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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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 화가의 삶과 작품을 만나는 지적 유희의 시간!

이 책을 읽고 나면 작품을 보는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작품을 읽는 눈은 없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은 좋아서 나는 미술관을 자주 찾는다. 특별한 기술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주로 작품에서 드러나는 정서적인 감각을 감상하는 것에 의지하는 편이다. 그러다 팸플릿이나 해설사를 통해 작가의 내력이나 작품이 의도하는 바를 읽거나, 그저 감상만 했을 때에는 알 수 없는 뒷이야기까지 듣게 되면 작품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종종 지역 작가 위주의 작품 전시라던지 다양한 전시를 다루지 못하는 지역적 한계가 아쉬울 때면 월간 잡지나 미술 에세이를 찾기도 한다. 특히 미술 에세이는 국내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유명 작품에, 방대한 미술사를 비롯하여 해당 작품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관점과 저자의 사적인 감상까지 읽을 수 있다는 좋은 장점이 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 작가 줄리언 반스가 이번에는 미술 에세이로 돌아온 것이다. 이쯤 되면 앞서 발표한 뛰어난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 『시대의 소음』과 요리를 주제로 한 에세이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를 떠올려보았을 때, 대체 그가 다루지 못할 영역이란 무엇인가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게다가 전작에서 시대를 통찰하고 예술가의 내적 내레이션을 자신만의 지적 감수성으로 치열하게 담아낸 그라면, 이 미술 에세이 역시 여타의 미술 에세이와는 다른 수준의 정교함을 선보일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과연,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색다른 주제와 기법을 차용하는 소설가답게 화가에 따라 다른 형식의 글과 독창적인 해석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제 우리는 그가 선보이는 17편의 큐레이션을 관람하며 그저 황홀해질 준비만 하면 된다.

 

 

 

 

 

 

미술은 새롭게 하고자 하는 욕구와 과거와의 부단한 대화다

 

 

   줄리언 반스는 제리코에서 하워드 호지킨에 이르기까지, 미술이 어떻게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를 거쳐 모더니즘에 이르렀는지를 17편의 이야기에 걸쳐 안내한다. 그는 미술사학자도 아니고, 미술 전공자도 아니지만 유년 시절부터 쌓아온 미술을 향한 순수한 애정으로,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작품 너머의 세계까지 치열하게 몰두한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림 한 점으로 이렇게까지 상세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없었으리라. 이를 테면 예술가의 사생활이란 다소 사소해보이지만 작품의 탄생 배경과 이해를 돕는 가장 결정적인 도구가 되어줄 것이며, 미술에 관한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날카로운 비평은 끊임없이 독자의 지적 유희를 자극한다. 여기에 사실과 사실 사이에 비어진 공백을 유연하게 메우고, 사실감 넘치는 문장과 생생한 표현으로,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입체감 있게 이야기를 구현해낸 저자의 필력은 단연 돋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너무도 쉽게 들라크루아와 마네를 거쳐 세잔과 드가의 사적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게 된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사실성을 가지고 출발한다. 과거, 세네갈 탐험대에 오른 메두사호의 프리깃함 선원들은 배를 잃게 되자 뗏목을 만들었고 총 150명의 인원이 그곳에 옮겨 탔다. 하지만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력했고, 끔찍한 정신착란으로 인해 갈등이 빚어졌으며 서로를 죽고 죽이며 마침내 인육을 먹는 극한의 상황에 치닫게 되었을 땐 열다섯 명의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그렇게 표류한 지 열셋째 날, 아르고스호를 만나 극적으로 구조되고 훗날 두 사람이 이 표류의 시련을 쓴 글을 읽고 제리코는 사건 기록을 수집한다. 메두사호의 재난에서 살아난 목수를 찾아내 뗏목의 축적 모형을 만들게 하고 그 위에 생존자들의 밀랍 모형을 만들어 얹는다. 주위의 공기에 죽음이 스며들도록 잘린 머리와 절개된 팔다리를 그려 화실 여기저기에 걸어두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재난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바로 여기에서 줄리언 반스는 제리코가 그리지 않은 것(폐기된 발상)과 그린 것(목표에 가까운 성과)들을 통해 이 그림이 단 하나의 장면으로 탄생하게 된 과정을 소설처럼 재구성함으로써 ‘화가는 강 하류를 향해 술술 실려 내려가 햇빛 가득한 저수지라는 완성된 그림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조류가 맞부딪치는 망망대해에서 항로를 잡고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끔찍한 절망이 지배하는 논쟁 끝에, 아직 성한 열다섯 명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공익을 위하여 병든 동료들을 바다에 집어던지자는 의견에 합의했다. 계속되는 죽음을 보고 마음이 냉혹해진 선원 세 명과 군인 한 명이 그 결정의 집행을 담당했다. 죄 없는 자와 죄 있는 자가 분리되듯이 성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분리되었다. / 28p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든, 이 그림에서 그의 존재는 환호하는 인물의 존재만큼이나 강렬하다. 이 균형으로 미루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먼저 이 그림은 아르고스호를 처음 목격했을 때의 중간점을 나타내고 있다. 즉, 아르고스호는 15분 전에 눈에 띄었고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15분이 남았다. 배가 계속 다가오고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확신하지 못한 채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 뗏목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을 포함한 몇몇은 배가 멀어져가고 있으며 자기들이 구조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이들 때문에 <난파 장면>은 조롱당하는 희망의 표상으로 해석된다. / 48p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은 여성의 신체 부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그 관능적인 섬세함은 위협적이리만치 사실적이다. 이 도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자 독단적인 미감의 소유자인 쿠르베는 미술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언제나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며 거창하게 꾸짖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프랑스에서 가장 자부심 강하고, 가장 오만한 사람”으로 일컬었고, 자기 홍보에도 능한 자였으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거절한 일화는 과연 허세의 극치답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프랑스 여자라도 아내로 맞을 수 있다며 거만하게 편지를 썼다가 여성으로부터 퇴짜를 맞고 악담을 해대는 모습은 또 얼마나 치졸한가. 이렇듯 자만심 넘치는 그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고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나폴레옹 3세에게 “그는 내게 부당한 형벌”이라는 글까지 쓸 수 있었던 호기로 보아서, 예의 그 솔직함에는 성역을 두지 않는 일관된 사람이었나 보다. 덕분에 우리는 작가의 성격과 태도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화실>의 구성은 중세의 세 폭짜리 그림을 연상시킨다. 양옆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위에는 신과 천사가 사는 아득히 넓은 하늘이 자리한 그런 그림 말이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마리아? 하느님과 이브? 글쎄, 여하튼 쿠르베의 그림에서는 쿠르베 자신과 모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거기에 앉아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어쩌면 쿠르베가 왜 바깥이 아니라 화실에서 풍경을 그리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그는 그저 이미 존재하는 세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 세상을 창조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화가라고. 이렇게 해석해보자, <화실>은 엄청난 신성보독이거나 예술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극단적인 주장이라고. 또는 둘 다라고. 각자의 관점에 달린 문제다. / 93p

 

 

