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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황태자비 납치사건-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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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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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후의 붕괴- 서브컬쳐 소비사회 그리고 세대
권혁태 지음 / 제이앤씨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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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열전- 착하거나 나쁘거나 이상하거나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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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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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왕을 꿈꾸는 자

 

왕을 꿈꾸는 자가 있었다. 친히 왕이 되고자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임에도 그는 왕이 되고 싶었다. 선생질을 때려치우고 만주로 떠나 만주국의 장교가 되고자 했다. 나이가 많아 입대를 거절했으나 그는 직접 혈서를 써 일본 고위 장교의 마음을 바꿨다. 해방 후 광복군의 옷을 입고 들어 왔다. 형의 영향으로 남로당 중책역할을 하며 초급장교들을 가입시켰다. 숙군 작업으로 국군내 남로당을 샅샅이 찾아내 처형할 때도 그는 살아남았다. 자기가 알고 있는 군내 남로당 인원을 모조리 발설하는 대가로 그는 살아남았다. 일제 하 고문경찰이자 광복 후 반공경찰의 상징이 된 극악무도한 김창룡의 손에 잡히기도 했으나 같은 만주군 출신 백선엽에 의해 살아남았다. 직책이 없는 민간인의 신분으로 정보부서에서 일하다가 한국전쟁을 맞아 복권되었다. 60년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쿠데타 시도는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쿠데타를 꿈꾸고 그것을 통해 드디어 야욕을 실현했다. 무려 18년 동안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다. 그가 그렇게도 많이 했다는 말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국민들을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그는 18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놓지 않았다. 부하 김재규의 총에 죽기 전까지 그는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공산주의의 망령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한민국을 조금이라도 발전시키기 위해 그는 최고의 자리를 놓으려 하지 않았다. 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부패와 비리가 뒤늦게 밝혀졌지만 국민들은 쌀포대, 밀가루포대, 시멘트포대를 던져주는 그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신작로가 깔리고 초가집과 기와집이 뜯겨나가도 그저 잘 살게 해준다는 최면에 집단이 휘둘렸다.

두 번을 연거푸 대통령이 된 뒤 드디어 그는 왕을 꿈꾼다.

선거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고 의회도 없고 법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 친히 왕위로 오르려 했다. 그것이 바로 유신이다. 그것이 독재의 끝이다.

 

 

“박정희의 집권 18년 중 절반 이상인 120개월가량이 계엄령, 위수령, 비상사태 또는 긴급조치다.” (p.97)

 

120개월가량 대한민국은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아무리 돈을 갖다 뿌리고 잠재적인 위협이 될 만한 인사들을 잡아넣어도 턱 밑까지 쫓아오는 김영삼과 김대중이 왕에게는 실재적인 위협이었다. 왕에게 선거제도는 귀찮은 걸림돌일 뿐이었다. 그는 왕답게 자신만의 법을 만든다. 그것이 유신이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본따 온 것이든 뭐든 상관없다. 유신의 민낯은 왕정복고다. 이 책의 제목처럼 「유신 -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다. 집권기간의 절반 이상을 자신이 정한 마음대로 법으로 통치했다. 유신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왕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해도 잡아갔다. 술집에서 거리에서, 집안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잡혀갔다. 잡혀가서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며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고문당하고 두들겨 맞고 죽기도 했다.

유신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나와 같은 세대들에게 유신은 그저 책에서 보는 활자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유신을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 특히 386들의 증언에는 이제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차라리 대학을 나오지도 못했고 시골에서 농사짓다 중소도시 공장에 취직한 아버지 얘기들 듣거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성남 섬유공장에서 일하다 남편을 만나 생전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아들 둘을 낳아 정착해 억척같이 살아 온 어머니 이야기를 듣는 것이 훨씬 유신의 민낯에 가까울 것이다. 늘 선거에서 1번을 찍고 새누리당의 전신들에게만 투표해온 부모님에게 유신은 박정희 그 자체였다. 유신과 18년의 집권기간을 따로 구분하시지 못하는 듯 했다. 조용하고 열심히 살았던 시대로만 기억하고 계신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대학생, 지식인들이 유신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투쟁을 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386과 유신독재에 맞서 투쟁 좀 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일에 익숙하다. 얼마나 뻥튀기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언젠가 원로 언론인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는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유신독재 당시에도 전면에 나서 투쟁하던 사람들은 극소수였고 80년 봄과 87년 항쟁도 도둑 같이 찾아온 찰나였다고 말이다.

