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9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웰 다잉 시대, 노인 혐오와 배제라는 사회적 문제를 날카롭게 포착한 소설!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교묘히 파고들어 발칙한 상상력과 신선한 감각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작품!

 

 

 

   여덟 개의 계곡 사이에 푹 파묻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곳을 팔곡마을이라 부른다. 지도나 내비게이션 없이 그쪽을 지난다면 거기 마을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지나칠 만한 그런 곳, 마을이 있다는 걸 안다 해도 막상 배에서 내리면 잘못 온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낄 만큼 어둡고 축축한, 바로 그런 곳이다. 누군가는 팔곡마을 하면 우울한 풍광을 떠올리며 소위 시체 같은 느낌을 떠올리기도 한다. 거기선 만약 길을 걷다가 유령을 마주쳐도 그게 유령인 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마을 노인들이 이미 유령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유령처럼 회색지대를 떠도는 노인들

 

 

 

   월상파출소의 소장 박 경위는 우체부가 하도 팔곡마을의 노인들이 사라졌다고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선착장으로 향한다. 해질녘이 다 되어가는 데다 몸은 피곤했지만 우체부의 확신에 찬 말을 듣고 있으려니 차마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체부는 여느 때처럼 팔곡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손수 페인트를 칠해서 나사못으로 바닥에 고정해둔 우편함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비워지지 않은 적이 없던 그 우편함이 지난번에 넣어둔 우편물과 함께 그대로 남아 있더라는 것이다. 우체부는 뭔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을 것 같은 이상한 징조를 느꼈다고 한다. 마을에 살고 있는 여덟 집 앞으로 동시에 배달된 웰다잉협회라는 이름의 우편물 역시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쓱 훑어보니 연명치료 거부에 대한 사전의향서 작성을 안내하는 건조한 내용의 우편물에 불과했지만, 다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네들이 서류에 사인하는 광경을 떠올리려니 어딘지 꺼림칙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우체부는 약간 두려워진 마음을 안고서 마을 이장인 피 노인의 집과 마을회관을 차례로 둘러본다. 하지만 거기엔 피 노인의 흔적은커녕 마을의 노인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게 분명하다는 선뜩한 예감만이 감돌뿐이다.

 

 

 

“물론이죠. 있어요. 내가 알아요. 그 노인네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을을 비운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왜 갑자기 다들 사라져버렸겠어요? 무슨 사달이 나지 않고서야 그럴 일이 없지 않겠느냐고요.” / 49p  

 

 

 

 

  보나마나 팔곡마을 노인 전원이 조그만 봉고차를 대절해서 어디 관광이라도 갔으려니 하면서도 박 경위는 팔곡마을로 향하는 배에 우체부와 함께 올라탄다. 이미 사위는 컴컴해지고, 하늘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는 걸 보니 곧 폭풍우라도 몰아칠 듯한 분위기다. 살집이 있고 퉁퉁한 선장은 가는 길에 심심하니 홍보 영상용 비디오나 보라고 틀어주는데, 그 영상의 내용이 어쩐지 기묘하다. ‘웰다잉-죽음을 이기는 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죽음을 능동적으로 맞이하라는 심오한 메시지와 함께 영상을 보는 이로 하여금 기이한 최면에 빠져들게 하는 데가 있다. 잿빛 거리, 죽음을 이긴다는 사람들, 박 경위는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호수에 뛰어들어 그것과 하나가 되어 완전히 사라지는 환영에 사로잡힌다. 다행히 우체부가 자신을 깨우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갑자기 호수에 들어가겠다며 영원히 쉬고 싶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는 우체부의 말이 찝찝할 따름이다.

 

 

 

제길. 대체 노인들은 왜 한곳에 가만히 있지 않는 걸까. 힘도 없고 관절도 안좋다면서 툭하면 그들은 여기저길 돌아다녔고 길을 잃거나 버스에서 굴러떨어지고 계단에서 다쳤다. 다친 노인네들이야 병원에 들어가 누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남은 가족들은? 그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존재들, 살아 있되 살아 있다고 하기도 애매한, 삶과 죽음의 중간인 회색지대를 맴도는 이들에게 발목을 잡혀야 하는가 말이다. / 53p

 

 

죽음이 다가왔을 때 굴복한다면 그건 죽음에 압도당하는 겁니다. 그러나 먼저 죽음을 택한다면 그거야말로 죽음에 대한 승리가 되는 거니까요- 곁에서 지켜봐주는 겁니다. 놀라운 건, 이 나라에선 늙거나 병든 사람만이 이런 죽음을 택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젊고 건강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그저 삶을 지속하기 싫어지면, 의사를 불러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겁니다. / 58p

 

 

 

 

 

 

   그러고 보니, 그 많던 노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곳 팔곡마을에는 이제 열 명의 노인만이 살고 있을 뿐이고, 월상댐까지 들어가는 뱃길에 있던 다섯 개의 마을 중 벌써 세 개는 완전히 사라졌다. 박 경위는 우체부의 말대로 노인들이 사라진, 텅 비어있는 스산한 풍경의 팔곡마을을 둘러보며 알 수 없는 기시감과 실체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의문에 사로잡힌다. 설마, 이건 정말로 희대의 노인 단체 실종극일지도 몰라. 노인들은 대체로 한 명씩 사라졌고 한 명씩 죽어갔다. 그래선지 그들의 죽음은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고 아무도 그 행방을 궁금히 여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노인이 한꺼번에 사라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박 경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내내 보이지 않았던 우체부가 누군가에 의해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선장 역시 뜻밖의 습격을 받고 쓰러진다.

