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 시골 수의사가 마주한 숨들에 대한 기록
허은주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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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인간공존과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대하여!

시골 수의사가 전하는 작고 여린 온기를 지닌 생명들의 이야기!

 

 

 

  유년 시절우리 집에는 벤지라는 강아지가 살고 있었다엄밀히 말하자면 벤지라는 이름으로 두 마리의 강아지가 살았다첫 번째 벤지는 새하얀 몰티즈로워낙 어릴 적의 일이라 사실 크게 기억이 없는데 유일하게 단 하나의 장면이 아직까지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벤지는 어디에서 그토록 큰 힘을 지니고 있었던 걸까어린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차게 발버둥치는 바람에 산책 중 그만 목줄을 놓치고 말았다목줄이 내 손에서 팟하고 떨어져나가는 순간 나는 난생 처음으로 깊은 상실감을 마주했다또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감과 내가 키우고 있는 동물이라고 해서 온전히 나의 소유물이 아님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그날 부모님은 내게 말했다아마도 벤지가 자유롭고 싶었나보다 하고.

 

 

 

  그렇게 몇 년이 흐른 후초등학생이 된 나는 하교하는 길에 길거리에서 벤지를 꼭 닮은 새하얀 몰티즈를 마주했다문득 벤지를 잃어버렸다는 미안함과 이 강아지가 벤지였으면 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꽤나 오랫동안 강아지를 쓰다듬어주었다이후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것을 안 다음에는 네 집으로 가.” 하고 손짓한 뒤 나는 집을 향해 뛰어갔다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강아지가 나를 계속 따라왔다. “어머여기 벤지랑 닮은 강아지가 집 앞에 있는데?” 내가 집으로 들어가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엄마 친구분이 집에 놀러와 있다가 아직도 떠나지 않고 대문 앞에 앉아 있던 강아지를 발견했다나를 따라왔던 그 강아지였다혹시나 강아지를 잃어버렸다는 사람이 나타나거나 전단지가 붙어 있을까 싶어서 기다려봤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인연은 이런 방식으로도 시작되는 것인가 보다 하며 신기해하면서도타인의 반려동물을 내가 빼앗은 것 같은 죄책감도 함께 느끼며우리 집에서 살게 된 벤지는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다.

 

 

 

  시간이 흘러 두 아이를 낳은 엄마가 되고 난 뒤종종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아들의 바람을 듣곤 한다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로 오는 반려동물은 외면할 생각이 없지만 부러 펫숍에서 판매하는 애완견을 구매하여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아이들에게도 씻기고먹이고병원에 데려가고살뜰하게 키울 자신이 없다면 소중한 생명을 그저 귀여워서갖고 싶은 마음에 키우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해주었다두 번째 벤지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사실 나는 귀여워할 줄만 알았지 씻겨주거나 병원에 데려가는 등 살뜰하게 돌봐주는 데는 이렇다 할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첫 번째 벤지를 잃어버린 트라우마 때문에 두 번째 벤지를 데리고 대문 밖을 나서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는데내내 갇혀 살았을 벤지를 생각하면 이것도 참 미안한 일이었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우리가 이 동물의 삶과 죽음그 내면의 고통까지 이해할 수 있는 태도가 동반되었을 때 비로소 서로를 위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그런 자세를 여러 번 재고해보지 않고 그저 갖고 싶다는 소유의 감정으로만 다가가면 건강한 관계를 이루기 어렵다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의 저자 허은주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이 상품으로 유통된다는 것은 환불교환반품의 대상이 된다는 걸 의미한다반려동물이라는 말을 누구나 사용하는 지금이지만 동물들은 여전히 상품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반려라는 이름을 붙인 가족 구성원으로 불리고 있는 한편에서는 폐기처분이 가능한 상품으로 유통된다그 사이의 간격 차이가 너무 커서 자주 현기증이 난다.’ ‘반려라는 그럴 듯한 이름 안에서 상품의 가치로 매겨지는 동물들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대의 증거들인간의 편리에 자리를 내어주느라 자신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무수한 생명들… 인간과 동물이 진정으로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은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일까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공존과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했다.

 

 

 

사람인 나는 이 세계에서 아주 작은 존재였다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는 시골 수의사가 병원 안팎에서 마주한 생명들에 관한 기록이자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한 에세이다. 30대 초반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며 힘에 부쳤던 저자는 동물은 사람과 달리 진료할 때 말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의사로 전향했지만 또 다른 책임과 죄책감을 맞닥뜨려야만 했던 고민을 털어놓는다아픈 길고양이를 선의로 데려왔지만 부담스러운 진료비 앞에서 책임은 질 수 없었던 사람어린이날에 어린 아들에게 두 달 된 강아지를 선물했지만 소음 갈등으로 시골 할머니네로 보내야 했던 엄마동물을 입양한 지 얼마 안 된 보호자에게 강아지의 배꼽탈장에 대해 말했다가 펫숍 주인으로부터 언성을 들어야 했던 일화 등 수의사로 있으면서 겪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비용 문제였다길고양이를 데려오는 보호자들과 항상 맞닥뜨리는 문제다.

수술할 수 있을 때까지 고양이가 버텨줄지도 의문입니다지금은 체온도 낮고 숨도 잘 못 쉬고 있어요수술할 만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게 돌봐야 해요검사와 입원비는 저와 상의를 해보시고요우선 애는 살려야죠.”

상의요길고양이한테는 돈 한 푼도 못 씁니다.” / 32p

 

 

슬픔은 자연스럽게 느꼈지만 안도감과 미안한 감정은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순간 며칠 전 냥이 엄마가 병원에 찾아왔을 때가 떠올랐다냥이가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꾸 말라간다고아직 살아 있는 게 맞냐고 울면서 물어보던 날조마조마했던 마음이 기억났다보호자가 고양이를 안락사해달라고 요구할까봐 불안했다그랬다나의 안도감은 이제 안락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서 왔다그리고 냥이의 부고에 안도감을 느낀 내가 미웠다그것이 안도감과 죄책감의 정체였다. / 49p

 

 

자녀가 동물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반려견의 입양을 좀 유보했다면입양 전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 가족들과 진지하게 상의했다면 어땠을까? 2개월에 입양된 포메라니안도 누군가의 전폭적인 애정과 돌봄이 필요한 아기인데어린아이 둘과 함께 돌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쉬웠다어린 나이에 입양된 똘이가 그 집에서 많이 외롭지 않았을까내가 보아왔던 포메라니안들은 호기심이 많고 학습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준비된 가족들 곁에서는 잘 훈련되어 행복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많았다섣부른 입양이 안타까웠다. / 87p

 

 

 



 

 

 

 

  그 중에서도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동물들이 원치 않은 병을 얻게 된 사연은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귀가 시뻘겋게 퉁퉁 부어서 피고름이 귓바퀴를 타고 턱까지 흘러내리던 불도그는 얼마 전 단이 수술을 했다고 한다개의 단이 수술은 사람이 원하는 모습대로 귀 모양을 바꾸기 위해 하는 미용 목적이 대부분이라고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베르만의 쫑긋 서 있는 귀도 귓바퀴를 잘라 붙이는 단이 수술을 한 결과라고 말한다고작더 용맹스럽게 보이기 위해서.

