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페어링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2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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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초심가와 애호가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을 와인 에세이!
지금 당장 와인을 사러가고 싶게 만드는 책!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정도지만, 우리 부부가 즐기는 와인이 있다면 산도가 낮고 당도가 높은 편인 모스카토 품종의 화이트 와인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아스티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스카토 다스티는 가성비도 좋고 실패 없이 즐길 수 있는 와인이라 늘 만족하며 찾는 와인이다. 반면 레드 와인을 비롯해 다른 와인들은 호불호가 심해서 새로운 도전보다는 항상 검증된 맛만 찾게 된다. 다만, 관심은 또 다른 이야기라서 ‘와인서쳐’ 앱이나 ‘와쌉’ 네이버 카페를 종종 찾곤 하는데 아무래도 이건 임승수 작가의 책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을 읽고 난 뒤부터였던 것 같다.
 



지속가능한 와인 라이프를 위한 와인 입문서
 


  『와인과 페어링』은 임승수 작가의 두 번째 와인 에세이다. 전작이 와인 정가에 속지 않는 법부터 가성비 와인 리스트, 와인에 맞는 안주 고르는 법과 와인 잔 선택하는 법, 라벨 읽는 법 등 와인을 마시는 데 필요한 기본 정보들을 주로 다루었다면, 두 번째 책에서는 지속가능한 와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도록 ‘가성비 와인과 어울리는 K-푸드의 조합’에 주목한다. 누구나 쉽게, 선뜻 마트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와인을 주로 소개할 뿐만 아니라, 음식은 스테이크나 파스타 혹은 치즈를 조합하는 정도에만 머물러있는 초심자를 위해 반가운 정보들을 제공한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대체로 산도가 쨍하고 향이 강렬한 데 반해, 프랑스산은 상대적으로 점잖고 절제된 느낌이다. 이러한 캐릭터의 차이가 음식과 어울림에 있어서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했다. 두 와인 모두 가성비가 뛰어나기로 유명한데다가 가격도 2만 원 언저리로 비슷해서 기량을 견주기에 적절했다. / 20p
 

시원하게 준비해놓은 영혼의 동반자는 코노 수르 비씨클레타 언오크트 샤르도네 2020이다. 집 근처 홈플러스에서 약 1만 5,000원에 구매했다. 할인하면 9,000원대에 판매하기도 하는 저렴한 와인이다. 코노 수르는 칠레의 와인 회사명, 비씨클레타는 스페인어로 자전거, 언오크트는 숙성할 때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유리병과 라벨에 새겨진 자전거가 눈에 들어오는데, 포도를 보호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포도밭을 누비는 코노 수르 직원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 28p

 








  흔히 화이트 와인하면 해산물이라는 공식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의외로 샤르도네와 돼지고기의 조합을 추천한다. 키안티 와인쯤은 가뿐하게 제압하는 시너지를 발휘한다고 하니 도전해봐야겠다. 모둠전에는 레드 와인을, 곱창과 막창에는 샴페인을, 회에는 가벼운 바디감에 상큼한 신맛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탈리아산, 피에로판 소아베 클라시코)을 추천하기도 한다. 날씨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음용하기 좋은 와인도 추천해주는데, 개인적으로는 무덥고 습해서 짜증날 때 마시기 좋은 와인 클라우디 베이 소비뇽 블랑은 저장해뒀다가 꼭꼭 마셔볼 생각이다.
 