 

 

 

“내 말은, 이 세계가 공정하고 온전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같이 보이느냐, 이거야. 하긴, 지금 이런 얘길 한들 누가 이해하기나 할까. 여하간 아까 내 손목을 보고 당신이 우리 조직의 정체를 어느 정도 눈치챘다는 건 알았어. 그래 맞아. 우린 ‘뉴 제너레이션’의 일원이야. 뉴 제너레이션. 세계를 구할 사람들. 새로운 세대, 미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우린 세상 곳곳에 숨어 그림자처럼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 나가고 있다고.” / 107p

 

 

“세계 각지에서 그건 이미 골칫거리였지. 그래, 세상이 점점 늙어가고 있다는 것. 노인들의 지구 전체를 뒤덮어서 결국은 모두를 쇠락과 소멸로 내몰고 말 거라는 것. 늙은 자들은 탐욕스럽고 오만하고 꼰대에다 자기들만 옳다고 믿지. 그것만으로도 심판받아 마땅한데, 거기에 더해서 늙어 죽어가면서까지 오직 살겠다는 욕망으로 발버둥 치며 국가 의료 재정에 구멍을 내고, 그렇게 연명한 목숨 덕분에 연금 시스템까지 갉아먹어. 돈이 있는 노인이라고 더 나은 것도 아니야. 그것들은 끝가지 재산을 틀어쥐고 새로운 세대에겐 한 푼도 내놓지 않아. 살날도 얼마 안 남은 주제에 악착같이 다 늙은 몸을 이끌고 투표장에 가서는, 앞날이 새파란 젊은이들을 골로 보낼 궁리나 하면서 말이야.” / 107p

 

 

 

 

 

 

   처음 보았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을 주었던 남자, 우체부와 박 경위를 습격한 건 선장이었다. 선장은 두 사람을 포박한 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한다. 바로 웰다잉협회 즉, ‘뉴 제너레이션’이라는 이름의 비밀 조직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이 비밀 조직의 요원으로 인류, 나아가 지구 전체에 있어서 쓸모없는 노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다시 말해 노인들이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들고 마침내 삶을 비관하여 자신의 비루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조직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의 배후에는 가장 거대한 조직인 국가가 있다며 차마 믿기 힘든 말을 거침없이 떠벌린다. 아무래도 선장의 말은 미치광이의 헛소리에 불과해보이지만, 독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끔찍하고도 불편한, 섬뜩하지만 굉장히 낯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늙음이 혐오가 되고, 부양이 자식의 짐이 되어버린 현실, 스스로를 실버타운과 요양원에 내맡겨야 하는 노인의 미래. 어쩌면 뉴 제너레이션의 음모론은 한 정신병자의 망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의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최종 목표는 다른 데 있지. 그건 바로…… 노인들 스스로가 자신을 혐오하게 만드는 것. 스스로를 무용지물로 여기게끔 몰아가는 것. 그리고 잘 알겠지만, 자기에 대한 혐오의 귀결은…….”

“……설마, 자살?”

선장이 담배꽁초를 폐가 바닥에 던지더니 발로 비벼 껐다.

“역시 소장님은 영리하다니까. 그래, 우린 노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비루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야. 그게 다라고. 그러니 마을 노인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야. 다만 그들이 차차 한 명씩 세상을 등지도록 도와주는 게, 내 임무인 거지. 어때, 놀랍지 않아? 엄청난 아이디어 아니냐고.” / 116p

 

 

  명절 날, 시어머니는 나에게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내용의 신청서를 작성하고 왔다고 말씀하셨다. 노년의 삶이 짐이 되지 않기 위한 결심들을 나는 종종 부모님 세대로부터 자주 듣곤 한다. 그것은 머지않아 나에게도 찾아올 숙명이기에 뼈아프다. 늙음이, 죽음이, 세대와 세대를 갈라놓는 주요한 기준이 되어버린다면 그건 곧 그 자체로 죽음이며 두려움이 된다. 아침부터 바지런히 나와 지하철 상가에서 공허하게 떠도는 저 수많은 어르신들, 오육남이라는 이름의 꼰대들, 정말이지 웰빙이 아닌 웰다잉이 더욱 중요해진 이 시대에 우리가 깊이 숙고해볼 문제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백만 명을 죽이면 혁명이 된다.” / 10p

 

 

 

   이렇듯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교묘히 파고들어 웰 다잉 시대, 노인 혐오와 배제라는 사회적 문제를 의미심장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심플한 스토리라인과 극적 긴장감, 간결한 필치만으로도 극의 마지막까지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는 작가의 신박함이 돋보인다. 정말 오랜만에 앞선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작가라 참 반갑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교양 있고 품위 있는 돼지 슈펙
존 색스비 지음,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유영미 옮김 / 뜨인돌어린이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풍쟁이 돼지 슈펙과 다양한 동물 캐릭터들이 만들어 내는 유쾌한 동물 농장 이야기!

동물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스토리에 위트 있는 그림체를 더해 아이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

 

 

   여기는 셰펠 씨네 농장이에요. 농장을 지키는 나이든 개 헥토르, 늘 밭을 가는 일에 지쳐 있는 말 하드리안, 노란 털을 가진 젖소 부터블루메, 평소 외모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우아한 맵시를 지녔지만 어쩐지 얄미운 구석이 있는 수고양이 그레고르, 항상 야단법석인 암거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거위 군터, 농장에서 일어나는 소식이라면 누구보다도 잽싸게 찾아내 퍼뜨리는 다람쥐 티티. 여기에 돼지 중에 돼지, 모든 돼지의 이상형, 상당히 수준 높고 영리하며 스스로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돼지 에두아르트 폰 슈펙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입니다. 슈펙은 평소 자신이 더 많이 알아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거만하고 잘난 체 한다는 평을 듣곤 하지요. 일단 말을 내뱉고 보는 성격이라서 허풍을 떨거나 자기 꾀에 걸려 스스로 낭패를 보는 일도 있답니다. 이렇게 셰펠 씨의 농장은 오늘도 시끌벅적합니다. 어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허풍쟁이 슈펙이라도 괜찮아 이토록 매력적인 걸

