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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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문장은 하나하나 무게감이 남다르다!

밀란 쿤데라,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증명되었을 테지만 그의 존재감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픈 책!






  소련의 침공으로 자유를 상실한 체코의 시대 상황과 그로부터 폭발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미루어볼 때, 밀란 쿤데라는 그 누구보다 체코의 실상을 예민하게 감지한 것이 틀림없다. 격동의 역사에 휘말린 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웃음과 망각의 책』이, 역사의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네 남녀의 사랑을 그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그러했듯이. 『89개의 말 ·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의 서두에서 자신이 번역에 그토록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물리적·언어적 망명 상태에 놓인 현실에서 찾았다. 체코어로 쓴 작품들이 조국에서 판매 금지되자 프랑스로 건너갔지만, 체코어가 가진 어감을 프랑스어 번역으로는 오롯이 전달할 수 없어 괴로웠던 순간들이 그를 더 큰 상실감에 빠지게 하지 않았을까.





어느 날, 피에르 노라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모든 번역본을 검토할 때,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깊이 숙고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렇다면 자네의 개인 사전을 써보면 어떻겠나? 자네가 중요시하는 말들, 자네를 골치 아프게 하는 말들, 자네가 애착하는 말들을 모은……?” 나는 그의 이 생각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 사전이 만들어졌다. / 18p




  이제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써야만 했던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 역사학자인 피에르 노라의 제안에 따라,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한 단어들을 엮어 작은 사전을 만들기로 한다. 「89개의 말」은 그가 평소 매력적으로 느끼고 애착하는 말들, 쓰기 꺼려하는 말들, 표현의 맛을 살리는 말들 등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단어들이 현실과 작품 세계를 어떻게 투영하고 배격하고 성찰할 수 있게 하는지를 고찰한다.












  그 중 유독 ‘미경험’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처음 제목이 실은 ‘미경험의 행성’이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단 한 번만 태어나며, 결코 이전 삶의 경험을 갖고 다른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없는 미경험자들이다. 젊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결혼하며,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노인들은 자신의 노년을 모르는 천진한 아이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지구는 미경험의 행성이란 말이 어쩜 훅, 와 닿는다. 물론 제목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하길 잘한 것 같지만….





  그가 마법의 오브제로 사용했다던 단어, ‘옷걸이’. 겨우 옷걸이라는 단어에 이토록 의미를 두다니, 처음엔 의아하다가도 몇 줄의 묘사에 이내 마음이 덜컥 낚이고야 만다. “이 옷걸이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어딘가 사람 비슷한 모양을 한 그 옷걸이는 꼭 고아 같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철제 몸통에 우스꽝스럽게 팔을 위로 치켜들고 있는 그 모습은 어쩐지 내 마음에 짙은 불안을 몰고 왔다.” 그리고 좀 더 뒤에 가서는, “……투항하는 병사처럼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있는 그 앙상한 철제 옷걸이.” 그는 『농담』의 표지에, 이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구현하는 것만 같은 이 오브제의 이미지를 몹시도 넣고 싶었다고 전한다. 아, 탁월하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지.





예술에서의 아름다움이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것이 발하는 돌연한 빛이다. 위대한 소설들이 발하는 그 빛은 세월이 흘러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인간은 늘 인간의 실존을 망각하기에, 소설가들이 이룬 그 발견들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부단히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 22p



모든 소설가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마법의 오브제들’이 있다.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는 모자 하나가 무덤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관 위에 놓인다. “마치 죽은 사람이, 존엄에 대한 부질없는 욕망으로, 엄숙한 순간에 맨머리로 있고 싶지 않았던 듯이” 말이다. / 25p



유럽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미지는 자꾸만 과거 속으로 멀어져 간다. 유럽인이란 곧 유럽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다. / 35p



내 책’, 그것은 자기 희열의 음성적 승강기다. / 54p











  다음에 수록된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는 르네상스 말기, 유럽의 미학과 환상 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라하가 전체주의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과 고국을 향한 향수를 담은 산문이다. 밀란 쿤데라는 소련 문명이 ‘카프카가 말한 소송들, 하셰크가 말한 어리석음, 야나체크가 말한 감옥들’을 가져오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들을 예견했던 문화 전체를 소멸시켰음을 애통해한다. 이 나라의 시가, 하나의 위대한 문화 전체가 불타고 있는 전체주의의 광풍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것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끈질기게 다시 시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인지 고뇌했을 그의 외로운 투쟁이 날카로운 언어 너머로 절절하게 다가온다.