그의 그림에는 ‘개성’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영혼은 그리는 게 아니야.” 세잔은 투덜거리곤 했다. “몸을 그려야지. 젠장, 몸을 잘 그리기만 하면, 영혼은-몸에 그런 게 깃들어 있다면-사방에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 단체브가 현명하게 지적했듯이, 세잔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실물과 닮았다는 점보다는 인물이 거기 실제로 있다는 기분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데이비드 실베스터는 세잔을 가리켜 “우리가 실제로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밀도의 재현에 있어서는 최고”라고 평했다. / 164p

 

 

 

 

 

 

   보나르는 야외 생활을 그릴 때조차 실내 생활의 화가다. 풍경화는 집이라는 안전한 곳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그리거나 높은 발코니에서 그린 것이 많다. 그런 그림을 직접 보면 실내 그림처럼 긴장감과 정적인 분위기가 여전히 유지된다. 피카소는 보나르를 두고 이렇게 주장한다. “감수성이 넘쳐나서 좋아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좋아했다”고. 여기서 좋아하지 말아야 할 것이란 바로 마르트를 가리킨다. 보나르는 무엇 때문인지 이 여자와 집에 틀어박혀 그녀가 들어가는 그림을 385점이나 그렸던 것이다. 욕실이든 침실이든, 마르트는 사방에 또 나타나고 나타난다. 그는 “인물은 배경의 일부여야 한다”고 믿었기에, 물병과 식탁보, 덧문과 라디에이터, 타일과 욕실 매트 같은 것들 사이에서 마르트는 가구의 일부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385점이라는 방대한 작품의 양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들이 보여주는 것은 행복일까, 슬픔일까 의구심이 든다는 점이다. 심지어 보나르 말년의 마르트 누드화들은 에로틱해보이지도 않는다. 사실 모델이자 정부이자 아내로서 평생에 걸친 집착의 대상이었던 마르트와의 사이에 르네가 자리를 빼앗고 들어서려했던 일이 있었다. 보나르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화가 지망생이었던 르네에게 청혼했다가 마르트에 의해 좌절되었고 이 일은 르네가 파리의 한 호텔 방에서 자살하는 사건으로 끝을 맺었다. 이제 우리는 보나르의 자화상마저 왜 더욱더 비참하고 생기 없는 외판원처럼 변해버렸는지, 줄리언 반스가 들려준 이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얻는다.

 

 

 

우리는 스스로의 결점을 깨닫게 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브라크는 이보다 더 급진적으로 접근해서, 결점을 아예 무시해버렸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미술의 진보는 미술가가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더 잘 알게 되는 데 있다.” 간단히 풀자면 이런 말이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이 점에서 브라크는 인체를 잘 그리지 못하는 자신의 결점을 일종의 장점으로 승화시키겠다고 결심한 르동과 비슷하다. / 294p

 

 

우리는 그(올든버그)의 오브제를 마주했을 때 가만히 있게 되지 않는다. 그 앞에서 재치 있는 명언을 요구하고, 소재와 변화를 확인하고, 그 매끄러운 마무리를 승인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야, 그 <치즈버거> 봤어? 그거 재미있지 않아? 야구 글러브는? 찌부러진 변기는? 그렇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우리는 전부 다 봤다. 그것들이 우리의 기억에 남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건 하나의 성취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심금을 울릴까? 어떤 방향으로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까? 어쨌든 적어도 우리의 얼굴은 움직인다. 우리는 미소 짓고 낄낄거리고 어리둥절해졌다가는 다시 미소 짓는다-그리고 이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 331p

 

 

 

 

 

 

   책의 구성 중에서 ‘이것이 예술인가?’를 주제로 한 내용이 특히 흥미롭다. 책에는 다소 놀라운 조형물 사진 두 점이 나란히 놓여있는데, 하나는 뮤익의 <죽은 아빠>이고 또 하나는폴 리셰의 <운동 실조증에 걸린 비너스>다. 둘 다 알몸을 하고 있는데, <죽은 아빠>의 경우 미술관 바닥에 설치된 반들반들한 마감 칠과 하이퍼리얼리즘적 정밀성으로 인해 작가의 다정하면서도 냉혹한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외소하고 저 침묵된 죽음은 우리에게 죽음의 작용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와 유사한 느낌의 <운동 실조증에 걸린 비너스>는 마르고 나이에 비해 빨리 늙은 알몸의 여자로, 그녀가 운동 실조증 즉 척수매독으로 인해 극도의 고통을 겪은 몸임을 알 수 있다. 왼팔의 관절 안쪽은 바깥쪽으로 거의 완전히 돌아갔고, 오른발은 아예 90도로 꺾였으며, 왼쪽 무릎은 기괴하게 부풀어 올라있다. 이 쇠약하고 고통 받은, 유방이 거의 없는 여자의 형상을 보고 있노라면 고통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엄숙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죽은 아빠>는 미술품으로 전시하고 판매하기 위해 제작된 것인 반면, <운동 실조증에 걸린 비너스>는 신경계 질병을 연구하는 선생들과 학생들을 위한 교육 자료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는 오르세 미술관의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우리는 이 여인을 통해 예술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할지 고민해보게 된다. 줄리언 반스는 이에 대해 이렇게 피력한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물건이고, 이에 대한 우리의 살아 있는 반응이다. 평가 기준은 간단하다. 그것이 우리 눈의 관심을 끄는가? 두뇌를 흥분시키는가? 정신을 자극하여 사색으로 이끄는가? 가슴에 감동을 주는가?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 <운동 실조증에 걸린 비너스> 때문에 론 뮤익의 <죽은 아빠>의 강렬함이나 그 감동이 조금이라도 약화되는 일이 없다. 비너스 여인은 <죽은 아빠>의 동료이자 선구자가, 그리고 물론 경쟁자가 되어준다”고 말이다.

 

 

 

자아를 논하는 철학의 한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일화성과 서사성의 쌍둥이 같은 양극 사이 어느 한 지점에 자리한다. 그 둘의 차이는 존재론적인 것이지 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일화주의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상이하게 전개되는 부분 부분들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느끼고 그렇게 믿는다. 그러면서 더 파편적인 자아의식을 가지게 되며, 자유의지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서사주의자는 일정한 연관성과 지속적인 자아를 느끼고 그것을 찾아낸다. 그리고 자신의 자아와 연관성을 구축하는 도구로서의 자유의지를 인정한다. 서사주의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실패에 죄책감을 느낀다. 일화주의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나서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서로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의 사생활보다 더 순수한 일화주의자의 예는 없을 것이다. / 355p

 

 

예술 작품은 언젠가는 작가의 전기를 벗어나 자유로이 떠돈다는 특징이 있으니까. 어느 한 세대에서는 거칠고 비열하고 비예술적이고 차가웠던 것이, 다음 세대에 가서는 진실된 것, 심지어 삶의 아름다운 화신이 되고 삶을 표현하는-또는 심화하는-모범이 되기도 한다. / 377p

 

 

 

 

 

 

   제목에서는 지극히 사적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미술에 관한 폭넓은 지식과 이해 앞에서 우리는 적극 공감하게 된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아무도 없는 미술관에 홀로 들어가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 미술 입문자에게는 좋은 안내자가 되고, 미술 애호가에는 황홀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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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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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흔적을 좇아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길 위에서 발견한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의 기록들로 나를 채우는 시간!