 

 

 

   함박눈이 며칠 째 펑펑 쏟아져 온 세상에 눈 속에 파묻혔습니다. 슈펙은 눈이 전혀 달갑지가 않았어요. 추운 걸 견딜 수 없었거든요. 게다가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다간 돼지우리가 눈 속에 파묻힐 게 분명합니다. 똑똑한 돼지라면 이럴 땐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죠. 닭들이 사는 헛간의 푸짐한 건초 더미 안으로 파고드는 겁니다. 자신의 먹이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닭들의 모이까지 빼앗아 먹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죠. 그렇게 한참을 헛간에서 나오지 않았던 슈펙은 마침내 심심해진 어느 날, 친구들이 자신의 우리 앞에서 얼굴을 맞대고 심각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는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봅니다. 모두들 슈펙이 눈에 파묻혔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 모습이 우스워서 킥킥대며 웃고 있던 슈펙은 뭔가가 쩍 하고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듣고 맙니다. 앗, 자신이 있던 곳이 연못 위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우지끈 갈라진 얼음 사이로 풍덩 빠지고 말았어요. 눈을 피하기 위해 내내 닭들에게 민폐까지 끼쳐가며 몸을 사리고 있던 슈펙이었건만, 눈 피하려다 얼음물을 맞았으니 이런 망신이 또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슈펙의 망신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봄이 오자 개구리 노래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슈펙은 마침내 대장 개구리를 만나 따집니다. 하지만 대장 개구리는 콧방귀만 끼고 있을 뿐이었어요. 하는 수없이 대장 개구리를 골려주려고 그들이 제일 싫어하던 여우 울음소리를 흉내 내기로 한 슈펙은 진짜 여우인 줄 오해한 셰펠 아저씨의 산탄총에 맞아 그만 엉덩이가 얼얼해지는 경험을 하고 맙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슈펙이 아니에요. 복수를 다짐한 슈펙은 연못을 없애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꾀를 내어야 했지요. 이내 슈펙은 연못 아래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표식이 그려진 지도를 그려 은근히 흘려놓습니다. 이를 본 친구들이 앞 다투어 연못 아래의 보물을 얻기 위해 물을 퍼낼 것이고, 그러면 개구리들이 떠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그럴 듯한 생각을 해낸 것이죠. 그런데 이를 어쩌나요. 대장 개구리가 이를 눈치 채고 말았지 뭐예요. 대장 개구리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연못이 아니라 슈펙의 집에 보물이 묻혀 있는 것으로 표식을 바꾸어 놓았고, 졸지에 동물 농장 친구들의 방문을 받게 된 슈펙은 더더욱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나 뭐라나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셰펠 아저씨의 벌통 속 꿀이 먹고 싶었던 슈펙은 하드리안을 꾀어내 꿀을 먹으려다 벌 떼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요. 셰펠 아주머니가 계단 위에 올려둔 크림을 먹고 싶어서 그레고르가 한 것처럼 꾸며 놓았다가 들통이 나 다음날 점심까지 쫄쫄 굶게 되기도 합니다. 자기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가 가지가 부러져 떨어지는 망신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죠. 하지만 우리의 슈펙, 이쯤 되면 말썽꾸러기에 허풍만 가득한 것이 미움을 살 법도 한데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용감하게 뛰어들어 이를 알린 일도 있고요. 셰펠 아주머니로부터 혼이 나면서도 맛있는 크림을 먹을 수 있었던 데다 한 번밖에 혼나지 않았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참 긍정적인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허풍에 가까운 말일지라도 일단 무엇이든 시작하고 보려는 성격은 배울 만한 점이기도 하고요.

 

 

 

에두아르트는 끙 앓는 소리를 냈어요. 이번에는 분노 때문이었죠. 이제 멍청한 오리들을 포함하여 온 세상이 에두아르트가 허풍을 떨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에휴.”

에두아르트는 천천히 부드러운 진흙 웅덩이로 들어갔어요. 그럭저럭 만족스러웠어요. 태양은 언제나처럼 에두아르트의 넓적한 엉덩이를 따뜻하게 달구어 주었죠. 에두아르트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 뭐. 이만하면 별로 나쁘지 않은 삶이야.’ / 204p

 

 

남자는 팔을 공중으로 높이 쳐들더니 마치 춤을 추려는 듯 밀짚모자를 바닥에 내던졌어요. 그러고는 그림을 집어 높이 집어던졌어요. 에두아르트 눈에는 환호에 찬 몸짓으로 보였어요. 남자가 기뻐하는 걸 보니 에두아르트도 기뻤어요. 에두아르트는 예술가들이 종잡을 수 없이 행동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화가는 너무 기쁜 나머지 주체를 못하는 것 같았어요.

에두아르트는 흡족한 마음으로 천천히 우리로 돌아왔어요. 몰래 착한 일을 하는 건 얼마나 보람찬지 하고 생각하면서요. / 224p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교양 있고 품위 있는 돼지 슈펙』은 자신이 영리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돼지 에두아르트 폰 슈펙이 벌이는 29가지의 일화들을 담은 우화집입니다. 비록 계획하는 모든 일이 엉망이 되곤 하지만 능청스럽게 자기를 긍정하고 또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유쾌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저마다 다른 성격을 지닌 동물들로 하여금 풍자와 교훈을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방식은 우리 아이들에게 즐거운 상상력을 심어줍니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인 존 색스비가 손주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쓴 이야기를 엮은 책이라고 하니, 설레어하며 기다리고 있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 흐뭇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그린 볼프 에를브루흐의 그림이 이야기의 맛을 풍성하게 해주니 보는 즐거움까지 배가 됩니다.

