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문 특서 청소년문학 19
지혜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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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넘어서려 할 때, 마침내 자신만의 시구문을 넘어 새로운 문이 열린다!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도성 밖으로 내어가기 위해 문을 하나 건너야 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시구문(광희문)이다. 이 문을 건너면 이승의 삶이 저승의 삶으로 뒤바뀌는 일인데, 시구문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회한을 그 자리에서 지켜보았을까. 때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잇달아 겪어야 했던 인조 시대, 소설은 시구문의 안팎에서 곤궁한 삶을 근근이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무당의 딸인 기련은 오늘도 시구문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기웃거리며 죽은 자의 시신이 옮겨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난 하루빨리 돈 모아서 집을 나갈 거야. 도망칠 거라고.” 동무인 백주에게 늘 하는 말이다. 집으로부터, 어머니로부터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는 기련으로서는 돈을 모으는 일이 시급하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로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그토록 싫어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억울한 죽음을 이렇게 내보내면 쓰나. (…) 원통한 마음을 풀고 나가야 할 텐데…….” 죽은 사람에 대한 측은한 마음 또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 액땜을 해준답시고 돈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속이는 것은 아니다. 죽은 손녀딸을 지게에 지고 나가는 노인이 마음에 쓰여서 자신이 신고 있던 버선을 거무죽죽한 죽은 아이의 발에 신겨주기도 한다. 또 마냥 헛소리를 지어내는 것만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기련의 귓가에 아주 가느라단 풀피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람소리가 아닌, 죽음과 가까워지는 순간 들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게다가 느닷없이 보이기 시작한 검은 형상까지. ‘신내림은 대를 통해 전해진다는데, 딸년도 제 어미 인생 따라갈 거 아냐.’ 사람들 역시 이렇게 수군거린다. 하지만 기련은 소문, 진실, 운명, 그런 것들 따위 아무것도 믿고 싶지 않다. 자신이 믿어버리면 그것이 사실이 될 것 같아 두려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니라고 부정한다고 해서 정말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열 다섯 살의 소녀 기련으로서는 자신을 둘러싼 운명이라는 그 몹쓸 것 때문에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뿐이다.

 

 

 

 

“난 하루빨리 돈 모아서 집을 나갈 거야. 도망칠 거라고. 지금 좋은 방법 같은 건 없어.”

백주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도 내가 얼마나 우스워보일지를 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했다. 아까 시구문 길에서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 들렸던 그 풀피리 소리도 신경 쓰였다. 요즘 들어 그것과 비슷한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도 나를 불안하게 했다. 이러나 아무것도 못 하고 어머니처럼 운명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면 심장이 발끝으로 툭 떨어져버리는 것 같았다. / 23p

 

 

“그날 저녁에 백주 아버지 방 문 앞에서 이상한 풀피리 소리를 들었어요.”

어머니가 콩을 담던 손을 멈췄다. 알 수 없는 적막이 어머니와 나를 에워쌌다. 죽음과 가까워지는 순간 들리는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얼마 전부터 묻고 싶었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에게 어떤 말을 들려줄지 겁부터 났다.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 있더라도 나는 그 운명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신이든, 어머니든 누군가 정해준 건 내 것이 아니었다. / 108p

 

 

 




 

 

 

 

  한편, 양반댁 규수인 소애는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역모죄에 몰려 참수를 당하는 변고를 겪는다. 관아에서 나온 사람들이 집 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사이 몸종인 향이의 도움으로 겨우 도망쳤지만, 당장에는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평생 반역 죄인의 딸로 멸시를 당하다 죽을 이 운명을 어찌 피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아버지의 효수가 시구문 밖에 매달렸는데도 얼굴을 볼 수 없으니 그저 원통할 따름이다. 때마침 이 광경을 보게 된 기련이 한때 소애와 향이의 도움 덕분에 목숨은 물론 아버지의 유품까지 구할 수 있었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다가 대신 나서기로 한다. 아버지의 터럭이라도 구해오고 싶은 소애의 원통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동무인 백주와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다.