화려한 이중주 감상 후 몰려드는 피로감을 시원하게 달래주려 피노 그리지오가 등장한다. 특유의 은은한 복숭아 향은 소싯적 즐겨 마시던 추억의 음료수 ‘이프로’를 떠올리게 만든다. 알코올 도수가 12.5%인데도 이렇게나 목 넘김이 부드럽다니. 상큼·청량·깔끔하면서 쓴맛이 없고 기분 좋은 과실 향이 감도는 데다가,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 앞선 음식의 풍미를 요만큼도 거스르지 않는다. 소주에 물린 사람이라면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상위호환 주종인 피노 그리지오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 114p
 

라벨에서 ‘리슬링’이라는 명칭만 확인하고선 무턱대고 구매하면, 간혹 은은한 잔당감이 아닌 과한 단맛에 당황하게 된다. 리슬링마다 당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도가 높은 리슬링은 일반적인 음식보다는 달달한 과일이나 디저트에 곁들여야 궁합이 맞다. 그렇다며 낙지볶음 같은 음식에 어울릴 드라이 리슬링을 골라낼 방법이 있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라벨에서 ‘trocken’이라는 독일어를 찾는 것이다. 이 단어는 영어로 치면 ‘dry’에 해당하며 달지 않은 와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122p

 

울프 블라스 이글호크 퀴베 브뤼_
대단한 풍미를 지닌 건 아니지만 1만 원대 와인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놀라운 밸런스가 인상적이다. 감귤, 복숭아, 배 등이 연상되는 은은한 과실 향에, 쓰지 않고 신맛도 튀지 않고 모든 요소가 야구공처럼 둥근 형상을 이룬다. 눈을 감고 야구 경기가 벌어진다고 상상하니, 날카로운 제구력으로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삼십 대 초반의 털털하고 경험 많은 투수가 떠오른다. 오늘은 9이닝 1실점 완투승이구나! / 169p

 











  타닌이 강한 레드 와인(특히 어린 레드 와인)을 싫어해서 늘 제대로 마셔보기도 전에 잔을 밀치곤 했는데, 이제는 마개를 열고 잔에 따라낸 후 30분 혹은 한두 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맛을 보는 인내심을 발휘해봐야겠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독일 와인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독일 와인 열심히 찾아보리라). 향과 맛이 강한 한국 음식과 와인은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역시 편견이었음을 느꼈다. 가만 보면 와인만큼 편견이 많은 주종도 없는 것 같다. 소주나 맥주처럼 가볍게 일상으로 즐기는 주종이 아닌 데다, 같은 와인이라 하더라도 무엇과 언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에 선뜻 공유하기도, 선택하기도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그래서 더 호기심이 가고 설렘을 느끼게 하는 주종인 것 같다.
 


  지금 당장 와인을 사러 나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와인 초심가와 애호가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을 와인 에세이를 찾으시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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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 - 욕망이 소비주의를 만날 때
케이티 켈러허 지음, 이채현 옮김 / 청미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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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하여!
아름다움의 두 얼굴을 마주하고,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집착과 욕망에 경종을 울리는 책!





  “혹시 에드윈 리스트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어요? 아마 그가 플라이 타이어들 중에 최고일 겁니다. 플라이에 붙일 깃털을 구하기 위해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새들을 훔쳤을 정도니까요.” 커크 월리스 존슨의 『깃털 도둑』에는 플라이 타잉(낚시)에 쓸 깃털을 구하기 위해 국립 박물관에서 조류 표본 수백 점을 훔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낚시꾼들과 플라이 타이어들 사이에서 플라이는 이른바 ‘낚시의 예술’로 통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깃털로 만든 아름다운 빅토리아식 연어 플라이를 향한 욕심이 에드윈 리스트를 범죄의 세계로 이끌었다.
 