시가 사라져 가는,

불길에 휩싸인 종잇장처럼……

베티즈슬라프 네즈발, 「복수형 여인」 / 128p




  밀란 쿤데라의 유고작이자 세월이 흘러서도 사라지지 않는 거장의 광휘가 느껴지는 책이다. 두께가 얇지만 실감하기 어려울 만큼 문장 하나하나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밀란 쿤데라,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증명되었을 테지만 그의 존재감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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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의 서양 철학사 - 더 크고 온전한 지혜를 향한 철학의 모든 길
탁석산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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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서양 지성사의 거대한 흐름을 담은 아주 특별한 철학 교양서!





  철학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에 의문을 품고 그 근본원리를 탐구함으로써 발전되어온 학문이다.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지식은 어디에서 나오고 우리에게 이성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선과 악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신의 존재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해답을 구하기 위한 아주 오래된 고뇌의 역사인 것이다.





철학은 세상의 이치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탐구다



『탁석산의 서양 철학사』는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부터 근현대 철학의 중심인물인 칸트 그리고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2500년이라는 방대한 서양 철학사의 흐름과 주요 맥락을 담은 철학 교양서다. 이 책 한 권으로 고대 철학에서부터 현대 철학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따라가다 보면 당대인들의 품은 문제의식은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지향했는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평소 서양철학에 관심이 있거나 서양철학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서적을 찾고 싶었던 분들에게는 반가운 책이 될 것이다.




철학사 없이, 철학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에서 옛날은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 기술은 최신이 최고이고 가장 새롭지만, 철학은 다릅니다. 서양 고대 철학이 현대 철학보다 많이 낡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세부적인 개념 분류라든지 지식의 차이로, 덜 발전한 모습일 수는 있으나, 아이디어 자체는 절대 낡지 않았기에, 지금도 여전히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고대 철학을 보게 됩니다. / 8p



철학의 특징을 간추리자면, 이성과 논증으로 세상의 지혜를 탐구하는 작업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즉 이성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세상과 맞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유일한 무기는 바로 이성입니다. 그런데 역사에서 이성이 항상 주도적 지위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성이 지배적 위치에 오른 시기는 18세기 계몽주의라고 합니다. / 18p











  기존의 철학서와 달리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철학을 비롯해 또 하나의 핵심축인 신비주의 즉, 오컬트까지 두루 아우른다는 점이다. 철학은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있다고 말한 러셀의 말처럼, 철학이 이성과 논증으로 세상의 지혜를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이성만으로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에 있어서는 신비주의, 신학·종교를 보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철학에서는 이성과 신비가 접점을 이루었다가 18세기 계몽주의에 이르러서는 이를 배격하려 하고, 다시 현대에 들어서는 공존을 이루는 서양철학의 독특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서양철학이 신비주의와 종교, 과학으로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재구성되고, 그 안에서 인간의 본성과 행위, 존재에 대한 인식과 언어, 윤리와 역사 등을 폭넓게 사유할 수 있는 다양한 근거를 마련해왔음을 알게 된다.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기원후 1세기에, 본격 등장했습니다. 피타고라스학파가 다시 등장하였고, 악마학, 마법, 점, 점성술 등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런 시대는 플라톤에게 유리했습니다. 플라톤은 이 세상은 가짜이고 그림자에게 지나지 않으며, 진짜 세계는 다른 세계에 있으며, 사후 세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에피쿠로스에게는 이런 세계는 없습니다. 자연히 그들은 자리를 잃게 됩니다. 스토아학파는 마법이나 점성술, 악마, 신의 섭리를 용인함으로써 살아남습니다. 이제 중심은 플라톤으로 이동했으며, 심지어 플라톤은 권위자 자리에 오릅니다. / 110p



여기서 이스라엘은 단순한 이름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토라 사회입니다. 즉 신의 뜻이 드러나는 사회로, 손에 잡히지 않는 접신론 개념의 표현입니다. 즉 문자로 쓰인 토라로는 부족하고, 신의 뜻이 드러나는 사회 공동체인 이스라엘 즉 구술 토라가 있어야마나, 신의 여성 짝으로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의미가 구현됩니다. 이스라엘은 해석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면, 신의 뜻을 드러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구술 토라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 내재한 유일한 특성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세계는 오직 이스라엘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믿음입니다. / <카발라> 중에서 234p



