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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했던 것들
에밀리 기핀 지음, 문세원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을 변하게 하는 가장 단순하고 또한 강력한 힘은 가족 안에 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연대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따뜻하고도 희망적인 소설!
아이가 커가면서 깨닫게 되는 생각 중의 하나는 머지않아 아이가 내게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리란 사실이다. 즐거웠던 일들, 속상했던 일들, 그날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며 재잘거리기 좋아하던 한 때의 꼬마 아이는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엄마보다는 친구와 공유하는 것들이 더 많아질 테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대화도 줄어들겠지. 그건 나 역시도 그랬기에,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란 걸 알기에 나는 일찌감치 마음을 다독이는 연습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애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모르겠어.” 소설 『우리가 원했던 것들』 속 니나의 대사 역시 이러한 이유로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나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에서 아이가 어떤 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있지는 않을지, 혹시 누군가에게 뜻밖의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을지,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의 마음을 쉽게 두드릴 수도 침범할 수도 없는 막막함이 이 한 마디에서 고스란히 느껴졌으니 말이다. 덕분에 나는 또 한 번 다짐한다. 아이가 홀로 외로운 선택을 하느라 고군분투하지 않게, 옆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줄 부모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우리는 그 어떤 순간에도 함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종종 이렇게 가장 가까운데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니나 브라우닝은 4대째 내슈빌 금수저로 통하는 남편 커크와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최근 아들인 핀치가 아이비리그 프린스턴 대학교에 합격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소도시인 브리스톨 출신에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자라난 니나로서는 프리스턴에 기부금 조로 보낸 수표가 아들의 합격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지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데다, 점점 돈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남편과 그 사이에서 대화마저 사라지고 있는 지금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그러다 마침 커크와 니나 부부 덕에 열린 자선 행사에서 니나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다. 한 여학생이 취중에 남자아이의 침실에서 가슴을 드러내놓고 누워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아들의 SNS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여학생을 조롱하며 남긴 인종차별 발언은 자신의 아들이 남긴 글이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녀를 충격에 빠뜨린다.
따지고 보면 브라우닝 집안에서 굳이 브리스톨 출신에 유대인 피가 섞이고 게이 오빠를 둔, 거기다가 부모가 남겨준 자산이라곤 한 푼도 없는 여자아이를 외동아들 배필 일 순위로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나는 이론상 며느릿감 일 순위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라고? 커크가 선택한 건 나였잖나. 난 항상 자신을 타이르곤 했다. 그가 사랑에 빠진 것은 나라는 인격,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이라고. 내가 그와 사랑이 빠진 이유도 꼭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난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같은 대학에 다니던 우리 두 사람은 어떤 공통점이 있어서 끌렸던 것일까? / 11p
재잘거리기 좋아하던 꼬마 핀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들려주어 엄마를 기쁘게 하던 조숙한 외동아들이었다. 내가 녀석에 관해 모르는 일은 없었고 녀석이 엄마에게 숨기는 비밀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거리감은 한번 자리 잡으니 영 걷힐 줄을 몰랐다. 최근 몇 달간 우리가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그가 친 방어벽을 부수어 보려고 숱하게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커크는 그게 둥지를 떠나기 전 아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지극히 정상’이라고 주장했다. 당신은 걱정이 너무 많아 탈이야, 그는 항상 그렇게 말하곤 했다. / 15p
한편, 톰은 돈 좀 있다고 뻐기는 특권층의 자제들로 가득한 윈저에 다니는 딸을 홀로 키우고 있는 싱글대디다. 집을 나가버린 아내 대신 딸을 혼자 키워내느라 투잡을 뛰어야 할 정도로 매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딸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친구의 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던 딸 라일라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온 날 밤, 그녀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충격적인 SNS 스캔들에 휩싸이고 말았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하지만 라일라는 이 일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이대로 흘러가버리기를 바란다. 마치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되기라도 할 것처럼. 게다가 평소 호감을 품고 있던 핀치가 이 일로 인해 프리스턴 대학교 입학이 취소되기라도 할까봐 톰에게 고발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한다. 때문에 톰은 고민에 빠진다. ‘자기 자신을 자키고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그뿐 아니라, 행여 우리가 물러선다고 해도, 이게 과연 없었던 일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문제가 언제고, 우리가 가장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까?’ 결국 이대로 묻어두는 건 옳은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톰은 이 사건을 학교 측에 제기하고, 핀치는 명예위원회에 회부된다.