  비슷한 제목의 수전 올리언의 『난초 도둑』에서도 무려 4만 7,000개의 난초를 가지고 정글에서 빠져 나온 난초 사냥꾼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때 유럽 중상류층 남성들 사이에서는 뒷마당 온실에서 열대 난초를 키우는 것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식물 밀렵꾼들의 전설적인 기행담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꼈을 정도로 열대 난초와 그 난초를 채집하는 이야기에 열광했다고 한다. 그 사이 수많은 난초 사냥꾼들은 해외에서 질병, 사고 또는 범죄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거울, 꽃, 보석, 향수, 실크, 유리, 도자기, 대리석….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근현대 소비주의 사회를 움직여온 이 아름다운 물건들 속에서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낳은 잔혹의 역사다. 케이티 켈러허는 『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를 통해 인류 전체와 우리 자신을 매혹시켰던 이 화려한 물건들의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역사를 추적한다. 외모에 대한 문화적 집착, 스토리텔링의 힘과 매력적인 광고가 광물의 물리적 특성과 결합하여 ‘보석’이라는 자본주의적 용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 고된 노동 환경과 생태계 파괴를 유발하는 화훼 시장의 역설 외에도 파시즘과 백인우월주의가 추구한 “표백된 이미지=순수함”이 낳은 수많은 자본주의 상징들을 소개한다.
 


나는 의심보다는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위대한 진실을 찾기보다는, 얼굴의 특징, 표정의 변화, 온전하고 생동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거울, 심지어 전신 거울도 이야기의 일부를 보여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잘못된 현대 사회의 신화에 휩쓸려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진실을 잊고 만다. 보이는 것은 제한적이며, 눈에 보이는 것이 곧바로 지식이 될 수는 없다. / 42p
 

“모든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장미 뒤에는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독극물로 오염된 강이 있다”라고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물론 그들이 전 세계를 취재한 결과, 일부 꽃은 인도적인 환경에서 재배되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노동자들은 살충제와 살균제에 노출되어 있으며, 고된 노동에 대한 대가를 거의 받지 못한다. 농업 유출수는 야생동물을 죽이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 72p

 
너드슨은 “모든 것은 자신이 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1700년대 여성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궁정에서 호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었고, 그러다가는 남편감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화장을 하는 데에 따르는 신체적 상해의 위험을 포함한 모든 위험들을 “충분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느꼈던 것이다. / 161p

 









  책을 읽다보면 보다 더 많고, 더 아름다운 물건을 가지도록 부추기는 소비주의의 선전에 얼마나 철저하게 세뇌 당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허울뿐인 아름다움 뒤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고통에 쉽게 무감해진다는 것도.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통스럽고 단순한 진실은,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 아름다움은 결국 사라진다’고.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나의 욕망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욕망의 허상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태도가 더더욱 중요한 이유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시점이라 보다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책이다.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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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 텍스트T 12
이희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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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 아름다운 표지에 먼저 반하고, 독특한 세계관과 상상력에 푹 빠져 읽게 되는 소설!






  푸른 숲과 맑은 강이 흐르고, 그 속에서 크고 작은 동물들이 어우러지고 풍성한 열매가 열려 생명의 힘이 넘쳐흐르는 실바. 이곳에 터전을 둔 비스족은 이 땅을 돌봐주는 사계의 여신들을 숭배하며 그들이 내려 준 풍요를 감사히 여기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사계의 여신은 절대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어서, 아름다움과 풍요를 선사하면서 때때로 고통도 함께 주었다. 가뭄과 홍수로 심술을 부리고 번개를 내리쳐 산과 들을 태웠으며 질병을 퍼트려 죽음의 칼날을 휘둘렀다. 가장 아름답고 기름진 땅 실바의 주인이 된 대신 이따금 타 부족과 크고 작은 전쟁까지 치러야했다.




  비스족을 다스리는 왕인 쿤은 어느 날, 피프족이 하늘에서 내려온 지도자 탄과 함께 죽음의 숲 케이브를 넘어 전설의 땅 사라아를 찾았다는 소문을 듣는다.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었던 죽음의 숲 케이브를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던 피프족이 어떻게 건너갈 수 있었는지, 아니 케이브가 진짜 죽음의 숲인지, 풍요의 땅이자 전설의 땅이라 불리는 사라아는 정말 존재하는지, 어지럽게 휘도는 소문과 전설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이러한 쿤의 뜻에 따라 후계자, 베아는 스스로를 증명하고 비스족의 번영을 위해 케이브로 갈 것을 자처한다. 그렇게 오랜 지기인 타이와 함께 베아는 어둠과 죽음의 숲, 케이브로 향한다. 과연, 베아는 자신을 증명하고 비스족의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
 