 

 

 

  자연 선택만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고양이 스코티시폴드 종은 인간들이 평생 유전병으로 고통 받는 고양이를 만들어낸 결과다아주 오래전연골 형성에 유전적인 문제가 있어 귓바퀴가 접힌 돌연변이 고양이가 태어났는데 그 귀 모양이 귀엽고 희소해서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반복적으로 귀 접힌 고양이들끼리 교배시킨 것이다문제는 귀를 접히게 했던 돌연변이 유전자가 모든 관절에 적용되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고 그 결과 평생 유전병으로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고양이를 탄생시켰다단지 보기에 아름답다는 이유로 이들은 평생을 진통제와 보조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더 큰 문제는 이를 알게 된 보호자가 다시 펫숍에 고양이를 반품시키면 이들은 또다시 새로운 보호자를 기다려야 한다악순환은 그렇게 계속된다인간의 이기심과 오만 때문에.

 

 

 

후투티는 인간이 아닌 자연에 속한 생명체였다인간이 만든 건물 속에서 살지 않고 하늘에서 바람을 가르며 살아간다나무 사이를 날아다니고 덤불 사이에서 긴 부리로 땅을 파서 먹이를 찾는다나무 구멍 안에 알을 낳고 뜨거운 여름 천적의 위험을 피해 새끼를 키워낸다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계절이 바뀌면 따뜻한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긴 비행을 할 것이다후투티를 내 자취방 안에서 길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 105p

 

 

어린 동물들은 면역력이 약해 이후에도 질병에 쉽게 걸린다어린 시절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에 이후에 입양되어서도 행동학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이런 모든 문제는 펫숍에서 동물을 구입한 사람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약한 면역력으로 질병에 쉽게 걸리기 때문에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또한 쉽게 샀기 때문에 동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쉽게 유기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반복된다평생을 함께할 반려동물을 만나고 싶다면 펫숍이 아닌 가까운 유기동물구조센터에서 인연을 만드는 것을 권하는 이유이다우리가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함께 사는 동물을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니까. / 119p

 

 

 

  이 책을 읽으며 동물이 자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사랑이라는 이름의 앵무새는 파우더 깃을 부리로 만지다가 피부에 작은 상처를 내고한 번 생긴 상처를 부리로 계속 자극하여 상처를 크고 깊게 만들어 악화시켰다사랑이는 한 번 부리로 상처를 내면 스스로 멈추지 못했다피부가 움푹 파이고 피가 흘러내릴 때까지 정신없이 자기 몸을 다치게 했다저자는 여러 차례의 전신마취와 날개 절단 수술입원장 생활이 어린 앵무새의 마음속에 병을 키웠던 것으로 짐작한다너른 하늘을 날아다니도록 태어난 새가 고통스러운 상황에 던져졌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이었나 보다인간이 그러한 것처럼동물도 정신적인 고통이 심하면 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진정으로 인간과 동물이 건강한 관계를 이루려면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자세가 동반되어야만 가능해지는 게 아닐까.

 

 

 



 

 

 

 

  국내에서는 연간 800만 마리의 새들이 투명 벽에 부딪혀 죽어간다고 한다지난 50년간 북미에 서식하는 새의 30퍼센트가 사라졌다는 연구도 있다매년 같은 장소에서 보이던 새들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새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를 실존에 가깝게 하는 다른 세상이 조금씩 없어지는 거라고그건 내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고동물들이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들이 사라지면 결국 사람도 사라진다부디 인간이라는 이유로 다른 생명을 소홀히 대하거나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기를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이 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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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제인 오스틴 지음, 송은주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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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의 남성과 여성세태를 향한 깊어진 시선!

세상을 읽어내고 편견 없이 대상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사랑듣기만 하여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여린 꽃 같은 이름세상의 수많은 단어들 중 이토록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게 또 있을까첫사랑에 대한 기억의 색채감은 저마다 다르지만내가 알고 있는 가장 맑고 밝은 색으로 채색하고 싶은 마음과 인생에서 가장 짜릿하고 설렜던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그래서일까설득순수의 시대위대한 개츠비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다른 네 작품이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데 엮여 근사한 컬렉션으로 완성된 구성을 보는 순간마음이 두근거렸다. ‘첫사랑 컬렉션’ 속에 담겨 있는 첫사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인생에 단 한 번가장 첫 번째로 기억되는 사랑이 한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로부터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준남작 신분의 월터 엘리엇 경에게는 세 명의 딸이 있다아버지의 잘생긴 외모는 물론 높은 허영심까지 쏙 빼닮은 첫째 엘리자베스차분하고 다정한 성품을 지녔지만 가족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인 둘째 앤돈 많은 시골 가문으로 시집을 간 메리까지여기서 주인공은 바로 둘째 앤이다그녀는 8년 전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재산도 지위도 없는 해군 장교 엔트워스와 사랑에 빠졌다하지만 이 약혼은 지각없고부적절하며잘될 가망은 물론 그럴 가치조차 없는 일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설득당해 파혼하고 말았다시간이 흘러 어느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고 가세가 기울어져 가고 있는 집안을 돌보며 쓸쓸히 생활하던 그녀는 웬트워스가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큰 재산을 모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앤은 여전히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시선이 머무를 만큼 신경이 쓰였지만웬트워스는 과거에 받은 상처로부터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듯 앤이 아니면 누구라도 좋다는 가시 돋친 말까지 하며 그녀와 거리를 둔다.