 

 

 

사람의 기억이란 지나간 사람의 기억을 이어 붙여 또 끝끝내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육신이 여기 없어도 그 사람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음, 기억 속에 함께 이어져 있다. / 123p

 

 

 

  이렇게 소설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무당인 어머니가 부끄러워서 하루빨리 도망치려고 하는 기련, 모함을 받아 몰락한 양반가 규수인 소애, 편찮은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책임지고 있는 소년 가장 백주를 통해 당시 십대들이 겪어야 했던 삶과 죽음, 운명이라는 서글픈 비애를 조명한다. 신분의 한계, 타고난 운명, 가족 간의 갈등, 가진 자들에 의해 아무렇게나 내팽겨지고 마는 삶의 얄팍함이란 그들에게 매순간 위기다. 하지만 이들은 더 이상 다다를 데 없이 마지막까지 내몰린 순간에도 살아있는 한 아직까지 희망은 있다고 믿는다. 소중한 것은 사실보다 마음속 진실이라는 것을 가족에게서, 함께 의지하는 동무들에게서 배운 기련과 소애는 이제 살아가는 내내 자신이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로 다짐하며 운명의 문을 넘는다.

 

 

 

살아가는 내내 기억해야 했다. 앞으로의 삶이 힘들더라도, 우리에게는 우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기꺼이 문밖의 길을 내어준 어머니와 백주가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운명이 나를 이끄는 것이 아닌, 내가 운명을 이끌어보겠노라 다짐했다. 두렵지 않았다. 나는 손에 힘을 주고 두 사람의 손을 꼭 쥐었다. / 180p

 

 

 



 

 

 

 

  『시구문』은 비록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십대라면 마주하게 되는 고민과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정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넘어서려 할 때, 마침내 자신만의 시구문을 넘어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그 문 너머에도 커다란 시련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늘 위기는 매순간 찾아오겠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한 반드시 희망은 있다고 소설은 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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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했던 것들
에밀리 기핀 지음, 문세원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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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변하게 하는 가장 단순하고 또한 강력한 힘은 가족 안에 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연대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따뜻하고도 희망적인 소설!

 

 

  아이가 커가면서 깨닫게 되는 생각 중의 하나는 머지않아 아이가 내게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리란 사실이다. 즐거웠던 일들, 속상했던 일들, 그날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며 재잘거리기 좋아하던 한 때의 꼬마 아이는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엄마보다는 친구와 공유하는 것들이 더 많아질 테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대화도 줄어들겠지. 그건 나 역시도 그랬기에,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란 걸 알기에 나는 일찌감치 마음을 다독이는 연습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애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모르겠어.” 소설 『우리가 원했던 것들』 속 니나의 대사 역시 이러한 이유로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나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에서 아이가 어떤 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있지는 않을지, 혹시 누군가에게 뜻밖의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을지,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의 마음을 쉽게 두드릴 수도 침범할 수도 없는 막막함이 이 한 마디에서 고스란히 느껴졌으니 말이다. 덕분에 나는 또 한 번 다짐한다. 아이가 홀로 외로운 선택을 하느라 고군분투하지 않게, 옆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줄 부모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우리는 그 어떤 순간에도 함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종종 이렇게 가장 가까운데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니나 브라우닝은 4대째 내슈빌 금수저로 통하는 남편 커크와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최근 아들인 핀치가 아이비리그 프린스턴 대학교에 합격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소도시인 브리스톨 출신에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자라난 니나로서는 프리스턴에 기부금 조로 보낸 수표가 아들의 합격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지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데다, 점점 돈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남편과 그 사이에서 대화마저 사라지고 있는 지금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그러다 마침 커크와 니나 부부 덕에 열린 자선 행사에서 니나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다. 한 여학생이 취중에 남자아이의 침실에서 가슴을 드러내놓고 누워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아들의 SNS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여학생을 조롱하며 남긴 인종차별 발언은 자신의 아들이 남긴 글이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녀를 충격에 빠뜨린다.