“삶에서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긴 손가락이 가볍게 톡톡 베아의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신중하고 깊은 생각 말이다. 그 힘을 가진 자만이 진정한 쿤이 되고 전사들을 통솔하는 솔이 될 수 있다.” / 34p
 

“전사들만의 힘으로 부족을 지키는 시대는 끝났어. 우리도 다른 힘이 필요해.” / 57p

 








  『베아』는 『페인트』, 『챌린지 블루』,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로 잘 알려진 이희영 작가의 신작이다. 비스족 왕인 쿤의 후계자로 지목된 베아가 죽음의 숲을 지나 전설의 땅 사라아를 찾아 떠나는 모험과 성장을 담은 청소년 판타지 소설이다. 베아는 타이와 함께 이제껏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땅, 죽음의 숲 케이브 속에서 마늘꽃, 움직이는 나무, 토끼 인간, 인어 님파, 말하는 흰 부리새 등 신비로우면서 무척 기묘한 생명체들을 만난다. 때로는 목숨에 위협을 느낄 만큼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만 위기를 헤쳐 나가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중요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마음의 적이죠. 두려움은 막아 내는 게 아니라 이겨 내는 겁니다. 그것이 전사의 정신 아닙니까?” / 126p
 

“미안하지만 틀렸어. 나는 절대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아. 그저 눈앞에 놓인 문제를, 최선을 다해 처리할 뿐이야. 알아 들어?”
불 속에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며 베아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해결하다 보면 아무리 엉망인 상황도 조금씩 낙관적으로 변해.” / 145p
 

“나는 결코 미리 걱정하지 않을 거야.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토끼 인간에게 죽을 뻔하고 나무 괴수를 만났어. 그리고 인어에게 홀려 물속으로 끌려갔어. 그때마다 힘들었지만 나름 현명하게 잘 극복했잖아. 피프족을 만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겠지. 하지만 분명 길이 있을 거야. 나는 그걸 배웠어. 설령 내가 쿤이 된다 해도 문제는 곳곳에서 발생하겠지. 그럼 그때 해결하고 헤쳐 나가면 돼.” / 180p

 









  신비로운 존재의 등장과 단군 신화를 모티브로 한 세계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위기와 갈등, 모험을 능수능란하게 엮어나가는 이희영 작가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중 소설의 주요 갈등 국면인 가치관의 충돌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개혁과 번영을 희망하는 쿤과 베아, 안정을 중시하는 쿤과 타이의 대립은 마치 극과 극으로 분열된 오늘의 우리 사회를 조명한다. 부족의 안녕을 위해서는 분명 두 가치관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두렵고 불안하지만 그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낯선 곳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멈추지 않고 더 강하고 맹렬하게 내 앞을 가로막는 벽에 온몸을 던져보는 사람에게만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베아의 모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왜 새로운 길은 위험하다고만 할까.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이고, 아무도 만나지 못한 세상이었다. 그 미지의 문 앞에서 두렵고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테지. 하지만 그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바로 낯선 곳의 문을 여는 것뿐이었다. 베아를 이곳까지 오게 한 진짜 힘은 쿤의 후계자로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었다. 실바를 떠나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 218p




  기묘하고 아름다운 표지에 먼저 반하고, 독특한 세계관과 상상력에 푹 빠져 읽게 되는 소설이다. 방학을 맞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 소설을 찾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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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홀 1 - 맨부커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작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1
힐러리 맨틀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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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지만 냉철하고 소름 돋도록 통렬하다!

16세기, 권력의 중심에 선 토머스 크롬웰과 왕실을 둘러싼 암투 그리고 욕망을 다룬 소설!






선왕은 공공연히 말했다. 

