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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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경찰소설의 진수를 보여주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팽팽한 대립, 예측불허의 결말로 마지막까지 몰입도 최고!

 

   1930년을 전후하여 미국문학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으로, 자연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주제를 냉철하고 무감한 태도로 묘사하는 스타일을 가리켜 우리는 '하드보일드'라고 부른다. 특히 장르소설 속에서 범죄 집단 및 경찰, 계급 조직의 구조와 속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냉정하고 비정한 캐릭터의 등장, 리얼한 성격 묘사, 폭력이나 각종 범죄를 과감하게 그려내 보다 극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결말에 이르는 특징을 지닌다. 하드보일드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영화 <무간도>나 <신세계> 등을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손꼽는데, 이와 같은 성격의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 하나가 영화와 함께 동명의 원작 소설로 최근에 출간되어 주목을 끈다. 바로 <고독한 늑대의 피>다.

 

 

 

경찰과 야쿠자의 세계를 노련하고 정교하게 구성해내 하드보일드의 진수를 보여주다 

 

 

   때는 1988년, '폭력단 대책법'이 시행되기 전으로 야쿠자 조직들이 한창 팽창하기 시작하여 히로시마를 격동의 도시로 물들이던 시기다. 소설 <고독한 늑대의 피> 속 히로시마 역시 진세이카이 계열의 폭력단과 아카시구미 계열의 폭력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팽배한 이권다툼과 자존심 싸움에서 비롯된 총격전 및 각종 살인 미수 등과 같은 범죄로 암측 천지와 다름없다. 때문에 이들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정의를 수호해야 할 경찰과의 대립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엘리트 신참 형사 히오카가 구레하라 동부서 수사 2과 폭력단계에 부임한다.

 

 

 

 

 

 

   히오카는 자신의 상관을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느닷없이 그에게 멱살을 잡히고, 야쿠자와 싸움에 휘말리기까지 한다. 오가미 쇼고. 익히 알려진 명성대로 히오카의 직속상관은 구레하라 동부서 수사 2과 주임으로 폭력단계 반장이자 경찰 표창 수상 100회에 빛나는 히로시마 현경 내 최고의 형사지만, 야쿠자 보다 더 야쿠자 같은 타입에 징계 처분 경력도 현역 최고라는 할 만큼 괴의한 인물이다. 더군다나 그는 히오카에게 야쿠자 세계와 같은 상명하복의 규칙을 요구하고, '폭력단이 사라지면 우리 밥줄도 끊겨'라고 태연하게 말할 정도로 수사를 위해서라면 폭력과 협박, 금품 갈취도 서슴지 않는 걸 보면 야쿠자와 유착 관계에 놓여 있다는 소문도 거짓은 아닌 듯하다.

 

 

"2과의 규칙은 야쿠자 세계의 규칙과 같아. 쉽게 말해서 운동선수들처럼 선후배 관계가 확실하다고 보면 돼. 선배의 터무니없는 설교나 기합도 묵묵히 견뎌야 하는데 거기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야쿠자는 평소에도 불합리한 세계에서 살아. 두목이 희다고 하면 까마귀도 흰 거야.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싸우는 거라고. 야쿠자를 이해하려면 그들처럼 불합리한 세계에 살아야 하는 거야." / 23p

 

 

 

   수사 2과에 배정받자마자 히오카는 오가미와 함께 폭력단 가코무라구미 계열의 구레하라 금융회사에서 경리로 일하고 있던 우에사와 지로의 실종 사건을 맡게 된다. 비록 히로시마 현경 내 최고의 괴짜 같은 인물이지만 뛰어난 직관과 통찰력, 폭력단 조직원과의 친분 등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정보력을 갖춘 오가미는 이 사건이 단순한 실종이 아닌 배후에 폭력단이 있다는 사실과 더 큰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직감한다. 그런 가운데 폭력단 준조직원 살해 사건과 시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발포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폭력단 간에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위험한 상황이 불거지고 만다. 일촉즉발의 대립으로 도시 전체가 위험에 휩싸이기 직전, 이를 중재할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오가미 뿐. 하지만 14년 전 미결 사건의 용의자로 오가미를 지목하는 투서가 날아들고, 오가미는 행방불명되기까지 하는데…….

