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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ㅣ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평점 :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데뷔작!
몰락의 파도에 부유하며 휩쓸리는 주인공들처럼 마지막 장까지 속절없이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헝가리 작가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호명되었다. 무슨 운명이었을까. 노벨문학상 발표 당일, 나는 우연히 『사탄탱고』를 소개하는 글을 읽고 습관처럼 온라인 서점의 구매 목록에 담아두었는데, 마침 그가 지목된 것이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작가일 뿐만 아니라 예의 ‘실험적 산문, 예언적 언어, 종말론적’이란 수식들이 일종의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일단 저 제목과 붉은 표지의 강렬함에 압도된 뒤라서 주저 없이 이 작품을 선택했다. 그렇게 책을 다 읽고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일단 도입부를 읽는 데만 약간의 정성을 기울이고 나면 몰락의 파도에 부유하며 휩쓸리는 주인공들처럼 마지막 장까지 속절없이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란 것이었다. 나는 이제 겨우 그의 데뷔작을 읽었을 뿐인데, 라슬로라는 이름은 이토록 강렬하게 각인되고 말았다.
“좀 전에 이상한 광경을 봤다고 그럴 필요는 없어. 천국? 지옥? 피안? 다 헛소리야. 난 그런 지어낸 얘기는 다 정신을 홀려놓기 위한 거라고 믿네. 그렇게 환상에 마음을 빼앗기면 진실은 영영 알 수 없는 법이야.” / 321p
어쩌면 이들은 연속된 불행에 일상의 감각이 마비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불행이 계속되다보니 몰락해가는 현실을 저지할 힘도, 변화에 대한 갈망도,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날 희망도 사라져버린 게 틀림없다. 공산주의가 붕괴되어가던 1980년대 헝가리의 어느 해체된 집단농장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 『사탄탱고』 속에는 지속된 가난과 몰락으로 무력감에 길들여진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기필코 내일은 떠나리라 다짐하면서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후터키, 의자에서 거의 몸을 일으키지 않고 최소한의 생활과 움직임만을 추구하는 의사, 마치 펑크 난 타이어처럼 그저 술집에서 술이나 마실 수 있으면 족한 헐리치 등 이들은 모두 ‘탈출의 전망이 부재하는 고통’에 영원히 갇혀버린 것만 같다.
그의 눈은 빛 속에서 맴도는 수많은 먼지들을 보았고, 코는 눅눅한 부엌 냄새를 맡고 있었다. 갑자기 혀 끝에 신맛이 느껴졌다. 그는 그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농장이 해체되고,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또 미련 없이 떠나가버린 뒤에 의사와 학교 교장을 포함해 오직 그와 몇몇 집들만이 남았는데, 누구도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때부터 그는 음식 맛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죽음은 무엇보다 수프와 고기 접시에, 그리고 담벼락에서부터 스며들어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22p
여위고 남루한 몰골로 그는 도시를 향해 나아가고 마을은 점점 등 뒤로 멀어져서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그는 자신이 돈을 손에 쥐기도 전에 잃어버렸음을 깨달았고, 오래전부터 예감한 일이 사실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바로, 이곳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은 그는 떠나려고 해본 적도 없었다. 적어도 이곳에선 익숙한 풍경의 그늘 속으로 숨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저 바깥, 마을 외부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몹시 낯설고 불확실한 무엇일 따름이었다. / 32p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리미아시가 마을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이상한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이리미아시라면 분명 죽어 있던 마을을 되살리고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길로 술집에 모여 밤새 술에 절어 기쁨의 탱고를 추며 그간 불안과 절망으로 억눌려 있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소녀가 꿈꾸었던 ‘돈 나무’에 대한 환상만큼이나 헛되고 또 다른 형태의 몰락만 있을 뿐이다. 아무리 없애고, 또 없애도 소리 없이 생겨나 모든 것을 뒤덮는 거미줄처럼 헤어나올 길이 없는 쇠락의 운명에 탈출구는 없다.
‘우리는 이 세계라는 돼지우리 속에서 태어나 갇혀 있지.’ 그는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오물 속에 뒹구는 돼지들처럼 뭐가 어찌된 건지도 모르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젖꼭지를 향해 아우성치지. 사료 통으로 빨리 가려고, 밤이 되면 침대로 돌아가려고 허둥대는 거야.’ 그는 바지의 단추를 잠그고 채찍질하듯 퍼붓는 빗줄기 속으로 들어갔다. “내 낡은 뼈다귀를 씻어다오!” / 210p
“난 예전엔 잘못 생각했어.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네. 나와 벌레, 벌레와 강물, 강물과 강을 넘어가는 고함 소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모든 건 공허하고 의미가 없는 거야. 뿌리칠 수 없는 구속과 시간을 뛰어넘은 대담한 도약 사이에서, 영원히 실패하는 감각이 아닌 오로지 환상만이 우리로 하여금 비참한 구덩이에서 헤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끔 유혹하지. 하지만 도망칠 길은 없어, 귀 늘어진 양반!” / 321p


이처럼 작가는 묵시록 문학의 거장답게, 체제에 철저히 유린당하다 끝내는 고통의 원 안에 갇히고 마는 인간 군상을 거침없이 그려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마냥 절망적으로 읽히지 않는 것은, 지독한 몰락의 끝에 이르렀을 때에야 인간은 비로소 부조리한 현실에 눈을 뜨고 마침내 세계의 진실에 다다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 안에서 여전히 희망하는 인간을 꿈꾸는 라슬로의 문학은 그래서 음울하나 어둡지 않고, 고통스러우나 절망적이지 않다.
“잘 알아둬라. 인생의 비밀은 농담에 있다는 걸.” / 363p
평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에 높은 벽을 느꼈던 분들이라면 『사탄탱고』 만큼은 도전해봄직 하지 않을까 싶다. 복잡한 상징성이나 독특한 서술 구조를 애써 의식하지 않아도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이 책을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