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 열어 가는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감동적인 레스토랑!

지금은 서로 이해해주고 소통하고, 실수를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사회의 분위기가 필요한 때!

 

 

  오랜만에 들린 친정 집 앞에 주차를 하려는데, 난처한 표정으로 아이 같은 외할머니를 어르고 달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어딜 가려고 그러느냐고 만류하는 나의 부모님과 막무가내로 걸음을 재촉하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벌써 수 차례나 본 광경이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무더운 땡볕에 겨울옷을 잔뜩 챙겨 입고 불쑥불쑥 밖으로 나가버리려고 하는 외할머니의 이 같은 치매 증상은 벌써 3년째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 날은 좋은 공기 마시러 바람 쐬러 나갔다가 느닷없이 식당에서 외할머니가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바람에 당황한 나의 어머니까지 펑펑 울어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외할머니가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있어 '치매'란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처럼 느껴진다. 외할머니의 몸과 정신을 갉아먹는 이 나쁜 병이 전염병처럼 우리 가족에게 퍼뜨린 그 무거운 기운을 아무리 이해하고 보듬으려 해도 쉽사리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간 치매 질병에 관한 여러 책과 이를 곁에서 경험하고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도 읽어보았지만 그런 경험 공유가 치매 질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치매를 다룬 내용의 이색적인 제목의 책 하나가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니, 별 이상한 식당이 다 있네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스태프들은 모두 치매나 인지 장애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란다. 가끔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을 수 있사오니 아무쪼록 양해 부탁드린다는 이 글귀, 어쩐지 난데없지만 뭔가 참신한 시도인 듯도 하고 과연 이 음식점 제대로 운영이 될 런지 걱정이 되기도 하는 마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뒤죽박죽입니다. 엉터리 식당입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손님들 모두가 즐거워합니다.

주문을 받고 있나 싶으면 옛날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삼매경에 빠진 할머니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손님. 틀린 메뉴가 나오면 본인들이 알아서 메뉴를 바꾸어 먹는 손님들. 불평을 토로한다거나 화를 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소통의 목소리가 퍼지며 종업원들의 실수를 척척 해결해 가는 모습들로 가득합니다. / 26p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기획자 오구니 시로가 우연한 기회로 가게 된 취재 현장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 낸 사례를 담고 있는 책이다. 치매 환자 간병 환경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고 있는 와다 씨의 현장을 취재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직접 만드는 요리는 대접받은 일이 있었는데, 주문한 햄버그스테이크가 아니라 느닷없이 만두가 나오자 문득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키워드를 착안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이를 실행하기 위한 기획안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열심히 홍보를 하며 돌아다닌 결과, 3개월 만에 와다 씨를 비롯해서 디자인과 홍보 전문가, 포털 사이트 담당자, 크라우드 펀딩 전문가, 방송국 스태프, 외식 서비스 CEO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뜻을 모아 주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일하는 식당. 애초부터 '주문을 틀린다'고 전제를 했기 때문에 혹여 주문한 메뉴가 나오지 않아도 싫어할 이유가 없는 곳. 오히려 엉뚱하게 나온 메뉴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는 이상하지만 뭔가 따뜻한 느낌이 감도는 식당. 물론 이 식당 하나로 치매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실수를 받아들이고 또한 그 실수를 함께 즐기는 것, 그런 새로운 가치관이 이 식당을 통해 발신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오구니 시로는 그렇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오픈한다.

 

 

 

   2017년 6월 3일과 4일 단 이틀, 도쿄 시내에 있는 좌석 수 열두 개의 작은 레스토랑을 빌려서 시험적으로 오픈하기로 했지만 이는 뜻밖에도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각종 SNS는 물론 TV방속국과 신문, 잡지사 등의 취재 의뢰가 쇄도하였음은 물론, 중국, 한국, 싱가포르, 영국 등 세계 20개국에 이르는 미디어들로부터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자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연락이 속속 들어온 것이다. 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은 뜻밖에도 하나의 작은 사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바로 손님 테이블로 주문을 받으러 간 치매 환자 요시코 할머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이때 요시코 할머니는 '내가 여기 뭐하러 왔지…….' 하고 주문을 받으러 온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손님이 "주문 받으러 오신 거 아니세요?" 하고 거들자, '어머나, 그랬구나' 하고 호호호 수줍게 웃는 표정을 지었던 게 찍힌 것이다. 오구니 시로는 이것이야말로 '주문이 틀리는 요리점'이 꿈꾸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닐까 하고 말한다.

 

 

 

깜빡 잊어버렸지만,

틀렸지만,

뭐 어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기획자인 오구니 시로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기획하고 오픈하기 전까지의 과정과 더불어 치매 환자들이 홀 서빙 스태프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간병 시설 직원들의 인터뷰,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의 경험담들이 담겨 있다. 특히 저마다 한 때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했던 이들이 치매라는 질병을 얻어 부득이하게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실수가 용인되는 이 따스한 식당 안에서 '나도 누군가를 돕고 싶다', '일하고 싶다',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가짐으로써 행복한 표정을 되찾는 모습은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무엇보다 치매 환자이기 전에 이들이 '사람'이라는 점을 환기시키며 그간 치매라는 질병을 두렵게 여기고 치매 질환자에 대해 모두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 여기기만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했다.

 

 

 

아내는 그날,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무대가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 기쁨에 넘쳐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치매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좀 더 알리고 싶다'는 생각.

'치매에 걸린 사람도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보여주고 싶다.'

그런 생각. / 116p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역시 그 존재 자체만으로 치매 환자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이번 일을 기획한 오구니 씨도, 꿈만 같은 일을 실현해낸 스태프들도, 거기까지 기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실수를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장소가 있다.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그 지점에 가치가 있지 않을까. / 127p

 

 

"치매 환자는 평생 자신의 의사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억제당해 온 역사 그 자체인 거지. 하지만 인간이 왜 멋진 존재인가.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인간이, 자신의 뇌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가장 멋진 것을 빼앗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그것을 지켜주는 것, 그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 152p

 

 

 

 

 

 

   늙는 것이 두려운 나라, 병드는 것이 불행하고 외로운 사회, 실수를 용인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스템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책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심각한 문제가 아니고서는 너그럽고 가벼운 마음으로 용인해줄 수 있는 이런 시도들과 갈등과 문제는 대화와 소통으로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이 작은 요리점을 통해서 배우게 된 것 같다. 나 역시 외할머니를 그저 대하기 힘들고, 우리에게 짐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 이전에 가족이고,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좀 더 너그러운 자세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를 해봐야겠다. 아울러 이 책이 많은 치매 질환자 가족들에게,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따뜻한 에너지를 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