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토록 아름다운 역사서가 또 있을까!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은 수많은 누군가의 역사가 쌓아올린 땅이다!
1985년 열여덟의 나이로 처음 고고학 발굴에 나선 이 책의 저자 닐 올리버는 당시 발굴 책임자로부터 한 장의 평면도를 건네받았다. 흩어진 석기 파편들이 그려진 그 그림은 우주 한가운데 있는 소행성 군단을 찍은 사진처럼 보였다. 토머스는 평면도의 중심에 있는 두 쌍의 빈 공간을 가리켰다. 맥주잔 받침 크기 정도 되는 한 쌍의 원형 아래로 그보다 작은 두 개의 원형이 보였다. 토머스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여기가 부싯돌로 석기를 만든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았던 자리라네. 위쪽에 있는 큰 두 개의 원은 두 무릎이 닿은 공간이고, 그 뒤의 작은 원 두 개는 발끝이 놓였던 자리지.” 토머스의 말은 당시의 닐은 물론, 이 책을 읽고 있던 내 마음까지 전율하게 만들었다. 수천 년 전, 바로 그곳에서 누군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묵묵히 자신의 노동을 해냈던 이의 모습이 이 흔적 하나로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나는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뒤,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가 잠시 머물렀던 자리를 발견하고, 그 흔적이 나의 존재를 증언할 수 있다면 그건 무척이나 놀랍고도 감동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무덤, 건축물, 예술품 등 어떤 것들은 공들여 제작되어 특정한 자리에 배치되고, 어떤 것들은 버려지거나 우연히 사라진다. 평면도 속의 자리처럼 무심코 남겨진 무언가도 있다. 누구에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수천 년이 지난 후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될 수 있고,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사소한 행동이나 몸짓도 미래의 어떤 시간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가 될 수 있는 법이다. 닐은 고고학의 매력이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유물, 유적과 같은 과거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란, 그저 과거 시대의 전유물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인간성의 깊은 근원지를 발견하는 일과 같다고 말이다. 잠자고 있던 죽음에 목소리를 불어넣어 오늘과 미래의 길을 묻고자 하는 이 놀라운 여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끝없는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고고학자이지만 탁월한 스토리텔러이자 음유시인인 저자의 시선을 통해 살고, 사랑하고, 생과 이별했던 무수한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편의 위대한 신화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역사서가 또 있었을까.
오래된 기억 속에서 길어 올린 놀랍도록 아름다운 인류의 지혜
닐 올리버는 ‘유물과 유적은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의 기원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대의 선조들이 남긴 돌과 뼈에는 그들이 느꼈던 이런저런 감정들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아주 먼 고대, 문자 이전의 세계, 이야기가 기록되고 보관되기 전에 살던 이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현재의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정소를 지니고 있었고 똑같은 희로애락을 느꼈다는 것을 우리는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알 수 있다. 비록 그들이 그들의 세계에서 느꼈던 것들을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서 느끼고 있지만, 수만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무언가가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감각할 수 있다.
1978년 탄자니아의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 화석은 360만 년 전 우리의 먼 조상이 직립보행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발자국의 주인공은 성인 둘과 아이 하나였다. 아마도 단출한 가족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이를 발견한 메리 리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누구라도 분간할 수 있듯이, 여자는 한순간 멈춰 서서 왼쪽으로 몸을 돌렸고 잠시 위험이나 이상이 있는지 살폈다. 그러고나서 다시 북쪽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 움직임, 너무나 강렬하고도 인간적인 이 움직임은 시간을 초월한다. 360만 년 전, 당신 또는 나의 먼 조상이 의심의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그 오랜 옛날, 어느 가족의 아주 사적인 걸음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인류의 위대한 감정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든든한 나의 울타리, 가족. 자식의 안전을 늘 염려하는 엄마의 모성 그리고 본능을.
그의 살갗이 닿았던 곳에 나의 살갗이 닿았다. 그들이 그곳을 걸었던 시간과 내가 그곳에 도착한 시간 사이에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온갖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순간 그곳에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 34p
차탈 후유크의 집들은 폐소공포증을 유발할 정도로 빽빽이 모여 있다. 적게는 3000명에서 많게는 8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거의 질식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살았다. 죽은 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시신을 번데기처럼 끈으로 돌돌 감싸서 태아처럼 구부린 자세로 집 아래에 묻었다. 한 집 아래에서 무려 64구의 사람 뼈가 발견되기도 했다. 똥오줌을 포함한 쓰레기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거대한 두엄더미에 차곡차곡 모았다. 인간들이 집단으로 만들어낸 탁한 기운이 마을을 꽁꽁 에워쌌다. 그들은 그 어떤 것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저장강박증 환자들이었다. / 52p
나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유한하고 불완전할지라도 이곳 지구를, 살과 뼈를 선택할 것이다. 나는 이 오래된 바위에 마음을 기댄다. 우리 조상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의지했던 바로 그 바위 말이다. 바위는 늘 그곳에 있었고,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남을 것이다. 우리에게 영혼이라고 부를만한 어떤 본질이 있는걸까? 바위에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에너지와 물질로 이루어진 무늬가 새겨져 있다. 땅을 밀고 솟아나 깎이고 닳아서 바다로 씻겨 내려갔다가 되돌아오는 것. 돌과의 연결, 돌에 대한 믿음, 그것이 내게 필요한 유일한 불멸이다. / 64p



