그도 잠시대부분의 땅이 이내 바다에 잠겼다해일에 풍화되어 남은 땅들마저 깎여 나갔고 육지는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물에 잠긴 지구인류에게 닥친 재앙나는 언젠가는 마주할 것 같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일찍이 보고 온 것 같은 느낌이다.

 

 

 

환상은 현실보다 진실을 보는 인식 방법이다.

판타지의 비-현실은 초-현실이고리얼리즘보다 폭넓은 모습으로

펼쳐지는 현실이다.

우리는 판타지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해설 미래를 색칠하는 파국과 환상 중에서 253p

 

 

 

  『해저도시 타코야키는 기후위기와 해수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육지가 바다로 뒤덮이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집이다작가 김청귤은 인류에게 닥친 재앙 그 이후의 시간즉 생존을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간 인류의 이야기를 여섯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순차적으로 보여준다바다가 육지를 잠식하기 시작한 뒤 맞은 전염병과 대혼란의 시기에서부터 인류가 해저도시를 건설하고바뀐 환경에 따라 좀 더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유전자를 편집하면서 마침내 물속의 신인류만이 살아남아 바다로 환원되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그려나간다.

 

 

 

  첫 번째 소설인 불가사리는 육지가 바다에 잠기기 시작하자 인류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편집해 바뀐 환경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신인류를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그러던 와중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난다사람들이 바다에 잠겨 살아갈 곳을 잃었을 때보다도 더 빠르게 죽어가자연구원과 동네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신종 바이러스 연구에 활용할 샘플을 채취하는 데 혹등고래의 유전자를 지닌 고야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그녀를 몰아붙인다그렇게 고야의 희생으로 재생력이 뛰어난 불가사리 유전자가 담긴 항체를 얻으면서 일단 사람들은 신종 바이러스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지만심각한 피부 발진이라는 부작용과 함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점점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다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려는 건지다시 바다로 회귀하고픈 불가사리의 본능인지사람들이 홀린 듯 바다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이다불가사리의 재생력을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인류의 과욕이미 인류는 멸망과 재앙을 맛보았으면서도 여전히 이기심은 끝이 없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또 한번 그들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 선택한 결과의 값들을 직시하게 한다.

 

 

 

이록은 그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려 현관을 향해 천천 걸어갔다이록은 개구리의 유전자와 결합해 태어났다그래서 어릴 때는 손과 발에 물갈퀴가 있었고 피부도 녹색이었다생물의 특성이 기질이나 기능으로 반영된 게 아니라 신체에 발현된 건 드문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이록은 아이들 사이에서 괴물이나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미지의 바이러스 때문에 병에 걸려 이상하게 태어났다며 따돌림을 당했다그런 이록의 특성에 아랑곳없이 곁에 있어준 게 나였고. / 불가사리」 중에서 15p

 

 

단일 동물 개체와 기존 인간여러 동물 개체와 인간개체와 개체의 유전자 편집 후 태어난 변이 개체와 인간손바닥만 한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지금도 인간은 인간 외의 모든 존재를 생존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다. / 불가사리」 중에서 16p

 

 

내 생각에 답은 간단했다유전자 편집을 통해 생존 가능성이 커지기는 했으나 그 부작용으로 제어할 수 없는 세포의 변이가 일어난 것이다우리는 바다가 아니라 스스로를살고자 부렸던 욕심을 원망해야 했다땅이 점점 줄어든 건 인간 탓이 맞았지만우리가 태어났을 때 모든 게 이미 늦은 상태였던 것도 사실이니 억울한 면도 있긴 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라고 정당화하며 신이 된 것처럼 동물의 유전자를 고르고 잘라내고 이어 붙이고 버리는 건 인간들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었다. / 불가사리」 중에서 22p

 

 

 




 

 

 

 

  김청귤의 단편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인류가 생존의 한 방식으로 유전자를 편집해 신인류인 수인(水人)를 만들어냈다는 설정이다불가사리」 속에는 혹등고래 세포와 결합한 고야와 문어 세포와 결합한 해수 사이에서 태어난 지화가 등장한다바다와 함께 춤을과 파라다이스에서는 돌고래와 같은 바다 생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인(水人)해저도시 배달부에서는 물속에서 마음껏 숨 쉬고 헤엄칠 수 있어 바다의 해저도시인 돔과 돔을 오가며 식량이나 물자를 배달하는 배달부들이 등장한다해저도시 타코야키에서는 해저도시의 가장 큰 외벽인 돔을 청소하는 청소부가 주인공이다이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바다 생활에 적응하고 수중 호흡까지 가능하며바다 생태계와 어우러진 삶을 살아간다.