 

 

 

   이 책을 6살이 된 제 아이에게 매일 여러 장에 걸쳐 들려주었더니, 어느 새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면 아이는 귀를 막을 준비를 합니다. 오늘은 또 슈펙이 무슨 사고를 칠지 걱정이 되었나봅니다. 그러면서 “슈펙은 말썽꾸러기야.” 하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이는 슈펙이 말썽을 부릴 때마다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야기가 끝나면 동물 모형 장난감을 한 가득 꺼내와 자신만의 동물 농장 이야기를 완성해가기도 합니다. 덕분에 슈펙의 이야기는 저희 집에서도 계속 될 것 같네요. 이 책으로 하여금 다른 독자분들도 아이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디 아프지 마라 -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삶의 순간들에게
나태주 지음 / 시공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며 살아가며 시간과 자연 그리고 사람에게서 배우게 되는 것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눈앞에 둔 나태주 시인이 세상에 전하는 귀중한 문장들!

 

 

 

   나태주 시인의 언어에는 세상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믿음이 서려있다. 특별히 시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누구나 시를 즐기고 공감하며 어지러운 마음을 단정히 살필 수 있는 치유의 힘이 그곳에 있다. 이미 문학인생의 반세기를 맞은 시인이지만, 삶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과 어린 아이처럼 특유의 맑은 정신은 지금까지도 한결 같다. 여기에 신작 『부디 아프지 마라』에서는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교육자이자 시인으로서 살아온 지난날을 회고하며, 어느 덧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에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생의 의미들이 묵직하게 담겨 있다. 흘러온 시간을 통해서 남은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느끼고, 죽음이 있기에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생의 끝을 자연스럽게 마주하려 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애틋한 마음을,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덕분에 나는 어수선하고 복잡한 지금의 마음을 담담히 여며본다. 또한 단단히 굳어져 있던 마음을 낙낙하게 풀어놓아본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함께 부축하면서 가야지.

그러면 조금씩 좋아질 거야.

 

 

 

   나는 지난해 겨울, 시인의 책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를 읽고 처음으로 시란 것이 우리의 길이 되고, 동무가 되고,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96편에 이르는 이번 산문집 『부디 아프지 마라』에서도 나태주 문학이 지닌 힘, 이를 테면 삶에 대한 진정성을 담은 그의 시선은 변함이 없다. 그 중 ‘시간에게서 배우다’에서는 깊은 산골에서 자란 유년 시절에서부터 늙은 아이 같은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의 순간순간에서 배울 수 있었던 삶의 소중한 가치들이 애틋한 마음과 함께 담겨 있다.

 

 

 

억지로라도 해본다는 것.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는 것. 그것은 인생살이에서 필요한 덕목이고 좋은 일이다. 문제는 방향성이고 목표다. 자기에게 맞는 방향을 정하고 자기에게 알맞은 목표를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천천히 끝까지 그 일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실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 ‘살아간다는 것’ 중에서 61p

 

 

 

 

 

  몇 년 뒤면 내 나이도 어느 덧 마흔이라는 생각이 들자, 부쩍 시간이 흐를수록 하기 어려워지는 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남강 선생의 회심’이라는 제목의 글이 유독 인상에 남는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오산학교의 설립자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원래 평범하게 시장을 돌며 장사를 하는 상인이었는데, 어느 날 장마당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새롭게 살고자 하는 회심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도산 선생과 면담을 한 뒤부터 그는 젊은 세대들을 기르고 가르치는 사업에 투신하게 되었다. 이렇듯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회심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나태주 시인은 남강 이승훈 선생처럼, 50살에 회심의 기회를 갖고 통회하면서 『참회록』을 쓴 톨스토이처럼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독려한다. 나는 언제쯤 터닝포인트가 있었던가, 아니 언제쯤 터닝포인트를 가져야 할지를 생각해보고 새롭고도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보라고 말한다. 내 삶에 기회를 줄 것,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말이다.

 

 

 

우리도 꽃이다. 꽃이지만 언젠가는 시드는 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답고 싱싱하게 또 순간순간 반짝이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 말은 오늘도 우리의 귓전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겸손하라. 준비하라. 조심하라, 그리고 관대하라. / ‘메멘토 모리’ 중에서 64p

 

 

이제 어쩌는 도리가 없다. 서로 기도하고 염려하고 응원하고 위로하면서 살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 안에 작으나마 평안이 깃들고 행복이 있겠지 싶다. 우리 서로에게 말해보자. 많이 힘드시지요? 나도 힘들답니다. 이 힘든 고비를 조금만 참고 넘겨보시지요. 그러면 분명 좋은 날, 밝은 날이 올 것입니다. / ‘부디 아프지 마라’ 중에서 80p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재유행하면서 또다시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요즘이다. 이전에는 없던 국지성 폭우와 40도를 육박하는 여름 기온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 기후, 바다 쓰레기를 먹고 죽은 해양 생물과 늘어나는 멸종 위기의 생물들까지. 올해 들어 부쩍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두려워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테다. 시인도 이를 염려하며 책에 ‘꽃들이 걱정이다’를 남겨놓았다. 예전엔 살구꽃 다음에 복숭아꽃, 그 다음에 앵두꽃, 자두꽃, 배꽃이 순서대로 피었는데 요즘엔 그 모든 꽃들이 폭죽처럼 한꺼번에 피어난다는 것이다. 어디 꽃뿐일까. 예전엔 바닷고기들이 철 따라 순서대로 잡혔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잡힌다 한다. 시인은 이에 대해 ‘자연이 성급해진 탓이요 난폭해진 탓이요 근본적으로는 질서가 무너진 탓이다. 이를 따라 우리 인간들도 성급해지고 난폭해졌다. 꽃이 피는 건 좋은 일인데 이제는 꽃 피는 일조차 겁이 난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 쓰임, 사람의 사는 일까지 덩달아 거칠어지고 뒤죽박죽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 풀꽃에 마음을 둘 줄 아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새삼 많이 그립고 또 그립다.