 

 

 

   몇 달 전에 이탈리아 여행책을 읽다가 ‘단테를 따라 떠나는 투어’를 테마로 한 기획이 있어 관심이 생겼다. 단테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작품 도메니코 디 미첼리노의 <단테의 신곡>이 있는 두오모를 시작해 단테가 세례를 받은 산 조반니 세례당, 기도드리는 베아트리체를 훔쳐보았던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사랑에 빠진 지 9년 만에 처음 말을 걸었던 산타 트리니타 다리 등을 둘러보는 순이다. 뿐만 아니라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베로나에는 두 청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여전히 가슴 절절하게 남아 있다. 아쉽게도 과거의 영광과 달리 지금은 작은 박물관 정도에 지나지 않는 쓸쓸한 흔적만을 남기고 있는 곳도 있지만, 여전히 유럽은 곳곳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의 자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어 낭만적이다. 과연 온몸의 감각을 깨우고, 사랑과 낭만의 문장 사이를 산책하며 위대한 예술가들의 여정을 따라가 보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산책자의 인문학」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꼭 이런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천천히 걸으며, 삶 사이에서 예술의 낭만을 엿보다

 

 

 

레온 트로츠키, 지크문트 프로이트, 알프레트 폴가, 슈테판 츠바이크, 페터 알텐베르크, 아돌프 로스 등 위대한 예술가와 건축가, 철학자를 만나보세요. 농담처럼 들리는 이 말은 1876년에 문을 연 카페 센트럴의 일상이었습니다. / 5p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는 링 스트라세라는 순환도로가 있는데, 여기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센트럴’에는 이러한 문구가 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철학자 등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곳곳에 손때를 묻혔을 것을 생각하면, 평소에 자주 마시던 커피와 디저트도 유독 특별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그래서 「산책자의 인문학」의 저자 문갑식 기자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꼭 여행 하는 곳과 관련 있는 예술가와 작품을 미리 찾아본다고 한다. 카페 센트럴에서 마시는 커피가 특별해지는 것처럼 우리가 걸작이나 명작이라 부르는 작품을 한껏 감상하고 여행지로 떠나면, 눈에 보이는 공간의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까지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책자의 인문학」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여러 도시와 마을을 중심으로 작가 개인의 삶은 물론, 위대한 예술 작품의 탄생 배경과 그것이 담고 있는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예술사적인 의미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다루고 있어 예술가와 함께 그들이 남긴 흔적을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낯선 유럽의 도시와 마을이 친숙해지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결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책은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위대한 예술가 15인의 흔적을 따라간다. 1부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예술의 도시를 산책하다’ 편에서는 피렌체의 보티첼리, 빈의 클림트,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를 지나 프로방스에서 고흐와 노스트라다무스를 만난다. 이중 오랫동안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고 건축과 예술의 도시이기도 한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만큼 오랜 역사와 아름다움으로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다음 두 단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로 ‘르네상스’와 그 르네상스의 터전을 만든 ‘메디치 가문’이다. 르네상스, 특히 서기 15~16세기의 100년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매우 흥미로운 시기다. 예술,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오늘날까지 위대한 예술가로 이름을 남긴 이들이 이 시기 피렌체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다.

 

 

 

   여기에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위대한 예술가들의 가장 믿음직한 후원자였다. 「마그니피카트의 성모」, 「동방박사의 경배」,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남긴 보티첼리도 이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 책은 보티첼리가 메디치가가 피렌체에서 추방되고, 이후 사보나롤라가 집권하다 몰락하여 종말론에 도취되기까지 보티첼리의 예술 여정을 쫓아간다. 얼마 전에 tvn 프로그램 <요즘책방:책 읽어드립니다>를 보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실은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하기 위해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도 예술가에게 있어 후원자 혹은 권력자가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

 

 

 

그런데 클림트는 왜 거센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그토록 성적 표현에 집착했을까? 사실 클림트가 살던 시대의 분위기는 그의 그림보다 훨씬 더 퇴폐적이었다. 클림트의 그림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던 이가 정작 자기 지갑을 윤락가에서 잃어버린 일화도 있었다. 미술사학자 아놀드 하우저는 이렇게 말한다. “창부는 격정의 와중에도 언제나 냉정하며 자기가 도발한 쾌락에 초연한 관객이다. 타인이 황홀한 도취에 빠질 때에도 고독과 냉담을 느낀다. 이러한 지점에서 창부는 예술가이자 쌍둥이 짝이다.” / 64p

 

 

노트스라다무스의 전문가 피터 르미서리어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시는 어떤 의미로든 해석이 가능하다. 거의 신빙성이 없다”라며, 그가 남겼다는 예언에 굉장히 회의적이다. 그러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거의 5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힘을 잃지 않고 남아 있다. 그의 예언은 알 수 없는 미래를 궁금해하는 인간의 본능이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의 수많은 일들을 그의 예언서에 대입시킴으로써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105p

 

 

 

 

 

 

   2부 ‘사랑과 낭만의 산책하다’ 편에서는 리옹의 생텍쥐페리, 샤를빌 메지에르의 랭보, 뤼브롱산의 도데를 만나본다. 여기에서는 생텍쥐페리가 남미에서 항공사 주임으로 일하던 서른 살 무렵에 만난 사랑스럽지만 까다로운 성격의 아내에게 영감을 얻어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장미꽃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 어마어마한 미소년 랭보가 유부남 시인과 사랑에 빠져 영국 런던으로 건너간 일화, 도데가 쓴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슬픈 장면은 당시 알자스로렌 지방 사람이 겪었을 실제 감정과는 달랐다는 점이 흥미롭게 읽힌다. 특히 몇 번이고 가출을 했던 반항아였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시인이란 견자여야만 하며, 의식적으로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라는 구절이 담긴 편지 한통을 통해 알 수 있듯 우리는 랭보에게서 타인의 고통과 함께 괴로워하고, 모난 현실에 분노하는 언어를 만들려한 그의 남다른 예술가적 자질을 느낄 수 있다.