 

 

 

그는 앤 앨리엇을 아직 용서하지 못했다앤은 그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그를 버렸고 실망시켰다그 과정에서 앤은 나약한 면을 보여주었고그의 단호하고 자존심 센 기질로는 이를 견뎌낼 수 없었다앤은 다른 사람들의 뜻에 따라 그를 포기했다설득에 쉽게 넘어간 탓이었다나약함과 비겁함의 결과였다. / 91p

 

 

이 모든 것들로 자신에 대한 그의 마음이 명백해졌고앤은 이에 크게 감동했다이 사소한 사건이 이전에 지나간 모든 일을 완결지어주는 듯했다앤은 그를 이해했다그는 앤을 용서할 수 없었다그러나 무심할 수도 없었다과거 일로 그를 원망하고 부당한 분노를 품으면서도그에게 전혀 관심 없는 척 굴면서도또 다른 이에게 마음을 붙여가고 있으면서도여전히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지 못했다예전의 감정이 아직 다 사라지지는 않은 것이다. / 136p

 

 

 

  한편시집을 갔지만 여전히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주기를 바라는 철없는 동생 메리를 위해 동생네에서 한동안 머물게 된 앤은 오랫동안 자신을 무시해왔던 아버지와 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되자 새로운 정신적 변화에 눈을 뜨게 된다시끌벅적하지만 곁을 다정하게 내어주는 사람들가진 것을 모두 잃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작은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친구와의 만남불의의 사고 앞에서 차분하게 일을 순리대로 진행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주변 사람들을 다독였던 일련의 경험들이 그녀를 성장하게 한다이러한 변화는 그녀에게 벽을 세워두고 있었던 웬트워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앤에게 호감을 품은 사촌 엘리엇 씨의 등장으로 이들의 관계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구분을 하셨어야지요이제 저를 의심하지 마세요사정이 완전히 달라졌어요저도 나이를 먹었고요예전에 설득에 넘어간 것이 저의 실수였다 해도그분의 설득은 위험이 아니라 안전을 위한 것이었음을 기억해주세요제가 설득에 넘어갔을 때는 그것이 응당 따라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지만지금은 어떤 의무도 저에게 도움이 될 수 없어요오히려 저에게 무심한 남자와 결혼한다면 온갖 위험이 초래될 것이고결국 모든 의무에도 어긋나는 일이 될 거예요.” / 367p

 

 

 




 

 

 

 

  이처럼 설득은 타인에 의해 사랑을 포기한 여성이 자신의 진솔한 감정에 눈을 뜨고 성숙해져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전작 오만과 편견이 그러했듯이 작품 역시 로맨스 소설’ 과 가정 소설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1800년대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세태 소설의 특징을 뚜렷하게 드러낸다로맨스 소설의 측면에서 보자면준남작의 딸이라는 허울 좋은 배경을 갖고 있지만 최근 가세가 기울어진 집안을 돌보며 27살이 되어버린 주인공 앤과 과거에는 보잘 것 없었지만 부와 명예를 갖춘 훌륭한 신랑감이 되어 돌아온 첫사랑 웬트워스가 재회하면서 빚어지는 미묘한 감정이 눈에 띤다이를 테면 의식하고 싶지 않아도 서로의 시선과 목소리에 저절로 반응하고야 마는 본능 같은 것이 거리를 걷다보면 행여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같은 것무심하게 내뱉은 듯한 저 한 마디에서 나와 관련된 어떤 감정의 실마리를 길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같은 것에서 우리는 사랑이 발화하는 순간에 마주할 수 있는 애틋한 장면들을 엿볼 수 있다여기에 엘리엇 가의 상속자인 사촌 엘리엇 씨까지 가세하였으니삼각관계라는 꽤나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기대해볼 수 있다.

 

 

 

  반면 세태 소설의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1800년대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남성과 여성을 둘러싼 오래된 관념을 비롯해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당대의 현실이 매우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점이 큰 특징이다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상당히 정밀하다아름다운 외모와 지위 그리고 출신이 한 개인의 절대적 평가 기준이자 그 어떤 부조리함도 납득시킬 수 있는 현실변덕스러운 성격에 자신과 가족 전체의 신분 상승을 결혼을 통해서 실현하려는 여성들딸들은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권리가 없는 비정상적인 사회 구조 등을 때로는 위트 있게때로는 진중한 목소리로 드러내고 있다덕분에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 가지 합리적인 의심을 지울 수 없다만약 웬트워스가 출세해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과연 월터 엘리엇 경이 과거의 반대를 무릅쓰고 딸의 남편 자격으로 재고해보기나 했을까하고.

 

 

 

자신이 스물아홉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약간의 후회와 우려를 느끼기도 했다전과 다름없는 미모를 유지하고 있다는 데 대단히 만족하면서도위험한 나이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다앞으로 일이 년 내에 남작 가문에서 적절한 구애를 받을 거라는 확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 13p

 

 

월터 경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엘리자베스에게 실상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엘리자베스에게도 더 뾰족한 수는 없었다그는 자신에게 닥친 일이 부당하고 불행하다고 느꼈으며그것은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였다둘 다 자신의 품위와 타협하거나견딜 수 없을 만큼 안락을 포기하면서까지 비용을 줄이겠다는 방법은 생각할 수 없었다. / 17p

 

 

평생 여자의 변덕스러움에 대한 내용이 없는 책은 펼쳐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노래와 속담도 전부 다 여자의 변덕에 대한 이야기뿐입니다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런 것은 다 남자들이 이야기뿐입니다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런 것은 다 남자들이 쓴 내용이라고 하시겠지요.”

아마 그럴 거예요맞아요원하신다면 책에 나온 사례는 언급하지 않을게요남자들은 자기들 이야기를 할 때 우리보다 훨씬 유리했지요여자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펜도 그들 손에 있었으니까요책으로는 아무 것도 입증하려 하지 않겠어요.” / 350p

 

 

 



 

 

 

 

  『오만과 편견과 상당히 유사한 결을 지니고 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의 남성과 여성세태를 사유하는 작가의 시선이 보다 깊어진 느낌이 든다차분하게 흘러가는 글의 구조가 자칫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생의 마지막에 이른 제인 오스틴이 담담하게 이 소설을 써내려갔을 것을 상상해보면 표지 속 이미지가 그리 낯설지 않은 게 된다특히 앤이 파혼을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레이디 러셀이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목에서는, ‘세상을 읽어내고 편견 없이 대상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속 질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그런 의미에서 보면 『설득』은 전체적으로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선택과 결정 그리고 책임’의 무게를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 있어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인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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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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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의 이중성을 건드린 책!

