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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만이 하는 것 The Ride of a Lifetime - CEO 밥 아이거가 직접 쓴 디즈니 제국의 비밀
로버트 아이거 지음, 안진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평점 :

이토록 우아하고, 대담하면서 탁월한 리더십이 또 있을까!
비주류에서 최고의 미디어 제국, 디즈니 은하계의 중심에 선 밥 아이거의 기적 같은 이야기!
지금의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있어 디즈니 영화를 빼놓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디즈니’와 ‘도날드 덕’이 저 아득한 기억의 시작점에 머물러 있다면, 아름다운 스토리라인과 황홀한 O.S.T가 돋보이는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알라딘’ 등의 작품들은 우리의 유년, 성장기를 늘 함께 했다. 거기에 ‘토이스토리’, ‘카’ 등 비약적인 영상 기술의 발전을 이룬 일련의 작품들은 현재 우리 아이가 태어나 다시 찾아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어 ‘겨울왕국’, ‘어벤져스’ 시리즈까지. 과연 ‘최고의 미디어 제국’, ‘디즈니 은하계’라고 표현할 만하다. 어쩌면 우리는 정서적으로 디즈니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플에는 스티브 잡스가, 페이스북에는 마크 저커버그가, 알리바바에는 마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디즈니에는 밥 아이거가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무려 15년간 이 대제국을 이끌어온 디즈니의 CEO 밥(로버트) 아이거가 직접 쓴 최초이자 유일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얼른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혁신 아니면 죽음이다
밥 아이거는 월트 디즈니 이래 디즈니의 6번째 CEO로, 침체되어 있던 노장 기업 디즈니를 부활시키고 혁신을 주도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디즈니만이 하는 것』에는 디즈니가 100년 된 브랜드를 지키면서도 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훌루, 21세기폭스에 이르기까지 거물 콘텐츠를 차례로 흡수하며 미디어 제국이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러면서 뉴욕 롱아일랜드의 노동자 동네에서 태어나 피자헛에서 피자를 굽던 평범한 청년이 디즈니의 CEO가 되기까지의 과정, 위기와 실패의 대처법, 리더십 원칙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경험했던 각종 노하우를 가감 없이 전하고자 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자서전도 아니고 회고록도 아니며 여느 리더십 책이 그러하듯 딱딱한 경영 원칙만을 열거하지 않는다. 그는 확실히 스토리텔링을 다룰 줄 아는 작가이자 경영자인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어떻게 픽사, 마블, 21세기폭스와 같은 대규모 인수합병을 추진할 수 있었는지, 그 불가능할 것 같은 협상 뒤에 절대로 꺾이지 않을 것 같았던 픽사의 스티브 잡스와 마블의 아이크 펄머터, 영화 <스타워즈>를 탄생시킨 조지 루카스를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인지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확인하게 된다.
그는 스포츠 프로그램이란 이벤트를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훌륭한 스토리를 전하려면 탁월한 재능이 필요하다. 그는 내가 만난 상사 중 가장 유능한 인물이자 무슨 일에도 굴하지 않는 혁신가였지만, 주변에 자신만큼 유능한 사람들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 56p
룬이 내게 준 금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후 내가 맡은 모든 직무에 길잡이가 되었다. ‘혁신 아니면 죽음이다. 새로운 것이나 검증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면 혁신은 없다.’ / 57p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하라.”
내가 룬에게서 배운 모든 것 중,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리더십의 특질 중 하나인 이것을 나는 ‘완벽에 대한 집요한 추구’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이것은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특정한 규칙의 집합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내면화한 바로 그것은 ‘어떤 것을 희생하더라도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완벽주의’가 아니다. 평범함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 58p


