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의 책 - 독립출판의 왕도
김봉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면서 내 책 한 권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나를 위한 글쓰기를 응원하는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

 

 

  대학 시절, 한 60대 어르신이 자식들에게 남기고 싶은 글이 있어 대필 작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용돈 벌이 삼아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조교 언니의 제안에 일단 수락은 했지만 이내 막막해졌다. 자신이 쓴 글을 그럴 듯하게 정돈해달라는 정도의 가벼운 일이었지만, 거기엔 몇 가지 단어와 대체로 몇 줄의 짧은 문장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권의 책으로 만들려면 이 정도 분량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나의 말에 어르신은 쑥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내가 글재주는 없는데, 뭐라도 남기고 싶어서…….” 대충 어디서 찢어 썼는지 종이 크기는 들쭉날쭉에 뭔가를 먹다가 흘리기라도 했는지 얼룩이 곳곳에 묻어있는 걸 보며 역시나 난감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나는 “최대한 해볼게요.”하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안 되는 글자지만 어떻게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힘주어 꾹꾹 눌러쓴 듯한 글자를 보니 차마 안 되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는 것이었다.

 

 

 

   문득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나도 모르게 ‘책은 뭐 아무나 내나’ ‘이 정도 수준으로 누가 책을 내요’ 따위의 속마음을 내비추지는 않았는지 괜히 죄송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문학도라는 어쭙잖은 자부심에 잔뜩 심취해있던 때였다. 등단을 하고 한국문학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포함되기를 열망했던 이로서 특히나 책이란 건, 소위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이기도 했다. 더욱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 사소한 일상을 누가 읽고 싶어 하겠냐고, 이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돈을 쓴 독자들에게 이 정도의 글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처음으로 에세이란 장르의 책을 몇 권 읽게 된 후부터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간 소설만 읽으려 했지 다른 장르의 책은 거의 접해보지도 읽어보려 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나는 어떤 거대한 이야기라는 세계에 빠져서 일상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짜 삶에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서른이라는 해를 넘기면서 어느 새 ‘살아내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나와 내 이웃이 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순간을 자주 마주하다보니, 대단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이런 사소한 이야기에 반응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건 그들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내 이야기이기도 해서였다. 이 책이 잘 쓰였고 잘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기술적으로 판단해야 할 필요 없이, 어떤 대단한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이, 그것으로부터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것을, 그게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뭐라도 남기고 싶어서 ‘쓰기’를 선택한 과거의 그 60대 어르신을 정성껏 응원해주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된다. 이제는 그 어떤 사소한 이야기라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라면 마음껏 응원해주고 싶다. 그래서 일단은 『작은 나의 책』에 대한 그 어떤 느낌을 쓰기 전에 이런 말을 남기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김봉철 작가님, 당신은 이미 충분히 좋은 글을 쓰고 있어요.” 하고.

 

 

 

 

 

 

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

 

 

 

   『작은 나의 책』(부제:독립출판의 왕도)은 30대 무직자가 자신이 쓴 글로 독립출판물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그간 부정해왔던 삶과 의미들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책이다. ‘아무리 나라도 하고 싶은 말은 있다’는 속제목의 그것처럼, 어떠한 사회적인 자격을 취득하거나 일정한 위치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을 것 같던 빈곤한 삶과 이력들조차 솔직하게 써내려갈 수 있다면, 그러함으로써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독자들은 이 책이 거창한 성공담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나름의 고난이나 역경을 이겨내고 인간으로서 몇 단계의 성장을 이뤄내는 성장기를 그리는 이야기도 아니지만, 쓰는 행위로써 자신의 삶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하는 한 남자의 묵묵함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과연 읽을까? 이런 글들을 책으로 만든다고 누가 사서 읽을까?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내가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고 또 분류를 나눴다. 34세 백수 쓰레기의 일기, 35세 백수 쓰레기의 일기, 조촐한 노동의 이력 등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었다. 내가 살아왔던 나의 삶들이,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을 것 같던 빈곤한 나의 이력들이 문장과 문단의 형태로 페이지에 하나씩 실릴 때마다, 나는 두려움이 섞인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제목을 지어야 했기에 몇 가지를 생각해 봤지만 역시 이것밖에는 없었다.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 36p

 

 

- 책을 사서 읽고 감동했습니다. 오랜만에 진정성이 담긴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걸로 됐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첫 입고를 하고 거짓말처럼 바로 다음 날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보고 한 생각이었다. 이걸로 됐다. 어떤 엄청난 성공이나 성취를 예감하는 단초를 느낀 순간의 감탄 같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앞으로 이 책이 단 한 권도 팔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으며 또 세상에 나왔다는 것조차도 모르게 잊힌다고 해도, 나는 이날 이 한 문장의 댓글이 달린 것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길 잘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 68p

