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 번째 인류 - 죽음을 뛰어넘은 디지털 클론의 시대
한스 블록.모리츠 리제비크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6월
평점 :

보다 더 현실화된 디지털 클론의 현주소를 체감하게 하는 책!
인공지능, 디지털 클론에 대한 이해는 결국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다!
7월 5일자 국민일보에 따르면, 2007년 비행 훈련 중에 사고로 순직한 조종사 고 박인철 소령을 딥페이크 기술로 복원해 어머니와 재회토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복원된 박 소령과 어머니는 모니터를 보고 마주하며 10분간 마치 화상 통화를 하듯 대화를 나눴다. 그는 환한 얼굴로 엄마에게 보고 싶었다고 전하더니, 마찬가지로 훈련 중 순직하신 아버지와 하늘에서 만났다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위로했다.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복원된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생전 그대로인 아들의 표정과 말투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감출 수 없는 듯했다. 국방부는 임무 중 전사하거나 순직한 장병의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국방부가 AI를 활용해 순직 장병의 모습을 복원한 첫 사례라고 한다.
인간의 데이터를 담은 위력적인 자료 기록과 알고리즘 그리고 인공지능 덕분에 생겨난 ‘디지털 영혼’, 이른바 인간의 유한한 삶을 뛰어넘고자 하는 ‘디지털 클론의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이전부터 인류는 문학적 상상력과 영화적 표현 기법을 빌려 디지털 클론의 시대를 맞이할 토대를 착실히 마련해왔다. 존 프럼의 소설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에서 달로 차원 이동을 하기 위해 생체 패턴 정보를 클라우드에 전송하는 것은 더 먼 미래에서나 가능한 일일지라도, SF 드라마 시리즈 <블랙 미러>의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인 마사가 죽은 남편이 인터넷에 남긴 수많은 데이터를 모아 그를 디지털로 환생시키는 일은 고 박인철 소령의 사례처럼 어느 정도 실현가능한 일이 된 셈이니 말이다.
“이것은 당신의 디지털 클론입니다. 당신의 머나먼 후손이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죠. (…) 인공지능 덕분에 디지털 클론은 대화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 상대방이 말을 걸면 디지털 클론은 당신이 사용하던 언어로 대단합니다. 당신의 개성, 성격, 언어 습관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 우리는 또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디지털 클론을 만들 수 있습니다.” / 103p
뿐만 아니라 책 『두 번째 인류』를 통해서는 보다 현실화된 디지털 클론의 현주소를 체감할 수 있다. 일본 로봇공학의 선구자인 이시구로는 어린아이와 비슷한 안드로이드를 개발해 인간과 소통이 가능하면서 촉각 같은 감각까지 전달할 수 있는 텔레노이드를 완성했다. 대드봇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암이 진행된 아버지와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아들인 제임스가 개발한 아버지의 디지털 클론이다. 유지니아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 로만과 한 번만 더 대화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발전시켜 ‘고 로만’이라는 앱을 통해 친구를 그대로 닮은 챗봇을 만들었다. 이처럼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슬픔에 그들을 디지털 세상에 복제하려는 이들, 남은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디지털 영혼을 남겨두려는 이들, 신체적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인공지능이 되려한 이들의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나아가 첨단 인공지능 기술 개발의 최전선을 추적해 디지털 클론의 시대가 열어 보일 수많은 가능성들을 살펴본다.
독일 기업 프리사이어는 대상이 사용하는 단어, 말하는 빠르기, 음성의 높낮이, 강조하는 단어, 문장 구성 등을 분석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이런 정보만 있으면 과학적인 성격 모델을 기반으로 하여 사람 성격의 24가지 특성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47p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곧 자신만의 아바타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전 세계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외모의 버추얼 인간이 만들어질 것이다. 자인은 이를 설명할 가장 좋은 예시를 들었다. 바로 자기 자신의 PAI, 혹은 자신의 디지털 쌍둥이다. 자인의 PAI는 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자동으로 습득하며 그의 성격을 조금씩 더 닯아간다. 앞으로 모든 사람이 자신의 PAI를 갖게 될 것이라며 자인은 이렇게 덧붙였다. “휴대전화를 켜두기만 하면 PAI가 자동으로 당신을 관찰할 겁니다.” / 256p