좋은 작품은 이처럼 그저 책 속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삶까지 함께 밀어 올릴 수 있어야 하는 것!

 

 

 

  고요하게평범한 삶을 살았다.”

  만약 나의 묘비명에 단 한 줄의 글을 새겨야 한다면 나는 이렇게 새기고 싶다. ‘라는 사람을 떠올리면 무난하고 무던하게고요하고 평범하게 살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해서다그럼에도 내심 당신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노라는묘비명과는 아주 다른 말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테다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인생을 살다보니 무난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특별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내 삶을 반추했을 때 좀 더 반짝이는 무언가가 만져졌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때문에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이란 제목을 본 그 순간에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마주하리라는 상상을 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 속에서 뭔가 특이하고,

중요하고아주 극적인 면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자신이 경험한 사건에 주목해 주기를 바라고,

그로써 더 많은 관심과 경탄의 대상이 되기를 기대하는가 보다. / 19p

 

 

 

서로 다른 자아그러나 하나뿐인 우리의 인생

 

 

  오랫동안 철도 공무원으로 일했던 한 남자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세례 증명서와 거주 증명서결혼 증명서와 임명장학교 성적표를 비롯해 타계한 아내의 편지에 이르기까지단순하고 정돈된 삶을 살아온 그답게 서류는 더 이상 정돈할 게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갑자기 허전한 생각이 들었고어떤 중요한 것을 잊은 듯한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자신의 삶을 짧고 간결하게 기록하기로 한다.

 

 

 

나의 삶에서는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내게 기억나는 것이라곤 조용하고 당연해 보이는거의 기계적인 세월의 흐름이며내게 다가올 마지막 순간까지도 다른 시간들과 마찬가지로 별로 극적이지 못할 것이다돌이켜 볼 때내 뒤에 놓인 직선적이고 분명한 길을 걸어온 것이 기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그 길은 잘 닦인 대로처럼 아름다웠고그 길 위에서는 방황할 일이 없었다. / 19p

 

 

 

  참으로 평범하다면 평범한 삶이었다소목장이의 아들인 는 아무도 오르지 못하는 목재 더미 위에 올라가 종종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곤 했던 꼬마 아이였다아버지는 강인하고 단순하지만 통장에 든 노동의 결과를 셈하며 검소하게 사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분이었고어머니는 예민하고 감성적이며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흐르던 분이었다마을 아이들 가운데 소목장이 아들은 별로 두드러지지 못했기 때문에 곧잘 무시를 당하는 편이었지만학교에서는 조용하고 부지런한 모범생으로 선생님께 인정받는 아이였다. 1등을 빼앗기지 않는 데서 인생의 의미를 찾은 그는 공부벌레가 되었고프라하의 김나지움으로 진학해 마을을 떠난다.

 

 

 

  하지만 젊음이란 자고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원하고 가질 수 없으면 화를 내는 존재였던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시를 쓰고 장황하기 그지없는 토론을 벌이거나 이성 경험을 남자의 가장 자랑스러운 트로피로 여기며 혼란과 방황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낸다훗날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모욕을 들은 그는 철도청 하급 공무원에 지원하고그곳에서 오래된 황실 시종 집안 출신의 아내를 만나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하며 이른 나이에 역장이 된다그 사이 전쟁을 치러야했지만 뒤로는 체코인 동포를 돕는 영웅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역장 일을 훌륭하게 해내며철도청 공무원으로서 말년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았노라 담담하게 술회한다.

 

 

 

그러나 학교는 아이의 삶에서 또 다른 새롭고 커다란 경험을 의미했다그곳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인생의 위계질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그 전에도 아이가 누구에게든 복종해야 했던 것은 다를 바 없었다어머니는 명령을 했지만 자기편이었다어머니는 요리를 해주었고입을 맞추며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아버지는 때때로 화를 냈지만여느 때에는 아버지의 무릎에 올라앉거나 그의 두툼한 손가락을 붙잡을 수 있었다다른 어른들이 가끔 호통을 치거나 욕을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았고달아나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선생님은 달랐다그는 오로지 주의를 주고 명령하기 위해 존재했다달아나 어디론가 숨을 곳이 없었고그저 면박이나 창피를 당할까 두려울 뿐이었다. (이제 모든 세계는 두 개의 계층으로 구분되었다보다 높은 세계에는 선생님과 신부님그리고 그들과 교제하는 약제사의사행정관과 판사가 속했다그리고 아버지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속하는 평범한 세계가 있었다. / 34p

 

 

인생은 아이의 상태에서 서서히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남자가 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갑자기 아이에게서 놀랍게도 완성되고 성숙한 인간의 면모가 나타난다그러한 면모는 서로 들어맞지도 조직적이지도 않으며아이의 내면에서 연관성이나 논리성없이 상충되어 거의 광기처럼 나타난다다행히도 우리 어른들은 이 상태를 사려 깊게 관조하는 데 익숙하며인생을 대단히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소년들에게 그 시기는 지나가는 것이라며 위안을 준다. / 57p

 

 

땅거미가 내려앉아 공부를 계속하기엔 너무 어두워졌고열린 창으로 병영의 소등 신호가 들릴 때면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창가에 서서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절망적인 그리움에 숨 막혀 했다대체 무슨 까닭일까그것은 이름이 없고 매우 광활하고 깊은 느낌이어서사방에서 내성적인 나를 괴롭히던 모든 사소한 모욕감굴욕감패배감실망감의 예리한 바늘들이 그 안에 용해되었다그래이것은 고통과 사랑으로 넘치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억척스럽게 몰두하는 모습은 아버지였고한없이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모습은 어머니였다내 소년기의 좁은 가슴에 이 두 가지의 모습은 어떻게 합쳐지고 조화를 이루었을까? / 61p

 

 

남자에게는 자신의 일을 몰두할 수 있는 곳이 가정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 116p

 

 

 