 

 

 

따지고 보면 브라우닝 집안에서 굳이 브리스톨 출신에 유대인 피가 섞이고 게이 오빠를 둔, 거기다가 부모가 남겨준 자산이라곤 한 푼도 없는 여자아이를 외동아들 배필 일 순위로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나는 이론상 며느릿감 일 순위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라고? 커크가 선택한 건 나였잖나. 난 항상 자신을 타이르곤 했다. 그가 사랑에 빠진 것은 나라는 인격,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이라고. 내가 그와 사랑이 빠진 이유도 꼭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난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같은 대학에 다니던 우리 두 사람은 어떤 공통점이 있어서 끌렸던 것일까? / 11p

 

 

재잘거리기 좋아하던 꼬마 핀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들려주어 엄마를 기쁘게 하던 조숙한 외동아들이었다. 내가 녀석에 관해 모르는 일은 없었고 녀석이 엄마에게 숨기는 비밀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거리감은 한번 자리 잡으니 영 걷힐 줄을 몰랐다. 최근 몇 달간 우리가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그가 친 방어벽을 부수어 보려고 숱하게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커크는 그게 둥지를 떠나기 전 아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지극히 정상’이라고 주장했다. 당신은 걱정이 너무 많아 탈이야, 그는 항상 그렇게 말하곤 했다. / 15p

 

 

 

  한편, 톰은 돈 좀 있다고 뻐기는 특권층의 자제들로 가득한 윈저에 다니는 딸을 홀로 키우고 있는 싱글대디다. 집을 나가버린 아내 대신 딸을 혼자 키워내느라 투잡을 뛰어야 할 정도로 매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딸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친구의 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던 딸 라일라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온 날 밤, 그녀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충격적인 SNS 스캔들에 휩싸이고 말았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하지만 라일라는 이 일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이대로 흘러가버리기를 바란다. 마치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되기라도 할 것처럼. 게다가 평소 호감을 품고 있던 핀치가 이 일로 인해 프리스턴 대학교 입학이 취소되기라도 할까봐 톰에게 고발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한다. 때문에 톰은 고민에 빠진다. ‘자기 자신을 자키고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그뿐 아니라, 행여 우리가 물러선다고 해도, 이게 과연 없었던 일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문제가 언제고, 우리가 가장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까?’ 결국 이대로 묻어두는 건 옳은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톰은 이 사건을 학교 측에 제기하고, 핀치는 명예위원회에 회부된다.

 

 

 

  아들이 명예위원회에 회부된 것에 분노한 커크는 프리스턴 대학의 입학이 취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한다. 그보다 진심어린 사과 대신 끊임없이 거짓말로 일관하는 듯한 핀치의 행동에 엄마인 니나는 크게 실망한다. 어느새 자기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듯한 아들, 그런 아들을 나무라기보다 돈으로 잘못을 바로잡으려하는 남편에게 신물을 느낄수록 니나는 점점 라일라에게 마음이 쓰인다. 그것은 니나가 라일라와 비슷한 나이였던 시절에 잭 러더포드로부터 강간을 당했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핀치가 라일라에게 한 짓이 그만큼 나쁜 일은 아닐지언정 여전히 끔찍한 일인 건 마찬가지라고, 잭이 그런 것처럼 내 아들 역시 취약한 입장에 처한 순진한 소녀를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큰 책임감을 느끼며 이 일을 바로잡기로 마음먹는다. 잭이 평생 자신의 기억을 쫓아다니며 괴롭혔던 것처럼 핀치가 라일라에게 그런 존재이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니나는 그들에게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기 위해 톰과 라일라 앞에 나선다.

 

 

 

내 생각은 자연스레 톰과 라일라에게로 이어졌다. 홀아버지와 딸의 관계. 톰이 커크와 나에 대해 했던 말. 이번 사건에 대해 라일라가 느끼는 감정. 나는 라일라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 욕구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어쩌면 이 감정은 어떤 끈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끈. 라일라의 이야기에 연결된 과거 나의 이야기. 어딘가에 묻어버린 고대의 기억. / 184p

 

 

요즘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휴대전화 속에 숨어 살아가는지를 얘기하고 얼굴 보고는 절대로 하지 못할 얘기를 인터넷상으로 서슴없이 하는 아이들을 걱정했다. 그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건, 성적인 말이건, 혹은 그냥 겁 없이 지르는 말이건 간에 말이다. 우리는 요즘 아이들을 가엾이 여기고 그들의 부모인 우리 자신을 불쌍히 여겼다. / 256p

