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과 인간, 공존과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대하여!
시골 수의사가 전하는 작고 여린 온기를 지닌 생명들의 이야기!
유년 시절, 우리 집에는 벤지라는 강아지가 살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벤지라는 이름으로 두 마리의 강아지가 살았다. 첫 번째 벤지는 새하얀 몰티즈로, 워낙 어릴 적의 일이라 사실 크게 기억이 없는데 유일하게 단 하나의 장면이 아직까지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벤지는 어디에서 그토록 큰 힘을 지니고 있었던 걸까. 어린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차게 발버둥치는 바람에 산책 중 그만 목줄을 놓치고 말았다. 목줄이 내 손에서 팟, 하고 떨어져나가는 순간 나는 난생 처음으로 깊은 상실감을 마주했다. 또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감과 내가 키우고 있는 동물이라고 해서 온전히 나의 소유물이 아님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그날 부모님은 내게 말했다. 아마도 벤지가 자유롭고 싶었나보다 하고.
그렇게 몇 년이 흐른 후, 초등학생이 된 나는 하교하는 길에 길거리에서 벤지를 꼭 닮은 새하얀 몰티즈를 마주했다. 문득 벤지를 잃어버렸다는 미안함과 이 강아지가 벤지였으면 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꽤나 오랫동안 강아지를 쓰다듬어주었다. 이후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것을 안 다음에는 “네 집으로 가.” 하고 손짓한 뒤 나는 집을 향해 뛰어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강아지가 나를 계속 따라왔다. “어머, 여기 벤지랑 닮은 강아지가 집 앞에 있는데?” 내가 집으로 들어가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엄마 친구분이 집에 놀러와 있다가 아직도 떠나지 않고 대문 앞에 앉아 있던 강아지를 발견했다. 나를 따라왔던 그 강아지였다. 혹시나 강아지를 잃어버렸다는 사람이 나타나거나 전단지가 붙어 있을까 싶어서 기다려봤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인연은 이런 방식으로도 시작되는 것인가 보다 하며 신기해하면서도, 타인의 반려동물을 내가 빼앗은 것 같은 죄책감도 함께 느끼며, 우리 집에서 살게 된 벤지는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다.
시간이 흘러 두 아이를 낳은 엄마가 되고 난 뒤, 종종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아들의 바람을 듣곤 한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로 오는 반려동물은 외면할 생각이 없지만 부러 펫숍에서 판매하는 애완견을 구매하여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이들에게도 씻기고, 먹이고, 병원에 데려가고, 살뜰하게 키울 자신이 없다면 소중한 생명을 그저 귀여워서, 갖고 싶은 마음에 키우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해주었다. 두 번째 벤지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사실 나는 귀여워할 줄만 알았지 씻겨주거나 병원에 데려가는 등 살뜰하게 돌봐주는 데는 이렇다 할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벤지를 잃어버린 트라우마 때문에 두 번째 벤지를 데리고 대문 밖을 나서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는데, 내내 갇혀 살았을 벤지를 생각하면 이것도 참 미안한 일이었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우리가 이 동물의 삶과 죽음, 그 내면의 고통까지 이해할 수 있는 태도가 동반되었을 때 비로소 서로를 위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 자세를 여러 번 재고해보지 않고 그저 ‘갖고 싶다’는 소유의 감정으로만 다가가면 건강한 관계를 이루기 어렵다.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의 저자 허은주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이 상품으로 유통된다는 것은 환불, 교환, 반품의 대상이 된다는 걸 의미한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누구나 사용하는 지금이지만 동물들은 여전히 상품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반려라는 이름을 붙인 가족 구성원으로 불리고 있는 한편에서는 폐기처분이 가능한 상품으로 유통된다. 그 사이의 간격 차이가 너무 커서 자주 현기증이 난다.’ ‘반려’라는 그럴 듯한 이름 안에서 상품의 가치로 매겨지는 동물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대의 증거들, 인간의 편리에 자리를 내어주느라 자신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무수한 생명들… 인간과 동물이 진정으로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은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공존과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했다.
사람인 나는 이 세계에서 아주 작은 존재였다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는 시골 수의사가 병원 안팎에서 마주한 생명들에 관한 기록이자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한 에세이다. 30대 초반,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며 힘에 부쳤던 저자는 “동물은 사람과 달리 진료할 때 말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의사로 전향했지만 또 다른 책임과 죄책감을 맞닥뜨려야만 했던 고민을 털어놓는다. 아픈 길고양이를 선의로 데려왔지만 부담스러운 진료비 앞에서 책임은 질 수 없었던 사람, 어린이날에 어린 아들에게 두 달 된 강아지를 선물했지만 소음 갈등으로 시골 할머니네로 보내야 했던 엄마, 동물을 입양한 지 얼마 안 된 보호자에게 강아지의 배꼽탈장에 대해 말했다가 펫숍 주인으로부터 언성을 들어야 했던 일화 등 수의사로 있으면서 겪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비용 문제였다. 길고양이를 데려오는 보호자들과 항상 맞닥뜨리는 문제다.
“수술할 수 있을 때까지 고양이가 버텨줄지도 의문입니다. 지금은 체온도 낮고 숨도 잘 못 쉬고 있어요. 수술할 만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게 돌봐야 해요. 검사와 입원비는 저와 상의를 해보시고요…. 우선 애는 살려야죠.”