 

 

 

실상 풀꽃 시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대상으로 쓰인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예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예쁘고 사랑스럽게 볼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쓴 작품이다. 무릇, 시라는 문장은 있는 그대로 현상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 너머의 소망을 쓰는 글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 ‘풀꽃 시의 현장’ 중에서 112p

 

 

시의 시대가 끝났다고 한탄하는 말은 내가 시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있었다. 1960년대 초반이다.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그 문제를 가지고 대서특필해서 다루기도 했다. 마치 그렇게 하면 다시 시의 시대가 올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것은 그 이후에도 여전했다. 그것은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어떤 경련 같은 것이다. / ‘시를 읽지 않는 시대’ 중에서 168p

 

 

연애가 아이 러브 유라면 결혼은 아이 니드 유다. 정말로 그건 그렇다. ‘사랑’보다는 ‘필요’가 더욱 큰 사랑이고 절실한 사랑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지 모른다.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 없으면 곤란합니다, 나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요, 하고 말할 때 그것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 된다. 삶이 되고 사랑을 넘어선 사랑이 된다. / ‘아이 니드 유’ 중에서 255p

 

 

 

 

 

 

   시인은 시를 쓰면서 살았기에 보다 정신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초등학교 선생으로 일관했기에 어린이다운 어법을 잃지 않았으며, 시골에서 살았기에 자연과 친숙한 사람이 되었고, 자동차 없이 살았기에 서민적인 삶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 더 많은 것을 원하거나 꿈꾸지 않아도 되는 지금, 늙은 사람인 것이 좋고 다행이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생의 순간순간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에게서만이 배울 수 있는 진정한 여유와 깨달음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보게 하는 대목이다. 늘 내가 가진 뿌리의 깊이를 가늠하면서 살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생의 마지막을 앞둔 이 시인에게서 이렇게 나는 또 한 번 깨닫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나의 책 - 독립출판의 왕도
김봉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면서 내 책 한 권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나를 위한 글쓰기를 응원하는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

 

 

  대학 시절, 한 60대 어르신이 자식들에게 남기고 싶은 글이 있어 대필 작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용돈 벌이 삼아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조교 언니의 제안에 일단 수락은 했지만 이내 막막해졌다. 자신이 쓴 글을 그럴 듯하게 정돈해달라는 정도의 가벼운 일이었지만, 거기엔 몇 가지 단어와 대체로 몇 줄의 짧은 문장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권의 책으로 만들려면 이 정도 분량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나의 말에 어르신은 쑥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내가 글재주는 없는데, 뭐라도 남기고 싶어서…….” 대충 어디서 찢어 썼는지 종이 크기는 들쭉날쭉에 뭔가를 먹다가 흘리기라도 했는지 얼룩이 곳곳에 묻어있는 걸 보며 역시나 난감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나는 “최대한 해볼게요.”하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안 되는 글자지만 어떻게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힘주어 꾹꾹 눌러쓴 듯한 글자를 보니 차마 안 되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는 것이었다.

 

 

 

   문득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나도 모르게 ‘책은 뭐 아무나 내나’ ‘이 정도 수준으로 누가 책을 내요’ 따위의 속마음을 내비추지는 않았는지 괜히 죄송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문학도라는 어쭙잖은 자부심에 잔뜩 심취해있던 때였다. 등단을 하고 한국문학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포함되기를 열망했던 이로서 특히나 책이란 건, 소위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이기도 했다. 더욱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 사소한 일상을 누가 읽고 싶어 하겠냐고, 이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돈을 쓴 독자들에게 이 정도의 글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처음으로 에세이란 장르의 책을 몇 권 읽게 된 후부터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간 소설만 읽으려 했지 다른 장르의 책은 거의 접해보지도 읽어보려 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나는 어떤 거대한 이야기라는 세계에 빠져서 일상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짜 삶에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서른이라는 해를 넘기면서 어느 새 ‘살아내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나와 내 이웃이 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순간을 자주 마주하다보니, 대단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이런 사소한 이야기에 반응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건 그들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내 이야기이기도 해서였다. 이 책이 잘 쓰였고 잘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기술적으로 판단해야 할 필요 없이, 어떤 대단한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이, 그것으로부터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것을, 그게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뭐라도 남기고 싶어서 ‘쓰기’를 선택한 과거의 그 60대 어르신을 정성껏 응원해주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된다. 이제는 그 어떤 사소한 이야기라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라면 마음껏 응원해주고 싶다. 그래서 일단은 『작은 나의 책』에 대한 그 어떤 느낌을 쓰기 전에 이런 말을 남기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김봉철 작가님, 당신은 이미 충분히 좋은 글을 쓰고 있어요.” 하고.