 

 

 

  신인류는 바다에서 생존에 유리한 형태로 태어났지만 애석하게도 별종으로 취급되거나 오히려 인간에게 이용당한다개구리 유전자와 결합해 태어난 이록은 괴물이나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따돌림을 당하고(불가사리), 돔에 입성하지 못해 작은 배에 의지해 삶을 연명하던 엄마는 파랑이로 하여금 바닷속에서 값비싼 물건을 찾아내 크루즈의 남은 자리에라도 들어가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이다(파라다이스). 한편에서는 바다 상어와 고래를 잡아먹기 위해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파랑이의 생포해 그녀의 목소리를 이용한다(파라다이스). 돔 내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고작 3년 정도의 수명에 불과한 돔 벽 청소부들을 만들어 공장의 로봇처럼 이용하다 폐기해버린다(해저도시 다코야키). 멸망과 재앙으로 몰락하는 와중에도 인간은 여전히 인간 외의 모든 존재를 생존의 도구로 삼으면서설령 치졸하며 이기적인 방식이라 할지라고 생존에의 열망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우리가 특별한 거야?”

특별…… 그래특별해생긴 건 비슷하지만우리만 물속에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그런데 특별하다는 건 인간의 기준에서는 보통이 아니라는 거고다르다는 뜻이기도 해그들은 아직 우리의 존재를 몰라물 밖에 사는 배 인간은 욕심 많고 이기적이라고 우리처럼 특별한 존재를 보면 괴롭힐지도 몰라게다가 파랑이는 돌고래나 상어 친구들이랑 대화할 수 있지배 인간들이 알면 신기해서 잡아가려 할 수도 있어그러니까 배를 탄 인간을 보면 멀리 피해야 해알았지?” / 바다와 함께 춤을」 중에서 90p

 

 

스노볼을 처음 봤을 때 엄마에게 먹을 수 있는 거냐고 묻자 아니라고 했다사냥할 때 쓰는 거냐고 묻자 그것도 아니라고 했다장식품그냥 눈으로 보고 즐기는 물건이라고 했다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것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예쁜 것땅이 물에 잠기기 전에는 저렇게 예쁜 것들이 산처럼 쌓여 있어서원한다면 그 중 많은 것을 골라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영상 속의 세계를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나는 무서웠다저런 쓸모없는 것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서 모든 땅이 물에 잠긴 걸 텐데. / 해저도시 배달부」 중에서 124p

 

 

 



 

 

 

 

  그러나 김청귤은 바다와 가장 친밀한 존재들에게망해버린 세상 속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는 연약한 존재들을 통해 희망을 엿본다불가사리 유전자가 담긴 항체를 맞고 심각한 부작용을 얻은 이록을 지화는 아무런 저항 없이 끌어안는다(불가사리). 바다와 함께 춤을」 속의 는 그물에 갇힌 바다 생물들의 자유를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뒤 스스로 바다가 되려 한다인간들에게 생포된 파랑이를 구한 건 배에서 가장 작고 힘없는 연희다(파라다이스). 예비 해저 배달부 보름이를 다시 유전자 조작에 이용하려는 엄마로부터 구해낸 건 같은 수인이자 동료인 배달부 언니들이다(해저도시 배달부). 해저도시 타코야키에서 짤막한 인생동안 도구처럼 이용되는 돔 벽 청소부에게 계속해서 따뜻한 타코야키를 만들어 먹이는 루나 역시 마찬가지다그렇게 어떤 절망의 순간에서도 잃지 말아야 하는 마음들로부터 다시 세우는 세계이것이 김청귤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멸망 이후의 미래다.

 

 

 

마리아 언니는 배달부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며 필요한 것들을 배달했다메이린 언니는 다들 염치없다며 욕을 하면서도 배달부가 없으면 사는 게 힘들어질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다이 도시의 삶을 버티지 못한 배달부 몇몇은 다른 도시로 떠나기도 했지만대부분 이 도시를 고향으로 여기며 목숨을 걸고 바다를 누볐다. / 해저도시 배달부」 중에서 167p

 

 

아니그런 거 아니에요다른 사람은 몰라도문이 맛있는 음식을 따뜻할 때 먹으면 좋겠어서 그래요.”