  이렇듯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듯한 그의 평범한 인생이 다소 심심하게 읽힐 즈음갑작스러운 심장 발작과 함께 그에게 온전한 진실을 촉구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이때부터 아주 사소한 일화처럼 다뤘던 그의 기억들이가벼운 일탈처럼 치부하고 지나쳤던 사건들이내면에 깊숙이 감추어 놓고 힘껏 줄행랑 쳤던 진짜 이야기들이 하나씩 새로운 목소리를 내며 선명히 드러난다그러면서 평범하고 행복한 사람으로서의 나출세를 위해 몸부림치는 억척이우울증 환자로 대표되는 세 개의 자아가 서로 뒤섞이다 때로는 이 삶이때로는 다시 저 삶이 두각을 드러내며 생애의 대부분을 지배했음을 자각하게 된다뿐만 아니라 낭만적인 자아영웅적인 자아시인 등 평범하고 단일해 보였던 하나의 삶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자아들이 이따금 출몰하기도 했으니 이 모든 자아들의 총합이 바로 그 자신이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처럼 그 시에는 많은 것들이신기하고 소위 인광을 발하면서 작열하는 것들이 들어 있었음에 틀림없다시가 훌륭한가 형편없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그 시 속에 들어 있는 사물들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한때 코코넛 야자나무와 이상하고 인광을 발하면서 작열하던 무언가가 들어 있던 삶이 있었다여기 그 삶이 있으니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라고넌 네 인생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 야자나무를 어디론가서랍 속 같은 곳에다 감춰 방해가 되지 않게눈에 띄지 않게 하려 했었지? / 170p

 

 

내 경우를 들어 보자나는 전혀 유별난 사람이 아니다나의 삶은 끊임없이 뒤엉킨 몇 개의 운명들로 이루어졌다한 번은 이 운명이한 번은 저 운명이 지배적이었다그 후로는 그리 지속적이지 못하고전체 삶을 비추어 볼 때 그저 바다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섬이나 에피소드처럼 보이는 몇몇 운명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때의 내가 이 운명들 가운데 어떤 것이었거나이 인물들 가운데 누구였든 간에 나는 항상 나였고이 나는 늘 동일한 사람이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는 존재였다. / 214p

 

 

내 경우에는평범한 인간과 억척이와 우울증 환자가 서로 연합하여 나의 자아를 나누어 가졌다그들은 서로 조절해 가며 내 생애의 대부분을 지배했다그들은 서로 조절해 가며 내 생애의 대부분을 지배했다때로는 억척이가 실망을 하고때로는 평범한 인간이 자신의 선한 심성 때문에나 당황한 나머지 양보를 하고또 때로는 우울증 환자가 의지가 박약하여 낙심하는 때가 있었다그럴 때 나의 왕기는 잠시 다른 자의 손으로 넘어갔다평범한 인간이 가장 강하고 지속적이었고지독한 일벌레였으므로가장 빈번하고 오랜 기간 나의 자아였다. / 217p

 

 

 




 

 

 

 

  이제 그는 라는 객체 속에 또 다른 객체의 존재들까지 인식하기에 이른다아버지와 어머니아버지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어머니 나아가 세대를 거쳐 끊임없이 이어져 오는 우리의 선조들까지어떤 모습으로든 그들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고내 자아들 중 누군가가 그들의 모습을 닮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그러다 마침내 그는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내가 관계 맺을 가능성을 갖고 있던 사람들내가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삶의 가능성에 이르기까지그 무수한 가능성의 집합이 곧 일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인식의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내 안의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똑같은 사람들이다네가 누구든 너는 나의 무수히 많은 자아이다네가 악인이든 선인이든그건 내 속에도 있는 거야.’ 결국 인생이란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기에 이토록 평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뒤지는 일을 하라는 게 아니야그건 아무 곳으로도 이끌지 못해다른 모든 사람들도그들이 누구이건 간에너와 같은 집합이라는 걸 모르겠나너는 그들과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보기만 해그들의 삶 또한 네 속에 있는 무수히 많은 가능한 삶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너도 다른 사람처럼 신사나 거지허리춤까지 옷을 벗어젖힌 날품팔이꾼이 될 수 있었다너도 냄비 장수빵집 주인또는 얼굴 전체에 잼을 묻히는 아홉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그 모든 것이 너이다네 속에 그런 다양성이 있으니까. / 238p

 

 

그것이 진정하고 평범한 인생이며가장 평범한 인생이다내 것이 아닌 우리의 삶우리 모두의 광대한 생명 말이다우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면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평범하면서도 그것은 축복이다. / 240p

 

 

 



 

 

 

 

  이처럼 평범한 인생은 죽음을 앞두고 이미 알고 있거나 잊고 있었던혹은 편집되었던 여러 자아와 조우함으로써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인생은 여러 상이하고 가능한 삶들의 집합이라는 인식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은 온전히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수록 자신의 삶도 완성될 거라는 깨달음을 전한다인생이란 어느 역에나 멈춰 서는 아주 평범한 완행열차 같은 것그 역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이 곧 나이며 마지막 종착역까지 그들과 함께 가는 것임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무엇보다 한 남자의 개별적인 기억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장면 하나하나마다 나의 기억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이 특별한 독서 경험이야말로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다아버지와 어머니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 머물러 있던 유년 시절을 지나 위계질서와 서열로 구분되는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젊음이라는 객기와 광기의 시대에서 명예와 성취욕안정으로 이어지는 삶의 여러 단계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삶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이었다이를 테면 내 인생 최초였으나 결코 아름답지 않았던 로맨스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경험들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내 안의 진솔한 목소리를 마주하게 된다그것은 곧 평범의 이중성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내 삶 속에서 뭔가 특이하고중요하고아주 극적인 면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으면서도 기억을 왜곡하고 때로는 인생을 편집하기도 함으로써 또한 여느 보통의그럭저럭 괜찮은 삶이기를 포장하곤 하는 나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지……

난 네가 그런 경험을 어떻게 너의 삶에서 지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 183p

 

 

 

  ‘토마스 만이 극찬하고 밀란 쿤데라에게 영향을 준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놀랍지 않을 만큼 걸작 중에 걸작이다감히 내 인생책이라 말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이다중반부까지는 다소 심심하게 읽히는 듯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중후반부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그러니 부디끝까지 다 읽어보시라 추천드린다덧붙여 이 책의 특별함은 인생 50회 차 정도쯤에는 이르러야 더 깊이 와 닿지 않을까 싶다그때가 되어서 다시 찾는다면 이 책은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까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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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
닐 올리버 지음, 이진옥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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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역사서가 또 있을까!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은 수많은 누군가의 역사가 쌓아올린 땅이다!