 

 

“꼭 그래야만 해. 폴리를 위해서 그리고 너를 위해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는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위해서.” 부인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멀리 바라본다. 그리고는 다시 내 눈을 응시한다. “우리를 위해서.” / 455p

 

 

 



 

 

 

 

  이렇듯 소설은 특권층의 자제인 핀치가 자신의 SNS에 신체가 드러나 있는 여학생의 사진을 찍어 무단으로 올린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부유한 가정주부이자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의 엄마인 니나, 피해자인 16살 소녀 라일라 그리고 싱글대디로 라일라를 홀로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아빠 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성폭력, 인종 차별, 계층 간 갈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 소셜미디어의 폐해와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문제점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특히 가해자의 엄마인 니나가 피해자들을 만남으로써 진심어린 사과와 용서를 구하고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고 바른 길로 나아가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학폭 논란, 인성 논란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아이에게 진정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 셋이 다시 이 문제에 관해 심도 있게 대화했으면 해. 다 털어놓고. 핀치가 벌써 이틀째 나를 피하고 있어. 뭐 사실 더 오래전부터이긴 하지만……. 난 지금 얘기 미안해서 그러는 건지, 토라져서 그러는 건지 구분할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는데 가슴이 먹먹해 왔다. “요즘 애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모르겠어.” / 163p

 

 

“나는 그냥 아빠가 가끔은 나를 좀 믿어줬으면 해요.” 라일라가 계속 얘기한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아빠와는 좀 다를 수도 있겠죠. 그게 그레이스나 핀치, 누가 되었건요. 아, 맞아요, 나는 계속 실수를 하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빠가 나를 믿어주실 차례예요. 그러다가 일이 꼬이면 꼬는 거죠.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리고 내게 필요한 건, 나에 대한 아빠의 믿음이라고요.” / 421p

 

 

 




 

 

 

 

  처음 책의 표지와 소개글을 보았을 땐, 단순히 SNS 스캔들을 둘러싼 어떤 촌극 혹은 비극 따위의 가벼운 이야기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은 뜻밖에도 우리 시대에 자주 마주하게 되는 문제점들을 꽤 묵직한 주제의식과 함께 전달할 줄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분량이 상당한 편임에도 흡인력이 높고 서사도 탄탄해서 읽는 재미까지 잘 갖춘 작품이었다. 비록 소설의 결말은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진실보다 더 이상적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없지만 소설은 그래야만 한다는 걸 안다. 우리가 기대하고 싶은 희망이 어딘가에는 존재하리라는 것을 믿고 싶기 때문에, 또 반드시 우리가 그것을 진짜로 보여주어야 하기에.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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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 - 나를 죽이는 바이러스와 우리를 지키는 면역의 과학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
신의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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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고 나를 이해하는 지식 컨텐츠, 인생명강의 첫 번째 책!

나의 면역은 타인의 면역과 연결되므로 우리는 면역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시행 40일 동안 100만 명 이상이 1차 접종을 마쳤다고 한다. 여기에 2차 접종을 완료한 인원은 3만 명을 넘어섰다. 신규확진자가 연일 500명을 웃돌며 또 다시 대유행을 예고하고, 혈전 논란과 아나필락시스 쇼크와 같은 중증 이상 반응으로 인해 백신에 대한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점은 우려할 만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하루빨리 종식시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코로나19 바이러스로 팬데믹의 위기가 닥친 이후 겨우 1년 여 만에 백신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도 면역과 바이러스에 대한 역사적 경험과 과학으로 쌓아올린 집단지성의 힘 덕분이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면역에 관한 각종 오해와 불분명한 정보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야 겨우 면역이라는 개념을 피부로 느끼고 있을 따름이다. 때문에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기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신종 바이러스의 위협 앞에서 면역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인생명강 시리즈의 첫 주제로 ‘면역’을 주목한 것 역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팬데믹을 함께 이겨내는 과학적인 방법

 

 

 

  『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는 면역에 관한 흥미로운 지적 통찰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로 학생들에게 면역학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신의철 교수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내 몸에 침입해 나를 공격하고, 면역과 백신은 어떤 원리로 작용하여 우리 몸을 지켜내는지 과학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끊임없이 바이러스와 전쟁을 하며 발전해온 인류의 역사와 면역학의 역사를 동시에 살펴보면서 그것이 지닌 사회적 함의까지 고민해보는 과정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면역이란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나 세균 등의 병원성 미생물에 맞서는 우리 몸의 저항반응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면역반응은 내 몸이 아닌 외부 요인에 대해서만 작동해야 한다.