루나의 웃는 얼굴도 다정한 말도 다 좋아서 혹시 이게 꿈이라는 건가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나는 꿈을 꿀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는데도. / 해저도시 타코야키」 중에서 203p

 

 

 

  지구 끝에 온실을 세웠던 김초엽이 있었고랑과 고고가 누볐던 사막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천선란이 있었다그리고 이제파랑이가 자유로이 유영하고 있을 바다로 문을 연 김청귤이 여기에 있다지화를파랑이를보름이를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만 있어도 우리의 미래는 조금 더 달라질 수 있다그걸 알려준 김청귤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나는 계속해서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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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3.봄호 - 77호
염건령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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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는 더 이상 마이너한 장르도마니아적인 장르도 아니다!

미스터리의 세계를 깊고 넓게 읽다!

 

 
 

 

  《계간 미스터리는 한국 유일의 미스터리 전문 계간지다이른바 정통 문학을 필두로 한 한국 문단 속에서 미스터리라는 장르 문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발굴하는 계간지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소위 하위 장르로 구분되었던 미스터리·추리 소설이 흥미 본연의 역할에 한정된 과거의 문법을 넘어서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탐구하고인간의 내밀한 본성을 추적하는 등 다양한 문학적 성취를 일구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계간 미스터리는 한국식 정통 미스터리를 탐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진다.

 

 

 

  2023년 봄호에서는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수상작 <설곡야담>을 비롯한 네 편의 단편작 외에도 미스터리의 의미를 톺아보는 여러 특집 기획들을 만날 수 있다그 중 최근 각종 범죄심리학 및 범죄수사학 등에서 가장 관심이 높은 연구 주제인 인구 구조의 변화와 범죄 발생의 상관관계를 조망한 <인구 구조는 어떻게 한 사회의 범죄를 바꾸는가>가 이목을 끈다급격하게 바뀐 인구 구조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범죄를 바꾸고 있는지 심도 있게 살펴본다특히 노인 인구의 급증과 청년 인구의 감소로 양분화한 인구 구조의 불균형 속에서 점점 지능화되고 있는 노인 대상 범죄와 학대스토킹과 가스라이팅 그리고 관계망상형 범죄로 심화되고 있는 청년 범죄의 양상을 분석해본다.

 

 

 

인구 구조의 변화와 세대 및 계층개인 간 소통의 부재공동체의 붕괴 등과 같은 범죄의 원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대안 마련에 각별한 신경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사람들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이들이 극단적으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갖지 못하는 상황을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를 위해 지역사회에서 대상에 맞는 사회적 모임과 활동을 만들고 참여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며실행을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적인 투입이 일정 부분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 <인구 구조는 어떻게 한 사회의 범죄를 바꾸는가중에서 19p

 

 

 



 

 

 

 

  공교롭게도 책 속에 수록된 네 편의 단편작들은 범죄 현장에서 인구 구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하는 이와 같은 현상을 반영한다. <마트료시카>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가장 다정한 이웃이 위험하다는 도시 범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가스라이팅데이트 폭력관계망상형 범죄의 전형을 담은 <로드킬>도 마찬가지다. <타임캡슐>은 아동학대와 치매환자와 같이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 어떤 공포보다 잔인하고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다한편 <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함께 하기를 갈망하면서도 정작 만남을 기피하는 비대면 시대 속의 얄팍한 러브스토리를 보여준다그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과 노조 혐오에 대한 민낯을 담은 장면들은 언뜻 보면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불가해한 현실이야말로 온통 미스터리 투성이 아니겠느냐는 묵직한 한 방을 던진다.

 

 

 

어우아저씨마트료시카도 몰라요러시아 인형 있잖아요겉 인형을 열면 안에 다른 인형이 들어 있고그걸 열면 안에 또 인형이 숨어 있는양파처럼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인형 말이에요바로 저 노숙자가 그렇게 정체를 감춘 살인자라고요!” / <마트료시카중에서 98p

 

 

지우는 헤어져달라고 울며 매달렸다지우를 뿌리치며 뭐가 문제냐고 소리쳤다지우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으며 이별을 구걸했다내 말만 잘 들으면 된다고 얘기했지만감정이 격해진 지우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지우는 좋은 여자지만나를 괴물로 만든다.

