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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거짓말·유토피아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 지음, 김현정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0월
평점 :

‘나’는 인류의 진화와 함께해온 이야기의 총합이다!
이야기에 관한 놀랍도록 방대하고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품은 책!
“인과 관계, 우리는 영원히 그 노예일 뿐이야. (…) 이유야말로 진정한 힘의 원천이야. 이유가 없으면 당신은 무력해.”
영화 <매트릭스> 속에서 인공지능 메로빈지언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인간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아주 오랜 옛날, 느닷없이 몰아치는 폭풍우와 번개 같은 자연 현상을 이해할 길이 없던 인간은 이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이승에서 희생하면 내세에서 보상받는다는 스토리를 통해 현세의 고통을 견딜 만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지, 모든 것에는 근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비록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예측할 수 없고 위협적 요소들조차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인간의 삶 곳곳에 존재해왔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의 두 저자인 자미라 엘 우아실과 프리데만 카릭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의 기저에는 수천 년 된 프로그램과 내러티브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숙이 닿아 있다고 전한다. 따라서 이들은 호모 나랜스 즉 ‘이야기하는 인간’으로서,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켜왔는지 이야기의 오랜 역사를 추적하고자 한다. 또 이야기가 지닌 위대함과 불완전한 힘 앞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서사를 쌓아나가야 할 것인지 모색해본다.
왜 우리에게 좋은 이야기가 필요한가
책은 크게 세 가지 구성을 통해 이야기에 관한 놀랍도록 방대하고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먼저 인간의 진화를 촉진시킨 강력한 도구로써, 스토리텔링이라는 문화 기술이 왜 인간에게 그토록 권능하고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는지 살펴본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진화 못지않게 이야기 역시 그 속에서 진화를 이루어왔다는 점인데, 단순히 위험을 경고하거나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데 이용되었던 이야기가 점차 불가해한 세상을 설명하고, 나아가 인간이 자신을 설명하고 자신만의 서사를 쌓아나가는 데 이야기가 크게 기여해왔음을 엿볼 수 있다.
모든 존재에게는 자기보존이라는 가장 강한 욕구가 존재한다. 우리 인간 또한 죽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래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의 유한함을 알아야 죽음을 가급적 성공적으로 막기 위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가능한 한 좋은 삶, 길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도전과제를 극복할 때마다 자신의 유한성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다. 이로써 우리는 성공적인 노력을 성찰하고 그로부터 배우고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 78p
이야기는 우리 인간의 진화를 강력하게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수직적으로, 즉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특정 유전자를 전달함으로써 진화했을 뿐만 아니라 수평적으로, 즉 한 세대 안에서 특정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진화하기도 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여러 일화를 통해 보여주는 생존 기록이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문명이란 성공적인 생존전략과 이야기를 여러 세대에 걸쳐 재생산하는 것이다. / 90p



두 번째로 책은 우리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해로운 내러티브는 어떠한 자기 서사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지 톺아본다. 이를 테면 능력주의, 성과주의,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여성혐오 등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양극화 내러티브의 기원은 어디인지, 그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었는지 살펴본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모든 집단이 자신들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럴 듯하게 들리는 자기만의 서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서사는 종종 체계적으로 습득된 원형과 마스터플롯의 도움으로 자기의 관점만이 옳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워낙 정교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로운 내러티브에 선동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특히나 이야기가 과잉 공급되고 있는 오늘날, 선택 가능성과 자유의 폭이 더 넓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럴수록 서사를 단순화하려는 욕구를 촉발한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모호함을 제거하고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내세우려는 시도를 통해 누군가의 이익이 반영된 혹은 편향된 내러티브의 함정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적대자가 없으면 강력한 주인공도 없다. 전투에서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위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세계와 질서가 무너져야 한다. 무너진 틈 사이로 악이 침투하며 오로지 영웅만이 악을 제지할 수 있다. 그래야만 파시즘이 원칙적으로 취하려는 특별 조치-모든 다원주의를 철폐하고 폭정을 휘두르고 적은 패배시킬 뿐만 아니라 ‘말살시키는 것(아돌프 히틀러)’-가 정당화된다. / 314p
즉 여성에게 책임이 있다는 비난이다. 여성의 죄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배후에 존재하는 진정한 내러티브로 서사적 무의식 속에 깊이 스며드는 여성 혐오 선전이다. 즉 이러한 여성 혐오 선전에 따르면 교활한 여성을 막을 방법이 없기에 여성은 호르몬에 사로잡혀 나락으로 떨어지는 남성에게서 이득을 본다. 여성은 불가사의한 조종자이며 영웅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인이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고통의 원인이다. 이 고통은 이브에서 시작된다. / 392p
인터넷의 모든 자기 이미지는 의사소통 행위, 즉 ‘언어화된 이미지 소통’이 된다. 이미지가 영웅 여정을 기록한다기보다는 기록-우리의 영웅 일대기-을 지속적이고 영원한 우리의 서사적 자아 탐구로서 바로 이러한 영웅 여정의 일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말하자면 셀피는 결과가 아니라 서사적 자아의 도구다. / 218p



따라서 우리는 인간 혐오 내러티브, 원시 파시즘 내러티브, 음모론 내러티브 등이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특히나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서사적 자아는 인류의 실존적 위기를 긍정적인 서사에 쏟아부을 수 있어야 한다. “상상력은 근육과 같다. 근육은 단련하지 않으면 쇠약해진다”던 작가 닐 게이먼의 말처럼, 어떤 내러티브가 참되고 더 건강하고 생산적일 수 있는지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책의 메시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인 듯하다.
의존적인 먹이 사슬을 통해 서로 조절하여 복잡한 그물과 관계가 발생한다. 생태계가 복잡할수록, 즉 다양한 종들이 생겨날수록 생태적 균형은 더욱 안정된다. 개체의 차원에서 보면 자연은 대를 거듭하는 유전을 통해서만 변화와 발생이 예정되는 안정적인 순환이다. 자연은 내러티브를 알지 못하며 그것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태계와 우리를 화해시키는 전 인류의 영웅 여정의 끝에서 영웅 여정 자체를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영웅 여정에서의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완전히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530p
이렇듯 책은 이야기에는 어떤 힘이 있는지, 이야기가 인류의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통섭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놀라운 결과물이다. 또한 우리에게 왜 좋은 이야기가 필요한지에 대한 해답을 건네는 훌륭한 저작이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과연 나만의 서사를 충실하게 써나가고 있는지, 타인이 기대하는 서사에 몸을 기대고만 있는 건 아닌지 뒤돌아볼 수 있었던 귀중한 책으로 내내 기억될 것 같다.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마냥 어렵게 읽히는 책도 아니니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