데카르트는 타고나는 지식을 성향으로 봅니다. 특정한 지식을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조건과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크는 이런 지식은 없다고 하면서, 경험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감각과 반성입니다. 경험하면, 감각 경험만 떠올릴 수 있으나, 그는 감각 경험과 함께,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반성이나 성찰을 경험에 포함합니다. 성찰은 자신 마음의 작동에 대한 관념을 제공합니다. 지각, 생각, 의심 등입니다. 즉, 지각이라는 관념, 의심이라는 관념 등을 제공합니다. 여기에서, 경험이 지각을 제공한다는 점이 로크에게 중요합니다. / <로크> 중에서 340p



알튀세르가 미친 영향 가운데 하나는, 역사 변증법을, 주체나 목적 없이 정의하는 겁니다. 즉, 인간을 역사의 주체로 보지도, 역사를 최종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근대 국가의 주요 무기는, 억압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고 합니다. 즉, 국민의 동의를 끌어내는 바가, 바로 주요 무기의 기능인데, 이를 이데올로기가 담당한다는 거죠. 이때, 개인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식과 함께, 권위에 복종한다는 의미로, 자신을 주체로 여깁니다. 이데올로기 이론은 비평과 정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마르크스주의자: 루카치, 그람시, 알튀세르> 중에서 526p











  또 이 책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루소와 헤겔과 같은 대표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여느 철학서에서는 접해본 적이 없는 다양한 철학가들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이는 사상이나 개념의 핵심을 요약·설명하여 철학을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아니라, 2500년이라는 서양철학사의 방대한 흐름을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하듯 들려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이유로 교과서처럼 철학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으나, 한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거대한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을 사유해왔는지 철학을 생물처럼 감각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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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들 마티니클럽 2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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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스파이들이 이렇게나 섹시하다니!

테스 게리첸의 소설은 독자를 이토록 즐겁게 한다!




  여름 손님들이 돌아왔다.

  캐나다 메인 주에 위치한 퓨리티 마을의 메이든 호숫가. 65년이라는 세월동안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해마다 들어오고 나가는 손님들을 쭉 지켜봐왔던 루벤 타킨은 올해도 어김없이 호숫가 별장에 하나둘씩 불이 밝혀지는 광경을 숨죽여 응시했다. 문뷰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별장 중에 하나였다. 그곳의 소유자인 조지 코노버가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의 미망인인 엘리자베스가 큰아들 콜린, 그리고 얼마 전에 결혼한 작은아들 에단과 함께 이곳에서 조지의 추모식을 열기 위해 다시 돌아온 듯했다. 루벤은 하늘을 할퀴고 있는 발톱처럼 생긴 문뷰의 굴뚝을 불길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몸서리쳤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독이 서려 있는 메이든 호숫가의 

이 집은 피비린내 나는 피할 수 없는 최후를 맞이하게 될 곳이다.’ 

/ 152p




  한편, 은퇴한 다섯 명의 전직 CIA 요원 출신의 모임인 ‘마티니 클럽’은 독서 모임이라는 명목으로 오늘도 유쾌한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과거에 참여했던 작전으로 인해 전적들에게 위치와 신분이 노출된 매기가 위험해 처하자 마티니 클럽 멤버들이 합심해 이를 해결한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 평화도 잠시 뿐, 이웃에 사는 루터 윤트가 다급히 찾아와 매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열다섯 살, 조이 코노버. 문뷰의 여름 손님 중 한 명인 소녀가 실종되었다. 하필이면 루터의 손녀인 캘리가 소녀를 농장으로 초대해 함께 놀다 루터가 소녀를 집 앞에 데려다준 이후에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 설상가상으로 소녀의 혈흔이 트럭에서 발견되면서 루터가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그 사이 소녀의 행방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데…. 친절한 이웃인 루터의 혐의를 벗기고 사라진 소녀를 찾기 위해 나서는 우리의 마티니 클럽. 과연 이들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언제 모든 것이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의 끝자락에서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모두가 건강하고 안전하며 눈앞의 재난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고 있으며, 한편으론 순간의 덧없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재난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다. / 19p