 

 

 

"당신, 미쳤어……."

입술이 덜덜 떨렸다.

오가미가 웅크리고 앉으며 요시다의 얼굴을 보았다.

"맞아, 난 미쳤어. 수사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거야. 네가 불지 않더라도 나중에 가코무라에게 네가 밀고했다고 일러바칠 수도 있어." / 206p

 

 

"폭력단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아. 인간은 말이지, 밥을 먹으면 똥을 눠야 해. 밑을 닦을 휴지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폭력단은 화장실 휴지 같은 거야." / 213p

 

 

 

 

 

 

   이렇듯 <고독한 늑대의 피>는 경찰소설이 보여주는 조직의 생리와 사실적인 묘사, 범죄소설이 갖춘 정의와 불의의 대립 요소들을 치밀하게 조직해내 마지막까지 흡인력을 잃지 않는다. 무엇보다 암흑세계의 복잡한 이권다툼과 구조적 속성을 매우 노련하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저자의 힘은 그간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유사계열의 장르소설에 대한 편견을 철저하게 깨부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또한 암흑세계의 위계질서 확립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경찰 조직 내부의 불편한 시선과 그 어떠한 부정도 마다하지 않는 오가미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통해 진정한 정의의 실체는 무엇인지, 더불어 세상에 완전한 정의란 없음을 깨닫게 한다는 점은 퍽 인상적이다.

 

 

 

가네무라는 비열한 인간이고 죽어 마땅한 악당이다. 아키고가 자기 손으로 남편의 복수를 하려고 한 심정도 이해가 간다. 법률은 사적 처벌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법률이 가네무라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다면 정의는 어떻게 되겠는가? 살해를 저지른 아키코와 살해를 당한 가네무라. 실체적 정의는 어느 쪽에 있을까? / 426p

 

 

 

   강렬한 캐릭터, 몰입도 높은 경찰 소설의 진수를 느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소설을 꼭 추천한다. 소설 <고독한 늑대의 피>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2018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된 바가 있다고 하니 이 역시 찾아서 함께 보면 더욱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예고편들을 찾아 미리 보았는데, 내가 상상했던 오가미보다 선 굵은 캐릭터의 주인공이 등장해 사뭇 놀랐지만 원작 소설의 탄탄한 구성과 영상미가 어우러진 꽤 진한 하드보일드 영화일 듯하여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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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걸 비포
JP 덜레이니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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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자신과 닮은 에마의 죽음을 파헤치는 사이 서서히 자신의 목을 조르는 공포를 경험하는 제인!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아름다운 집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완벽한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것까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누가 봐도 완벽하고 아름다운 집,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 초음파 동작 감지 센서가 알아서 조도를 조절하고, 난방비를 따로 내지 않아도 될 만큼 효율 높은 설비에 스마트 센서가 거주자의 일상을 스스로 학습함은 물론, 불필요한 인테리어는 과감하게 제거하여 말 그대로 집 자체가 고고하고 당당한 자아를 뿜어내는 곳이다. 덕분에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아름다운 공간에 사로잡힐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완벽해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완벽한 삶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곳에서 사는 것을 감수할 수 있을까? 각종 금지 조항이 가득한 이백여 개의 규칙, 정리정돈을 비롯하여 삶의 방식까지 통제하는 시스템, 거기에 원인 불명의 죽음이 묻혀있는 곳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의 교차 시점이라는 구성이 보여주는 놀라운 심리스릴러

 

 

   <더 걸 비포>는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과거의 에마와 현재 제인의 시점을 교차 구성해 정교한 심리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두 여인은 공교롭게도 최근에 아픔을 겪어 몸과 마음이 여러모로 지친 상태에 빠져있는 때에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를 소개받는다. 한밤중에 집에서 강도를 만나 성폭행을 당한 에마는 그 무엇보다 안전한 집을 찾던 중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의 완벽한 시스템에 마음을 빼앗기고, 아이를 사산한 제인은 이 완벽해 보이는 집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입주를 희망하게 된다.