앞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몸속에 침투해 세포에 감염을 일으키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런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세균, 곰팡이와 같은 병원성 미생물에 감염된 사람은 회복되는 과정에서 몸속에 항체를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도 여러 차례 반복했다. 피에 녹아 있는 중화항체가 바이러스의 세포 감염을 차단하는 것이다. / 137p

 

 

항체는 면역반응에 의해 본래부터 몸속에 존재하는 물질이며, 항체의 원리를 활용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 백신이다. 즉 백신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항체가 원래 가지고 있는 면역반응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바이러스에 결합하는 항체를 항체 치료제로 개발해 환자 치료에 이용하기도 한다. / 193p

 

 

 



 

 

 

 

  흥미롭게도 의학의 역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리 유명한 바이러스가 아니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한 가지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료제를 개발할 필요도, 백신 개발 연구도 그리 깊이 이뤄진 적이 없었다. 그런 코로나 바이러스가 갑자기 관심을 받게 된 것은 2003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사스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스 바이러스는 야생 박쥐가 자연 숙주이며 사향고향이가 중간 숙주 역할을 해 인간에게 감염된 것이다. 그 뒤로 낙타를 통해 인간에게 옮겨진 것으로 확인된 메르스 바이러스가 이번에는 중동에서 출현했다.

 

 

 

  이렇게 사스, 메르스에 이어 지금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신종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분석에 따르면 인간과 야생동물이 서로 접촉하는 접점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 인간과 야생동물은 각각의 생태 영역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무분별한 벌채 등으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그 영역의 구분이 점차 불명확해지고 있는 탓이다. 다음으로 기후 변화로 야기된 지구온난화 문제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모기로 매개되는 바이러스 질환이다. 지구온난화로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하던 모기가 온대 지역에까지 서식하면서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이다. 여기에 항공의 발달은 신종 바이러스의 전파를 가속화시키는 중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했다 하더라도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현대사회에는 여러 교통수단의 발달로 단 몇 시간 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신종 바이러스가 언제, 어디에서 또 어떤 방식으로 출현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언제 몸속에 처음 들어온 것일까? 30~4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아마도 어릴 적 한 번쯤 수두를 앓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작은 물집이 전신에 일어났다가 일주일에서 열흘이면 호전되는데, 바로 이 수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동일한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다. 수십 년 동안 몸속에 잠복해 있다고 일생에 한두 번 면역이 상당히 약화되었을 때 대상포진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처럼 바이러스는 면역 시스템이 아무리 훌륭히 작동한다고 하더라도 변이하거나 잠복하며 몸속 여기저기를 도망 다닌다. / 37p

 

 

특이성과 기억 현상은 항체와 T세포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다. 즉 몸속에서 일어나는 면역반응에는 크게 항체 반응과 T세포 반응이 있으며, 이를 작동시키는 기본 원리에는 특이성과 기억 현상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유발하도록 우리가 인위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바로 백신이다. 항체와 T세포의 특이성과 기억 현상 덕분에 우리는 백신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99p

 

 

 