그래서 유신은 더 무서운 시기였던 것 같다. 공화제가 유신이라는 간판아래 내동댕이쳐지고 왕이 부활한 시대를 살았음에도 일반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았다. 국가와 독재자, 유신이 심어 놓은 이데올로기와 선전의 그물에 갇혀 그저 숨만 쉬는 채 살았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3년짜리 비정규직이었던 유정회 의원들은 재임명에 목을 걸었다. 1976년 3년 임기가 끝나고 2기 의원을 추천할 때 1기 중 3분의 1에 가까운 23명이 탈락했다.” (p.66)

 

체제의 방패역을 자임했던 유정회는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추악한 정치 행태들을 연출해 보였다.  

국회를 해산시켰다. 하물며 조선시대 왕들 곁에도 중신들이 있었는데, 유신의 왕은 그것조차 없애 버렸다. 그리고 의석의 3분의 1을 자신이 임명했다.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왕이다. 유신과 박정희 독재시기를 분석한 수많은 책이 있지만 ‘유정회’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책은 보기 드물었는데, 이 책에서는 ‘유정회’에 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한다. ‘유정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회의원이다. 말 그대로 허수아비다. 실제로 원내 제1 집권세력이었음에도 선거를 거치지 않은 그들을 야당의원과 여당의원들조차 무시했다. 당연한 결과다.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으로 만들어진 그들은 그렇게 행동했다.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것이다. 당시 국회의원 임기가 6년이었는데 ‘유정회’소속 의원들은 절반인 3년이면 임기가 끝났다. 바람 앞에 등불인 것이다. 말 그대로 비정규직인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음 임기에도 지명이 되어야 했기에 다른 의원들이 잘 하지 않는 궂은 일, 추악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야말로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 것이다. 왕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정치를 하는 자들이, 정치판이 난장판이 되면 될수록 국민들은 정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왕의 영구집권을 탄탄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었다.

김재규의 총에 죽기 직전까지 왕은 국민에 대한 진압을 언급했다. 온갖 악행의 대명사인 차지철이 왕의 말을 받아 맞장구쳤다. 캄보디아에서는 200만 명 300만 명도 죽는데 100만 명쯤 죽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것이 유신의 실체다. 왕의 본모습이다.

 

 

 

로봇국민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로봇 범블비나 옵티머스 프라임은 멋있기라도 하다. 왕이 꿈꾼 로봇은 멋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왕의 명령에 따라, 왕이 누르는 버튼 하나에 따라 하나로 움직이는 로봇을 원했다. 생각도, 비판도, 고민도 없는 그런 로봇을 원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싸우고 열심히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그런 로봇이 필요했다. 유신시대는 그것을 위한 시대였다. 그런 로봇을 만들기 위한 시대였다.

 

“박정희는 장발과 미니스커트 같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머릿속과 마음도 못마땅해 했다. 중단 없는 진진을 위해 너나없이 나서야 할 때에 젊은것들이” (p.161)

 

청년들의 장발을 단속했다. 느닷없이 단속중인 경찰에게 붙들리면 머리를 잘려야 했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아가씨들의 미니스커트 길이도 단속했다. 자를 들고 무릎에서부터 얼마나 올라갔나 길이를 재는 남자 경찰들의 흉측한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노래와 영화, 출판물 등 모든 것들이 검열되었다. 왕 아래 살고 있는 국민들이라면 하나같이 움직여야만 했다. 개성? 창작? 자유?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했다. 상상하기도 싫은 세상이다. 온갖 핑계로 그저 자기가 작곡한 ‘국민가요’만 부르기를 원했다.