 

 

 

그곳의 고요함과 당당한 모습.

그곳에서라면 내게 나쁜 일이 일어날 리 없어. / 31p

 

 

 

 

 

 

   하지만 집을 설계한 건축가이자 집주인인 에드워드는 이 집에서 살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다듬어진 일정 규칙에 반드시 따를 것을 요구한다. 과거 집에서 쓰던 가구나 가전제품, 화분이나 장식품도 철저하게 금지시키고, 반년마다 건축학과 학생들이나 방문객들에게 집을 개방해야 하는 조건 등 철저히 금욕적인 삶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러한 까다로운 규칙과 남자친구인 사이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마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제인 역시 어렵지 않게 이곳에서 살기로 결정하는데, 매력적인 이 집의 주인인 에드워드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 한 몫 한 것이리라.

 

 

 

   완벽한 집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설레던 것도 잠시, 제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에 살던 세입자가 이 집에서 죽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제인과 비슷한 나이에 외모마저 비슷했던 그녀의 이름은 바로, 에마다. 제인은 에마의 죽음에 어떠한 비밀이 숨겨진 것인지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거부할 수 없는 에드워드의 매력에 빠져들수록 그녀 역시 에마와 비슷한 행적을 쫒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에게도 스멀스멀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드리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집은 죽음과 함께 잉태되었다. 엄밀히 말해 두 개의 죽음. 즉, 이중의 사별. 그래서 내가 그 집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걸까? 그곳의 금욕적인 공간과 내 개인적인 상실 사이에 어떤 종류의 동질성이라도 있는 걸까? / 46p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는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에드워드의 눈을 의식하거나 그 눈이 언제고 따라다닐 것 같은 느낌이다. 한마디로 이 집과 내가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미장센이 된 것이다. 그가 내 인생을 지켜보고 있기에, 내 인생이 좀더 사려 깊고 아름답게 변한 것 같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집 밖의 세상, 즉 카오스와 추함이 지배하는 세상과 관계를 맺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 255p

 

 

 

   너무나 닮은 외모의 두 여인, 상처투성이인 삶의 빈틈을 완벽하게 메워줄 것 같은 남자 에드워드, 그와의 치명적인 사랑, 완벽한 집에서 완벽한 삶에 가까이 다가가려 할 수록 세상과는 더욱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은 심리적인 공포. 이 모든 것을 굉장히 능숙하고 정교한 구성으로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더 걸 비포>는 프로이트의 반복강박이라는 개념을 통해 더욱 완성도 높은 심리스릴러를 구축해낸다. 그리하여 왜 인간은 과거의 실패와 고통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되는가, 그 위험하고도 비극적인 삶의 추이가 주는 공포를 과거와 현재의 교차 구성을 통해 더욱 극대화시킨다.

 

 

 

   <더 걸 비포>는 심리스릴러답게 '강박'이라는 인간 내면의 속성을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라는 하나의 외적 구성을 통해 보여준 흥미로운 소설이다. 특히 과거의 에마와 현재의 제인의 시점을 정교하게 풀어낸 저자의 차분하고도 섬세한 필력이 곧 영화화되기까지 한다는 소식은 무척이나 반갑다. 저자의 차기작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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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겨울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5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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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겨울잠을 잔 사이 깨어나 버린 무민의 혹독한 첫 겨울나기!

낯설고 두렵지만 경험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 모두는 한 뼘 더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민 이야기!