 

 

 

인력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 장대한 풍광 앞에서 이곳이 프랑스 중부나 남부보다는 화려하지 못하다고 내심 깔봤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다. 치열하게 ‘견자’가 되기를 갈망하던 랭보가 내게 준 선물이 바로 이 깨달음이었다. / 144p

 

 

 

 

 

 

   3부 ‘위대한 인문주의의 고향을 산책하다’ 편에서는 아레초의 페트라르카, 피렌체의 단테, 체르탈도의 보카치오, 베네치아의 카사노바를 만난다. 사실 페트라르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열어젖힌 중세의 문을 닫고, 처음으로 근대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 다소 낯선 시인이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예술가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또 아직까지도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신곡」 읽기를 이 책을 통해 도전해볼까 하는 용기를 갖게 된 점도 의미 있는 독서가 되었다. 한편, 그간 가지고 있었던 카사노바의 이미지에 반전을 가할 새로운 정보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번역가 김석희가 카사노바의 인생관을 두고 “카사노바에게 인생은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진 식탁과 같았다. 인생이라는 식탁 앞에서 죄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어느 음식에서 맛보면 좋을지 몰라 어리둥절하지만 그 식탁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 갈망의 눈길은 관능적인 욕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을 찬미한 시인이었고 삶의 기쁨을 만끽한 쾌락주의자였다.”고 말한 데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삶에는 좀 더 많은 변명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301년, 겔프 네리당은 교황과 당시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동생인 발루아 백작의 군대를 피렌체로 끌어들인다.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외세의 힘을 빌린 것이다. 이후 정권을 독점한 네리당은 비아키당을 숙청했는데, 단테는 제거 대상 1순위였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하는데, 이때 자기 집에 『신곡』「지옥 편」의 1곡부터 7곡까지를 놔두고 떠나는 바람에 원고가 사장될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단테의 집을 압수 수색한 사람 중 하나가 궤짝에 담긴 원고에 감동해 단테에게 그 원고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 212p

 

 

『데카메론』의 탄생 배경은 흑사병, 바로 페스트였다...(중략)...페스트의 무서운 점은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간의 본성가지 공격하고 파괴한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옮을 것이 두려워 사람이 죽어도 제대로 장례도 치르지 않았고,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게 된다. 만약 오늘날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이 닥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 221p

 

 

 

 

 

 

   마지막 4부 ‘안개 자욱한 스파이와 판타지의 세계를 산책하다’ 편에서는 옥스퍼드에서 루이스를, 런던과 베를린에서 르 카레를, 프랑스와 빈 등 여러 곳에서 스파이 소설의 거장 포사이스의 흔적을 찾아간다. 여기서는 루이스와 돌킨이 서로를 독려하며 좋은 영향을 주었던 점, 옥스퍼드대학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귀족 엘리트 계층이라 생각했던 평론가들의 생각과 달리 수없이 사기 행각을 저지른 직업 사기꾼의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난 존 르 카레, 스파이 소설에서도 시대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존 르 카레와 포사이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1960년대 동서 간의 긴장 상황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존 르 카레의 소설이 필요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그런 치열한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 가볍고 행복한 것을 동행하게 했는데, 그런 소망을 화끈하게 충족시켜준 것이 바로 십 대 더벅머리 청년 네 명이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이 ‘십 대 더벅머리 청년 네 명’, 즉 전설의 록밴드 비틀스와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 274p

 

 

 

   앤 트루벡의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라는 작품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고 한다. ‘집이야말로 문학적 관음증, 숭배 혹은 더 거칠게 말하자면 문학 포르노와 엮이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이탈리아 아레초 마을은 페트라르카가 태어난 집을 생가로 보존했지만, 페트라르카는 거기에 산 적도 없었고 생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라고. 「산책자의 인문학」을 읽으며 모차르트가 살아 있을 때나 비참하게 죽어갈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잘츠부르크가 현재는 가게의 초콜릿, 연필통이나 싸구려 장식에까지 모차르트를 써먹는 모습이나, 고흐가 자신의 요동치는 감정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냈던 장소인 생 폴 무솔 정신병원이 당시에는 일주일에 두 차례 찬물 목욕을 시켜주는 일만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웬만한 관광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는 유명한 곳이 된 점도 씁쓸한 자국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마 세상에 수많은 감각을 내어놓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유산을 영유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또 그것을 책을 통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안방까지 공유할 수 있게 한 저자와 이 땅의 수많은 저자들에게도 새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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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독서법 - 마음과 생각을 함께 키우는 독서 교육
김소영 지음 / 다산에듀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말하기로 마음과 생각을 함께 키우는 초등 독서 교육!

우리 아이 독서 습관을 올바르게 길러주고 싶은 부모라면 꼭 읽어야 할 책!

 

 

 

   잠이 들기 전이면 5살인 아들은 꼭 책장에서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이불 위에 눕는다. 자기 전에 책을 읽는 습관을 오래 전부터 들였던 터라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주로 이 시간에 독서를 하다 보니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이라든지, 충분한 대화를 주고받지 못한 채 잠이 들어버려서 언제부턴가 이마저도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어리니까, 책을 읽는 즐거움만 느껴도 충분하다고 위안을 삼지만 독서습관에 균형을 잡고, 읽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쓰는 법도 일러줘야 할 시기가 이제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활용한 전문가들이 워낙 많지만, 이왕이면 부모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읽은 책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되 아이의 독서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적절한 지도법을 미리 알아둘 수만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읽게 된 『말하기 독서법』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실천해볼 수 있는 좋은 독서 방법을 일러주어 매우 실용적인 책이었다. 특히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말하기나 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이 책을 꼭 참고해보시길 바란다.

 

 

 

 

 

 

진짜 독서가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즐거운 독서법

 

 

  『말하기 독서법』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독서 교육의 필수 지침과 구체적인 방법을 담은 독서 교육책이다. 저자는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편집자로 10년 넘게 일하다 독자와 어린이책을 연결하고 싶은 마음에 독서교실을 연 전문가로, 독서교실을 찾은 아이들과 직접 시도해보고 얻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들을 정리해놓은 것이라 더 의미가 있다. 저자의 독서교실을 찾은 아이들은 무엇보다 책 읽기의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되는데, 그 비결은 바로 ‘말하기 독서법’에 있다고 강조한다. 책을 읽은 후 아이가 가장 즐겁게 할 수 있고 실제로 도움 되는 활동은 ‘말하기’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독서 교육의 목적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기르고, 목적에 맞게 읽고 평가하는 능력을 익힘으로써 평생 독자로 살아갈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읽기를 중심으로 말하기와 글쓰기가 힘을 더해 책 읽는 능력을 탄탄하게 키워가게끔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재 아이들의 독서 환경은 무리한 독후활동, 특히 독서기록장 같은 글쓰기 활동에만 치우친 까닭에 책을 멀리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말았다. 독서기록장은 독서 상황을 살피고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는 다양한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교육 도구인 것은 사실이나, 독후감 쓰기에 앞서 ‘말하기’를 선행한다면 책에 대한 감상을 한결 풍요롭게 즐길 수 있다. 무턱대로 쓴 성의 없는 말, 낙서 같은 그림으로 채우는 독서기록장 한 장 보다 아이의 진짜 생각이 정리된 한두 문장이 더 ‘자기 것’에 가깝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아이가 말하기를 통해 자기 방식으로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는 법을 깨치고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책 읽는 힘이 길러진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논하는 말하기의 가장 큰 목적은 아이가 자기 생각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생각이 불분명하다면 적절한 질문과 대화로 분명하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을 하면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인물에 대해 말하다가 그를 이해하게 되어 오히려 응원하게 되는 식으로 말이죠. 또 어떤 모험이 별로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다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합니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말하다보니 의견이 생기기도 합니다. 자기 생각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 34p

 

 

