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품위에 관한 가장 진정성 있고 철학적인 고찰!
품위란 차별과 이기주의, 폭력과 혐오로 가득한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가치다!
최근 미국의 비무장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에 숨진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분노하고 있다. 더욱이 성난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키며 대형마트를 약탈하고 건물이 불타는 등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지고 있는 중이다. 어디 인종차별뿐일까. 아파트 경비원 갑질과 폭행 문제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역시 여전히 만연한 계급의식과 인간의 존엄성 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대구에 수많은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 조회수를 올릴 목적으로 확진자 추격전을 벌이는 가짜 영상을 만든 이들도 등장했으니, 그야말로 무례하다 못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이들이 도처에 넘쳐나는 세상이다.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악셀 하케 역시 예의 없는 사람, 배려 없는 사람 그리고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 등 행태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로 인해 한 사람 한 사람이 겪는 불쾌한 일화는 한번 몰아치고 마는 파도가 아니라 온 세상을 뒤덮을 정도로 광란의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 점차 통제를 벗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걸까. 또 왜 다들 증오에 차서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일까. 모두가 힘든 시기에 우리는 결국 각자도생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악셀 하케는 자신의 책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을 통해서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공존을 위한 포용과 연대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를 스스로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에 대한 해답은 바로 ‘품위’에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타인을 향한 책임이 있다
품위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직품과 직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며,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사물이 지닌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을 뜻한다. 개인적으로는 한 인간의 고매한 정신이자 타인을 향한 이해와 배려의 자세이며 사회적으로는 기본적인 준법정신을 지키며 넓게는 공정성을 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악셀 하케 역시 품위를 떠올리며 정의로움·공평함, 타인과 연대할 때 느끼는 인간의 기본적 감정, 타인과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열려 있는 태도, 자신의 언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공명정대함, 이 모든 사항들을 기꺼이 지키려는 의지가 있어야 품위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품위란 어떤 정형화된 형질이 아니기에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지켜야 하는 품위란 무엇이며, 지금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며 우리가 마주한 문제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해볼 것을 독려한다.
케스트너의 소설에서 보여주듯이 품위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며, 매 순간 자신에게 질문을 건네면서 끊임없이 찾아가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품위를 갖추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을 가끔은 의심하고 반문할 필요도 있다. 다들 흔히 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타고난 언행을 할 때에도 혹시나 품위에 거스르지 않는지 곱씹어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품위에 대해 몰두하고 신경 쓰고 노력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문명의 진보가 아닐까? / 31p
우리는 한동안 타인과 공존하는 방법을 고심하지 않았다.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 사는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더불어 지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며 공론화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여기에는 타인과 대화할 때 지켜야 할 어조와 성량 그리고 단어 선택까지도 포함된다. 즉 타인을 대하는 모든 태도와 자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 48p
책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 사건 사고들, 철학자의 사유 혹은 문학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는 품위에 대한 여러 고찰들, 친구와의 일상적인 대화 등을 통해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품위란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품위를 잃은 사회의 시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은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직시하게 한다. 이를 테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하수구’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공의 이름 뒤에 숨어 평소에는 결코 하지 않을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언어를 인터넷상에서 뻔뻔하게 일삼는 이들,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선거 유세 도중 신체장애를 가진 기자의 모습을 대중 앞에서 대놓고 흉내 냈던 일화, 미국 출신의 정치학 교수 로버트 켈리가 박근혜의 탄핵과 관련해 BBC와 인터뷰 하는 생방송 과정에서 한국인 아내가 부랴부랴 아이들을 방밖으로 데리고 나간 것을 두고 보모 논쟁이 일었던 댓글 등이 그러하다.
악셀 하케는 하라리와 아피라의 책을 통해 인류사를 더듬어가며 오늘날 이러한 현상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연대와 단결을 잊고 만, 공동체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모습에서 그 원인을 발견한다. 물론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도덕적 규범”이라는 것이 있지만, 수많은 개인들이 사회 공동체를 오직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질서와 규범에는 무관심한 채 자유를 위한 고유의 행동반경을 방어하고 있는 한, 현대 사회는 똑같은 문제와 고민을 계속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속과 분열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는 바로 그 한 가운데, 즉 ‘중간 세계’에서 개인과 타인이 서로 조율하고 화합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면서(사적 영역을 존중하며) 나란히 성장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품위가 존재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라는 것이다.