 

“신생 한국군의 주역이 된 일본군·만주군 출신들은 ‘황군’의 군사문화를 고스란히 한국군에 이식했다. 한국군의 겉모습, 전술교리와 편제와 무기는 미군을 닮았지만, 한국군의 의식구조와 작동방식은 일본군의 악습을 이어받은 것이다.” (p.263)

 

만주국 장교 출신 왕은 국가도 큰 군대로 만들고 싶었다. 해방이 되고 일본군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구원자로 들어 온 미군정은 일본군을 그대로 한국군으로 편입시켰다. 한국군의 주역이 된 이들은 거의가 일본군·만주군 출신이었다. 그렇게 추앙하는 살아있는 국군의 전설 백선엽도 만주군 출신이다. 그들이 훈련받고 교육받은 것은 바로 ‘황군’의 군사문화다. 대동아공영을 이루기 위해 살인적인 전투와 전쟁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충성과 하나처럼 움직이는 로봇 같은 군인들이 필요했다. 여전히 군대 내 부조리와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한국군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작동방식을 결정하는 일본군의 악습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유신 당시 공수부대에서 복무하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군대 얘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너무 고생하고 너무 맞아서 이야기하기조차 싫다고 하셨다.

 

“한미동맹을 얘기할 때 가치동맹을 얘기하지만, 가치동맹 이전에 섹스동맹이 있었다. 미국은 자국 병사들의 안전한 섹스와 스트레스 해소를 원했고, 한국의 주한민군의 계속주둔과 미국 병사들이 뿌리는 달러를 원했다. 두 나라는 굳게 손잡고 기지촌 정화운동을 펼쳤다.” (p.285)

 

왕에게는 더 힘 있는 왕의 도움이 필요했다. 미군정 시기부터 지금까지 도무지 버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은 유신시대에는 더 했을 것이다.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고 베트남전 패배이후 미군의 대아시아에 대한 기조가 바뀌었음에도 왕은 미국은 놓지 않았다. 미군을 붙잡아 두기 위해 꽃 같은 처녀들을 제물로 바쳤다. 나라에서, 국가에서 미군에 대한 매매춘을 공식화 한 것이다. 책에서는 이 부분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이를테면, 미군의 전투력 보존을 위해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주기적인 성병 검사를 실시했고 훈련 장소에까지 기지촌을 마련해 주는 호의도 베풀었다. 그러면서 기지촌에서 나오는 달러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왕이 만든 시대다. 유신의 민낯이다.

 

왕께서 고속도를 내어 주시고 신작로를 내어 주시고 철강 공단을 만들어 주시고 화학 공장을 만들어 주시고 쌀을 주시고 밀가루를 주시고 괴로 북한도당 들에게서 보호해 주셨다. 왕을 위해 할 일은 그저 고개 숙이고 일하는 것이다. 말 잘 듣는 것이다. 머리 기르지 않고 미니스커트 입지 않고 이상한 영화나 노래 만들지 않고 자나 깨나 태극기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신은 몸이 되어갔다.

 

 

 

Master of Puppets

(she is no more than a puppet)

   

“박정희가 김지태의 부일장학회를 강탈하여 만든 5.16장학회의 첫 수혜자인 엘리트 검사 김기춘 등 10여 명의 실무진이 궁정동 팀의 초안을 ‘헌법’의 형식에 맞게 만들었다.” (p.25)

 

왕이 되는 법을 만들었던 젊은 엘리트 검사는 70대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숙명이 남아 있었다. 공주를 모시는 것이었다. 모시는 것인지, 이용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여전히 정점에 있다. 왕의 군대는 사라지고 왕의 꿈은 사라졌지만 왕의 측근은 여전히 살아있고 왕으로부터 받은 축복의 수혜자들은 여전히 공주를 옹위하고 있다. 30년을 돌도 돌아 다시 그 자리다.