  그렇다면 동일한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사람마다 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첫 번째로 바이러스 감염량을 꼽는다.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감염원으로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하더라도 각 사람마다 처음 체내로 들어온 바이러스의 개수는 다를 것이다. 물론 이미 감염되어버린 환자의 체내에 맨 처음 들어왔던 바이러스의 개수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처음 체내로 들어온 바이러스의 개수가 많을수록 더 중증질환을 앓는다고 한다. 두 번째는 각 사람마다 서로 다른 유전자 특성 때문이다. 동일한 코로나19 감염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잘 버티게 하거나 취약하게 하는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과거의 감염 경험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감염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이와 유사성을 가진 친척 바이러스인 감기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경험이 코로나19 환자의 중증, 경증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이유로 저자는 무조건 면역력을 높이겠다고 각종 보조제나 영양제를 홍보하는 광고에 현혹되지 않을 것을 경고한다. 오늘날 면역학에는 필요 이상의 과다한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을뿐더러, 심지어 쉽게 측정할 수도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특정 질병의 경우 환자 상태의 평가에 도움이 되는 검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한 가지 지표로 면역력을 점수화한 측정은 불가능하다. 즉 면역력을 높인다는 논리 자체가 모순이며, 이처럼 홍보하는 건강보조식품에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시대에 면역력을 너무 과하게 권장하고 과학 연구 성과를 분별없이 보도하는 언론기사를 보다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 126p

 

 

 

  끝으로 ‘면역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환경’이라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리 각각이 가지는 감염이나 백신 접종의 경험은 개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 뜻에서 집단 면역은 한 인구 집단의 상당수가 특정 감염성 질환에 면역을 가진 상태가 되면 설사 면역이 없는 개체라 할지라도 간접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다시 말해, 어떤 바이러스를 경험하지 못해 감염에 취약할 수 있는 개체가 있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면역을 가지고 있다면 그 집단에서는 바이러스의 전파가 잘 이뤄지지 않고, 이에 따라 취약한 개체도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면역을 올바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찌 보면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큰 희생을 치루면서 얻는 위대한 교훈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부족함을 인정하고 올바른 지식을 공유하며 함께 어우러지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이 시대의 정신이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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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정치를 하다 - 우리의 몫을 찾기 위해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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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많은 여성들에게 읽혀지길, 보다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기를!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역사를 쓰며 힘겹게 싸우고 있을 여성들을 응원한다!

 

 

 

  “미얀마를 도와주세요. 우리는 지금 당장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한 장의 사진이 SNS에서 화제가 되어 퍼지기 시작했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대회에 참가한 미스 미얀마 한 레이(Han lay)가 울먹이며 마이크 앞에 서 있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제가 무대에 서 있는 동안에도 미얀마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1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며 현재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군사 쿠데타를 향한 자신의 생각을 눈물로 호소했다. 분명 그녀는 그 길로 귀국을 하면 미얀마 군부에 체포되어 신변에 문제가 생기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전 세계인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2008년,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인권을 침해하고 극악무도한 폭력과 탄압을 일삼는 탈레반을 성토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방송에 나간 바 있다. “만일 한 남자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면, 한 소녀가 그것을 바꾸는 건 왜 못하겠는가?” 놀랍게도 그녀의 나이, 고작 열한 살이었다. 무엇이 미스 미얀마 한 레이를, 평범한 열한 살의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움직이게 했을까? 정치란 “목 없는 이들의 몫”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던 자크 랑시에르의 말처럼, 나는 그녀들이 정치에는 그 어떤 자격도 요구되어서는 안 되며 나와 이웃 그리고 공동체의 역사와 그 속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으려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책 『여성, 정치를 하다』에 등장하는 21인 역시 모두 차별과 멸시, 가난과 고독, 생명의 위협 등 온갖 종류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 여성들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나는 여성 정치인들의 성취와 좌절을 평가하기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왜 한 여성이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정치에 뛰어들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해보고 싶었다. 여성 정치인들의 도전으로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무엇보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가는 것,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며 이를 위해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역사를 쓰며 힘겹게 싸우고 있을 이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말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고.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소유하고 있다

 

 

 