덕분에 지난 몇 년 동안 관련 스타트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한편 생물학적인 죽음을 디지털 세상의 삶으로 전환한다는 아이디어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기업에서는 특허를 출원할 만큼 구체적인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그만큼 디지털 클론과 관련된 상품의 수요가 앞으로 더더욱 증대하리라는 판단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깊은 상실과 슬픔 때문에 일상생활을 꾸리기가 힘든 고인의 유족이나 친구들에게 죽은 이의 디지털 클론이 큰 위로가 되고, 삶의 또 다른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이러한 기술들이 그저 디스토피아적 공상이나 헛된 망상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될 이유는 충분하다.
코흐와 동료들은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전장의 ‘스위치’를 껐다가 다시 켜는 데 성공했다. 이 실험을 통해 전장이라는 뇌 부위 없이는 의식이 발생할 수 없다는 가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들이 어떤 뇌 부위가 우리의 의식을 관장하는지 말할 수 있기까지 그리 먼 길이 남지는 않은 것 같다.
그날이 온다면 의식을 관장하는 뇌 부위와 기능을 본떠 컴퓨터나 로봇에 적용해 기계가 의식을 갖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 283p
그러나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기술이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고 계속해서 그 사람과 살아갈 유가족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 사람을 디지털로 되살릴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한 인간의 ‘디지털 잔해’를 어떻게 처리할지, 데이터 보호와 인격권, 그리고 상속권 중 어떤 것을 얼마큼 존중해야 할지 우리는 아직 어떠한 기준도 마련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인간의 자아상에 디지털 클론은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진지한 물음을 제기해야 한다. 자신을 의심하고 확인함으로써 정체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이 삶이라면, 지금까지 확보된 일부 데이터만으로 온전히 ‘나’를 구현할 수 있을까? 또 각기 다른 나의 페르소나를 디지털 클론이 똑같이 반영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두 번째 인류』는 불멸을 향한 인류의 염원과 디지털 클론 시대의 오늘과 미래를 진단하는 것은 물론, 신중한 기술 활용과 책임감 있고 분별력 있는 태도, 윤리적인 문제 등을 통찰하게 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에 매우 유의미한 책이다.
자신을 디지털 클론으로 구성하는 만드는 것은 윌이 늘 주장하는 콘셉트인 ‘아이데이티티Idatity’를 구성하는 기반이 된다. 아이데이티티란 정체성을 뜻하는 아이덴티티와 데이터의 합성어다. 윌에게 ‘나’라는 존재는 오늘날 디지털 존재로 완전하게 정의된다. “저라는 존재가 제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가는 장소, 아는 사람들, 추구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져요. 말하자면 저는 데이터입니다. 그게 저예요.” / 272p
“우리가 그리워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믿도록 만드는 시뮬레이션은 지옥입니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은밀한 꿈을 이루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과잉되고 불필요한 것들로 만들어진 세상, 부재를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세상은 곧 지옥으로 변할 겁니다. 그곳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그는 이어서 “박탈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살면서 상실, 부재, 이별, 작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견뎌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한 채 영원히 존재하는 시뮬레이션과 계속해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거기서 벗어나서 ‘이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어’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것을 일종의 감금이라고 생각해요. 영원한 현존이라는 고문입니다.”라고 덧붙였다. / 334p



인공지능, 디지털 클론에 대한 이해는 결국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다. 나를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나를 비롯해 인류 전체는 디지털 클론을 통해 어떠한 욕망을 실현하려 하고 또 극복하려 하는가? 이 책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와 관련된 대화의 장이 많이 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