 

 

 

   꽁꽁 언 골짜기 사이로 소스라치듯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이 눈 더미를 훑고 지나가는 겨울의 숲 속 풍경.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긴긴 겨울잠을 청하고 있는 동물들. 이따금씩 그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모두가 잠든 사이 불쑥 떠져버린 눈이 내내 감기지 않아 결국 잠에서 깨어나야만 했던 작은 새끼 동물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따뜻한 가족의 품속에서 몸을 비집고 나와 차가운 눈밭에 문득 얼굴을 내밀었을 때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에 밀려오는 당혹감과 차츰 고개를 드는 외로움, 그런 와중에도 꿋꿋이 겨울을 나고 있는 여느 동물 친구들 하나쯤은 마주칠 수도 있을 테고 그들을 따라 겨울 세상을 경험해보기로 마음먹고 둥지 밖으로 뛰쳐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

 

 

 

가족 모두가 잠든 사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홀로 겨울나기를 시작한 무민

 

 

   하마를 닮은 듯 순둥순둥한 얼굴에 통통한 몸매를 지닌 귀여운 캐릭터 무민에게도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한 겨울의 무민 골짜기, 가족 모두가 깊은 겨울잠에 빠져든 가운데 느닷없이 잠에서 깨어나 버린 우리의 무민. 집은 눈 더미에 파묻혀 창문도 열리지 않고 집 안은 온통 어둑어둑하고 시계마저 모조리 멈추어버렸다. 덜컥 겁이 난 무민은 달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혼자 내팽겨쳐진 듯한 끔찍한 기분을 느끼며 엄마인 무민마마를 깨워보지만, 그녀는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친구인 스너프킨마저 10월에 따뜻한 남쪽으로 떠나 봄이 오는 첫 날에 돌아오기로 했다. 외로움에 사무친 무민은 남쪽으로 스너프킨을 마중 가봐야겠다며 바깥 세상으로 나갔다가 뜻밖의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잿빛 어둠이 뒤덮인 골짜기, 무엇 하나 움직이지 않고 모두 사라진 듯한 적막감, 마치 온 세상이 죽어버린 듯한 겨울의 풍경은 무민에게 전에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자, 들어 봐. 어둠의 짐승들

태양을 가져가고 추위를 가져온 너희들

이제 나는 정말 혼자고, 내 다리는 지쳤고

골짜기 나무의 푸른빛이 부질없이 그립고

새파란 베란다와 바다의 파도가 떠오르고

끔찍한 눈 속에서 이제 더는 살기 싫어! / 47p

 

 

 

 

 

 

   혹독하고 매서운 겨울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누군가는 꿈틀하고, 누군가는 그 겨울을 즐기며 살아간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외롭고 막막했던 무민 역시 어딘가에서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싱크대 밑에서 살고 있는 눈썹이 덥수룩한 동물, 아빠의 탈의실에 머무는 투티키, 스키와 얼음썰매를 타는 즐거움에 푹 빠진 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녀석들, 벽장 속에 숨어 있던 자신의 조상 트롤, 스키를 타고 나타난 헤물렌, 추위를 피해 들이닥친 손님들까지. 무민은 이제껏 자신이 몰랐던 겨울이라는 낯선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또 다른 낯선 이들을 만나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하게 된다.

 

 

 

무민이 말했다.

"이제 어떡하면 좋지? 녀석은 내가 뭔가 다정한 말을 건네려고 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일 년 내내 싱크대 밑에 틀어박혀 있을 텐데!"

투티키가 말했다.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지." / 79p

 

 

 

 

 

 

   이처럼 <무민의 겨울>은 무민이 처음 겨울이란 세계를 마주했을 때만 하더라도 유독 외롭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두렵게 느껴졌던 것들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법과 다가올 태양과 봄의 기운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점차 마음이 열리는 과정을 담은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다. 특히 난생처음 눈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눈이 이렇게 오는구나. 땅에서 자라는 줄 알았는데.' 하고 황홀한 기분에 빠져드는 무민의 모습은 낯선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느껴보는 일이란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겨울! 이제 겨울도 좋아!', "이제 나는 다 가졌어. 한 해를 온전히 가졌다고. 겨울까지 몽땅 다. 나는 한 해를 모두 겪어 낸 첫 번째 무민이야." 하고 말하는 무민을 보며 이 시간이 그를 얼마나 성장하게 했을지 우리 모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겨울에는 왜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았어? 그랬으면 위로가 되었을 텐데. 내가 여기에서 사과나무가 자란다고 말했었지. 그랬더니 네가 뭐랬어. 하지만 지금은 눈이 자라고 있다며. 그때 내가 우울해하는 줄 몰랐어?"