  미셸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자신의 이야기는 우리가 각자 갖고 있는 자산, 언제까지나 갖고 있을 자산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소유한다.” 비록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을지라도 그 이야기가 곧 세상을 변화시키리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던 시몬 베유는 차별에 대한 투쟁에 앞장섰고, 로자 파크스는 흑인을 억압하는 악법을 폐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세상을 바꾸는 방법임을 알았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최소한의 보호막이 되어줄 수 있는 법이 정착되는 과정이 민주주의임을 증명했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로서의 소명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보건, 의료, 복지가 정치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여성의 정치 참여를 특히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말괄량이 삐삐’를 창조한 세계적인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글쓰기를 통해 스웨덴의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존 바에즈는 이 시대가 던지는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물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음악으로, 케테 콜비츠는 미술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우리가 어떤 조건에서 살아남았는지,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신만이 아시리라. 사실은 신도 몰랐으리라 생각한다.” 시몬 베유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왔다고?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는 거잖아.”라고 내뱉는 말들을 들으며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헤집는 질문들도 난무했다. “내 팔뚝에 새겨진 수형 번호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그것이 내 사물함 번호였냐고 물었다.” / 시몬 베유 편 중에서 19p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세상이 여성과 아이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때마다 새삼 충격을 받았다.” “열세 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자신이 낳은 사생아의 출생 신고를 하러 등기소에 오곤” 했지만, 법은 그녀들의 편이 아니었다. 사생아를 낳은 “아주 어린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방치해서 죽게 만든 일이 발생”하자, “그 소녀는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다시 여성 참정권 시위 현장으로 향한다. 그 사이 딸들도 엄마와 함께 집회에 참여하는 동지로 훌쩍 자랐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권을 얻을 작정이에요.” / 에멀린 팽크허스트 편 중에서 40p

 

 

 




 

 

 

 

  책은 그녀들의 삶 속을 통해서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들이 불평등한 세상과 싸우는 동안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나이팅게일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잔다르크처럼 불에 태워 죽이고 싶어 하는 자들로부터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렸고, 국무 장관에 임명된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여자가 국무부 수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자질 논란과 비판에 맞서야했다. 심지어 헬렌 켈러가 정치색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성녀”에서 “불구자”로 전락시키며 혐오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미국에서는 삼류 배우만 되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데 그리스의 유명 여배우가 문화부 장관이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여배우가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론을 조성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 멜리나 메르쿠리의 말은 결국 정치란, 누가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떻게,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할 것인지 그것을 잘 아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팔라치는 자신의 말과 글로 정치에 참여했다. 16세부터 77세까지 그녀를 지탱해 온 저항 정신의 근원이었다. 팔라치는 “아니오” 그 세 글자에 담긴 의미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문제적인 글을 발표하며 세상에 파문을 일으켰다. 또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는 꼭 여성이 해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다. / 오리아나 팔라치 편 중에서 143p

 

 

“나는 케냐인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마치 모든 정치인이 다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라는 듯이 여기는 통념에 도전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케냐에서는 국민의 열망을 억압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정책을 주도한 이들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너무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그들의 결정이었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상황을 오해하는 것이다. 왜 당신의 운명을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의 손아귀에 맡겨야 할까?” / 왕가리 마타이 편 중에서 219p

 

 

왕가리 마타이는 천천히 끝까지 싸워도 세상은 아주 조금씩 변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케냐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나무로 환기시켰다. 민주주의는 단숨에 이룰 수도 혼자서 완성할 수도 없으며, ‘만병통치약’도 아니었다. 그녀는 협치를 강조한 정치인이었다. “살면서 그리고 일을 하면서 알게 될 겁니다. 그 어떤 일도 혼자서 해낼 수 없음을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일을 혼자 하면, 제가 그 자리를 떠났을 때 그 일을 맡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 왕가리 마타이 편 중에서 226p

 

 

 




 

 

 

 

  나혜석은 런던에서 팽크허스트 여자 참정권 운동자 연맹회의 일원을 만나 “내가 조선의 여권 운동자 시조가 될지 압니까.”(「영미 부인 참정권 운동자 회견기」, 《삼천리》. 1936년 1월)라고 말한 바 있다.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었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째 된 날이었다. 나혜석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선각자를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마치 운명처럼 조선의 여권 운동자 시조가 되었다. 그렇게 여성의 이야기는, 여성의 역사는 다른 수많은 여성들을 이끌어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땅을 살아온 수많은 여성들의 삶으로부터 빚진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표권을 행사하고, 나의 소신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유롭게 밝힐 수 있으며, 탄압과 폭력이 아닌 자유와 자유로운 비판이 있는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많은 여성들에게 읽혀지길, 보다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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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기다릴게 - 시간을 넘어, 서툴렀던 그때의 우리에게
가린(허윤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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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모든 게 어설펐지만 풋풋해서 아름다웠던 그때 바로 그 시절!