 

 

 

 

  1985년 열여덟의 나이로 처음 고고학 발굴에 나선 이 책의 저자 닐 올리버는 당시 발굴 책임자로부터 한 장의 평면도를 건네받았다흩어진 석기 파편들이 그려진 그 그림은 우주 한가운데 있는 소행성 군단을 찍은 사진처럼 보였다토머스는 평면도의 중심에 있는 두 쌍의 빈 공간을 가리켰다맥주잔 받침 크기 정도 되는 한 쌍의 원형 아래로 그보다 작은 두 개의 원형이 보였다토머스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여기가 부싯돌로 석기를 만든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았던 자리라네위쪽에 있는 큰 두 개의 원은 두 무릎이 닿은 공간이고그 뒤의 작은 원 두 개는 발끝이 놓였던 자리지.” 토머스의 말은 당시의 닐은 물론이 책을 읽고 있던 내 마음까지 전율하게 만들었다수천 년 전바로 그곳에서 누군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묵묵히 자신의 노동을 해냈던 이의 모습이 이 흔적 하나로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이었다동시에 나는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뒤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가 잠시 머물렀던 자리를 발견하고그 흔적이 나의 존재를 증언할 수 있다면 그건 무척이나 놀랍고도 감동적인 일이 아니겠는가하고.

 

 

 

  무덤건축물예술품 등 어떤 것들은 공들여 제작되어 특정한 자리에 배치되고어떤 것들은 버려지거나 우연히 사라진다평면도 속의 자리처럼 무심코 남겨진 무언가도 있다누구에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수천 년이 지난 후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될 수 있고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사소한 행동이나 몸짓도 미래의 어떤 시간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가 될 수 있는 법이다닐은 고고학의 매력이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고 말한다유물유적과 같은 과거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란그저 과거 시대의 전유물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인간성의 깊은 근원지를 발견하는 일과 같다고 말이다잠자고 있던 죽음에 목소리를 불어넣어 오늘과 미래의 길을 묻고자 하는 이 놀라운 여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끝없는 경이로움을 선사한다고고학자이지만 탁월한 스토리텔러이자 음유시인인 저자의 시선을 통해 살고사랑하고생과 이별했던 무수한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편의 위대한 신화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든다아마도 이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이토록 아름다운 역사서가 또 있었을까.

 

 

 

오래된 기억 속에서 길어 올린 놀랍도록 아름다운 인류의 지혜

 

 

  닐 올리버는 유물과 유적은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의 기원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대의 선조들이 남긴 돌과 뼈에는 그들이 느꼈던 이런저런 감정들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아주 먼 고대문자 이전의 세계이야기가 기록되고 보관되기 전에 살던 이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현재의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그들도 우리와 같은 정소를 지니고 있었고 똑같은 희로애락을 느꼈다는 것을 우리는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알 수 있다비록 그들이 그들의 세계에서 느꼈던 것들을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서 느끼고 있지만수만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무언가가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감각할 수 있다.

 

 

 

  1978년 탄자니아의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 화석은 360만 년 전 우리의 먼 조상이 직립보행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발자국의 주인공은 성인 둘과 아이 하나였다아마도 단출한 가족이었으리라 추측된다이를 발견한 메리 리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누구라도 분간할 수 있듯이여자는 한순간 멈춰 서서 왼쪽으로 몸을 돌렸고 잠시 위험이나 이상이 있는지 살폈다그러고나서 다시 북쪽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이 움직임너무나 강렬하고도 인간적인 이 움직임은 시간을 초월한다. 360만 년 전당신 또는 나의 먼 조상이 의심의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그 오랜 옛날어느 가족의 아주 사적인 걸음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인류의 위대한 감정을 발견할 수 있다가장 든든한 나의 울타리가족자식의 안전을 늘 염려하는 엄마의 모성 그리고 본능을.

 

 

 

그의 살갗이 닿았던 곳에 나의 살갗이 닿았다그들이 그곳을 걸었던 시간과 내가 그곳에 도착한 시간 사이에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온갖 일들이 일어났다그러나 그 순간 그곳에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 34p

 

 

차탈 후유크의 집들은 폐소공포증을 유발할 정도로 빽빽이 모여 있다적게는 3000명에서 많게는 8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거의 질식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살았다죽은 자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들은 시신을 번데기처럼 끈으로 돌돌 감싸서 태아처럼 구부린 자세로 집 아래에 묻었다한 집 아래에서 무려 64구의 사람 뼈가 발견되기도 했다똥오줌을 포함한 쓰레기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거대한 두엄더미에 차곡차곡 모았다인간들이 집단으로 만들어낸 탁한 기운이 마을을 꽁꽁 에워쌌다그들은 그 어떤 것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저장강박증 환자들이었다. / 52p

 

 

나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잘 알고 있다나는 유한하고 불완전할지라도 이곳 지구를살과 뼈를 선택할 것이다나는 이 오래된 바위에 마음을 기댄다우리 조상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의지했던 바로 그 바위 말이다바위는 늘 그곳에 있었고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남을 것이다우리에게 영혼이라고 부를만한 어떤 본질이 있는걸까바위에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에너지와 물질로 이루어진 무늬가 새겨져 있다땅을 밀고 솟아나 깎이고 닳아서 바다로 씻겨 내려갔다가 되돌아오는 것돌과의 연결돌에 대한 믿음그것이 내게 필요한 유일한 불멸이다. / 64p

 

 

 




 

 

 

 