투티키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모든 일은 직접 겪어 봐야지. 그리고 혼자 헤쳐 나가야 하고." / 159p

 

 

스노크메이든이 말했다.

"유리 덮개를 덮어 주자. 추운 밤에도 끄덕없게."

무민이 말했다.

"덮지 않는 게 좋겠어. 알아서 헤쳐 나가도록 내버려 두자. 어려움을 조금 겪고 나면 훨씬 잘 자랄 테니까." / 182p

 

 

 

 

 

 

   어쩌면 우리 모두가 세상을 향해 내딛는 그 한 걸음 한 걸음 이 혹독한 겨울나기를 시작했던 무민처럼 두려운 일들의 연속일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은 직접 겪어 봐야지. 혼자 헤쳐 나가야 하는 거야'라고 곁에서 의지가 되어주고 등을 밀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경험이 이제껏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정과 깨달음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면, 실수를 하여도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줄 가족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내가 한 모든 경험들이 꽤나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이전에 읽어본 무민의 만화 시리즈가 다채로운 상상력과 풍자에 가까운 유머가 돋보였다면, 소설로 나온 무민 시리즈는 성장 소설의 면모와 철학적인 요소가 보다 더 깊이 있게 느껴져 아이가 읽어도,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흑백 일러스트 덕분에 냉혹한 겨울을 배경으로 한 무민 골짜기의 스산함, 외로움이 더욱 두드러져 그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역시 읽는 재미를 더하니 무민 시리즈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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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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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 열어 가는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감동적인 레스토랑!

지금은 서로 이해해주고 소통하고, 실수를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사회의 분위기가 필요한 때!

 

 

  오랜만에 들린 친정 집 앞에 주차를 하려는데, 난처한 표정으로 아이 같은 외할머니를 어르고 달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어딜 가려고 그러느냐고 만류하는 나의 부모님과 막무가내로 걸음을 재촉하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벌써 수 차례나 본 광경이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무더운 땡볕에 겨울옷을 잔뜩 챙겨 입고 불쑥불쑥 밖으로 나가버리려고 하는 외할머니의 이 같은 치매 증상은 벌써 3년째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 날은 좋은 공기 마시러 바람 쐬러 나갔다가 느닷없이 식당에서 외할머니가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바람에 당황한 나의 어머니까지 펑펑 울어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외할머니가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있어 '치매'란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처럼 느껴진다. 외할머니의 몸과 정신을 갉아먹는 이 나쁜 병이 전염병처럼 우리 가족에게 퍼뜨린 그 무거운 기운을 아무리 이해하고 보듬으려 해도 쉽사리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간 치매 질병에 관한 여러 책과 이를 곁에서 경험하고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도 읽어보았지만 그런 경험 공유가 치매 질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치매를 다룬 내용의 이색적인 제목의 책 하나가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니, 별 이상한 식당이 다 있네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스태프들은 모두 치매나 인지 장애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란다. 가끔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을 수 있사오니 아무쪼록 양해 부탁드린다는 이 글귀, 어쩐지 난데없지만 뭔가 참신한 시도인 듯도 하고 과연 이 음식점 제대로 운영이 될 런지 걱정이 되기도 하는 마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뒤죽박죽입니다. 엉터리 식당입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손님들 모두가 즐거워합니다.