말하기를 통해 자기 생각을 알아간다는 것은 곧 관점을 세우는 일입니다. 책 읽기의 큰 소득이자 목표입니다. 관점을 가지면 독서의 질이 달라집니다. 더 자세히, 더 비판적으로, 더 열린 마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책 읽기와 말하기가 서로를 돕는 셈이죠. / 41p

 

 

 

   저자는 아이의 수준과 상황에 맞게 질문을 만들면 누구든 책과 자신에 대해 ‘잘’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단,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려면 부모님과 선생님도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말하기 독서는 어떤 원칙을 두고 지도해야 할까? 첫째는 ‘말할 내용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질문을 할 때는 물론이고 지식을 전할 때도 지금 하고 있는 말이 정확히 무엇에 관한 것이지 스스로 분명히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혹시나 아이와 대화하다가 이야기가 곁길로 빠질 때 중심을 잡되, 새로운 내용이나 뜻밖의 마무리라도 의미가 있다면 폭넓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하다. 둘째는 ‘유의미한 질문 만들기’다. 정답을 아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해했는지’ 물어보는 것이 좋다. 이때 답을 들은 다음에도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질문을 던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는 ‘말투와 내용을 분리해서 지도하기’다. 목소리의 높낮이, 말하는 속도도 모두가 다르듯 이는 맞고 틀리는 문제가 아니므로 아이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말하는 스타일보다 말의 내용에 집중해서 지도해야 하며 고쳐야 할 대화 예절과 발표 태도, 말투가 있다면 아이가 말하는 내용과 분리해서 지도해 주어야 한다. 넷째는 ‘부모가 말하기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애매한 표현 대신 명료한 표현을 쓰고, 아이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중간중간에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으로 적절한 표현을 함으로써 듣는 태도도 가르치도록 한다. 끝으로 ‘공감을 바탕으로 대화하기’다. 아이가 말하기를 할 때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추궁하거나 혼내지 않고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될 수 있도록 잘 들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가장 좋은 독서 교육입니다. 부모가 독서의 가치를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더 좋은 점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주제, 새로운 내용으로 아이와 대화할 수 있습니다. / 52p

 

 

 

 

 

  이제 ‘말하기 독서법’의 중요성과 원칙을 깨달았다면 책 읽기가 즐거워지는 갈래별 말하기 독서법을 익힐 차례다. 책은 창의성을 키우는 그림책, 언어의 힘을 키우는 동시, 생각을 키우는 동화, 메타 인지 능력을 키우는 지식책 말하기로 나눠서 설명한다. 챕터별로 책을 읽는 법에서 시작하여 아이가 읽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해당 책의 특징에 따른 말하는 법과 독후활동까지 체계적으로 일러준다.

 

 

 

   이중 이야기의 단편적인 부분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라면 곧장 줄거리 정리로 들어가는 것보다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으로 ‘단어 찾기’를 추천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아이가 해당 책을 소개할 때 꼭 들어가야 되는 단어를 떠올려 적어보는 것이다. ‘단어 찾기’는 책을 읽을 때 글에 집중하는 것을 돕고, 중요한 장면을 기억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말하기와 글쓰기의 단서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단어를 채워 넣는 형식으로 줄거리 정리를 연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단어의 개수는 책의 분량과 아이 수준에 따라 조절하면 되는데, 이때 불필요한 단어는 걸러내고 핵심 단어만 꼽을 수 있도록 부모가 지도해줄 필요가 있다.

 

 

 

   또 지식책을 읽을 경우 표지 안쪽(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읽어볼 것을 추천하는 대목 역시 흥미롭다. 주로 ‘차례’를 읽어보기를 강조하는 책은 읽어봤지만 ‘작가 소개’는 다소 의외였달까. 그러고 보면 지식책 작가들은 대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아이가 ‘작가 소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작가의 이력을 살핌으로써 아이는 세상의 다양한 학문 분야를 만나고, 이런 전문가가 되기 위해 어떤 공부와 일을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아이에게 작가 소개를 읽어주는 것은 소홀히 했는데, 앞으로는 이 부분도 빼놓지 않고 읽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특별한 시작이 담긴 그림책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아이와 이야기 나눠보세요. 독서교실 아이들은 “왠지 멋있어요”, “영화 같아요”, “좀 더 기대가 돼요” 하는 각자의 느낌을 말해주었습니다. 물론 잘 모르겠다고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독자가 책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아이들이 이런 장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낯선 예술적 장치를 경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 93p

 

 

독서교실에서는 좋아하는 시를 소개할 때 먼저 시를 낭송하고, 한 구절 또는 낱말을 골라 거기에서 느낀 점을 말해봅니다. 이 수업을 할 때마다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감상을 말할 때 자신의 속마음을 더 잘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한 아이는 시에서 문제아로 손가락질 받는 아이가 하는 말을 공감되는 말로 고르더군요...(중략)...시의 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상도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게다가 동건이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시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감상이죠. / 117p

 

 

아이가 무엇을 배울 때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을 강조하거나 창의적인 결과물을 중요하게 여겨서 무엇이든 혼자 해보도록 가르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 큰 틀에서는 그 교육 방식에 동의하지만, 때로는 그보다 ‘잘해본 경험치’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따라 해도 좋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도 좋습니다. 잘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야 혼자서도 잘할 수 있습니다. / 157p

 

 

 

 

 

 

   이어 파트 3에서는 말하기로 다진 독서법을 글쓰기로 연결 지어 쓰기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들도 소개한다. 여기서는 국어사전을 활용하는 법이나 ‘O글자 낱말 대기’, ‘긴 문장 만들기’, ‘초성 퀴즈’를 통해 어휘를 늘리는 법, 관용 표현을 익히고 활용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 끝으로 마지막 파트에서는 아이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감각적인지 직관적 성향인지에 따라 말하기 교육을 달리 적용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내 아이를 바로 이해하고 자기 다움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으니 참고하자. 이 외에 책은 실제 아이들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예시로 독자의 이해를 돕고, 해당 설명에 따른 다양한 책도 소개하고 있으니 그대로 따라해 보는 방법도 좋을 듯하다.

 

 

 

 

 

 

   이렇듯 『말하기 독서법』은 그간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독서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어 좋은 책이었다. 덕분에 아이와 책을 읽을 때 이렇게 해 봐야지, 읽고 나서는 이런 질문들을 해봐야지, 또 이런 독후활동을 해봐야지 하는 계획들을 세워볼 수 있었다. 내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거나 책을 많이 읽기만 할 뿐 읽은 후 구체적인 표현을 어려워하는 아이의 부모라면 꼭 이 책을 곁에 두고 보시길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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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 - '셀프헬프 유튜버' 오마르의 아주 다양한 문제들
오마르 지음 / 팩토리나인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화제의 유트브 채널 ‘오마르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단순, 명쾌, 공감력 높은 인생 솔루션으로 현대인들의 다양한 고민에 응답하다!

