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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의 날개
아사히나 아스카 지음, 최윤영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6월
평점 :

소름끼치도록 생생하다! 부모라면 공감할 만한 사실적인 입시 소설!
결코 낯설지 않은, 우리에겐 꽤 익숙한 입시 경쟁의 현실!
‘콩코드 효과’라는 말이 있다. 콩코드 여객기에서 탄생한 경제 용어로, 손실이 날 것을 예상하고도 지금까지의 투자가 아까워 그만두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일본의 과열된 입시 경쟁을 다룬 소설 『날개의 날개』 속에서는 자녀 교육에 관한 부모의 심리를 콩코드 효과에 빗대어 설명한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비용은 늘어나는데,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만큼이나 해왔는데’ 하는 생각에 그간 자녀 교육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더더욱 이탈할 수 없는 부모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너한테 들인 비용이 얼마인데” “이만큼 해줬으면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기대심리가 자녀를 부추기고 압박한다. 하긴, 바둑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학원에 보내주었지만 그 시간과 비용으로 학과와 관련된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이제까지 한 게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보내야할지 망설이게 되는 내 마음도 이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합리화에 갇힌 부모들
일본의 사립 명문 중학교 입시는 치열한 경쟁률에 엄청난 사교육을 동반하기로 유명하다. 『날개의 날개』 속 주인공 마도카 역시 교육에 열성적인 엄마들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초등 2학년인 츠바사에게 시험 삼아 이름난 대형 입시 학원에 입학시험을 보게 한다. 그런데 츠바사가 일찍이 입시 유형에 익숙한 아이들과 거의 비등한 성적을 얻자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본격적으로 아들을 중학 입시 준비에 뛰어들게 하고, 그 중에서도 최상위권 학생들이 듣는 클래스로 도약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처음에는 그저 일단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건만, 점점 시댁 어른들의 기대는 높아지고 앨리트인 아빠 신조는 소리까지 질러가며 쉴 틈 없이 츠바사의 공부를 압박한다. 그 사이 츠바사는 부모의 칭찬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위험한 선택과 함께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만다.
육성 B에 올라간 건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마도카는 알고 있다. 함께 시작한 쇼타도, 훨씬 오래 다닌 다른 아이들도 여기까지는 올라오지 못했으니. 그런 아들이 엄마의 시선을 피해 숨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 건 오늘 아침 엄마에게 “오늘은 무조건 자기 베스트 경신할 수 있지?”라는 압박을 받은 탓이다. 그런 말은 하지 말 걸, 마도카는 후회한다. 가여워라.
가여운 마음은 마도카의 가슴에 분명 존재했다. 자신이 던진 말이 독이 되었다는 자각도 있었다. 잘 알고 있는데도 결과가 안 나오니 낙담하게 된다. 왜 빨라지지 않는 걸까. / 74p
“정말 알고 있어? 정말 알고 있다고? 아는데 결승에 못 나갔어? 아니잖아. 몰랐으니까 못 나갔지. 그때 수학 실수 때문에 틀려서 속상했던 거 잊었어? 앞으로 절대 안 그러겠다고 해놓고서는, 거짓말이었어? 츠바사, 너 매번 말만 그러잖아. 아빠도 그러셨지? 부주의한 실수는 마음의 문제라고. 네 마음이 입시를 얕보고 있는 거야. 입시에서는 이런 실수를 하면 바로 떨어져. 1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니까 대충하게 되는 거라고. 그래서 네가 S0에 못 들어가는 거야!” / 139p


소설은 마도카와 츠바사뿐만 아니라 과열된 입시 교육과 경쟁이라는 덫에 빠져든 일본 사회의 민낯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학원 홍보를 비롯한 수험생 학부모 블로그 등지에서는 공공연하게 수도권 내 상위 학교들을 줄 세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세워놓은 기준에 따라 자신을 비롯해 친구들을 서열화한다. 모모미의 엄마는 연습이 없을 때도 시민수영장에서 딸의 수영을 단련시키고, 직접 시간표를 관리하며 아직 어린 아이에게 프로틴을 먹일 만큼 딸의 수영 기록에 집착한다. 학부모들은 공공주택 단지 아이들과 빈곤 가정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해서 이쪽과 저쪽으로 학군을 구분한다. 결코 낯설지 않은, 우리에겐 꽤 익숙한 풍경이다.
츠바사에게 반이 올라간 사실을 얼른 알려주고 싶었다. 시부모에게도 신지에게도 모두에게 알리고 싶을 만큼, 마도카의 마음은 활짝 개었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지만, 이게 ‘일희’임을 알아도 오랫동안 ‘우울’의 시간이 이어졌으니 이 ‘기쁨’을 충분히 맛보고 싶었다. 그리고 성적표 숫자에 마도카가 기뻐할수록, 성적을 올려야 엄마가 자신을 좋아해 준다고 츠바사는 생각하게 된다. / 154p
생각해 보니 시어머니는 시종일관 남들과 비교하는 이야기만 했다. 신지도 츠바사의 성적 이야기뿐이었다. 그 누구도 츠바사에게 현재 학교생활이가나 친구 이야기, 또는 츠바사가 공부 이외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츠바사의 미래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자기들 멋대로 기대했다. / 167p



“엄마도! 내가! 좋은 학교에 가면! 허세 부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맨날 입시! 입시! 했던 거잖아!!” 기어코 입시를 치르겠다며 천타로가 엄마에게 외치는 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잔상에 오래 남는다. 부모들은 말한다. 다 너를 위한 거라고. 하지만 이런 합리화가 부모의 욕심을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점수가 내 아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내가 그리고 싶은 아이의 미래를 아이의 꿈이라 착각하는 건 아닐까. 아이의 날개를 꺾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서열화로 점철된 사회와 과열된 입시 경쟁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반드시 경계해야 할 메시지일 듯하다. 나 역시 흔들릴 때마다 『날개의 날개』 속 엄마 마도카와 아들 츠바사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독이리라 다짐한다. 아이는 이미 저만의 날갯짓으로 자신의 세상을 밝힐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기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