 

“청와대를 떠나야 했던 박근혜는 사람들이 아버지 살아 계실 땐 ‘유신을 해야 우리가 산다’이렇게 외치고 다녔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유신에 대해서 옹호를 안 한다며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p.404)

 

어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저 인터뷰가 이해되기도 한다. 그녀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유신의 정점에 있던 왕이었다. 유신 이전의 아버지는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 유신으로 인해 이미 왕정으로 복고된 이후의 사회만을 바라본 그녀의 눈에 ‘유신’은 만능 ‘키’였을 것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공산주의와의 싸움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부득이하게, 오직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래서 더 무섭다. ‘박근혜의 통치는 아버지에게 올리는 제사’라고 표현했던 김어준 총수의 말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유신의 초안을 만든 사람이 70이 넘어 현재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했다. 눈에 띄는 이가 그였을 뿐이지, 어디에서 유신의 분해이후 흩어졌던 유신의 잔재들이 다시 모여들었을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아직도 이 사회는 박정희의 유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를 숭배하는 자들은 정작 박정희가 실시한 평준화나 그린벨트나 의료보험을 때려 부수려 하고 박정희를 비판하는 민주 세력은 이를 지키려고 하는” (p.25)

 

한홍구 교수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유신을 한 박정희에게도 분명히 공이 있다. 이상한 타이밍에 바뀐 고교 평준화 및 교육 정책들은 태자를 위한 시혜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그린벨트 정책이나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국가 정책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는 의료보험 정책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데, 박정희를 숭배하는 자들은 이것을 때려 부수려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박정희를 숭배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의 예전 인터뷰처럼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니 다 떠났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왕이 되려는 자, 왕을 꿈꾼 자 옆에서 신음소리 내리 못한 채 제 밥그릇 꼬박꼬박 챙겨 먹다가 막상 왕이 사라지자 아무도 그 곁에 있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다시 한 번 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꼭두각시놀음 할 수 있는 허수아비가 필요할 뿐이다. 왕으로 분장시켜 앞에 내세워 온갖 비난과 비판을 받게 하면서 뒤로 여전히 굳건한 그들만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master of PUPPETS!!

 

“그 당시 민중의 최전선을 지킨 것은 무쇠팔뚝의 남성 노동자들이 아니라 가녀린 ‘공순이’들이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않은 그들의 역사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p.182)

“오랜만에 시내에서 구호도 마음껏 외치고 뛰어다니고 하니까 일단 모든 것을 떠나서 신이 났어요. 정말 이것이 정권 몰락의 불씨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다음 날이 되자 사람들의 물결이 거대하게, 그러니까 공중에 떠서 다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p.389)

 

유신의 끝은 부하의 총끝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가져 온 요인은 박정희의 집권 시절 계속되었던 힘없는 이들의 몸부림이었다. 책에서 자세하게 언급하는 YH여공사건과 3부 2장의 여공애사를 살펴보면 힘없고 가난하며 못 배운 이들의 몸부림이 마침내 유신의 종말을 가져온 서막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마침내 10.26 직전 부산과 마산에서의 시민항쟁은 설마 하던 권력의 끝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도 아쉬운 것은 이런 이들의 힘이 왕권을 실제로 전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함께 유신을 만들었던 김재규의 총에 끝난 것이 너무 안타깝다. 이후에 일어난 역사적 과정을 반추해보면 더욱 그렇다. 만약 시민의 힘으로 유신을 전복했다면 분명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이 시대착오의 나날을 견뎌내고 보다 나은 오늘을 누려야 할 젊은 세대들에게 유신시대를 제대로 장송하지 못한 구세대 역사학도가 드리는 미안한 마음이다.” (p.15)

 

요즘 젊은 세대들은 먹고 사는 일 자체가 너무 힘들다. 너무 버겁다. 이런 책을 읽는 것이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당장 영어공부하고 스펙 쌓기도 바쁜 마당에 무슨 유신, 박정희……. 그래도 우리는 역사를 읽어야 한다. 기성세대가 장송하지 못한 유신이 또다시 잔인하게 젊은 우리들의 목을 옥죄어 올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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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륙 작전 2 인천 상륙 작전 2
윤태호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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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2권의 부제는 잔인한 여름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방 후 미군정 시기를 거쳐 한국전쟁 전·후가 가장 폭발적이며 혼란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윤태호가 그려내는 미군정 시기는 한 국가의 존망이 다른 국가의 군사정부에 의해 좌지우지 되던 시절이었다. 말 그대로 참담한 시절이었다.