 

 

   유투브에서 ‘오마르’만 검색해도 나오는 유명 채널 하나가 있다. 바로 ‘오마르의 삶(아주 다양한 문제들)’이다. 중단발 머리에 이국적인 듯한 외모로 이름마저도 독특한 오마르다. 부산 사투리를 장착해 말투에 특유의 억양이 묻어나오지만 전달력이 높은 또렷한 목소리로 귀에 쏙쏙 들어온다. 채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제공하는 콘텐츠의 주제는 우리가 겪고 있는 삶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문제들이다. 연인과 친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숱한 고민에서부터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편한 선입견들, 주의하고 익혀야 할 삶의 다양한 요령들을 자신의 경험과 주변 사례들에 비추어 설명한다. 적어도 ‘인생 2회차’라는 별명이 생겼을 만큼 인생 문제에 도가 튼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뼈 때리고, 사이다 같은 기똥찬 솔루션들을 제공하니 그를 ‘인생 선배’ 정도로 삼아 따라가보자. 대단한 건 아니지만 발목에 걸리적거리는 문제들을 조금은 가뿐하게 넘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미지근하고 어중간해도 괜찮다. 그런 인생도 있는 거지.”

 

 

   화제의 유투브 채널 ‘오마르의 삶’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한 눈에 보기 쉽게 담아놓았을 뿐 아니라 영상에서는 수록되어 있지 않았던 ‘보태기’를 담아 읽는 재미를 더해놓았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유사 콘텐츠가 모두와 잘 지낼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할 때 그는 『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며 애써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일에 힘을 낭비하고 관계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응원한다. 어떤 거창한 위로나 가르치듯이 자신의 논리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인생의 순리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줄 뿐인데 어느새 마음에 켜켜이 쌓여있던 해묵은 먼지들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다.

 

 

 

   책은 직업, 취미, 사랑, 우정, 가족, 아르바이트 혹은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이상한 마음 같은 것들을 들여다본다. 1장 ‘나를 불편하게 하는 속 편한 사람들’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불편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본다. 이를 테면 가까이하면 암 걸릴 것 같은 인간들이나, 꼰대의 전형들, 막말과 돌직구를 구별 못하는 이들,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는 사람들, ‘내 가수’는 나만 알아야 한다는 이상한 심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이 중 ‘부산 사람이라는 종족은 따로 없다’ 편에서 동물의 원숭이처럼 사투리를 시키는 사람들이나 회와 바다와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해야 한다는 어떤 부산 사람의 이미지에 반기를 드는 대목에서 크게 공감이 간다. 개인적으로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보니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베스트셀러는 다 읽었겠네?” 혹은 “어, 이거 되게 유명한 건데, 안 읽어봤어?” 등이다. 이런 말 뭐하지만 나는 베스트셀러를 안 좋아한다. 남들 다 읽는다고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그저 나만의 취향이 반영된 책과 그저 책장 한구석에 있어도 읽어보고 싶은 책은 읽는 것 정도다. 그러니 제발 무엇이 무엇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걸로 나를 판단하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걸 알려주고 싶어 한다는 건 무슨 뜻이냐면, 아는 게 없다는 뜻이다. 아무 문제가 없는 젊은이들을 문제 삼고 싶어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지한테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꼰대가 되는 걸 예방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잘 살아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한 인간으로 스스로 만족할 만큼 제 몫을 하는 제대로 된 인간이 돼야 한다. 아니면 정말로 고장 난 인간, 어처구니없는 인간이 될 수 있다. / 26p

 

 

“난 돌려 말하질 못해. 솔직해서 그런 거니 이해해줘.”

뭐 이런 식. 말 쉽게 던지고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분위기 엉망으로 만들면서 그런 자신을 담백하고 쿨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변호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기 말은 똑바로 하자. 그건 솔직한 게 아니라 무례하고 무식한 거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뭐 거짓말쟁이라서 말을 조심히 하는 거냐고. 그건 그들이 기분 꼴리는 대로 뱉으면 엉망이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성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솔직함이 다른 이에게 상처 주는 것 외에 아무 기능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솔직함이 아니다. / 41p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재미있었던 편을 꼽자면 ‘찍먹은 부먹을 방해하지 않는다’ 편이다. 알다시피 탕수육을 먹을 때 흔히 발생하는 논란이다. 찍먹이냐, 부먹이냐. 저자는 우선 강경하 찍먹임을 밝히며, 왜 찍먹이 우리가 다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인가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찍먹은 부먹을 방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먹은 찍먹을 아예 없애버린다. 예를 들어 보자. 두 사람이 탕수육을 먹는다. 당연히 부먹 한 명과 찍먹 한 명. 찍먹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면 둘 다 원하는 방식으로 탕수육을 먹을 수 있다. 어떻게? 찍먹인 사람은 늘 하던 대로 하나씩 소스를 찍어 바삭한 탕수육을 먹으면 되고 부먹인 사람은 자기 몫의 탕수육만 소스에 넣어두었다가 눅진한 탕수육을 먹으면 된다. 간단하지 않은가?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 괜찮은 논리다. 사실 나는 부먹에 가까운 퐁먹(?)이다. 찍어서 먹으면 튀김의 딱딱한 질감이 느껴지고, 부어서 먹으면 소스가 고루 뿌려지지 않으니 나는 소스에 튀김을 서너 개 미리 넣어놓고 촉촉해졌을 무렵이면 꺼내 먹는다. 뭐, 나는 굳이 이걸 고집하는 편은 아니지만, 우리가 찍먹과 부먹을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결국엔 어떤 예의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여러 사람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논리대로 난 찍먹이니까, 난 부먹이니까, 원래 이렇게 먹어야 하는 거야 하는 식으로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오마르의 현명한 제안에 따라, 찍먹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우리, 제발, 묻지도 않고 냅다 탕수육 위에 소스를 붓는 참사(?)를 일으키지는 말자.

 

 

 

우리의 기대치만큼 우리는 관용적이지 못하다. 남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 것. 그리고 잘못을 조율하는 과정 자체를 나쁘게 보지 말아야 한다. 건강한 관계라는 건 티끌 하나 없는 백지 같은 게 아니니까. / 54p

 

 

쉽게 생각하면 빈정거리지 않는 것이나 칭찬하는 것 모두 그 대상을 위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건 남보다 나에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빈정거리는 말투가 습관이 되면 사람들은 당신이 가진 불안감과 열등감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칭찬을 많이 하면 실제 나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그러니 빈말이라도 남을 칭찬하는 습관을 들여보라. 여유 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 81p

 

 

 

   2장 ‘연애도 체력이 필요해’에서는 연애를 하다보면 좁혀지지 않는 의견들에서부터 연애 전 혹은 연애 후의 기본 매너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남자가 첫사랑을 못 잊는 진짜 이유나 막상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왜 마음이 식는가에 대한 연애 심리 같은 것도 살펴본다. 이건 책에도 나오는 내용이고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해 보건데,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지 않고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상대가 내가 아니고, 내 마음을 모두 다 알지 못하는 이상(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는데) 이렇게 해주길 바란다거나,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초능력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기대를 하면 기대를 하는 만큼 상심도 커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치 못한 때에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나를 기쁘게 해줄 때면 상대의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 연애라는 것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환상 속에서 이제는 나와야 한다. 이효리, 이상순 커플. 참 천생연분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효리 씨가 한 TV프로그램에 나와 그런 말을 하더라.

