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렬한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경찰소설의 진수를 보여주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팽팽한 대립, 예측불허의 결말로 마지막까지 몰입도 최고!

 

   1930년을 전후하여 미국문학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으로, 자연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주제를 냉철하고 무감한 태도로 묘사하는 스타일을 가리켜 우리는 '하드보일드'라고 부른다. 특히 장르소설 속에서 범죄 집단 및 경찰, 계급 조직의 구조와 속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냉정하고 비정한 캐릭터의 등장, 리얼한 성격 묘사, 폭력이나 각종 범죄를 과감하게 그려내 보다 극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결말에 이르는 특징을 지닌다. 하드보일드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영화 <무간도>나 <신세계> 등을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손꼽는데, 이와 같은 성격의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 하나가 영화와 함께 동명의 원작 소설로 최근에 출간되어 주목을 끈다. 바로 <고독한 늑대의 피>다.

 

 

 

경찰과 야쿠자의 세계를 노련하고 정교하게 구성해내 하드보일드의 진수를 보여주다 

 

 

   때는 1988년, '폭력단 대책법'이 시행되기 전으로 야쿠자 조직들이 한창 팽창하기 시작하여 히로시마를 격동의 도시로 물들이던 시기다. 소설 <고독한 늑대의 피> 속 히로시마 역시 진세이카이 계열의 폭력단과 아카시구미 계열의 폭력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팽배한 이권다툼과 자존심 싸움에서 비롯된 총격전 및 각종 살인 미수 등과 같은 범죄로 암측 천지와 다름없다. 때문에 이들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정의를 수호해야 할 경찰과의 대립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엘리트 신참 형사 히오카가 구레하라 동부서 수사 2과 폭력단계에 부임한다.

 

 

 

 

 

 

   히오카는 자신의 상관을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느닷없이 그에게 멱살을 잡히고, 야쿠자와 싸움에 휘말리기까지 한다. 오가미 쇼고. 익히 알려진 명성대로 히오카의 직속상관은 구레하라 동부서 수사 2과 주임으로 폭력단계 반장이자 경찰 표창 수상 100회에 빛나는 히로시마 현경 내 최고의 형사지만, 야쿠자 보다 더 야쿠자 같은 타입에 징계 처분 경력도 현역 최고라는 할 만큼 괴의한 인물이다. 더군다나 그는 히오카에게 야쿠자 세계와 같은 상명하복의 규칙을 요구하고, '폭력단이 사라지면 우리 밥줄도 끊겨'라고 태연하게 말할 정도로 수사를 위해서라면 폭력과 협박, 금품 갈취도 서슴지 않는 걸 보면 야쿠자와 유착 관계에 놓여 있다는 소문도 거짓은 아닌 듯하다.

 

 

"2과의 규칙은 야쿠자 세계의 규칙과 같아. 쉽게 말해서 운동선수들처럼 선후배 관계가 확실하다고 보면 돼. 선배의 터무니없는 설교나 기합도 묵묵히 견뎌야 하는데 거기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야쿠자는 평소에도 불합리한 세계에서 살아. 두목이 희다고 하면 까마귀도 흰 거야.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싸우는 거라고. 야쿠자를 이해하려면 그들처럼 불합리한 세계에 살아야 하는 거야." / 23p

 

 

 

   수사 2과에 배정받자마자 히오카는 오가미와 함께 폭력단 가코무라구미 계열의 구레하라 금융회사에서 경리로 일하고 있던 우에사와 지로의 실종 사건을 맡게 된다. 비록 히로시마 현경 내 최고의 괴짜 같은 인물이지만 뛰어난 직관과 통찰력, 폭력단 조직원과의 친분 등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정보력을 갖춘 오가미는 이 사건이 단순한 실종이 아닌 배후에 폭력단이 있다는 사실과 더 큰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직감한다. 그런 가운데 폭력단 준조직원 살해 사건과 시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발포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폭력단 간에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위험한 상황이 불거지고 만다. 일촉즉발의 대립으로 도시 전체가 위험에 휩싸이기 직전, 이를 중재할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오가미 뿐. 하지만 14년 전 미결 사건의 용의자로 오가미를 지목하는 투서가 날아들고, 오가미는 행방불명되기까지 하는데…….

 

 

 

"당신, 미쳤어……."

입술이 덜덜 떨렸다.

오가미가 웅크리고 앉으며 요시다의 얼굴을 보았다.

"맞아, 난 미쳤어. 수사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거야. 네가 불지 않더라도 나중에 가코무라에게 네가 밀고했다고 일러바칠 수도 있어." / 206p

 

 

"폭력단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아. 인간은 말이지, 밥을 먹으면 똥을 눠야 해. 밑을 닦을 휴지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폭력단은 화장실 휴지 같은 거야." / 213p

 

 

 

 

 

 

   이렇듯 <고독한 늑대의 피>는 경찰소설이 보여주는 조직의 생리와 사실적인 묘사, 범죄소설이 갖춘 정의와 불의의 대립 요소들을 치밀하게 조직해내 마지막까지 흡인력을 잃지 않는다. 무엇보다 암흑세계의 복잡한 이권다툼과 구조적 속성을 매우 노련하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저자의 힘은 그간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유사계열의 장르소설에 대한 편견을 철저하게 깨부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또한 암흑세계의 위계질서 확립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경찰 조직 내부의 불편한 시선과 그 어떠한 부정도 마다하지 않는 오가미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통해 진정한 정의의 실체는 무엇인지, 더불어 세상에 완전한 정의란 없음을 깨닫게 한다는 점은 퍽 인상적이다.

 

 

 

가네무라는 비열한 인간이고 죽어 마땅한 악당이다. 아키고가 자기 손으로 남편의 복수를 하려고 한 심정도 이해가 간다. 법률은 사적 처벌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법률이 가네무라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다면 정의는 어떻게 되겠는가? 살해를 저지른 아키코와 살해를 당한 가네무라. 실체적 정의는 어느 쪽에 있을까? / 426p

 

 

 

   강렬한 캐릭터, 몰입도 높은 경찰 소설의 진수를 느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소설을 꼭 추천한다. 소설 <고독한 늑대의 피>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2018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된 바가 있다고 하니 이 역시 찾아서 함께 보면 더욱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예고편들을 찾아 미리 보았는데, 내가 상상했던 오가미보다 선 굵은 캐릭터의 주인공이 등장해 사뭇 놀랐지만 원작 소설의 탄탄한 구성과 영상미가 어우러진 꽤 진한 하드보일드 영화일 듯하여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