  스릴러의 여왕 테스 게리첸이 ‘마티니 클럽’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여름 손님들』은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마을 퓨리티의 메이든 호수를 배경으로, 실종된 소녀의 행방을 쫓는 ‘은퇴한 CIA 요원 출신의 마티니 클럽 멤버들’의 활약상을 담은 미스터리 소설이다. 전작인 『스파이 코스트』가 위험천만한 전적들의 위협과 공격으로부터 일상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마티니 클럽의 분투를 담아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호숫가에서 사라진 소녀와 수면 아래에 오랫동안 잠겨 있던 미스터리의 진실을 추적해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여러 인물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다각도로 제공하는 테스 게리첸의 서술 방식은 마지막까지 긴박감을 선사한다. 마을 사람들이 경계하는 수상쩍은 이웃 루벤, 의붓딸이 실종된 것을 소재로 삼아 소설을 쓰고 있는 에,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코노버 가족과 이웃들, 루터의 차에서 발견된 실종된 소녀의 혈흔, 1972년에 메이든 호수에서 사라졌다던 여성의 정체 등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거듭된 반전으로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이런 짓을 할만한 누군가를 짐작하십니까?” 조가 물었다.

“음, 누가 그랬는지 정확히 알겠어요.” 조지는 호수 건너편에 있는 오두막집을 바라보았다. “항상 그였어요. 루벤 타킨. 그는 몇 년 동안 이런 짓을 해왔어요. 우리 집 데크에 썩은 생선을 가져다 놓거나, 손자의 유모를 괴롭히기도 했죠. 돌을 던져 창문을 깨버리기도 했는데, 아주 비싼 유리창이었어요. 그때도 경찰에 신고했었죠.” / 64p



참 슬픈 모습을 한 가정이었다. 장애를 가진 누나와 어두운 구석의 분노에 찬 남동생. 둘은 모두 은둔형 외톨이였다. 반세기 전 아버지가 저지른 잔혹한 행위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평생을 유배지에서 살아야 했다.

조는 메인스트리트 학살로 사망한 네 명만이 샘 타킨의 희생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 집에 두 명이 더 있었다. / 231p



“사람들은 거의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어요, 매기. 그래서 역사는 꾸준히 반복되는 것이죠.” / 333p












  뭐니 뭐니 해도 마티니 클럽 시리즈의 매력은 은퇴한 스파이들이 각자의 장점을 발휘해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비록 과거의 영광과도 같은 기민함이나 예리함은 무뎌졌을지 몰라도, 이들이 연륜과 경험의 힘으로 사건의 핵심을 꿰뚫고 그들만의 끈끈함으로 위기를 극복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작이 그러했듯 테스 게리첸은 이번 작품에서도 잘 만든 캐릭터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비밀, 반전, 꽉 찬 결말까지, 올 여름 재미있는 미스터리 한 권을 즐겨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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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기 전에 명상을 만나라 - 명상하는 변호사 최순용의 직장인을 위한 명상 입문서
최순용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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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일터와 복잡한 일상 속에서 온전히 나를 느끼는 명상의 세계!

명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삶의 자세를 바꾸고 싶은 분들에게!





  e스포츠 대표 선수인 페이커 이상혁은 자신의 성공 비결로 ‘명상’을 꼽은 바 있다. 실제로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에 몰입하는 페이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데 이것이 도움 된다고 한다. 바둑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경기 시작 전에 바둑판 앞에서 꽤 오랫동안 명상에 잠겨 있는 그들을 보면 확실히 집중력과 심신의 안정을 얻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부장검사 출신이자 현직 변호사라는 반전 이력을 가진 이 책의 저자 역시, 범죄자를 다루고 돈과 권력 그리고 성공에 매몰되기 쉬운 법조계에서 휘둘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명상에 집중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간 붓다의 가르침과 빠알리 원전을 연구하며 습득한 명상의 효과와 경험을 전수하며, 종교나 영적인 수행이 아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생활에 도움이 되는 행위로써의 명상법을 알려준다. 특히 마흔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 앞에서 명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삶의 자세를 바꾸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에 주목해보시길 바란다.





삶의 모든 흐린 날과 맑은 날에 명상을



  법구경에 나오는 제1번 게송의 유명한 문구에 따르면, “마음이 모든 것에 앞선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이야말로 모든 것에 앞서고 다른 것들은 그 뒤를 따라간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다섯 가지의 멍에, 즉 ‘감각적 욕망’ ‘화’ ‘게으름과 몽롱함’ ‘들뜸과 후회’ ‘의심’과 같은 것들로부터 사로잡히거나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있는 그대로의 마음 상태를 지켜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이해하고자 할 때 진정으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을 하는 이유는 ‘생각’을 이해하고,

 ‘생각’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 53p




  책에서는 ‘마음챙김 명상’ ‘마음의 균형 잡기 명상’, ‘생각 바라보기 명상’ 등을 통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 즉 마음 상태를 살펴보는 법들을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명상법의 공통점은 몸을 최대한 이완시키고 나의 호흡에 먼저 집중해볼 것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숨이 들고 나는 감각에 먼저 집중한 다음, 몸 전체로 나아가 어느 부위에서 어떤 느낌이 생겼다 사라지는지 관찰하고, 이어 마음 쪽으로 집중해 지금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기분 등의 느낌을 알아차려보는 것이다.