“세상에 별 남자, 별 여자 없더라.”

자,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완벽한 짝은 죽을 때까지 찾을 수 없고, 이해와 노력 없이 잘 굴러가는 연애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 104p

 

 

처음에 연인은, 희생을 감수할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사랑하기 때문에. 하지만 오래가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일상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불만이 생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싸울 일들이 생기겠지. 나는 아마 계속 정신 못 차리고 연인만 탓할 것이다. 왜 나를 불행하게 내버려 두냐고. 물론 엄청난 착각이지. 내 가슴에 뚫린 구멍은 타인이 책임질 수 없고, 완벽히 채워줄 수도 없다. 사실 나를 불행하도록 내버려 둔 사람은 따로 있다. 언제나 나를 곁에서 지켜줄 수 있음에도 그 역할을 남에게 미룬 사람, 바로 나 자신. / 141p

 

마음이란 사랑이든 우정이든 마찬가지지만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근데 기어코 그것을 만져봐야 믿겠다는 이들이 있다. 백 번 만지면 그 의심이 사라질까. 더 깊어질 뿐이다. 예외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검열하고 옭아매는 형국이라면 사실 외부에서 할 말은 없다. 둘이 그러고 잘 살겠지 뭐. 근데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만질 수 없는 것을 믿어주는 노력. / 154p

 

 

 

 

 

 

   3장 ‘안 만만해지기 연습’에서는 대화 속에서 지켜야 할 매너, 상대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법, 사과하는 법, 뒷담화하기 전에 알아둘 것, 알바 구할 때 알아야 할 몇 가지 등 삶의 기본적인 기술이나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중 표제작이기도 한 ‘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 편을 읽으며 나는 한때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던(지금은 조금 덜어낸 편이지만) 유년시절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어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아이들과 두루 잘 지내기 위해, 한 번 겪어본 왕따(이것도 착한 척 한다고 왕따를 당한 거지만)를 또 한 번 겪지 않기 위해 착한 아이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정말 당시에는 죽기보다 싫었던 게 미움을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착한 아이가 되려고,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과감하게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했고, 이 결정이 나를 위한 것인지 타인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 등장하는 옛 친구 B가 했던 말처럼 그냥 나도 “진작 남들을 실망시킬 걸” 그게 그렇게 후회가 된다.

 

 

언제나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자신이 좋은 ‘제공자’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야기가 가진 즐거움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내미는 엄지, 그것이 당신의 몫이다. 썰 재미있게 푸는 법 이야기 하는데 뭐 이렇게 진지할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웃음을 만드는 것은 숭고한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프로 웃음꾼으로 가는 길에는 뭐랄까, 아무튼 그런 숭고함이 필요하다. / 197p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건 요령보다 마음가짐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믿기 싫은 사실이겠지만 지금 겪고 있는 그런 인간들은 살면서 계속 만나게 된다. 한 사람만 참고 넘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

보태기: 이런 고민이 심한 사람일수록 마음이 여린 사람이 많고, 이들은 혹시 본인이 처신을 잘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절대, 아니다. 세상에 무시당해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도 가만히 있는 당신을 불편하게 건드릴 권리는 없다는 거다. 그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 201p

 

 

 

 

 

 

   『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를 읽으며 나 역시 서른을 넘긴 나이다보니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고, 누군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몇 번씩 소환하기도 했으며, 나를 둘러싼 사소하지만 찜찜한 문제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로운 독서 시간이었다. 번외로 ‘언팔하고 싶은 SNS 계정 유형 5’, ‘살면서 알게 된 사소하지만 확실한 팩트들’, ‘왜 우리는 연애를 해도 행복하지 않을까?’, ‘연애, 꼭 해야 하는 걸까?’, ‘별생각 없었는데 서른 넘고 나니 후회되는 것’, ‘지금, 오늘 행복하신가요?’도 수록되어 있으니 영상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책도 꼭 만나보시라 추천 드리고 싶다. 특히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20~30대 청년들에게 이 책이 적절한 위안과 혜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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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책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삶의 죽음의 경계에 머물렀을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감각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 사이에서 삶의 원형을 들여다보는 마법 같은 소설!

 

 

 

   “물 좀 주세요.”

    살포시 열려 있는 방문 틈새 사이로 사그라져 가는 듯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나는 엄마의 부탁에 따라 빨대가 꽂혀 있는 컵에 미지근한 물을 담고 방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간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던 병원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던 게 석 달 전인데, 나의 외할머니는 바스라질 것 같은 몸을 하고선 빨대를 힘껏 빨아들인다. 당신에게 물을 건네는 이가 외손녀라는 것도 알지 못할 만큼 불투명한 눈빛이지만 삶을 향한 갈망만큼은 꿀꺽꿀꺽 들이켜는 소리만큼이나 강렬하다. 외할머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삶에 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일까. 허공에 부유하는 시선으로 그녀는 어디를 더듬어보고 있는 것일까. 생애 가장 찬란했던 어떤 순간일까, 미련과 후회로 점철된 과오의 순간일까. 혹은 미처 가 닿지 못했던 어떤 꿈의 세계를 상상하고 있을까. 그건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꿀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꿈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남기고 갈 사랑하는 사람들을 오늘 더 열렬히 사랑할 것

 

 

   코마(COMA). 일반적으로 의식 수준이 정상이 아닌, 즉 각성이 아닌 상태로 흔히 ‘혼수상태’를 가리키는 의학 용어다. 혼수상태란 자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아주 심하게 자극을 주어도 환자를 깨울 수 없는 상태이다. 『꿈의 책』은 불의의 사고로 인해 바로 이 코마 즉,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꿈속에 영원히 갇혀버린 한 남자와 그의 곁에 남겨진 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용서와 화해, 사랑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다. 이야기는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아들 샘을 만나러 가는 길에 템스강에 빠진 소녀를 구한 주인공 헨리가 공교롭게도 현장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 데서 시작된다.

 

 

 

   엄마 몰래 아빠에게 자신을 만나러 와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가 이 같은 사고를 겪은 데에 대한 미안함과 혈육이라는 데서 기인하는 본능과도 같은 끈끈한 감정은 샘을 매일 같이 병원으로 이끈다. 특히 세상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느끼며 타인의 영혼을 들여다볼 줄 아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샘은 비록 아빠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지만 영혼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안다. 반면, 헨리가 응급 시 사전 의료 지시서에 결정권자로 기입한 옛 연인 에디는 이미 오래 전에 헨리와 이별을 한 데다 그로부터 사랑을 거부당했다고 믿었기에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곤란하다. ‘나는 응급 상황을 위한 여자다. 삶이 아니라 죽음을 위한 여자.’ 라는 그녀의 고백처럼 여전히 그로부터 받은 상처를 생각하면 수치심에 몸을 떨 정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면에서 헨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소리치는 진실의 목소리를 차마 외면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에디는 혹시나 헨리가 깨어나 그녀를 다시 밀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영영 그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엄마와 학교를 속여 가며 매일 아빠를 찾아오는 무모하지만 지혜로운 샘과 함께 헨리의 곁을 지키기로 한다. 그러는 동안에 샘은 에디를 통해 자신이 미처 몰랐던 아빠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고, 에디는 헨리와의 소중한 추억을 돌이켜보면서 사랑과 상처를 함께 어루만진다.

