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드라이프 마인드 - 나이듦의 문학과 예술
벤 허친슨 지음, 김희상 옮김 / 청미 / 2023년 9월
평점 :

중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린 문제다!
중년을 이해하는 깊고 단단한 울림으로 가득한 책!
인생은 40부터라는 말도 있다지만, 실제로 마흔이라는 나이에 임박하면 ‘아, 내 나이가 벌써 마흔이라니’ 하는 탄식과 함께 목구멍이 턱 하고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현재 우리 국민의 기대수명이 진즉에 80세를 넘겼으니, 나 역시 인생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된 셈이다. 그렇다는 것은 곧 중년을 상징하는 일련의 이미지들, 그러니까 ‘처지기 시작하는 피부, 후줄근한 몸매, 갱년기, 늘어진 뱃살’ 따위의 신체적 쇠퇴를 비롯해 ‘이루지 못한 꿈을 떠올릴 때마다 느끼는 좌절감, 동년배보다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를 두루 돌봐야 하는 중압감’과 같은 심리적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렇듯 우리는 자신이 중년이라고 생각하는 나이에 도달하면, 인생의 중간 지점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아 이제 내가 정말 중년이구나 하고 의식하게 된다. 책 『미드라이프 마인드』는 이를 ‘만들어진 중년’이라 표현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는 것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기지만 사실 나이 먹는 일처럼 문화의 강력한 영향을 받는 현상도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느끼는 바로 그만큼 늙는다. 즉, 우리가 어떻게 늙어가는지, 나이를 먹어가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관점과 반응은 으레 이래야 한다는 상투적인 비유 안에서 미리 결정된다는 뜻이다. 결국 나이 먹음이란, ‘생물적 개성이라기보다 사회의 심판에 더 가깝다’는 책의 표현은 우리가 중년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제대로 음미해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늙는구나 하는 느낌에 대처하는 최선의 자세는
늙는다는 의식으로부터 달아나는 게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 어찌해야 잘 늙어갈 수 있는지 성찰하는 것이다. / 17p
따라서 이 책은 중년이라는 선입견을 걷어내고 나이듦의 의미를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 한다. 단테와 몽테뉴, 괴테와 보부아르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정교한 안테나로 항상 늙어감의 위기와 두려움을 포착해왔던 작가와 사상가들의 작품을 통해 인생의 한복판에 선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이를 수용해서 나아갈 것인지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길러내고자 한다. 이 책에 수록된 작가들은 불안함을 예술로 승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 진력했으며, 저마다 다른 길을 걸었다. 덕분에 우리는 중년에 반응하는 방법이 그만큼 다양하며, 우리가 중년을 대하는 태도 역시 자신만의 관점으로 다양하게 길러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행로 한복판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또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따뜻한 향기를 머금은 숲속에서 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를,
햇살로 얼룽거리는 그늘 아래를 산책하며,
내 인생의 한복판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로서의 인생이 아니라, 인생행로의 중간쯤이 아니라, ‘
내 실존의 한복판’에 섰다는 생각을.
나의 심장이 전율했다.
-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 446p
고대 스토아학파로부터 현대의 실존주의자들은 대체로 중년에 이르러서는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덜어냄의 지혜를 추구해야 하는 시기로 인식했다. 사뮈엘 베케트 역시 인생의 중반에 이르렀을 때, 많은 일을 벌이기보다 마음을 비워내는 자세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성숙함이 완성된다고 여긴 것이다. 단테는 중년이란, 우리가 할당 받은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피할 수 없이 분명히 깨닫는 지점이지만, 이런 깨달음이 촉발하는 위기는 『신곡』과 같은 작품을 쓰는 데 꼭 필요한 창의적 번뜩임을 제공해줄 기회로 보기도 했다.
한편 괴테는 익숙해서 편안한 방식을 버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고 진화하는 데에서 영원한 초심을 유지하려 했다. 몽테뉴는 중년에 도달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중년이 되었음을 의식한다는 것은 예전에 일어난 모든 일을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멈춰야 할 때라고 인식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나 자신의 연구는 나의 형이상학이자 나의 물리학이다.”라고 했을 만큼 시간에 따른 몸과 마음의 변화를 진지하게 관찰했다. 시간의 심연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객관화했던 그의 태도는 우리에게 시간의 다스림이 곧 자아의 다스림이며, 겸손함을 키우는 것이 성숙함의 본질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외에도 조지 엘리엇, 보부아르, 바콜, 손태그 그리고 스미스는 몇 세기에 걸친 남성 중심의 중년 관점을 올바르게 바로잡으려는 노력해왔다. 덕분에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 여성으로서 시대가 요구하는 중년이라는 선입견들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독은 자아를 포착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몽테뉴는 주장한다. ‘가게 뒤에 붙은 방’, 곧 번잡한 거래가 이뤄지느라 바삐 돌아가는 장터의 가게에서 슬쩍 빠져나가 뒤에 붙은 방에 가서 홀로 머리를 식히며 고독한 시간을 가진다면, 우리는 무엇이 진정 잘 사는 인생인지 하는 물음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사회와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무뢰배의 속성’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중년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위해 살았다. 그만하면 충분하다. 우리는 적어도 ‘인생의 끝부분’만큼은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몽테뉴의 관점에서, 중년의 목표는 자신에게 충실한 자기만족의 삶이 되어야만 한다. / 138p
우리는 이미 아는 것을 더욱 깊이 천착해야 할까, 아니면 알지 못하는 것을 찾기 위해 새로운 모험을 감행해야 할까? 요컨대, 우리는 세월의 흐름에 맞서 싸워야 할까, 아니면 굽히고 순응해야 할까? 괴테는 이런 딜레마를 몸소 감당하면서도, 더없이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풀어낸다. (…) 괴테는 유구한 세월의 무게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세월과 맞서 싸우려고. / 246p
울프는 우리에게 성숙함의 묘사, 상당히 긍정적인 묘사를 제공한다. 망설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아픔을 끌어안고 성장으로 진보하는 이 모든 것은 단단하고 강건한 정체성으로 빨려 든다. 중요한 점은, 이 정체성이, 최소한 겉보기에는, 무한히 반복되는 운동, 기름칠을 잘할 기계처럼 매일 그리고 매주 왕성한 피스톤 운동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인용문은 시간이 어떤 것인지 상징처럼 보여주면서, 또한 시간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인간을 그런대로 즐거운 일상을 살아가는 현세의 인간으로 그려낸다. 문학은 이처럼, 최소한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알고 있듯, 일종의 충격 완화 장치 역할을 한다. / 421p



이처럼 책을 읽다보면 중년이라는 인생의 행로를 통과하는 데에는 단 하나의 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만 우리는 그 많은 행로를 모두 경험할 수 없기에 문학과 예술을 통해 다양한 관점들을 살펴보고 나에게 맞는 항로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믿고 있고-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태도를 견지하기,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실제로 전혀 통제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우리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존재이며, 중년이라는 나이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맬지라도 그것조차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중년을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내게 중년이라는 이미지에 나를 가두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와 상투적인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가장 생산적인 시기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위대한 작가들처럼, 나 역시 나만의 스토리를 써내려가는 법을 계속해서 고민해하고 실천하려 노력해야겠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중년’이라는 시점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이 여정에 동승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즐거운 독서였다. 걷고, 걸어 어느 덧 길 한복판에 서 있게 된 나는 이제 무엇을 바라보고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시대의 많은 중년들에게, 중년의 길로 접어들 분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해드리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