  명상은 지금 여기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이해함으로써 개인이 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애써 느낌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느끼지 않으면 그것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생이라는 시간을 채워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 내 몸과 마음을 챙겨 알아차리면서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마음챙김 명상에서도 호흡은 가장 중요한 명상 대상이다.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마음으로 연결해주는 통로인 호흡을 마음챙겨 알아차리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이다. 마음챙김 명상에서 호흡을 알아차림에 있어서는 여타 명상과 다른 점이 있다. 다른 명상에서는 호흡을 깊게 또는 얕게, 길게 또는 짧게 통제함으로써 마음에 영향을 주어 내가 원하는 상태를 얻고자 하지만, 마음챙김 명상은 호흡을 통제하지 않고, 통제해서도 안 된다. / 96p











  이 외에도 ‘걷기 명상’ ‘먹기 명상’ ‘감사의 명상’ ‘화와 욕심에 대한 명상’ ‘자애 명상’ 등 일상생활에 명상의 효과가 스며들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명상법들을 알려준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명상이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일상이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10분, 매일 작은 성취를 이룬다는 마음으로 명상을 일상에 자주 적용하여 습관처럼 활용해봐야겠다. 마음이 쉽게 어지러워지기 쉬운 세상 속에서 내 삶에 온전히 몰입하며 살아가고 싶은 분들, 이제껏 명상을 복잡한 수행이라 여겼던 분들, 막상 명상을 해보려 하면 이런저런 생각이 파고 들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명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막막한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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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지금 근현대사 - <어린이를 위한 역사의 쓸모> 광복 80주년 특별판
최태성 지음, 신진호 그림 / 다산어린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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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역사가 된다!

삶이라는 문제에 있어 역사보다 더 훌륭한 나침반은 없다!





  최태성 선생님의 대표 어린이 시리즈 『어린이를 위한 역사의 쓸모』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특별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지금 근현대사』로 돌아왔다.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개항 그리고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근현대사’를 조명한 책이라 특별히 관심이 갔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역사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사 속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불평등한 신분 제도에서 벗어났고,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도 해방되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가난을 이겨 내고 대통령을 직접 뽑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유를 얻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태성 선생님은 어떤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 수만, 수십만 명이 함께 모여 만들어낸 역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던 만큼,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이 땅의 많은 것들은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봤으면 좋겠어요. 과연 우리는 나라의 주인으로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 87p



4·19 혁명부터 6월 민주 항쟁까지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은 오늘날 우리가 숨 쉬듯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를 선문해 준 고마운 역사입니다.

불의를 외면하지 않고 거리로 나서 독재 정치에 맞선 평범한 사람들, 그분들의 용기 있는 투쟁과 저항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거랍니다. / 143p











  지난겨울, 우리는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엄중한 진실을 목도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지고 국민 모두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주목하고 있을 때, 나는 아이들과 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했다.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 등 헌정 질서를 수호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분들의 노력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 사회와 나의 삶이 모두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우리 역시 이를 지켜야 한다고.




  이 책을 읽고 부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선택 하나하나를 무겁게 여기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는 계속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갑신정변과 동학 농민 운동이 마침내 세상을 바꾼 것처럼,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고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실패로 보였던 일이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길 바란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땀과 노력으로 경제를 일으켜 세웠어요. 많은 사람의 희생과 책임감 있는 선택, 그리고 치밀한 계획이 모여 이룩한 성과였지요. 이것이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그저 ‘기적’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이유랍니다. / 162p



역사는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과거보다 나은 오늘이 있었던 것처럼, 더 나은 내일이 반드시 올 거라고요. 우리의 근현대사만 바라보더라도 백여 년 동안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자유를 얻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잖아요. 그러니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역사는 시간을 따라가는 공부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공부라고요. 그리고 그 속에서 나와 우리를 찾아가는 공부이기도 하다고요. / 213p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다가올 방학에는 아이와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기로 했다. 최태성 선생님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듯 술술 읽힐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굵직한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니 초등 고학년부터 두루 읽혀보시기를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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