애정의 대상이 못 될 바에는 공포의 대상이 되겠다고. / 283p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꾸 호명되는 단어란 것이 ‘권력, 부패, 욕망, 음모, 공모’ 따위라는 게 참으로 유감이다. 공교롭게도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이 이러한 호명에 곧잘 부응하게 되는데, 마침 『울프홀』이 눈에 띈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인 듯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늑대가 되는 ‘울프홀’의 세계(정치와 종교의 대립, 권력을 향한 욕망과 왕실의 암투가 극에 달했던 16세기 영국 왕실) 속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왕의 최측근이 되어 마침내 권력의 중심에 선 토머스 크롬웰. 그의 생을 재현한 이 작품은 앞서 호명된 단어들을 통렬하게 투영한다.




이런 생각이 든다.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이. 

/ 36p




  이야기는 대장장이인 아버지에게 모진 학대를 받는 크롬웰의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피범벅이 되어 누나의 집으로 도망친 크롬웰은 약간의 돈을 챙겨 도버해협을 건넌다.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더 나은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책은 그로부터 시간을 훌쩍 넘어 헨리 8세 치하의 영국 왕실로 이동한다. 헨리 8세는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자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에 혼인을 무효화해 달라고 압박을 넣는다. 이 일의 책임자 역할을 맡은 울지 추기경은 교황청이 끝끝내 헨리 8세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왕의 신임을 잃고 추락한다. 이 무렵,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법률가로 자수성가한 크롬웰은 울지 추기경의 심복으로 왕실과 중개자 역할을 자처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추기경의 실각과 함께 왕의 눈에 띄게 된다.




“딱히 잉글랜드인이라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원래 그렇지 싶어요. 사람들은 늘 뭔가 더 나은 게 있기를 바라죠.”

“하지만 그런 변화로 그들이 얻는 게 뭡니까?” 캐번디시는 집요하다. “고기로 실컷 배를 채운 개가 뼈다귀까지 뜯을 만큼 굶주린 개로 바뀌는 것뿐인데. 명예로 살을 찌운 자가 나가고 배곯고 깡마른 자가 들어오는 셈인데.” / 95p




이 나이쯤 되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남달라서 성공하는 게 아니다. 영특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강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교활한 사기꾼으로 거듭남으로써 성공하는 것이다. / 102p











  이렇게 『울프홀』 1권은 토머스 크롬웰이 천한 신분이라는 배경을 딛고 왕의 오른팔로 급부상하기 시작하며 끝이 난다. 책은 울지 추지경조차도 ‘미천한 인생들이 줄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저 네모난 몸집의 투견에 가까운 사람’이라 묘사할 정도로 주변으로부터 경멸과 무시를 당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내부에 철저히 숨긴 채 이를 착실하게 실현해가는 인물로 그려나간다. 가족이나 자신의 사람이라 여기는 이들에게는 한없는 충성과 애정을 보이지만,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냉철하다. 잔인하고 교활하며 기회주의적인 성품으로만 묘사되었던 여타의 작품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궁금하군.” 울지 추기경이 말한다. “자네는 우리 군주를 참아낼 수 있을까? 한밤중까지 술을 마시며 서퍽 공작과 낄낄거리거나 노래를 하고, 그날 올린 서류에 아직 서명도 하지 않았고, 자네가 독촉이라도 할라치면 이렇게 말하는 군주를. 나는 이제 자야겠소. 내일 사냥을 나갈 거라…… 언젠가 보필할 기회가 오거든 그분을 있는 그대로, 향락을 사랑하는 군주로 받아들여야 할 걸세. 그리고 폐하도 자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지. 미천한 인생들이 줄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저 네모난 몸집의 투견에 가까운 사람이란 걸 말이야.” / 140p



“맞아, 그 법률가도 추기경이랑 같이 망하겠지. 말이 법률가지, 진짜 정체가 뭔데? 아무도 몰라. 소문으로는 그치가 제 손으로 사람들을 죽이고도 고해성사 한 번을 제대로 안 했대. 하지만 그렇게 센 척하는 인간들이 꼭 교수형집행인 앞에 서면 질질 짜고 난리지.” / 258p











