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자신과 닮은 에마의 죽음을 파헤치는 사이 서서히
자신의 목을 조르는 공포를 경험하는 제인!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아름다운 집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완벽한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것까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누가 봐도 완벽하고 아름다운 집,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 초음파 동작 감지 센서가 알아서 조도를 조절하고, 난방비를
따로 내지 않아도 될 만큼 효율 높은 설비에 스마트 센서가 거주자의 일상을 스스로 학습함은 물론, 불필요한 인테리어는 과감하게 제거하여 말
그대로 집 자체가 고고하고 당당한 자아를 뿜어내는 곳이다. 덕분에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아름다운 공간에 사로잡힐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완벽해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완벽한 삶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곳에서 사는 것을 감수할 수 있을까? 각종 금지 조항이
가득한 이백여 개의 규칙, 정리정돈을 비롯하여 삶의 방식까지 통제하는 시스템, 거기에 원인 불명의 죽음이 묻혀있는 곳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의 교차 시점이라는 구성이 보여주는 놀라운 심리스릴러
<더 걸 비포>는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과거의 에마와 현재 제인의 시점을 교차 구성해 정교한
심리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두 여인은 공교롭게도 최근에 아픔을 겪어 몸과 마음이 여러모로 지친 상태에 빠져있는 때에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를 소개받는다. 한밤중에 집에서 강도를 만나 성폭행을 당한 에마는 그 무엇보다 안전한 집을 찾던 중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의 완벽한
시스템에 마음을 빼앗기고, 아이를 사산한 제인은 이 완벽해 보이는 집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입주를 희망하게 된다.
그곳의 고요함과 당당한 모습.
그곳에서라면 내게 나쁜 일이 일어날 리 없어. / 31p
하지만 집을 설계한 건축가이자 집주인인 에드워드는 이 집에서 살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다듬어진 일정 규칙에 반드시
따를 것을 요구한다. 과거 집에서 쓰던 가구나 가전제품, 화분이나 장식품도 철저하게 금지시키고, 반년마다 건축학과 학생들이나 방문객들에게 집을
개방해야 하는 조건 등 철저히 금욕적인 삶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러한 까다로운 규칙과 남자친구인 사이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마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제인 역시 어렵지 않게 이곳에서 살기로 결정하는데, 매력적인 이 집의 주인인 에드워드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 한 몫 한 것이리라.
완벽한 집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설레던 것도 잠시, 제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에 살던 세입자가
이 집에서 죽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제인과 비슷한 나이에 외모마저 비슷했던 그녀의 이름은 바로, 에마다. 제인은 에마의
죽음에 어떠한 비밀이 숨겨진 것인지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거부할 수 없는 에드워드의 매력에 빠져들수록 그녀 역시 에마와 비슷한 행적을
쫒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에게도 스멀스멀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드리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집은 죽음과 함께 잉태되었다. 엄밀히 말해 두 개의 죽음. 즉, 이중의 사별.
그래서 내가 그 집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걸까? 그곳의 금욕적인 공간과 내 개인적인 상실 사이에 어떤 종류의 동질성이라도 있는 걸까? / 46p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는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에드워드의 눈을 의식하거나 그 눈이 언제고 따라다닐 것 같은 느낌이다. 한마디로 이 집과 내가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미장센이
된 것이다. 그가 내 인생을 지켜보고 있기에, 내 인생이 좀더 사려 깊고 아름답게 변한 것 같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집 밖의 세상,
즉 카오스와 추함이 지배하는 세상과 관계를 맺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 255p
너무나 닮은 외모의 두 여인, 상처투성이인 삶의 빈틈을 완벽하게 메워줄 것 같은 남자 에드워드, 그와의 치명적인
사랑, 완벽한 집에서 완벽한 삶에 가까이 다가가려 할 수록 세상과는 더욱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은 심리적인 공포. 이 모든 것을 굉장히
능숙하고 정교한 구성으로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더 걸 비포>는 프로이트의 반복강박이라는 개념을 통해 더욱 완성도
높은 심리스릴러를 구축해낸다. 그리하여 왜 인간은 과거의 실패와 고통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되는가, 그 위험하고도 비극적인 삶의 추이가 주는
공포를 과거와 현재의 교차 구성을 통해 더욱 극대화시킨다.
<더 걸 비포>는 심리스릴러답게 '강박'이라는 인간 내면의 속성을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라는 하나의 외적
구성을 통해 보여준 흥미로운 소설이다. 특히 과거의 에마와 현재의 제인의 시점을 정교하게 풀어낸 저자의 차분하고도 섬세한 필력이 곧
영화화되기까지 한다는 소식은 무척이나 반갑다. 저자의 차기작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