나는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다얼굴을 때리지 않는다지우는 학교 선생님이니까. / <로드킬중에서 113p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당선작 <설곡야담>은 본격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대담한 필치로 뚫고 나가는 기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설산을 배경으로 한 산 중턱의 산장저마다의 이유로 깊은 산속으로 모여든 사람들외부와의 통신 두절원한 관계죽은 처녀의 원념괴짜 탐정에 이르기까지미스터리의 구성 요소들을 한 자리에 다 모아 놓은 듯한 느낌이다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소년탐정 김전일>을 비롯해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이 낯익은 구조 때문에 신선함은 조금 떨어지지만정형화된 패턴 속에서도 뚝심 있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 데서 오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특히 호남 지역의 타사신 숭배 전설을 바탕으로 한국 고유의 민속 설화를 완결성 높은 미스터리로 완성해낸 것이 인상적이다한국식 본격 미스터리를 기다렸던 나로서는 반갑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그의 차기작을 기다리겠다.

 

 

 

그렇죠그렇죠그런 괴담이 없을 리가 없죠이쪽 동네는 모르겠으나 타사신 전설이 있고산이 있는 곳이라면 희한하리만치 낙사 사고가 자주 발생한답니다아아산뿐만이 아니죠아직도 일부 지방에선 노인분들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답니다얘야높은 곳에 오르면 외곽이나 바깥 언저리엔 얼씬도 하지 마라절벽에 가까이 가는 건 꿈도 꾸지 말고 옥상 난간에도 기대지 마라타사신혹은 타사시니가 네 몸을 끌어안고 같이 떨어질 게야발을 내밀어서도 안 돼발목을 붙잡히기라고 하면.” / <설곡야담중에서 28p

 

 

 




 

 

 

 

  이 외에도 미스터리 세계의 외연을 넓혀주는 다양한 특집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미스터리 작품의 구조적인 이해를 비롯해 현대 문화 콘텐츠 속에서 미스터리가 차지하는 위치를 살펴보는 과정은 미스터리에 대한 개인의 취향을 한껏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이제 미스터리는 더 이상 마이너한 장르도마니아적인 장르도 아니다픽션에서 다양한 문화를 넘어 도시 환경과 궁극적으로는 도시인 모두를 파고드는 사회적 구성물로서 미스터리의 미래는 더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오랜만에 미스터리 세계 속에 푹 빠져들었다 나온 기분이다다음 호가 벌써 기다려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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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포스터 - 가면을 쓴 부모가 가면을 쓴 아이를 만든다
리사 손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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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알지 못했던 세상의 임포스터들에게!

이거 다 내 이야기인데하고 인정하는 순간 나의 가면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가 하는 <어몽 어스>라는 게임에 임포스터라는 가상의 외계인이 등장한다일종의 마피아 게임으로크루원들 사이에서 임포스터로 지목된 이들은 크루원들을 배신하고 미션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실제 임포스터를 사전으로 검색하면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사기꾼 또는 사칭자'를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게임 속 역할처럼 가면을 쓰고 자신의 행동을 감추는 이들을 지칭한다임포스터의 저자이자 여러 강의 매체를 통해 익히 잘 알려진 리사 손 심리학 교수는 일종의 가면증후군으로 알려진 이 임포스터이즘에 대해자신은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뛰어나지 않으며 따라서 자신이 주변을 속이고 산다고 믿는 불안심리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한국 아이들이 임포스터이즘의 고통을 더 자주 경험하는 것으로 추측한다공부와 학습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여기고 있지만 실상 행복 지수는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청소년들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나 성적이 좋은 학생이 겉으로는 행복해 보일지 모르나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용기가 부족한 데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지 못한 한국 청소년들은 지금 자신도 모르게 임포스터가 되어가고 있다이에 책 임포스터에서는 부모와 아이 모두 임포스터라는 가면을 벗고 자기 내면의 거울을 통해 인지하고사유하며학습하는 법을 일러주고자 한다무엇보다 임포스터는 왜 가면을 쓰는지그 가면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해봄으로써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찾아보려 한다.

 

 

 

나는 어떤 임포스터로 살고 있는가?

 

 

○ 임포스터 체크 리스트

1. 사람들 앞에서 실제보다 훨씬 유능한 척한다.

2. 남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두렵고 평가받는 일은 피하고 싶다.

