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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인 ㅣ 현대지성 클래식 52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9월
평점 :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반항인의 메시지!
우리 모두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긍정하고 버티기 위해서는 ‘반항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생각한다. 나는 왜 매일 같은 시간에 학교에 가고, 출근을 하며, 저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가는가. 나는 왜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을 반복해야 하는가, 밑으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정상으로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의 형벌처럼. 이처럼 삶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삶은 온통 부조리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합리화라는 행위를 통해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다시 열심히 다람쥐 쳇바퀴 속으로 들어가기를 택한다. 대체 왜?
이처럼 숙명적으로 주어진 부조리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카뮈는 ‘반항’이야말로 이에 대한 해답이라 말한다. 『반항인』 제1장에서 카뮈는 반항인에 대해, ‘아니요Non’라고 말하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그에게 거부란 또한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신의 형벌로 인해 영원히 산 밑에서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삶을 살아야 했던 시지프를 보며 ‘비록 삶은 비극적일 수는 있어도 절망적이지는 않으리’라고 믿었던 것은, 그가 부조리한 삶을 직시하고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존엄성을 지켰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저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부터 카뮈가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선언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참을 수 없는 구속에는 ‘아니요’라고 말하되 본질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에는 ‘예’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긍정하고 버티기 위해서는 ‘반항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반항인』의 메시지가 아닐까.
“반항은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한 생애의 전체에 걸쳐 펼쳐져 있는 반항은 그 삶의 위대함을
회복시킨다.” - 카뮈
반항과 함께 의식은 태어난다
‘반항이란 자기 권리를 의식하는 더없이 명석한 인간의 행위이다.’ 과거 잉카제국의 신민이나 인도의 불가촉천민은 반항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전에 신에게서 해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즉, 신화가 형이상학을 대신했다. 그러나 “신은 죽었다”던 니체의 선언 이후로,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더 이상 우리의 존재를 보증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인간은 신의 역사적 대표자인 왕을 살해한다. 이때부터 주인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던 노예의 반항은 노골적으로 혁명운동과 결합하고, 자유에 대한 비이성적 요구는 역설적으로 이성, 반항자에게 순전히 인간적인 것으로 비치는 유일한 정복의 힘인 이성을 무기로 삼게 된다.
반항인이란 신성 이전이나 신성 이후에 위치하는 사람이며, 인간적인 질서를 요구하는 데 전념하는 사람이다. 인간적인 질서에서는 모든 해답이 인간적으로, 즉 합리적으로 표현된다. 이때 모든 물음과 말은 반항이 된다. / 46p
존귀한 것은 반항 자체가 아니라 반항이 요구하는 대상이다. 설령 반항이 현실적으로 얻어내는 결실이 아직은 보잘것없더라도 말이다.
적어도 반항이 얻어내는 보잘것없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반항이 현재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전적으로 거부할 때, 즉 절대적 ‘아니요’를 신격화할 때 반항은 살인한다. 반항이 현재 있는 그대로의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때, 즉 절대적 ‘예’를 외칠 때 반항은 살인한다. 창조자에 대한 증오는 창조된 세계에 대한 증오로 변할 수도 있고, 현재 있는 그대로의 것에 대한 배타적이고 도발적인 사랑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 어느 경우든 반항은 살인에 이르고, 반항이라고 불릴 권리를 잃게 된다. / 161p
신은 죽었다. 그러나 슈티르너가 예고한 대로 신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으므로, 원리의 도덕마저 말살해야 한다. 신성의 타락한 증인이요, 불의를 섬기는 가짜 증인인 형식 미덕에 대한 증오는 현대사를 움직이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아무것도 순수하지 않다. 이 외침은 우리의 세기에 경련을 불러일으킨다. 불순함, 즉 역사가 규범이 되려 하고, 황량한 대지는 인간의 신성을 좌우할 헐벗은 힘에 내맡겨지리라. 그리하여 사람들은 종교에 귀의하듯 비장하게 거짓과 폭력에 귀의한다. / 208p