 

 

 

 

 

 

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

 

 

 

   『작은 나의 책』(부제:독립출판의 왕도)은 30대 무직자가 자신이 쓴 글로 독립출판물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그간 부정해왔던 삶과 의미들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책이다. ‘아무리 나라도 하고 싶은 말은 있다’는 속제목의 그것처럼, 어떠한 사회적인 자격을 취득하거나 일정한 위치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을 것 같던 빈곤한 삶과 이력들조차 솔직하게 써내려갈 수 있다면, 그러함으로써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독자들은 이 책이 거창한 성공담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나름의 고난이나 역경을 이겨내고 인간으로서 몇 단계의 성장을 이뤄내는 성장기를 그리는 이야기도 아니지만, 쓰는 행위로써 자신의 삶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하는 한 남자의 묵묵함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과연 읽을까? 이런 글들을 책으로 만든다고 누가 사서 읽을까?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내가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고 또 분류를 나눴다. 34세 백수 쓰레기의 일기, 35세 백수 쓰레기의 일기, 조촐한 노동의 이력 등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었다. 내가 살아왔던 나의 삶들이,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을 것 같던 빈곤한 나의 이력들이 문장과 문단의 형태로 페이지에 하나씩 실릴 때마다, 나는 두려움이 섞인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제목을 지어야 했기에 몇 가지를 생각해 봤지만 역시 이것밖에는 없었다.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36p

 

 

- 책을 사서 읽고 감동했습니다. 오랜만에 진정성이 담긴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걸로 됐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첫 입고를 하고 거짓말처럼 바로 다음 날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보고 한 생각이었다. 이걸로 됐다. 어떤 엄청난 성공이나 성취를 예감하는 단초를 느낀 순간의 감탄 같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앞으로 이 책이 단 한 권도 팔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으며 또 세상에 나왔다는 것조차도 모르게 잊힌다고 해도, 나는 이날 이 한 문장의 댓글이 달린 것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길 잘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 68p

 

 

 

 

 

  저자는 자신의 삶을 진솔한 언어로 표현하는 한편, 독립출판을 하게 된 계기와 살면서 책 한 권쯤 내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위해 발로 뛰며 얻은 정보와 경험들을 공유한다. 독립출판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형식이나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다는 것이기에, 무엇을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기술적으로 요구되는 판형과 폰트, 제작비, 본문 편집, 표지 제작, 인쇄 의뢰, 교정과 교열, 책값 측정법, 입고와 판매, 홍보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책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소개한다. 여기엔 어떤 객관적이고도 엄격한 매뉴얼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때로는 포기하거나 실수도 하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꼼꼼히 담아내려 한다.

 

 

 

책의 가격은 독립서점을 돌아다녀 봤을 때 대략 6,000원에서 1만 5,000원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가끔 독립출판 마켓을 나갈 때면 유명한 작가의 책들도 1만 원이면 사는데 왜 이렇게 비싸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소량 인쇄하여 유통하는 독립출판의 희소성이 묻어 있는 가격이지 않을까 싶다. 누가 이런 글들을 책으로 내겠어? 하는 기발하고 또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는 책들이 한정판으로 출시된다. / 46p

 

 

12년 전 다섯 개의 정도였던 독립서점은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를 쓸 시기에 200개 정도였다. 2020년 현재는 650개까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시장이 있고 소비자가 있으니 공급자만 있으면 된다. 을지로에 있는 인쇄소 거리에 찾아가 비용을 문의했다. 당시에는 128X188 판형으로 제작하면 200부에 46만 원, 300부에 52만 원 정도였다. 고정비용을 제외하면 100부씩 추가될 때의 변동비의 크지 않은 셈이었다. 출판사를 통해 자비출판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었다. 전국에 있는 독립서점들도 시장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다. 입고는 보통 다섯 권에 샘플 도서 한 권을 요구한다. 200개의 서점에서 내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100여 곳의 서점 중 절반에서만 내 책을 받아줘도 300권 이상이 필요했다. 인단은 만들자. 팔리고 팔리지 않고는 나중의 일이다. / 48p

 

 

  사실 책을 완성하고 그것을 독립서점에 비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일상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올 리는 없다. 지난한 노동과 텅 빈 주머니, “이 정도는 나도 하겠다. 너도 심심하면 집에서 책이나 만들어봐.” 하고 대놓고 비웃는 사람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들. 책방에 공간이 부족하여 가려서 받고 있다거나 책방 성격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입고를 거절당하는 일들까지. 어떻게 보면 그가 겪었고 여전히 느끼고 있을 이러한 경험들은 막연히 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진솔한 충고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한다. 책을 내는데 어떤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누군가의 취향에 반드시 맞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 같은 사람도 쓰고 있으니 일단 한 번 써보라고.

 

 

 

책은 이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가와 줘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구나,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쉽게 읽던 글들을 이제 책방에 입점시켰으니 글을 읽는 것은 나의 손을 떠나 책방에 들르는 이들의 선택일 것이다. 이 선택에 나는 더 이상 어떤 식으로도 개입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무력해졌다. 어쩌면 누구의 취향에도 맞지 않을지 모른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며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 두려웠다. / 74p

 

 

내가 만약 앞으로 계속 글을 쓰게 된다면 이 사람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읽는 이들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아늑함과 편안함을 주는 글을.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금 시시포스 같은 것을 떠올려보는데, 언덕 위로 돌을 굴려 밀어 올려 보아도 돌은 언제나 정상 언저리에서 떨어지고만 만다. 그러나 행복은 어쩌면 그 언덕 위가 아닌 돌을 밀어 올리는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의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닌가. / 81p

 

 

물론 독립출판물을 만든 뒤 기성출판사를 통해 책을 출간하는 일이 독립출판의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 이는 독립출판이라는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세계를 단순히 기성출판계의 서브컬쳐쯤으로 치부해버리는 일이다. 기성출판의 대안이라고 하면 오만하게 보일 수 있겠으나 단순히 하위문화 정도로 취급한다면 그 속에서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 오랫동안 가구고 일궈온 분들에 대한 결례일 것이다. / 146p

 

 

 

 

 

 

   한 번쯤 자신의 글을 써보고 싶은 이들에게, 나만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대단할 것 하나 없는 이런 나라도 괜찮다는 그의 메시지에 힘입어 꼭 한 번 도전해보시기를 바란다. 아, 이것은 곧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 시그널 - 돈의 현재와 미래를 읽는 10가지 신호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19 이후의 시대, 기존의 경제 상식이 아닌 새로운 신호를 읽어야 할 때!