주문을 받고 있나 싶으면 옛날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삼매경에 빠진 할머니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손님. 틀린 메뉴가 나오면 본인들이 알아서 메뉴를 바꾸어 먹는 손님들. 불평을 토로한다거나 화를 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소통의 목소리가 퍼지며 종업원들의 실수를 척척 해결해 가는 모습들로 가득합니다. / 26p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기획자 오구니 시로가 우연한 기회로 가게 된 취재 현장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 낸 사례를 담고 있는 책이다. 치매 환자 간병 환경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고 있는 와다 씨의 현장을 취재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직접 만드는 요리는 대접받은 일이 있었는데, 주문한 햄버그스테이크가 아니라 느닷없이 만두가 나오자 문득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키워드를 착안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이를 실행하기 위한 기획안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열심히 홍보를 하며 돌아다닌 결과, 3개월 만에 와다 씨를 비롯해서 디자인과 홍보 전문가, 포털 사이트 담당자, 크라우드 펀딩 전문가, 방송국 스태프, 외식 서비스 CEO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뜻을 모아 주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일하는 식당. 애초부터 '주문을 틀린다'고 전제를 했기 때문에 혹여 주문한 메뉴가 나오지 않아도 싫어할 이유가 없는 곳. 오히려 엉뚱하게 나온 메뉴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는 이상하지만 뭔가 따뜻한 느낌이 감도는 식당. 물론 이 식당 하나로 치매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실수를 받아들이고 또한 그 실수를 함께 즐기는 것, 그런 새로운 가치관이 이 식당을 통해 발신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오구니 시로는 그렇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오픈한다.

 

 

 

   2017년 6월 3일과 4일 단 이틀, 도쿄 시내에 있는 좌석 수 열두 개의 작은 레스토랑을 빌려서 시험적으로 오픈하기로 했지만 이는 뜻밖에도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각종 SNS는 물론 TV방속국과 신문, 잡지사 등의 취재 의뢰가 쇄도하였음은 물론, 중국, 한국, 싱가포르, 영국 등 세계 20개국에 이르는 미디어들로부터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자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연락이 속속 들어온 것이다. 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은 뜻밖에도 하나의 작은 사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바로 손님 테이블로 주문을 받으러 간 치매 환자 요시코 할머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이때 요시코 할머니는 '내가 여기 뭐하러 왔지…….' 하고 주문을 받으러 온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손님이 "주문 받으러 오신 거 아니세요?" 하고 거들자, '어머나, 그랬구나' 하고 호호호 수줍게 웃는 표정을 지었던 게 찍힌 것이다. 오구니 시로는 이것이야말로 '주문이 틀리는 요리점'이 꿈꾸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닐까 하고 말한다.

 

 

 

깜빡 잊어버렸지만,

틀렸지만,

뭐 어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기획자인 오구니 시로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기획하고 오픈하기 전까지의 과정과 더불어 치매 환자들이 홀 서빙 스태프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간병 시설 직원들의 인터뷰,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의 경험담들이 담겨 있다. 특히 저마다 한 때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했던 이들이 치매라는 질병을 얻어 부득이하게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실수가 용인되는 이 따스한 식당 안에서 '나도 누군가를 돕고 싶다', '일하고 싶다',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가짐으로써 행복한 표정을 되찾는 모습은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무엇보다 치매 환자이기 전에 이들이 '사람'이라는 점을 환기시키며 그간 치매라는 질병을 두렵게 여기고 치매 질환자에 대해 모두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 여기기만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했다.

 

 

 

아내는 그날,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무대가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 기쁨에 넘쳐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치매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좀 더 알리고 싶다'는 생각.

'치매에 걸린 사람도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보여주고 싶다.'

그런 생각. / 116p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역시 그 존재 자체만으로 치매 환자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이번 일을 기획한 오구니 씨도, 꿈만 같은 일을 실현해낸 스태프들도, 거기까지 기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실수를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장소가 있다.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그 지점에 가치가 있지 않을까. / 127p

 

 

"치매 환자는 평생 자신의 의사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억제당해 온 역사 그 자체인 거지. 하지만 인간이 왜 멋진 존재인가.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인간이, 자신의 뇌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가장 멋진 것을 빼앗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그것을 지켜주는 것, 그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 152p

 

 

 

 

 

 

   늙는 것이 두려운 나라, 병드는 것이 불행하고 외로운 사회, 실수를 용인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스템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책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심각한 문제가 아니고서는 너그럽고 가벼운 마음으로 용인해줄 수 있는 이런 시도들과 갈등과 문제는 대화와 소통으로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이 작은 요리점을 통해서 배우게 된 것 같다. 나 역시 외할머니를 그저 대하기 힘들고, 우리에게 짐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 이전에 가족이고,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좀 더 너그러운 자세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를 해봐야겠다. 아울러 이 책이 많은 치매 질환자 가족들에게,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따뜻한 에너지를 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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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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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을 공포에 떨게 한 소름끼치는 살인 사건의 조각을 파헤치다!