3. 스스로 뭔가를 성취해도 이보다 더 잘했어야 한다고 여긴다.

4. 지금의 성공은 내가 운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5. 내가 최선을 다한 일보다 다하지 못한 일을 더 많이 기억하는 편이다. / 표지 중에서

 

 

 

  임포스터에게 드러나는 대표적인 현상 중 첫 번째는 타인의 평가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임퍼스터는 자신의 실제 능력이 밖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더 부족하다고 느껴 끊임없이 자신을 남들과 비교한다또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들킬까 봐 타인의 평가를 피하고자 한다. “사실 나는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처럼 그렇게 유능하지 않아” “남들이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맞아나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할 뿐누군가를 가르칠 만큼 뛰어나진 않아아마도 다들 진짜 내 실력을 알고 나면 실망할 게 분명해.” 언젠가 글쓰기 지도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땄지만여전히 내 실력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기곤 했던 나도 알고 보면 임포스터였다.

 

 

 

  두 번째 현상은 자기 능력을 평가절하한다는 것이다내가 이만큼 성공한 건 다 운이 좋아서지 실력이 아니라고 과소평가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경향을 가리킨다세 번째는 완벽주의가 있다는 점이다저자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완벽주의자들은 과제 수행의 결과를 기반으로 자기가치를 결정하는 반면임포스터의 완벽주의는 타인의 평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한다타인의 평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임포스터는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이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실수는 물론 평균 수준의 수행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한다불완전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실체가 들통나는 순간이라고 믿는 데서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나 역시 일부 사람들이 네가 완벽주의자라서 그래”, 라고 할 때마다 타인에게 보여 지는 모습에서 완벽해지기를 바랄 뿐정작 과제 수행 그 자체에 초점을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게 된다.

 

 

 

못하는 척이든 완벽한 척이든 가면은 가면일 뿐이다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아이들은 타인의 기분을 어느 정도 살필 줄 알아야 하지만타인을 즐겁게 해주려고 자기를 완벽하게 가장하는 행동은 임포스터이즘을 키울 수 있다임포스터이즘의 목적은 타인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 자신의 실수를 감추고잘못이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만큼은 완벽한 자신을 보여주는 데 있다. / 60p

 

 

 




 

 

 

 

  네 번째 현상은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임포스터는 실수를 무자격과 무능의 증거로 여긴다그래서 자신의 실패를 들키게 되었을 때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두터운 가면을 쓰려고 한다하지만 임포스터는 자신의 실체 위로 가면을 덮어쓰기 때문에 타인에게 그 속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때문에 임포스터이즘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타인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어 홀로 괴로움을 겪는다혹은 자신의 실패를 누군가에게 들켜 창피를 당하느니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이는 모든 실수를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정체를 발각당하는 계기로 연결 짓기 때문에 도전을 아예 포기하거나 좋은 기회마저 잃는 결과를 낳는다실패로 인한 좌절감이나 상처를 받느니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내 모습과 너무도 닮지 않았는가.

 

 

 

자신을 무능한 가짜라고 믿는 임포스터들은 두 가지 두드러진 행동양상을 보인다바로 과도한 노력과 미루기. ‘과도한 노력은 자신이 가짜란 사실이 탄로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 데서 오는 근면함이다그 밑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이와 반대로 미루기는 시험공부나 면접준비 등 해야 할 일을 앞두고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다미루기는 일종의 자기불구화 현상으로자기가 뻔히 실패할 것 같은 일을 앞두고 일을 미룸으로써 미리 실패의 이유를 만들어놓는 심리다실패했을 때 그 원인을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돌리기 위해서 일부러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 28p

 

 

임포스터들은 속으로는 자기 능력을 평가절하하면서도 타고난 능력자라는 가면 때문에 곧바로 포기하지도 못한다뭔가를 배워나가다 보면 반드시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고그 과정에서 실수도 하기 마련이다그런데 임포스터들은 노력하고 실수하는 모습을 숨기면서 처음부터 완성형이었던 사람처럼 자기를 내보이려고 애쓰다가 운도 과도한 노력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운도 자기 힘으로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에 우선은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기 시작한다과도한 노력은 성공 확률을 높이고성공할 때마다 사람들 눈엔 원래부터 잘했던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에 임포스터는 끝내 가면을 벗을 수가 없다결국 이들은 양자선태의 기로에 서게 된다재빨리 포기해버리거나포기를 못할 경우 자신의 민낯을 들킬까 봐 계속 불안해하는 것이다. / 107p