 

 

 

닥터 사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샘. 하지만 네 아빠는 살아 있어. 다만 다른 방식으로 살아 있을 뿐이란다. 알아듣겠니? 코마도 삶이야. 다만 독특한 방식의 삶일 뿐이지. 경계 상황이란다. 위기, 그래, 그렇다고 너나 나나 탐린 부인이 살고 있는 삶보다 덜 중요한 삶은 아니야.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가 코마로 살고 있다고 말한단다. 코마로 누워 있다고 말하지 않아.” / 98p

 

 

“코마 상태에 있는 사람을 보살피는 것은 부인을 사랑한다고 절대 말하지 않을 사람과 결혼하는 것과 같아요.” 닥터 사울이 좀 더 조용히 말한다. “그런데도 부인은 부인의 모든 애정과 에너지를 그에게 쏟아 부어야 합니다. 부인의 모든 사랑을. 부인이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면 말이죠. 행복한 결말 없이. 현재하지 않는 사람과 부인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보내게 될 겁니다.” / 106p

 

 

 

 

 

  코마 상태에 빠진 헨리는 모든 것 사이에 있으면서 그 어디에도 없는, 바로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 그 어느 ‘중간 세계’에서 꿈을 꾸듯 유영한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바다로 나갔다가 혼자 돌아오게 되었던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종군 기자로서의 규칙을 어기고 탈레반으로부터 이브라힘을 구해내려던 순간에 머무르기도 하고, 종군 사진 기자였던 마리프랑스와의 보낸 하룻밤 등 무엇이 사실이고 사실이 아닌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그러면서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었을까! 어떻게 내 삶을 수많은 부정(否定)과 두려움으로 그렇듯 마구 낭비할 수 있었을까? 그릇된 갈림길들에서 부정하고, 올바른 갈림길들에서 나는 모른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중요한 고비들을 인식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상실과 미련으로 점철된 순간들을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게 된 깨달음을 통해 동시에 구원받기도 한다.

 

 

 

사람이 죽어서 아무것도, 그야말로 순전히 아무것도 만회할 수 없는 최후의 시간이 시작되면 무엇을 가장 깊이 애석해하는지 보인다. / 88p

 

 

이것이 삶의 의미이다.

나는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데도 가족을 떠나지 않는 남자들을 처음으로 이해한다. 이 작은 인간들이 있기 때문에. 꾸밈없고 거짓되지 않은 이 작은 인간들. 이들을 사랑하는 일은 매우 단순하며, 그렇기에 도저히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 173p

 

 

“때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기도 해.” 헨리는 덧붙인다. 그의 손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들을 한다. 나한테 좋은, 너무 좋은 일들을.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분명 삶의 일부이고 또 그게 삶의 현실이야.” / 461p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는 또 하나의 주제가 있다면 바로 ‘아버지’다. 헨리와 에디는 일찍이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하게 되는데, 특히 헨리는 파도가 아버지와 자신을 덮치던 순간을 자주 꿈꾸곤 했다. 아버지가 배의 바깥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반 실신한 채로 파도에 실려 흔들거리는 사이, 헨리는 아버지의 손을 몇 시간이나 꼭 붙들고 있었지만 고작 열세 살에 불과했던 그에게 그 이상의 힘은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의 친밀하고 강인한 손가락이 자신의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느낌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속절없이 자신의 무능함을 탓해야 했다. 그렇게 살아 있는 내내 아버지에 대한 부채감을 지니고 있었던 헨리는 역설적이게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놀라운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가 네 손을 놓았을 수도 있어. 네가 아버지 손을 놓은 게 아니라. 아버지들은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이따금 손을 놓을 수밖에 없어.”

 

 

 

등대에 올라가기 전에 층계를 위까지 올려다보지 말고 첫 번째 계단만 보라고 아버지는 충고했다. 한 계단 한 계단씩만 보라고.

“너보다 훨씬 더 막강해 보이는 도전에는 이런 식으로 응하는 거란다. 그러면 도전을 이겨낼 수 있어.”

세상을 작게 만들어라. 정확히 보아라. 네 앞에 놓인 기나긴 밤이 아니라 바로 앞의 순간만 생각해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길을 완전히 가늠하기 위해서는 끝가지 가봐야 한단다, 에드위나.” / 145p

 

 

나는 아버지를 보면,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금세 안다. 우리에게 온 세상을 뜻했던 사람을 잃어버리면 그렇다. 우리의 삶에 균열이 생기고 웃음과 홀가분함이 그 균열 속으로 사라진다. 그들의 부재는 우리를 파괴한다. 별안간 우리는 깨어 있는지 꿈을 꾸는지 분명히 구분하지 못한다. 마치 죽음이 세계들 사이의 세계에 들어서는 걸 가능하게 하는 듯 보인다. / 436p

 

 

 

 

  헨리는 자신의 삶에 가해졌던 균열의 시간들과 화해하고 용서하게 되면서 이제야 자신의 불완전한 인생이 갑자기 의미로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샘과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에디로 인해. 이렇듯 46일의 시간 동안 코마 상태에 빠진 헨리와 그를 지키는 샘과 에디의 이 꿈결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살아있음에의 의미와 곁에 있는 내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다. 죽음이라는 모호하고 초월된 감각을 언어를 빌려 생생하게 구현하고, 코마에 대한 병리학적인 정보와 코마 환자들의 보호자들이 겪고 있을 제도적이고 정서적인 문제까지 사실감 있게 그려낸 점 역시 남다른 울림을 전한다.

 

 

 

“매디에게 필요한 건 기쁨을 주는 것들이야. 코마에 빠진 사람들을 ‘각성 상태’ 가까이 끌어당기는 것들은 늘 작은 일들, 작고 소중한 일들이란다.” / 202p

 

 

나는 헨리의 이름을 부르는 걸 배운다. 메리언은 어떤 깊은 곳에서 떠돌고 있는 헨리를 도로 데려올 수 있는 가장 긴 줄이 바로 이름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른다. 나는 다섯 개의 알파벳으로 된 줄사다리를 헨리를 향해 던지는 상상을 한다. 나는 예배당을 향해 속삭인다. “헨리.” / 229p

 

 

 

 

 

 

   책을 덮으며 ‘아마 그것은 바로 내 이야기일지 모른다. 또 우리 모두는 지금 읽히는 이야기들일지 모른다. 이야기들은 우리를 구해줄지도 모른다. 우리가 언제까지고 소멸되지 않도록.’이라는 문장이 마음을 내내 두드린다. 우리는 모두 삶으로써 저마다 읽히는 이야기들을 쓰고 있는 중이기에, 허망하거나 의미 없는 삶이란 없다는 그녀의 메시지가 연약한 우리 삶에 견고한 메아리가 되어 전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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