  이따금 나는 상상한다아프리카로부터 파생된현생 인류라 일컫는 호모 사피엔스가 전 지구상에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게 아니라면 그 이전에 살고 있었던 종들과 마주쳤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고. 1994년부터 1998년 사이에 독일 니더작센에 있는 쇠닝겐 유적에서 나무로 만든 창들이 발견되었다가늘고 맵시 있는 이 창은 10미터 이상을 날아가 사냥감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는데이 도구의 제작자는 네안데르탈인이었다이러한 도구를 만들고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섬세하게 소통할 수 있었고 크고 위험한 먹잇감을 잡기 위해 계획을 세우며 그에 대비해 자신을 무장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하며그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현대적이며 지혜로웠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에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이 둔하고 멍청하여 호모 사피엔스에게 쉽사리 쫓겨났을 거라는 과거의 상상은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그들은 수천 년 동안 유럽이라는 사냥터를 잘 관리하며 유지해온 이들이었고심지어 두 종은 짝짓기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비록 두 종의 만남 이후 수천 년 뒤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하지만 유럽인 중 많게는 4퍼센트가 여전히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지니고 있다고 하니이토록 오랫동안 메아리를 울리며 살아남는 유전자의 힘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거의 200만 년 전이라니가늠조차 어려운 시간이다한곳에서 발견되었으나 서로 다른 생김새를 지닌 이 다섯 개체의 화석은 과학계 일대에 충격과 논란을 불러왔다전에는 아프리카에서 호미닌의 두개골이 발견되면 기존에 알려져 잇던 화석과 비교하여 아주 작은 차이만 있어도 새로운 종으로 명명하고는 했다따라서 고인류 종은 계속 늘어났다호모 에르가스터호모 가우텐겐시스호모 하빌리스호모 루돌펜시스… 그런데 드마니시에서 각양각색의 생김새를 지녔으며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인류 화석 다섯 개체 분이 발견된 것이다이는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다른 종이 아니며이들 모두가 하나의 종즉 호모 에렉투스(곧선사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했다. / 118p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이야기를 만들고 기억하고 전해왔다우리 종에게 언제 의식이 생겼는지 알 수 없으므로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알 길이 없다그러나 이야기와 뜻이 있기 전에 움직임(행동)이 있었다우리의 첫 조상들은 의식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에 그저 걸었고 창조했고 살고 죽었다이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아주 오랜 역사 속에서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다만 움직임심지어 무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최근에서야 우리는 행동과 몸짓오고 가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우리에게 단어와 이야기는 필수적이지만때로 행동은 때로 우리가 말하는 어떤 이야기들보다 더 중요하다. / 297p

 

 

 




 

 

 

 

  여기다른 두 장소에서 발견된 유골은 우리에게 너무도 상반된 사연을 전한다하나는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의 베드베크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중석기시대의 무덤이다. 18세 정도로 추정되는 여성과 성별을 알 수 없는 영아가 나란히 누워 있다아마도 둘은 출산 중에 죽음의 강으로 휩쓸려 간 듯하다신비스럽게도 아기의 몸은 백조의 깃털 위에 놓여 있다수천 년 전 조상들은 영혼이 백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상상했다 한다남겨진 사람들은 백조의 날개가 아기의 영혼을 저 높은 곳으로하늘나라로 데려가기를 바랐을 것이다비록 두 아름다운 삶은 죽음이라는 가혹한 운명을 맞았지만이토록 다정한 방식으로 다뤄질 수 있었던 것은 떠나보낸 사람들의 애통한 마음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마음이 뭉클해진다.

 

 

 

  한편페루 북부 해안의 우앙차키토라는 마을에서 심장이 도려내진 채 파묻힌 어린아이들의 유골 140구와 새끼 라마들의 뼈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다이들이 죽음을 맞이한 시기는 10~15세기경페루 북부 지역에서 치무 왕국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로 추정된다아이러니하게도 뼈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죽기 전까지 건강했고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또 무덤 근처에서는 일렬로 선 발자국들이 발견되었다어린이들이 차례로 줄을 서서 살해 장소로 걸어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아이들의 두개골과 뼈에는 붉은 안료가 묻어 있었는데죽음 직전 혹은 직후에 얼굴과 몸에 문질러 바른 것으로 보인다다시 말하자면 대규모 희생 제의의 일면을 보여주는 유적으로잔혹한 인명 경시와 죽음에 대한 집착에 뿌리를 둔 비정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저자는 말한다사랑이 깊은 땅속에서도 살아남았듯 악의 증거도 그러하다고이데올로기란 무엇인지대체 어떤 이념이 이 끔찍한 악취도 견디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인지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기나긴 겨울밤

늑대들이 먹이를 찾아 얕은 계곡으로 내려올 때면

창백한 달빛이나 희미하게 명멸하는 북극광 아래

무리의 선두에 서서 달리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족들보다 훨씬 높이 도약하고

가슴 깊숙이에서 터져 나오는 우렁찬 원시의 노래,

늑대족의 노래를 울부짖는 그의 모습을.

잭 런던야성의 부름

 

 

 

  36개의 유물과 유적이 남긴 인류의 사연을 따뜻하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통찰한 닐 올리버의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는 우리에게 고고학의 신비와 인간성의 위대한 지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기억과 흔적은 이토록 오래 살아남아 우리로 하여금 생의 가치를 일깨우지만과거의 모든 존재와 사물들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을 거라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잊지 않는다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은 수많은 누군가의 역사가 쌓아올린 땅이다함부로 연약해지지 말고함부로 나를 대하지도 말자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어디에 어떻게 새겨질지 모를 일이다역사는 바로 이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가장 위대한 보물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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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게 하는 것들 - 회복과 충전, 다시 잘 살고 싶을 때 읽는 김창옥의 제안서
김창옥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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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걱정과 불안이 반복된다면사는 게 점점 재미가 없다면,

행복을 좇고 있지만 정작 행복한 적이 없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지난 해, SBS TV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서 김창옥 편을 방영한 적 있다일명 소통령이라 불릴 만큼 소통 전문가로 잘 알려진 그이기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매우 궁금했다마침 제주살이를 하고 있던 그는 뜻밖에도 소박한 차림으로 진행자들을 맞이했다평소 방송을 통해서 본 그는 깔끔한 정장 차림젠틀한 외모로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그였기에 수수해보이는 그의 모습은 다소 의외일 정도였다.