“상의요? 길고양이한테는 돈 한 푼도 못 씁니다.” / 32p
슬픔은 자연스럽게 느꼈지만 안도감과 미안한 감정은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순간 며칠 전 냥이 엄마가 병원에 찾아왔을 때가 떠올랐다. 냥이가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꾸 말라간다고, 아직 살아 있는 게 맞냐고 울면서 물어보던 날,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기억났다. 보호자가 고양이를 안락사해달라고 요구할까봐 불안했다. 그랬다. 나의 안도감은 이제 안락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서 왔다. 그리고 냥이의 부고에 안도감을 느낀 내가 미웠다. 그것이 안도감과 죄책감의 정체였다. / 49p
자녀가 동물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반려견의 입양을 좀 유보했다면, 입양 전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 가족들과 진지하게 상의했다면 어땠을까? 2개월에 입양된 포메라니안도 누군가의 전폭적인 애정과 돌봄이 필요한 아기인데, 어린아이 둘과 함께 돌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쉬웠다. 어린 나이에 입양된 똘이가 그 집에서 많이 외롭지 않았을까. 내가 보아왔던 포메라니안들은 호기심이 많고 학습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준비된 가족들 곁에서는 잘 훈련되어 행복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많았다. 섣부른 입양이 안타까웠다. / 87p


그 중에서도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동물들이 원치 않은 병을 얻게 된 사연은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귀가 시뻘겋게 퉁퉁 부어서 피고름이 귓바퀴를 타고 턱까지 흘러내리던 불도그는 얼마 전 단이 수술을 했다고 한다. 개의 단이 수술은 사람이 원하는 모습대로 귀 모양을 바꾸기 위해 하는 미용 목적이 대부분이라고.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베르만의 쫑긋 서 있는 귀도 귓바퀴를 잘라 붙이는 단이 수술을 한 결과라고 말한다. 고작, 더 용맹스럽게 보이기 위해서.
자연 선택만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고양이 스코티시폴드 종은 인간들이 평생 유전병으로 고통 받는 고양이를 만들어낸 결과다. 아주 오래전, 연골 형성에 유전적인 문제가 있어 귓바퀴가 접힌 돌연변이 고양이가 태어났는데 그 귀 모양이 귀엽고 희소해서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반복적으로 귀 접힌 고양이들끼리 교배시킨 것이다. 문제는 귀를 접히게 했던 돌연변이 유전자가 모든 관절에 적용되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고 그 결과 평생 유전병으로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고양이를 탄생시켰다. 단지 보기에 아름답다는 이유로 이들은 평생을 진통제와 보조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알게 된 보호자가 다시 펫숍에 고양이를 ‘반품’시키면 이들은 또다시 새로운 보호자를 기다려야 한다. 악순환은 그렇게 계속된다. 인간의 이기심과 오만 때문에.
후투티는 인간이 아닌 자연에 속한 생명체였다. 인간이 만든 건물 속에서 살지 않고 하늘에서 바람을 가르며 살아간다.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고 덤불 사이에서 긴 부리로 땅을 파서 먹이를 찾는다. 나무 구멍 안에 알을 낳고 뜨거운 여름 천적의 위험을 피해 새끼를 키워낸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 따뜻한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긴 비행을 할 것이다. 후투티를 내 자취방 안에서 길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 105p
어린 동물들은 면역력이 약해 이후에도 질병에 쉽게 걸린다. 어린 시절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에 이후에 입양되어서도 행동학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모든 문제는 펫숍에서 동물을 구입한 사람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약한 면역력으로 질병에 쉽게 걸리기 때문에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 또한 쉽게 샀기 때문에 동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쉽게 유기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반복된다. 평생을 함께할 반려동물을 만나고 싶다면 펫숍이 아닌 가까운 유기동물구조센터에서 인연을 만드는 것을 권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함께 사는 동물을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니까. / 119p
이 책을 읽으며 동물이 자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앵무새는 파우더 깃을 부리로 만지다가 피부에 작은 상처를 내고, 한 번 생긴 상처를 부리로 계속 자극하여 상처를 크고 깊게 만들어 악화시켰다. 사랑이는 한 번 부리로 상처를 내면 스스로 멈추지 못했다. 피부가 움푹 파이고 피가 흘러내릴 때까지 정신없이 자기 몸을 다치게 했다. 저자는 여러 차례의 전신마취와 날개 절단 수술, 입원장 생활이 어린 앵무새의 마음속에 병을 키웠던 것으로 짐작한다. 너른 하늘을 날아다니도록 태어난 새가 고통스러운 상황에 던져졌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이었나 보다. 인간이 그러한 것처럼, 동물도 정신적인 고통이 심하면 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진정으로 인간과 동물이 건강한 관계를 이루려면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자세가 동반되어야만 가능해지는 게 아닐까.


국내에서는 연간 800만 마리의 새들이 투명 벽에 부딪혀 죽어간다고 한다. 지난 50년간 북미에 서식하는 새의 30퍼센트가 사라졌다는 연구도 있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보이던 새들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새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를 실존에 가깝게 하는 다른 세상이 조금씩 없어지는 거라고, 그건 내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동물들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들이 사라지면 결국 사람도 사라진다. 부디 인간이라는 이유로 다른 생명을 소홀히 대하거나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기를.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이 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