날카로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이 여름에 가장 완벽히 어울리는 소설!

 

 

  살인 사건을 예고하는 기호와 상징들. 그 알 수 없는 의문의 기호들을 조합하면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소재의 추리소설과 영화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할 때가 있다. 소설 <초크맨> 역시 그러한 발상에서 출발한 섬뜩한 미스터리다. 저자 C. J. 튜더는 딸아이가 두 살 때 생일선물로 받은 분필로 함께 집 앞 진입로에 온갖 막대인간을 그려놓고 집으로 들어갔다가 밤에 현관문을 열었는데, 방범등 불빛에 비친 그 막대인간들이 그렇게 섬뜩해 보일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며 여기에서 착안하여 소설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저 우연히 그린 듯한, 유년시절의 순진한 장난 같은 그림 하나가 한 마을을 통째로 공포로 빠져들게 하는 섬뜩함, 강렬한 도입부와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이 소설은 그야말로 이 더위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초크맨을 조심해!

  1986년, 앤더베리라는 작은 마을. 에디 먼스터, 뚱뚱이 개브, 메탈 미키, 호포 그리고 니키 다섯 명의 친구들은 딱 열두 살이라는 나이에 어울리는 호기심과 그들만의 우정을 나누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다면 분필로 친구의 집 앞에 막대인간을 그려서 자기들만 아는 비밀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을 재미삼아 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장난에 불과했던 그 그림이 마을 곳곳에서, 그것도 살인사건 현장마다 번번이 등장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면서 마을 전체가 삽시간에 공포로 돌변하고 만다.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는 법이고,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저지르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그것이 남의 물건을 슬쩍하는 것,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엿같게도 그걸 원래 있었던 자리에 갖다놓으려고 할 때만 꼭 탈이 났다. / 54p

 

 

사람들은 그런 사건에 항상 호기심을 느낀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 만한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다. 특이한 주인공, 분필로 그린 섬뜩한 그림 그리고 소름 끼치는 살인. 우리는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 초크맨 모양의 조그만 흔적을.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씁쓸해한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사실은 윤색됐고 진실은 점점 모호해졌다. 역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 89p

 

 

흰색 초크맨이었다. 두 팔을 올리고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입을 'O' 모양으로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었다. 그 옆에 흰색 분필로 조잡하게 그린 개가 있었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초크맨을 조심해. / 176p

 

 

 

   숲 속에서 살해당한 소녀의 토막 난 시신, 에디를 괴롭히던 션 쿠퍼의 익사 사고, 호퍼의 강아지 머피의 독극물 중독 사고, 목사의 머리를 습격한 사건 등 1986년의 앤더베리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도시에 찾아든 최악의 사건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2016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 에디는 어린 시절에 살던 집에서 하숙생인 클로이와 함께 별 볼 일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여전히 과거 사건이 가져다준 공포에서 정신적으로는 헤어 나오지 못하던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분필 조각과 초크맨이 그려진 편지가 배달되고, 션 쿠퍼의 동생인 메탈 미키가 자신을 보러 왔던 날 밤 강물에 빠져 죽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초크맨의 공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예단하지 말 것.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우리가 예단을 하는 이유는 그게 좀 더 쉽고 게으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들에 대해 너무 열심히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 375p

 

 

 

 

 

 

   소설은 1986년의 에디와 2016년의 에디가 교차 반복되어 과거의 기억과 현재에 드러나는 진실을 추적해가며 모호한 살인자의 정체와 도시 내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의 그늘에 몇 번이고 독자를 오싹하게 만드는 최고의 스릴러작이다. 스티븐 킹이 추천하고 전 세계 39개국을 매혹시킨 환상의 스토리텔링이라는 추천글이 어울릴 만한 소설임에 틀림없다. 그야말로 이 여름에 딱 어울리는, 언젠가 영화로 개봉되기를 기대하게 되는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로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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