 

 

 

  그는 제주에 와서 사는 이유에 대해 강의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어느 날소통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저 사람이 행복하지는 않아 보여.”라고 한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심지어 그 누구보다도 소통에 능해 보이는 그였지만정작 청각 장애를 갖고 있던 아버지와 걷는 게 외국인과 걷는 것보다 어색할 만큼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말했다소통 전문가답지 않은 뜻밖의 고백이었다대기업과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행복해지는 법’,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그였지만 정작 본인은 언제 행복했는지 잊고 지냈을 뿐만 아니라 가까운 가족과는 불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소통 전문가라고 알려진 그조차도 행복을 찾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데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나를 다시 살게 해야겠다.’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나는 언제 행복하지?’ / 19p

 

 

 

  언젠가 저자는 제주에서 화산토로 직접 옹기를 구워볼 기회가 생겼다고 한다흙을 푸고흙 속의 이물질을 제거하고그 흙으로 옹기를 굽는데이때 습기를 머금고 있는 옹기를 바로 가마에 넣으면 강한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리거나 녹아버린단다이를 보며 저자는 우리 인간의 삶과 옹기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그도 그럴 것이 가마 속 뜨거운 불꽃처럼 우리는 고통고난시련과 같은 어려운 시기를 맞으면서 단단해진다하지만 우리 마음에 상처열등감비뚤어진 마음우울건강하지 못한 자존심 등 온갖 습한 마음들이 자리 잡고 있으면 강한 불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깨지고 찢기고 터지고 만다습한 마음을 볕 좋은 양지에서 잘 말리지 않으면 이전에는 견딜 수 있었던 온도에도 쉽게 깨질 수 있다.

 

 

 

  이에 저자는 내가 어느 선까지 버틸 수 있는지어느 선까지 괜찮은지 내 한계선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안전한 상태와 위험한 상태를 감지할 수 있는 체크포인트를 두고 중간중간 나의 한계선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혹여 당장 나아지고 치유되지 않는다 하더라도조금 더 힘겨운 상황이 지속되더라도 스스로를 기다려주는 시간을 가지면서 말이다그렇게 나를 둘러싼 열기가 차차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더 튼튼하고 견고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살면서 한 번도 깨어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한 번도 찢어지지 않은 마음이 과연 있을까요? / 35p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제주살이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장소사람순간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한번쯤 해보고 싶다고 늘 마음속으로만 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보면서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내가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을 지켜나가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운동 시간을 지키면 운동이 나를 지켜주고건강검진을 받는 시기를 지키면 그 건강검진이 나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며내가 지킨 친구들이 어느 시기가 오면 나를 지켜주듯내가 지켜온 삶의 가치관과 삶이 자세가 나를 평생토록 지켜줄 것이라고 말이다.

 

 

 

당신의 커피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숨을 편안하게 하고,

당신을 쉬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나요?

그런 장소그런 사람그런 일이 존재하나요?

삶은 정답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어떤 의지를 갖고 어떤 감정을 지닌 채

살아갈 것인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당신만의 커피를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 46p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방법을 찾기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우리는 점점 더 많은 숫자 속에서 살아가게 될 테니까요그럼에도 어떤 숫자 속에 있건 너무 마음 졸이며 숫자에만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숫자에 우리 삶을 저당잡히 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하려는 일이 내 뜻대로 잘 안 되면그건 그것대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라고다른 즐거운 일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 99p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준비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오랜만에 새로운 일을 향한 도전으로 설레었다그런데 연이은 환절기 감기로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다 말다를 반복하고곧 있으면 첫째 아이의 기나긴 여름방학이 시작되니 막상 자격증을 땄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더 중요한 건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만한 자격이 아직은 충분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그렇게 망설이고만 있는 나를 보며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시작부터 하라고초보자부터책을 읽고 싶지만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거나 글을 쓰고 싶지만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먼저 시작해보라고그러고 보니 나는 이런저런 안 될 가능성부터 타진하느라 시작을 주저하고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느라 늘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나처럼 시작을 두려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하면서 하라크게 하려고 하지 마라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라작게 시작하라실수하면서 하라.” 힘들지만 두려울 때 두려워하면서 해야 한다고두렵지 않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어느 권투선수가 어떻게 한 대도 안 맞고 경기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어느 축구선수가 공을 한 번도 뺏기지 않고 앞으로만 계속 달릴 수 있겠느냐고나 역시 한 대도 맞지 않고 권투에서 이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고공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골을 넣어보려 했던 사람이었다. “한 대도 안 맞고 이길 수 없다.” 이 말을 가슴 속에 새기며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지금의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고도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말하면 그 말을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이 자기 자신입니다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듣기 위해서 그 말을 계속하세요그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점차 길이 나서 항상 가던 쪽에서 삶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합니다눈길이 자꾸 닿고발걸음이 가고내 말이 약속이 되어 스스로 지키기 시작해요어느새 그 지점에 이르러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그렇게 볼 때 사실 마법’ 맞습니다. / 57p

 

 

당신도 지금 작은 나무를 심었을 수 있습니다취업이라는 묘목을 심었을 수도결혼이라는 묘목을 심었을 수도자녀교육이라는 묘목을 심었을 수도사업이라는 묘목을 심었을 수도 있습니다조급해하지 말고 1, 2년은 작은 열매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다 따서 버릴 수 있는 담대함과 지혜를 발휘하십시오조급함도작은 성취에 취함도 없이지금 우리에겐 묵묵함이 필요합니다대신 우리의 일에우리 마음의 나무에 힘을 주는 일을 합시다그리고 5, 7년이 지나 탐스러운 열매가 삶에 맺히게 되면 그때 달고 귀한 열매를 맛보자고요. / 106p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받아보지 못한 사람은누군가 나를 속이려 하거나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의 허물을 오히려 들춰내고탓하며그의 과오를 비웃습니다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기도 하죠내가 용서받아본 적 없으니까누군가 나의 허물을 덮어준 적 없으니까똑같이 그렇게 합니다.

반대로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을 위해 실수와 흠집을 눈감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단 한 순간이라도 본인이 따뜻하게 위로받았거나 용서받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부모님이나 선생님또는 친구였을 수도 있겠죠헐벗은 것같이 춥고 시리고 부끄러울 때 누군가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었던 순간이 삶에 있었던 것이지요. / 228p

 

 

 




 

 

 

 

  이처럼 나를 살게 하는 것들에는 나만의 속도로나만의 기준에 따라나만의 호흡으로좋은 만남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우주를 사랑하고 배우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인생의 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그저 좋은 글귀만 나열되어 있는 여느 자기계발서와 달리 저자가 스스로 삶을 재정비하며 경험한 것들에서 비롯된 깨달음이었기에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덕분에 변화하고 싶은데 선뜻 나서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나만의 호흡법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이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어 의미 있는 독서였다이유 없이 걱정과 불안이 반복된다면사는 게 점점 재미가 없다면행복을 좇고 있지만 정작 행복한 적이 없었던 이들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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