 

 

실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실수 후는 피드백이다피드백을 들어야 내 발음을 개선할 수 있고관련된 새 단어를 배울 때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임포스터들은 피드백을 피하려고 한다완벽하지 않은 자기 모습을 들키는 것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 111p

 

 

 

  마지막 다섯 번째 현상은 성공을 두려워한다는 점이다다음에는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나를 칭찬해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임포스터는 정작 성공 앞에서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능력과 기량에 대한 칭찬을 받으면 행복하기보다 임포스터이즘을 한층 더 강화시키며 보다 두꺼운 가면을 쓰게 되고실수 없이 더 완벽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다반면어떤 지식을 습득한 후에 자신의 이전 지식을 과장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부족한 지식을 깎아내리는 사후과잉확신편향’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나는 이미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우리 아이는 처음부터 공부를 잘했어’ 와 같은 착각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과신하게 만들고 새로운 정보의 수용을 방해한다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성으로 인해 새로운 학습의 기회를 놓칠 수 있는 것이다서툴고 미숙한 모습을 감추려는 임포스터이즘의 사고회로가 성장의 기회를 앗아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 사후과잉확신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메타인지 실천법

1. 천천히 배워도 괜찮다고 알려준다.

2. 모르는 것은 채우고 아는 것은 나누도록 한다.

3. 반대로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 152p

 

 

 

  한 때 나를 괴롭혔던 두 가지는 착한 척 하지 마’, ‘알아서 잘 하는 아이라는 말이었다착하지 않은 데 착한 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친구의 말에 맞서기 위해 나는 오히려 더 착실하게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다무조건 순종하고무조건 상대에 맞추고무조건 예스라고 말하면 그게 착한 것이라 생각했다온순하고 얌전한 모습을 사람들이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나의 의견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소극적이 되었다반면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신 건 분명 칭찬의 의미였겠지만이 때문에 나는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과 유독 실패를 견디기 힘든 아이로 성장했다그러던 어느 날나는 내 아이에게도 무심결에 이와 똑같은 말을 내뱉고 말았다. “넌 알아서 잘 하니까엄만 걱정 안 해.” 내 아이는 이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으면서도엄마인 내가 스스로 아이에게 완벽해 보이는 가면을 씌워주고 있었으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생각의 길을 걸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생각의 길을 걸어갈 때 누군가가 계속 재촉하거나 막아서게 되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가면을 쓰게 된다. ‘생각의 길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이 결코 잘못이 아닌데도 그런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기거나, ‘완벽한 답을 모르는 사람은 실패자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반대로 생각의 길을 마음껏 걸어가게 해주면 아이는 자기 생각을 신뢰하게 되고, ‘완벽해 보이는 가면으로 자신을 감출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 45p

 

 

시험점수만 신경쓰는 부모는 아이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떠안긴다아이가 100점을 받아 오더라도 시험은 어땠어헷갈렸던 문제도 있었어어떤 문제가 제일 어려웠니?” 하고 재차 물어주는 것이 좋다또 시험 한번에 인생 전체가 달린 것처럼 심리적으로 무거워질 필요가 없다고 격려해주는 일도 중요하다. / 69p

 

 

학습과정에서 실수하고 좌절했던 경험들은 아이의 성장에 꼭 필요한 자양분이다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삶을 꾸려나가며배우는 속도도 저마다 다르다남들과 같은 속도로 혹은 남들보다 더 빠르게 배워야 할 필요도 없거니와 남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의무도 없다. / 121p

 

 

 




 

 

 

 

  결국 가면을 쓴 부모가 가면을 쓰는 아이를 만든다내 아이에게 나의 가면을 물려줄 순 없지 않은가이에 책에서는 임포스터 아이로 키우지 않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우리 아이가 특정한 가면에 자신을 한정하거나 갇히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비롯해학습결과에 매몰되지 않고 실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방법을 차근차근 일러준다부모든 아이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가면을 완전히 폐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가면을 써야 하는 순간에도 그 가면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타인을 위한 것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통해 실수를 만회하는 법과 도움을 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지금 내가 임포스터로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면이 책을 통해 나의 가면을 인정하고 벗을 수 있는 해법을 찾아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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