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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목격자 - 대한민국 최고 DNA 감정 전문가가 들려주는 법과학의 세계
이승환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평점 :
범죄에 남긴 흔적을 통해 진범을 추적하는 법과학의 치열한 현장을 다룬 기록!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오늘도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법과학자들의 분투와 헌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DNA를 채취한다고 했을 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32년 만에 밝혀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영영 미제로 남을 뻔했던 이 사건을 해결한 건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 덕분이었다.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란 숫자로 표기된 특정한 사람들의 DNA 프로필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관리하다, 미제로 남았거나 미궁에 빠진 사건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와 비교해서 일치하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는 국가 제도라고 한다. 과학수사 즉, 우리나라 법과학 분야가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보이지 않는 목격자, DNA
『보이지 않는 목격자』는 법과학자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DNA 감정 전문가인 이승환 박사가 들려주는 법과학 책이다. DNA 분석, 음성 분석, 지문 분석 등 법과학에 대한 이론과 다양한 지식은 물론,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데 법과학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던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의 말대로, 범죄에 남긴 흔적을 통해 진범을 추적하는 법과학의 세계를 매력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책이다.
미생물군집 분석을 활용하면 증거물에서 한 번만 DNA를 분리해내는 것만으로도(그 속에 사람과 미생물의 DNA가 섞여 있으므로) 그 DNA가 누구 것인지를 밝힘과 동시에 그 DNA가 어느 부위에서 나온 것인지를 동시에 밝힐 수 있다. 아직은 기술이 도입되고 발전하는 단계이긴 하지만 미생물군집 분석을 이용한 수사의 영역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 127p
강력사건을 저지르는 범죄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수사기법이 DNA 분석이라고 한다. 그래서 범행을 저지르면서도 어떻게 하면 DNA를 남기지 않을까 고민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범죄자들이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라는 과학수사의 진리와 함께 수사기법이 날로 발전하는 과학수사를 감당할 수는 없으리라. / 137p
그렇다면 법과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법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증거로 쓰일 수 있는 자격(법률 용어로 ‘증거능력’)과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힘(법률 용어로 ‘증명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수사에 쓰이는 과학적 ‘기술’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수사를 통해서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는 기소와 그 이후의 재판에도 쓰이는 과학’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를 갖추기 위한 법과학자들의 분투를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가짜 백수오 사건, 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 등 국내외의 다양한 사례 속에서 법과학이 어떤 힘을 발휘했고, 또 발전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특별한 묘미다.
메이필드의 인적 사항을 들었을 때 그의 지문이 다른 사람의 지문보다 더 유사도가 높아 보였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제공되는 관련 정보에 따라 사고가 편향되는 ‘맥락적 편향’이 작용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문에서 다른 점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틀리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을 분석한 사람도, 확인할 의무가 있는 선임자도 모두 틀림없다고 단정짓는 것이다.
(…) 사실 법과학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편향이다. 법과학자이지만 수사기관에 속했던 나는 혹시라도 용의자를 범인으로 특정한 뒤 거기에 부합하는 결과만 찾고 있지는 않은지 늘 조심하고 돌아보곤 했다. / 55p
스펙트로그램은 인간의 음성을 수학적인 함수로 연산하여 수치로 그려낸 일종의 음성 그래프로, 시간에 따른 음성의 주파수 대역과 그 에너지 분포를 보여준다. 성문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감정 자료(범인의 목소리)와, 피의자에게 감정 자료를 근거로 작성한 녹취록을 읽게 한 비교 자료(용의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감정 자료와 비교 자료 음성을 두고 음높이, 발화 속도, 공명 주파수, 억양 등에 대한 음향 분석을 실시하여 동일인 여부를 판단한다. / 59p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옛말이 있듯이 법과학은 죄를 입증하려는 수사관이나 검사뿐만 아니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는 피의자나 변호인을 위해서도 존재해야 하는 서비스라고 강조하고 싶다. / 202p
법과학자가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이고, 법과학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어떤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지까지 살펴봄으로써 법과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각종 범죄수사물이나 관련 콘텐츠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치열한 과학수사의 현장감까지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법의학 등의 자연과학 지식뿐만 아니라 범죄학, 심리학, 사회학 등 사회과학적 지식의 원리까지 융합된 응용과학의 결정체로서, 법과학의 매력에 눈을 뜰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예비 법과학도과 법과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