우리 경제의 불편한 진실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돈의 흐름에 주목하라!

 

 

  오늘자 뉴스로 내년 건강보험료율이 2.89% 인상된다는 소식이다. 직장가입자는 월 평균 3천 399원을, 지역가입자는 월평균 2천 756원을 더 내야 한다고 한다. 어디 건강보험료만 오르겠느냐, 재난지원금에 코로나로 인해 쓰인 각종 세금들을 국민들한테서 메우겠다는 거 아니냐,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댓글 투성이다. 더욱이 2차 재난지원금까지 정부가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소식은 이제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라 불안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그런 와중에 우리나라가 선진국 평균 국가부채 비율보다 낮다며 3·4차 재난지원금도 가능하다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주장을 살펴보면 대체 뭐가 맞는 말인지, 경제에 관한 한 일자무식인 나로서는 도통 모를 일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평소 1만 건 이상에 이르던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8월 들어 1,923건에 불과할 정도로 거래 절벽에 이르렀다는데, 집값은 가격 상승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거래량이 줄면 가격이 떨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이 역시 경알못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평소 경제라고는 저축 외에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아니 아는 것이 없으니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투자니 눈도 돌리지 말자는 주의의 나로서는 각종 경제 지표와 흐름들을 어떻게 읽고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이번에 산 아파트가 1억이 올랐다’, ‘역시 빚을 내서라도 그 건물을 사는 게 맞았어’ 같은 지인들의 말을 들을 때면 이제는 나도 부동산이나 투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재테크에 관한 공부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괜한 불안과 조급증을 안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외 경제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급변하고 있는 데다 소위 전문가들의 궤변이나 언론의 자극적인 제목만 보면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지, 나와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어떠할지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진 까닭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부터라도 경제 관련 책을 찾아서 읽어보자니 온갖 숫자와 통계들로 점철된 글들을 제대로 읽어낼 자신이 없다. 솔직히 『경제 시그널』을 처음 마주할 때만 하더라도 ‘아, 나는 또 이해도 못할 걸 읽어보겠다고 덤벼드는 구나’ 했던 게 이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도 경제가 이렇게 쉬운 건지 몰랐어요, 하고 자평할 자신은 없다. 다만 경제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조차 현 시점에서 누구라도 궁금해 할 만한 것들, 이를 테면 ‘왜 대출 금리는 적금 이자보다 높을까’ ‘부동산은 계속 오를까’ ‘지금과 같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서 정부가 빚을 늘이면 큰일이 나는 게 아닐까’ ‘인구 감소가 정말 문제가 될까’ ‘저축과 부동산 그리고 주식 중에 가장 좋은 투자처는 무엇일까’ 등의 질문에서부터 접근하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차트와 경제 지표를 설명하는 일반적인 경제서와 달리 우리가 미처 몰랐던 혹은 잘못 알고 있었던 경제 상식을 수정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바로 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 더욱 그런 듯하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복잡한 경제 용어로 진입 장벽을 높이지도, 이렇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등의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독자를 현혹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갈팡질팡 하는 경제 전망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경제가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 힘을 길러내는 데 주목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누적 다운로드 1억, 10만 정기 구독자의 경제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들답게 적절한 유머 코드와 쉬운 예제를 통한 친절한 설명으로 평소 구독자와 소통하듯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면 어느 새 ‘어, 내가 경제 관련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있었던가?’ 하고 나도 모르게 질문하게 된다.

 

 

 

 

 

 

돈의 현재와 미래를 읽는 10가지 신호들

 

 

 

   『경제 시그널』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제의 지각변동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질문부터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디에, 어떤 것에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냐’는 단편적이고 뻔한 질문에서 벗어나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돈의 길목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질문들을 던져보자는 것이다. 이에 책에서는 우리 경제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오늘의 경제와 내일의 흐름을 보여주는 10가지 신호를 통해 경제의 원리를 읽는 방법을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10가지 신호란, 돈의 현재를 읽는 5가지 신호(통계, 금리, 부동산, 재정, 인구)와 부의 미래를 결정할 5가지 신호(일코노미, 비즈니스 플랫폼, 중고 시장, 인공지능, 제로 금리)가 바로 그것이다. 책은 이 10가지 신호를 통해 어제의 상식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경제적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첫째는 ‘통계’ 즉 숫자의 착시 현상에 속지 마라는 것이다.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 통계statistics는 라틴어 ‘정치가statista’에서 유래한 말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예로부터 정치가들이 ‘우민’을 속이기 위해 자주 사용한 방법이 바로 통계라는 것이다. 이에 책은 통계에 담겨진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내용이나 맥락을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숫자의 착시 현상을 이용해 현실을 왜곡하는 주장과 보도에 속지 않으려면 숫자의 기준이 같은지, 구체적인 수치가 얼마인지, 특히 기사의 경우 제목의 자극적인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둘째, ‘금리’에서는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은행에서 외면 받는 이유를 은행가의 역설을 통해 설명하면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금리의 결정 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해준다.