  1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자정이 넘은 시각 헨리가 다급하게 크롬웰을 불러들이는 부분이다. 망연한 표정의 헨리는 죽은 형님이 꿈에 나왔다며, 차남이었던 자신이 죽은 형님을 대신해 왕위에 오른 것도 모자라 그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맞은 것에 대한 수치를 주러 꿈에 나온 게 틀림없다며 고통스러워한다. 이때 크롬웰은 헨리의 팔을 덥석 붙든다(이 행동 하나로 힐러리 맨틀은 크롬웰의 위치와 지위가 얼마나 상승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는 수치가 아니라 본인이 실현하지 못한 것을 헨리가 대신 해주길 바란다는 뜻으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로서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통치자의 면모를 보일 때임을 강조하며 오히려 그를 북돋는다. 이는 훗날 헨리가 수장령을 통해 교황청에서 독립하여 잉글랜드 국교회를 성립하는 역사의 단초가 되는 장면으로, 상황을 새롭게 전환하고 장악하는 크롬웰의 명민함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크랜머가 미소를 짓는다. “하느님은 우리의 적을 교란할 목적으로 선생의 얼굴을 빚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손, 상황을 장악하는 손 말입니다-선생이 폐하의 팔을 움켜잡았을 때 내가 움찔하고 말았습니다. 폐하 역시 그걸 느꼈고요.” / 417p





  2권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일단 여기서 글을 추스르고 서둘러 2권으로 넘어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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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파리 스콜라 창작 그림책 90
한연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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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심으로 탄생된 기묘하고도 수상한 사파리!

독특한 발상과 강렬한 그림체로 멸종 동물의 위기를 전달하는 한연진 작가의 아주 특별한 그림책!





  동물 사랑꾼 김사냥의 《이상한 사파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동물 사랑꾼 김사냥의 사파리에 ‘자연 사랑 모임’ 회원들이 찾아온다. 김사냥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투어버스에 올라 탄 회원들은 푸르른 초원을 뛰어다니는 토끼, 풍성한 털을 뽐내는 여우, 낮잠을 자는 거대한 거위 무리, 아름다운 꽁지깃이 눈에 띄는 수컷 공작들을 차례로 만난다. 회원들은 울타리가 없어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이 특별한 사파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연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여러분, 즐거우신가요?

이제 저희 사파리의 자랑인 마지막 코스로 접어듭니다.

더욱 깊숙하고 특별한 공간으로 이동하오니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 주시길 바랍니다.

 / 책 속에서



  대체 이 위화감은 뭐지? 사파리의 마지막 코스로 이동할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이 감지된다. 멸종 위기 동물의 뿔이 사파리 곳곳에 전시되어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큰 호랑이와 곰이라고 자부하는 동물의 가죽이 걸음걸음마다 밟힌다. 최초공개라며 회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곳에는 초대형 코끼리의 거대한 상아가 탑처럼 쌓여 있다. ‘자연 사랑 모임’ 회원들은 이 신비한 광경에 플래시 세례로 환호한다!




  “엄마, 여기 이상해….”



  이게 맞는 걸까, 함께 책을 읽던 아이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파리’라는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그로 인해 멸종되어 전시되고만 동물의 흔적들은 시종 유쾌해 보이는 이야기와 달리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자연에게 정작 인간은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상한 사파리》 라는 제목처럼,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내몰린 동물들의 모습을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담아낸 그림책이다. 동물 보호라는 주제를 반전과 아이러니, 유머로 풀어낸 한연진 작가의 특별한 작품 세계에 감탄하며 읽게 된다. 과감한 펜선 처리와 흑백 패턴의 질감, 주요 포인트에만 색을 덧입힌 강렬한 그림체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동물이 전시품으로 전락하는 미래가 오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고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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