“인간의 역사는 어떤 의미에서 끝없는 반항의 총합일 수밖에 없다.”던 카뮈의 말대로 789년의 프랑스대혁명은 나폴레옹으로, 1848년의 2월혁명은 나폴레옹 3세로, 1917년의 러시아혁명은 스탈린으로, 1920년의 이탈리아의 여러 폭동은 무솔리니로, 바이마르 공화국은 히틀러로 귀결된다. 마르크스의 예언적인 꿈, 헤겔과 니체의 강력한 선견은 마침내 신의 왕국을 거세한 후 합리적 국가 또는 비합리적 국가, 그러나 어느 경우든 테러리스트적인 국가를 탄생하게 한다. 카뮈의 시선에서 반항은 이제 그 진정한 기원으로부터 단절되어 전체성에 몸을 던지고, 역사의 노예가 됨으로써 인간을 저버린 채 세계 전체를 노예화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반항에서 비롯된 비합리적 열정이 인간을 톱니바퀴로 전락하지 않게 하려는 반항 자체를 제한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카뮈는 일종의 항의에서 시작해 점진적 해방을 추구하는 반항과 달리, 역사를 전복하고 세계를 뒤바꾸려는 혁명을 비판한다. 혁명은 자신의 원리와 허무주의와 순전히 역사적인 가치를 포기하고 반항의 창조적 원천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혁명이 창조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의 광란에 균형을 부여할 수 있는 도덕적 혹은 형이상학적 규범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우리가 아닌 존재를 생산하기 위해 죽이고 죽이는 것 대신에 이 지상에서의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 부조리에 맞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완전해지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반항을 추구하자고 말한다.
모든 종교는 유죄와 무죄의 관념 주위를 맴돈다. 그렇지만 최초의 반항자인 프로메테우스는 징벌의 권리를 부정했다. 제우스 자신, 아니 특히 제우스는 이 권리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결백하지 않다. 최초의 운동에 있어 반항은 징벌의 정당성을 거부한다. 그러나 고단한 여행의 끝에 이르러 반항은 징벌이라는 종교적 관념을 되풀이하고, 그것을 세계의 중심에 놓는다. 최고 심판관은 이제 천상에 있지 않다. 최고 심판관은 바로 역사인데, 역사는 무자비한 신이 되어 형을 선고한다. / 348p
요컨대 반항은 생의 운동이다. 아무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반항을 부정할 수 없다. 반항이 내지르는 더없이 순수한 절규는 번번이 한 인간 존재를 일으켜 세운다. 그러므로 반항은 사랑이요 풍요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 반항이 고결한 기원을 잊은 채 원한에 의해 더럽혀지자마자, 반항은 삶을 부정하고 파괴로 치달으며 하찮은 반역자들의 냉소적 무리를 낳는다. 노예들의 씨앗인 그들은 오늘날 유럽의 시장에서 온갖 예속에 몸을 바치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반항도 혁명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원한이요 폭정이다. 혁명이 권력과 역사의 이름으로 과도한 살인 기계가 된 셈이다.
(…) 반항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모든 일에 도전할 수는 있다. 정오의 태양이 역사의 운동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다. / 439p
세계의 부조리를 강조하는 철학이 그들을 절망에 빠뜨릴 위험은 없나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꼭 필요한 하나의 단계, 하나의 경험입니다. 그것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해하면 안 돼요. 부조리는 반항을 유발하는데, 반항은 생산적일 수 있습니다. / 444p



이처럼 『반항인』은 부조리로 점철된 삶을 극복하기 위해 반항 의식의 중요성과 반항의 한계까지 되짚어보며 진정한 반항의 의미를 전하려 한 카뮈의 철학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냉전 시대였던 당시, 좌파의 입장에서 공산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혹독한 비판과 함께 문제작으로 평가받았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 외에도 최초의 반항자인 프로메테우스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반항’을 중심으로 서양 철학과 역사를 돌이켜보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여기에 반항의 정신을 담은 예술의 가치, 카뮈의 인터뷰까지 만나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다만, 식견이 짧은 관계로 그가 제기하는 균형과 중용의 ‘정오의 사상’은 워낙 추상적인데다 모호하게 느껴져서 여기서 다 언급하기 어려운 점은 아쉬울 따름이다.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를 읽은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카뮈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사유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이 책 역시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리고 싶다.
예술에서 가장 위대한 스타일은 비록 그것이 당대의 편견과 충돌할지라도 가장 지고한 반항을 표현한다. 진정한 고전주의가 길들인 낭만주의이듯, 천재란 자신의 한계를 창조한 반항이다. / 393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