 

 

 

원본 자료를 바탕으로 언론이나 비전문가들이 계산할 경우 실수가 섞여들 가능성이 많다. 때론 고의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둘이나 죽였다거나, 이혼율 47.4퍼센트, 폐업율 90퍼센트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치가 제시되면 일단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원본 자료를 찾아보고 관련 내용을 다양하게 검색해 오류가 없는지 확인해야 속지 않는다. / 79p

 

 

그런데 금리 조절로 어떻게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경기가 나쁘다고 판단한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춘 경우를 가정해보자.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추면 은행에 돈을 넣어 얻을 수 있는 이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식이나 펀드, 부동산 등 다른 투자 수단이나 소비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러면 시중에 돈이 풀려 통화량이 증가하고 돈의 가치는 떨어진다. 반면 비싼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고급 자동차나 가전을 사려는 사람은 늘어난다. 기업도 공장을 더 짓거나 고용을 늘리는 등 투자에 나선다. 이처럼 돈이 돌면 나빴던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 110p

 

 

은행은 더 절실한 이 피디 같은 사람보다는 박 피디 같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다. 게다가 더 낮은 금리라는 선물까지 안겨준다(여유 있는 박 피디는 3퍼센트대의 부담 없는 이자로 돈을 빌리지만 절박한 이 피디는 5퍼센트가 넘는 고금리에 시달린다). 이런 논리로 가난한 사람은 은행에서 점점 외면 받는다. 분명 금융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융통해주는 산업인데, 그 본질이 사라지고 돈을 더 잘 벌게 해줄 곳으로만 돈이 더 흐르게 한다. 이런 불합리를 코스미데스와 투비는 ‘은행가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 123p

 

 

 

 

 

 

   세 번째는 경제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인 ‘부동산’이다. 소위 서울에서 부동산 투자로 돈 잃으면 등신이라는 말이 있듯 부동산 신화는 깨지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과연 앞으로도 계속 전망이 좋을지 알다가도 모를 부동산 투자의 세계를 탐험해본다. 네 번째는 ‘재정’이다.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복지 예산을 낭비해서 ‘빚 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말 빚 걱정하지 않고 복지를 요구해도 될 것인지, 세금과 재정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살펴본다.

 

 

 

   개인적으로 코로나19 발생 이후 대두된 ‘복지는 곧 혈세다’는 논리가 과연 진실인지 궁금했던 터라 이 대목을 관심 있게 읽었는데, 빚 공화국이라는 언론의 보도와 달리 우리나라의 재정 상태는 상대적으로 건전한 편이며 거시적으로 봤을 때, 재정 정책을 통해 복지에 돈을 쓴다면 소위 ‘혈세’는 오히려 경제를 활기차게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상당히 그럴 듯하게 읽힌다. 덕분에 기존의 상식을 달리 생각할 계기를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섯 번째 ‘인구’에서 역시 인구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와 달리 오히려 희망일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그러고 보면 타노스의 논리가 맞는 것일지도), 지금은 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보다 상생과 연대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이들의 메시지가 큰 울림을 준다.

 

 

 

칸트가 강조한 능동적인 인간으로 변신한다는 심정으로 다양한 복지 제도를 적극 활용해보길 권한다. 이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다. 이런 제도를 알아보는 것은 투자에도 도움이 된다. 복지와 재테크가 무슨 상관이냐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돈을 움직이는 곳이 어디일까? 당연히 정부다. 2020년 정부 예산은 513조 원에 달한다. 이중 복지 예산이 무려 180조 원이 넘는다. 이렇게 엄청난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유심히 보면 어떤 산업이나 기업이 뜰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국가 경제에 도움을 준다는 심정으로 정부가 중점을 두고 복지 예산을 투입하는 곳에 같이 투자한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 194p

 

 

보고서가 전하는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출산율은 단순히 일하는 여성의 비율에만 반응하지 않았다. 평균 임금이나 육아 휴직 증가는 물론 남녀간 임금 격차 감소에도 일관되게 ‘플러스(+)’ 효과를 보였다. 여성이 일하면서 월급을 많이 받고 육아 휴직도 잘 챙기면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런 현상이 선진국에서도 나타났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그동안 선진국일수록 여성들의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믿어왔는데 선진국에서도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비법이 보이기 때문이다. / 206p

 

 

따라서 우리는 가장 촉망 받는 사업 모델로 비즈니스 플랫폼을 선택해야 하고, 여기에서 또 다시 성공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착함’과 ‘기업 지속 가능성’을 모두 갖춰야 함을 알 수 있다. ‘착함’이라는 개념이 자본주의와 기업 경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플랫폼 경제 아래에서 누구나 알 만한 플랫폼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실제 브랜드의 그다지 착하지 않은 행위를 관찰해보면 ‘착함’이 최소한 비즈니스 플랫폼에서는 핵심 경쟁력임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 271p

 

 

 

 

 

 

   끝으로 1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산업 구조의 재편을 강조하는 ‘일코노미’, 성공하는 ‘비즈니스 플랫폼’의 조건, 신상품 시장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중고 시장’, AI 시대에 대한 전망과 유망 직업들을 함께 살펴보는 ‘인공지능’, 합리적인 투자의 원리를 소개하는 ‘제로 금리’와 같은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미래에는 돈이 어느 쪽으로 어떻게 흐를 것인지 다각도로 전망해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코로나19야말로 상생이라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다는 인식이다.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저자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말에 의하면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은 환상에서 비롯된 착각이며, 사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즉, 돈과 시장은 거주할 집에 대한 욕구는 채워주지만, 나 자신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가정에 대한 욕구는 채워줄 수 없다. 다시 말해 내가 잘하면, 내가 투자를 열심히 하면 내가 조금 더 공부하면 많이 벌수 있다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잘해야, 우리가 서로를 배려해야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경제 불안과 사회적 변화가 요동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경제생활에 임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왔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