이따금 나는 상상한다. 아프리카로부터 파생된, 현생 인류라 일컫는 호모 사피엔스가 전 지구상에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게 아니라면 그 이전에 살고 있었던 종들과 마주쳤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고. 1994년부터 1998년 사이에 독일 니더작센에 있는 쇠닝겐 유적에서 나무로 만든 창들이 발견되었다. 가늘고 맵시 있는 이 창은 10미터 이상을 날아가 사냥감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는데, 이 도구의 제작자는 네안데르탈인이었다. 이러한 도구를 만들고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섬세하게 소통할 수 있었고 크고 위험한 먹잇감을 잡기 위해 계획을 세우며 그에 대비해 자신을 무장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하며, 그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현대적이며 지혜로웠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에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이 둔하고 멍청하여 호모 사피엔스에게 쉽사리 쫓겨났을 거라는 과거의 상상은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수천 년 동안 유럽이라는 사냥터를 잘 관리하며 유지해온 이들이었고, 심지어 두 종은 짝짓기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비록 두 종의 만남 이후 수천 년 뒤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 하지만 유럽인 중 많게는 4퍼센트가 여전히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지니고 있다고 하니, 이토록 오랫동안 메아리를 울리며 살아남는 유전자의 힘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거의 200만 년 전이라니, 가늠조차 어려운 시간이다. 한곳에서 발견되었으나 서로 다른 생김새를 지닌 이 다섯 개체의 화석은 과학계 일대에 충격과 논란을 불러왔다. 전에는 아프리카에서 호미닌의 두개골이 발견되면 기존에 알려져 잇던 화석과 비교하여 아주 작은 차이만 있어도 새로운 종으로 명명하고는 했다. 따라서 고인류 종은 계속 늘어났다.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가우텐겐시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루돌펜시스… 그런데 드마니시에서 각양각색의 생김새를 지녔으며,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인류 화석 다섯 개체 분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다른 종이 아니며, 이들 모두가 하나의 종, 즉 호모 에렉투스(곧선사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했다. / 118p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이야기를 만들고 기억하고 전해왔다. 우리 종에게 언제 의식이 생겼는지 알 수 없으므로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야기와 뜻이 있기 전에 움직임(행동)이 있었다. 우리의 첫 조상들은 의식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에 그저 걸었고 창조했고 살고 죽었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랜 역사 속에서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다만 움직임, 심지어 무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 최근에서야 우리는 행동과 몸짓, 오고 가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우리에게 단어와 이야기는 필수적이지만, 때로 행동은 때로 우리가 말하는 어떤 이야기들보다 더 중요하다. / 297p



여기, 다른 두 장소에서 발견된 유골은 우리에게 너무도 상반된 사연을 전한다. 하나는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의 베드베크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중석기시대의 무덤이다. 18세 정도로 추정되는 여성과 성별을 알 수 없는 영아가 나란히 누워 있다. 아마도 둘은 출산 중에 죽음의 강으로 휩쓸려 간 듯하다. 신비스럽게도 아기의 몸은 백조의 깃털 위에 놓여 있다. 수천 년 전 조상들은 영혼이 백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상상했다 한다. 남겨진 사람들은 백조의 날개가 아기의 영혼을 저 높은 곳으로, 하늘나라로 데려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비록 두 아름다운 삶은 죽음이라는 가혹한 운명을 맞았지만, 이토록 다정한 방식으로 다뤄질 수 있었던 것은 떠나보낸 사람들의 애통한 마음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마음이 뭉클해진다.
한편, 페루 북부 해안의 우앙차키토라는 마을에서 심장이 도려내진 채 파묻힌 어린아이들의 유골 140구와 새끼 라마들의 뼈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다. 이들이 죽음을 맞이한 시기는 10~15세기경, 페루 북부 지역에서 치무 왕국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로 추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뼈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죽기 전까지 건강했고,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무덤 근처에서는 일렬로 선 발자국들이 발견되었다. 어린이들이 차례로 줄을 서서 살해 장소로 걸어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아이들의 두개골과 뼈에는 붉은 안료가 묻어 있었는데, 죽음 직전 혹은 직후에 얼굴과 몸에 문질러 바른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대규모 희생 제의의 일면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잔혹한 인명 경시와 죽음에 대한 집착에 뿌리를 둔 비정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사랑이 깊은 땅속에서도 살아남았듯 악의 증거도 그러하다고. 이데올로기란 무엇인지, 대체 어떤 이념이 이 끔찍한 악취도 견디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인지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기나긴 겨울밤
늑대들이 먹이를 찾아 얕은 계곡으로 내려올 때면
창백한 달빛이나 희미하게 명멸하는 북극광 아래
무리의 선두에 서서 달리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족들보다 훨씬 높이 도약하고
가슴 깊숙이에서 터져 나오는 우렁찬 원시의 노래,
늑대족의 노래를 울부짖는 그의 모습을.
잭 런던, 『야성의 부름』
36개의 유물과 유적이 남긴 인류의 사연을 따뜻하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통찰한 닐 올리버의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는 우리에게 고고학의 신비와 인간성의 위대한 지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억과 흔적은 이토록 오래 살아남아 우리로 하여금 생의 가치를 일깨우지만, 과거의 모든 존재와 사물들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을 거라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잊지 않는다.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은 수많은 누군가의 역사가 쌓아올린 땅이다. 함부로 연약해지지 말고, 함부로 나를 대하지도 말자.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어디에 어떻게 새겨질지 모를 일이다. 역사는 바로 이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가장 위대한 보물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