“결국 최종적인 계약의 성사 여부는 매번 인간적인 요소에 좌우되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의 하나는 이 한 문장에서 드러난다. 이는 픽사와 마블, 루카스필름의 인수를 돌이켜보며 그가 남긴 말이다. 즉, 매번 협상이 필요한 복잡한 쟁점들이 있기 마련이고 길고 긴 시간 동안 밀고 당기는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결국 최종 결정에는 ‘인간적인 진실성’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이야기다. 스티브는 디즈니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픽사 고유의 본질을 존중하겠다는 밥의 약속을 얻고자 했고, 아이크는 마블 팀이 가치를 인정받고 새로운 조직 안에서 발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싶어 했으며 조지 루카스는 자신의 유산이, 자신의 ‘어린 자식’이 디즈니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밥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꾸준히, 진정성 있게 보여주었다. 상대방이 이룬 업적을 존경하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고결함을 믿고, 품위와 정직을 잃지 않았다.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에서 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사람’에 있다는 그의 경영 원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시에 피드백을 주지 않는 한 사람의 태도가 어떤 식으로 조직에 불필요한 중압감과 비효율을 야기하는지 절감했다. / 78p
다른 무언가를 그토록 갈망하는 경우 당장 맡고 있는 책무에 최선을 다하기가 힘들어진다. 야망이 역효과를 낳는 것이다. 결국 야망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방법을 아는 것이 관건이다. 주어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인내심을 유지하며 기여와 확장, 성장을 위한 기회를 찾아야 한다. 동시에 그런 기회가 찾아왔을 때 보스의 뇌리에 적임자로 떠오를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도록 태도를 가다듬고 에너지와 집중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 141p
CEO와 2인자 사이의 역학은 종종 긴장에 휩싸이는 게 사실이다. 누구나 자신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길 원한다. 비결은 자신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수준의 자의식을 갖추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훌륭한 리더십은 대체 불가능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추도록 아랫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있다. 리더의 의사결정 과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자질을 파악해 그들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 142p


밥 아이거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분야뿐만 아니라 사업체를 운영하든 팀을 관리하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누군가와 협력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에 몇 가지 기본 원칙과 함께 진정한 리더십의 10가지 대원칙을 소개하는데, 이는 리더십을 떠나 누구나 새겨볼 만한 내용인 듯하다. 그가 첫 번째 대원칙은 ‘낙관주의’다. 특히 어려운 순간에, 리더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능력을 통해 모두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좋다고 말하거나,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신념을 전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리더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최상의 결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리더가 분위기를 설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누구도 비관론자를 따르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두 번째는 창의적인 의사결정에 필수인 ‘용기’다. 셋째는 우선순위를 자주, 명확하게 알리기 위해 필요한 ‘명확한 초점’이다. 다음은 시의 절적한 ‘결단력’, 혁신을 이끄는 ‘호기심’, ‘공정성’ 있고 품위 있으며 ‘사려 깊은 태도’다. 끝으로 항상 정직하고 진실된 태도를 담은 ‘진정성’이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례를 보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불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지를 볼 수 있다. 뻔한 이야기 같겠지만 이것이 무려 15년이 지나서도 그가 건재한 이유가 아닐까.
리더는 주변 사람들이 일상의 업무를 추측해서 처리하도록 만들지만 않아도 그들의 사기를 아주 많이 진작시킬 수 있다. CEO는 회사와 고위간부들에게 로드맵을 제공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일은 복잡하고 집중력과 에너지를 상당히 많이 쏟아부어야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점은 이곳이다’,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은 이것이다’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다. 일단 그렇게 단순한 목표가 설정되고 나면 상당히 많은 의사결정을 수월하게 내릴 수 있다. 그러면 조직 전체를 감돌던 불안감도 잦아들게 된다. / 196p
『디즈니만이 하는 것』을 읽으며 이토록 우아하고, 대담하면서 탁월한 리더십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이니까 당연히 상당수 미화된 부분이 있을 것이라 지적할 법 하지만, 공정성과 진정성을 경영 철학의 대원칙으로 삼은 그답게 진실 되고 솔직한 그의 면모에 누구나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과거의 우리가 그러했듯, 우리는 앞으로도 디즈니와 쭉 함께 웃고 울며 성장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밥 아이거의 철학이 디즈니의 모든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계속해서 구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