 

 

  평범하지만 쾌활한 성격의 마코토가 어느 날 타임리프를 경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타임리프를 이용해 친구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바로 지금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과 풋풋했던 그때 그 시절, 청춘이라는 특유의 감각이 잘 녹아든 영화였던 걸로 기억난다. 가린의 에세이 『미래에서 기다릴게』는 바로 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모티프로 한 감성에세이다. 바람 한 점에도 설레었던 솜사탕 같은 마음들, 서로를 할퀴거나 맞추는 데 애쓰느라 놓쳐버린 사람들, 모든 게 어리석고 서투르기만 했던 청춘의 그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부끄럽지만 찬란했고, 어설펐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바로 그 시간으로.

 

 

 

함께 동네를 쏘다니고, 함께 학원을 빠지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혼났다. 그 시절 나는 ‘함께’라는 단어의 의미를 친구들을 통해 배웠다. 다시 그때처럼 누군가와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 / 하나의 모양이었던 우리 중에서 22p

 

 

 

  ‘어릴 적에는 친한 친구일수록 나와 같은 모양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책 속의 문장이 탁, 하고 마음을 잡아챈다. 청소년 시절의 우리는 그랬다. 반드시 같은 연예인을 좋아해야 했고, 같은 책을 읽고 공유했으며 같은 메이커의 옷을 나눠 입은 듯 닮은꼴처럼 하고 다녔다. 학원은 물론, 수업이 끝나고 매점에 갈 때도 항상 같이 다녔고 심지어 글씨마저도 비슷해졌다. ‘겹쳐두었을 때 어긋나는 부분 없이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그런 사이. 그게 친구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지만 그때만큼 ‘함께’하는 것이 좋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보니 생각보다 자주 그때가 많이 그립다. 작은 것에도 함께 깔깔대고, 같은 음악을 듣고 함께 설레어하며, 같은 머리에 같은 양말을 신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은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사람을 만나는 건 점점 더 어렵고 조심스럽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에 더 마음이 간다. 만났을 때 나를 감추지 않아도 되는, 만나도 집에 돌아와서 내가 실수하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되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 /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 50p

 

 

 

  얼마 전에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고. 나는 이런 조건, 저런 조건, 좋은 사람은 많지만 결혼이란 건 그 무엇보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 내가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는 사람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지금의 남편은 다행히 상대방의 감정을 가늠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고, 잘 보이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지만, 예전의 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를 맞추느라 관계 맺기에 쉽게 피로감을 느끼곤 했다. 그때의 나는 서투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감과 그럴 듯해 보이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에 상당히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었기에. 그러다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관계에 연연하며 나를 소모시키느라 놓쳐버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과 오랫동안 천천히 같은 보폭으로 걷는 것만큼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간을 돌려 그때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면, 혼자만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것이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면… 그 어찌할 수 없음 위에 홀로 선 외로움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절실하게 타임리프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삶은 되돌릴 수 없기에 더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잊고 싶다고 생각한 날들조차 가끔은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 타임리프 중에서 59p

 

 

지금 붙잡지 않으면 시간과 함께 흘러가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들이 있다. 그런 일을 마주할 때면 아버지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을 떠올린다. 어떤 일을 할지 말지 고민이 될 때,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인지를 생각해보라고. 만일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하라고. / 오직, 지금 중에서 139p

 

 

 



 

 

 

 

  시간을 달리는 마코토처럼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시간 속을 달리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버거우리만치 느리게 흐를 때도 있고, 붙잡지 못할 만큼 빠르게 흘러가버릴 때도 있다. 다만 그 시간을 늘 마음에 포개어 살기를, 내 방향과 속도대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여전히 부끄럽고 어리석은 것투성이지만 그 조차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미래에서 기다릴게』를 읽는 동안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련하게 남아있던 추억의 한 페이지와 그 순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많이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 곁에서 변함없이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그러니 잊지 말아야지. 모든 것이 모호한 미래에도 치아키에 대한 마음만은 확신할 수 있었던 마코토처럼.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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