채식이든 외국인 증오든 몸에 대한 집착이든 어디 한곳에 광적으로 매달리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폐쇄된 시스템 안에서 단순한 진실만을 추구하면 된다. 한 가지 전제가 있다면 충격이나 동요를 막아줄 든든한 방호벽을 세워야 한다. 인터넷상의 단호하고 독단적인 어조는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본인이 철석같이 믿는 진실을 뒤흔드는 모든 것을 위협으로 느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온 세계관이 흔들림으로써 스스로의 안전이 통째로 위협받는다고 여긴다. 따라서 광적으로 무언가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위험이나 위협이 될지도 모를 작디작은 징후에도 점점 더 편집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을 보인다. / 146p
융거는 카뮈와 무척 유사한 맥락으로 “연대감을 느끼는 능력”을 강조한다. 즉 인간인 우리 모두에게는 연대 의식을 느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융거의 책은 미국 사회를 중점적으로 조명하고 있지만, 그의 논지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이나 독일처럼 위기에 놓여 있는 모든 현대 사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표류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문제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어딘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무언가 잃어버린 기분을 느끼고 있다. 삶의 방식이 세상과 엇박자를 내는 이유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지 못하는 한 현대 사회는 똑같은 문제와 고민을 계속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 217p



악셀 하케는 우리 모두에게는 타인을 향한 책임이 있다는 말과 함께 공생 즉, 연대 의식이야말로 품위 있는 사회를 이루는 핵심이 아닐까 하고 제안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자세와 배려이다. 이를테면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세계에서 나름의 규칙을 하나둘 만들어가며, 석기 시대 때부터 물려받은 충동을 스스로 통제하면서 동물의 조심성처럼 서로가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이에 더해 우리 모두가 각각 한 명의 시민으로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타인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애써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꾸준한 대화를 통한 이해와 설득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관용의 자세를 일상의 모든 상황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다음과 같은 모습을 띤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고 느낄 듯하다. 이를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결핍된 것을 분명히 시인하고, 이 시대의 복잡함과 난해함을 견뎌내며, 이 모든 어려움을 풀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했음에도 쉬이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디 복잡함을 피해 단순함으로 숨어들지 않기를 바란다. / 186p
실제로 우리는 지식의 핵심이 아닌, 그저 지식의 표면이나 핵심으로 가는 중간 단계 정도만 알고 있을 때가 종종 있어. 그렇게 지식의 맥락을 알지도 못하고 배후 관계가 빠진 상태에서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반응하곤 하지. 정치 현상을 해석할 때도 이랬다저랬다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잖아.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래. 그럼에도 우리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면 안 돼. 도리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해. / 213p
대화의 방식이 달라지면 서로를 이해하기도 수월해지고, 심지어 관계도 더욱 개선됐다고 해. 다시 말해 회복의 핵심은 상대방을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비난이나 지적 대신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거야. 그러다 보면 서로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상대를 설득할 수도 있다는 거지.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는데, 우선 두 사람이 서로를 적이라고 인식해서는 안 돼. 상대방도 나처럼 나름의 목표를 가진 사람이며 그 목표가 나와는 조금 다를지라도 그리 나쁜 목표는 아니라고 받아들여야 해. / 229p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건 품위의 문제입니다.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페스트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품위입니다.” “품위가 뭔데요?” “저도 그게 일반적으로 무슨 뜻인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제가 지금 처한 상황에선 품위가 무엇인지 알아요. 제 본분을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지요.” 리유는 의사로서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타인과 연대감을 느끼며 자신의 본분을 기꺼이 수행하려 한다. 그는 그것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지킬 수 있는 품위이며, 페스트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무엇으로 정의하든, 우리 모두 각자가 지킬 수 있는 그리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품위를 잊지 말고 그것을 정직하게 수행해나갈 때 세상은 좀 더 나아지리라고 믿는다. 그것이 코로나19의 시대에서, 차별과 이기주의, 폭력과 혐오로 가득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던지는 품위에 관한 여러 질문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공유되어 저마다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