아들이 명예위원회에 회부된 것에 분노한 커크는 프리스턴 대학의 입학이 취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한다. 그보다 진심어린 사과 대신 끊임없이 거짓말로 일관하는 듯한 핀치의 행동에 엄마인 니나는 크게 실망한다. 어느새 자기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듯한 아들, 그런 아들을 나무라기보다 돈으로 잘못을 바로잡으려하는 남편에게 신물을 느낄수록 니나는 점점 라일라에게 마음이 쓰인다. 그것은 니나가 라일라와 비슷한 나이였던 시절에 잭 러더포드로부터 강간을 당했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핀치가 라일라에게 한 짓이 그만큼 나쁜 일은 아닐지언정 여전히 끔찍한 일인 건 마찬가지라고, 잭이 그런 것처럼 내 아들 역시 취약한 입장에 처한 순진한 소녀를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큰 책임감을 느끼며 이 일을 바로잡기로 마음먹는다. 잭이 평생 자신의 기억을 쫓아다니며 괴롭혔던 것처럼 핀치가 라일라에게 그런 존재이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니나는 그들에게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기 위해 톰과 라일라 앞에 나선다.
내 생각은 자연스레 톰과 라일라에게로 이어졌다. 홀아버지와 딸의 관계. 톰이 커크와 나에 대해 했던 말. 이번 사건에 대해 라일라가 느끼는 감정. 나는 라일라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 욕구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어쩌면 이 감정은 어떤 끈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끈. 라일라의 이야기에 연결된 과거 나의 이야기. 어딘가에 묻어버린 고대의 기억. / 184p
요즘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휴대전화 속에 숨어 살아가는지를 얘기하고 얼굴 보고는 절대로 하지 못할 얘기를 인터넷상으로 서슴없이 하는 아이들을 걱정했다. 그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건, 성적인 말이건, 혹은 그냥 겁 없이 지르는 말이건 간에 말이다. 우리는 요즘 아이들을 가엾이 여기고 그들의 부모인 우리 자신을 불쌍히 여겼다. / 256p
“꼭 그래야만 해. 폴리를 위해서 그리고 너를 위해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는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위해서.” 부인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멀리 바라본다. 그리고는 다시 내 눈을 응시한다. “우리를 위해서.” / 455p


이렇듯 소설은 특권층의 자제인 핀치가 자신의 SNS에 신체가 드러나 있는 여학생의 사진을 찍어 무단으로 올린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부유한 가정주부이자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의 엄마인 니나, 피해자인 16살 소녀 라일라 그리고 싱글대디로 라일라를 홀로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아빠 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성폭력, 인종 차별, 계층 간 갈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 소셜미디어의 폐해와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문제점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특히 가해자의 엄마인 니나가 피해자들을 만남으로써 진심어린 사과와 용서를 구하고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고 바른 길로 나아가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학폭 논란, 인성 논란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아이에게 진정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 셋이 다시 이 문제에 관해 심도 있게 대화했으면 해. 다 털어놓고. 핀치가 벌써 이틀째 나를 피하고 있어. 뭐 사실 더 오래전부터이긴 하지만……. 난 지금 얘기 미안해서 그러는 건지, 토라져서 그러는 건지 구분할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는데 가슴이 먹먹해 왔다. “요즘 애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모르겠어.” / 163p
“나는 그냥 아빠가 가끔은 나를 좀 믿어줬으면 해요.” 라일라가 계속 얘기한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아빠와는 좀 다를 수도 있겠죠. 그게 그레이스나 핀치, 누가 되었건요. 아, 맞아요, 나는 계속 실수를 하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빠가 나를 믿어주실 차례예요. 그러다가 일이 꼬이면 꼬는 거죠.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리고 내게 필요한 건, 나에 대한 아빠의 믿음이라고요.” / 421p



처음 책의 표지와 소개글을 보았을 땐, 단순히 SNS 스캔들을 둘러싼 어떤 촌극 혹은 비극 따위의 가벼운 이야기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은 뜻밖에도 우리 시대에 자주 마주하게 되는 문제점들을 꽤 묵직한 주제의식과 함께 전달할 줄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분량이 상당한 편임에도 흡인력이 높고 서사도 탄탄해서 읽는 재미까지 잘 갖춘 작품이었다. 비록 소설의 결말은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진실보다 더 이상적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없지만 소설은 그래야만 한다는 걸 안다. 우리가 기대하고 싶은 희망이 어딘가에는 존재하리라는 것을 믿고 싶기 때문에, 또 반드시 우리가 그것을 진짜로 보여주어야 하기에.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