 

 

 

 

 

  저자는 자신의 삶을 진솔한 언어로 표현하는 한편, 독립출판을 하게 된 계기와 살면서 책 한 권쯤 내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위해 발로 뛰며 얻은 정보와 경험들을 공유한다. 독립출판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형식이나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다는 것이기에, 무엇을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기술적으로 요구되는 판형과 폰트, 제작비, 본문 편집, 표지 제작, 인쇄 의뢰, 교정과 교열, 책값 측정법, 입고와 판매, 홍보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책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소개한다. 여기엔 어떤 객관적이고도 엄격한 매뉴얼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때로는 포기하거나 실수도 하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꼼꼼히 담아내려 한다.

 

 

 

책의 가격은 독립서점을 돌아다녀 봤을 때 대략 6,000원에서 1만 5,000원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가끔 독립출판 마켓을 나갈 때면 유명한 작가의 책들도 1만 원이면 사는데 왜 이렇게 비싸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소량 인쇄하여 유통하는 독립출판의 희소성이 묻어 있는 가격이지 않을까 싶다. 누가 이런 글들을 책으로 내겠어? 하는 기발하고 또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는 책들이 한정판으로 출시된다. / 46p

 

 

12년 전 다섯 개의 정도였던 독립서점은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를 쓸 시기에 200개 정도였다. 2020년 현재는 650개까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시장이 있고 소비자가 있으니 공급자만 있으면 된다. 을지로에 있는 인쇄소 거리에 찾아가 비용을 문의했다. 당시에는 128X188 판형으로 제작하면 200부에 46만 원, 300부에 52만 원 정도였다. 고정비용을 제외하면 100부씩 추가될 때의 변동비의 크지 않은 셈이었다. 출판사를 통해 자비출판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었다. 전국에 있는 독립서점들도 시장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다. 입고는 보통 다섯 권에 샘플 도서 한 권을 요구한다. 200개의 서점에서 내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100여 곳의 서점 중 절반에서만 내 책을 받아줘도 300권 이상이 필요했다. 인단은 만들자. 팔리고 팔리지 않고는 나중의 일이다. / 48p

 

 

  사실 책을 완성하고 그것을 독립서점에 비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일상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올 리는 없다. 지난한 노동과 텅 빈 주머니, “이 정도는 나도 하겠다. 너도 심심하면 집에서 책이나 만들어봐.” 하고 대놓고 비웃는 사람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들. 책방에 공간이 부족하여 가려서 받고 있다거나 책방 성격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입고를 거절당하는 일들까지. 어떻게 보면 그가 겪었고 여전히 느끼고 있을 이러한 경험들은 막연히 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진솔한 충고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한다. 책을 내는데 어떤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누군가의 취향에 반드시 맞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 같은 사람도 쓰고 있으니 일단 한 번 써보라고.

 

 

 

책은 이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가와 줘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구나,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쉽게 읽던 글들을 이제 책방에 입점시켰으니 글을 읽는 것은 나의 손을 떠나 책방에 들르는 이들의 선택일 것이다. 이 선택에 나는 더 이상 어떤 식으로도 개입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무력해졌다. 어쩌면 누구의 취향에도 맞지 않을지 모른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며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 두려웠다. / 74p

 

 

내가 만약 앞으로 계속 글을 쓰게 된다면 이 사람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읽는 이들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아늑함과 편안함을 주는 글을.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금 시시포스 같은 것을 떠올려보는데, 언덕 위로 돌을 굴려 밀어 올려 보아도 돌은 언제나 정상 언저리에서 떨어지고만 만다. 그러나 행복은 어쩌면 그 언덕 위가 아닌 돌을 밀어 올리는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의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닌가. / 81p

 

 

물론 독립출판물을 만든 뒤 기성출판사를 통해 책을 출간하는 일이 독립출판의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 이는 독립출판이라는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세계를 단순히 기성출판계의 서브컬쳐쯤으로 치부해버리는 일이다. 기성출판의 대안이라고 하면 오만하게 보일 수 있겠으나 단순히 하위문화 정도로 취급한다면 그 속에서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 오랫동안 가구고 일궈온 분들에 대한 결례일 것이다. / 146p

 

 

 

 

 

 

   한 번쯤 자신의 글을 써보고 싶은 이들에게, 나만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대단할 것 하나 없는 이런 나라도 괜찮다는 그의 메시지에 힘입어 꼭 한 번 도전해보시기를 바란다. 아, 이것은 곧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