앞서 1권에서도 자세하게 그려지는 것처럼 자고 일어나면 테러가 자행되고 실제로 당시 한강변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가 많았다고 한다. 누가 누구의 편인지, 누가 누구의 적인지조차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던 혼돈의 시대였다.

1권에서는 한상근과 한상배 형제를 중심으로 인물들에 초점이 맞춰져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2권에서는 당시의 시대상과 무엇보다 일반 백성들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모습이 편안하거나 안정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황망하게 물러 간 일제는 그들이 운영하던 기업과 가게 등을 제대로 처분하지 못했다.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가장 시급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두고 간 것이 많았다. 점령국이 남기고 간 기업이나 재산 등을 통칭해 ‘적산’이라고 하는데, 작가는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주름잡는 웬만한 기업들 중 대다수가 일제의 ‘적산’을 인수해 큰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당시만 해도 조선인이 기업을 운영하거나 하는 일이 드물었으므로 전폭적인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땅짚고 헤엄치기인 것이다. 물론, ‘적산’으로 일어선 기업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굳이 밝히려 하지 않는다. 엄청난 특혜와 지지를 받고 굴지의 기업으로, 재벌로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보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태생부터 부당함으로 시작되었는데 뭘 더 기대하겠나. 당시의 ‘적산’은 단지 기업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에서도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소위 돈 꽤나 있는 지주들 및 부자들은 목 좋은 곳에 ‘적산’을 받아 그때부터 이미 부동산 투기를 시작한 자들도 있었다. 미군정 당시 지주나 부자였다면 열의 아홉은 일제에 부역한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일제가 패망했음에도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후에 반민특위가 설치되기는 하지만 실패하면서 이들을 단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영원히 놓치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미군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만약 미군이 상륙한다면 자신들의 목숨은 끝날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보통의 경우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천으로 들어 온 미군정은 오히려 그들과 어울렸다. 일본인들과 그들에게 부역했던 친일파들을 등용하고 그들에게 더 큰 힘을 부여했다. 탈출구 하나 없이 고양이 앞에 마주한 쥐신세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당장 큰일이 나고 목숨이 날아가야 할 판에 도리어 주인 노릇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상륙한 미군 장교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취하게 했다. 일본에 부역한 조선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새롭게 편성된 미군정의 조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친일경찰이 대한민국 경찰에 들어가 독립 운동가를 때려잡던 그 모습으로 좌익, 공산당을 때려잡았다. 급기야 일제는 무분별하게 화폐를 발행하기에 이른다. 자신들의 안위가 보장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빼먹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빼먹은 채 고국으로 편안하게 돌아간 것이다. 무분별한 화폐 발행은 당연하게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영문도 모른 채 곱절로 뛰어버린 물가에 백성들은 더 배고파질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46년 6월, 대홍수가 발생했다.

“대홍수

 해방 이후 가장 큰 재난이었다.” (p.104)

“곳곳에 치우지 못한 시체가 썩고 있었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대홍수가 지나고 대기근이 시작되었다. 식량 부족으로 농민과 서민들의 삶은 파탄에 이르렀다.” (p.118)

 

근·현대사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해방 1년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홍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제대로 국가의 기반이 갖춰진 것도 아니고 일제와 그 부역자들을 제대로 청산하지도 못한 혼돈의 상황에서 엄청난 재해가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지금처럼 재해에 대한 대비가 되었을 리도 없었을 테고, 당장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고 모진 일상이었던 일반 백성들에게 대홍수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경북 청송에선 200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하지만 일본인이 떠난 본정동은 미군과 자본가와 지주들과 정치인과 그들의 하수인들로 불이 꺼지지 않았다.” (p.119)

 

시골이지만 경북 청송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200명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중심에 있던 이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 살았다. 대홍수가 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그들에게는 딴 나라 일이었다. 반납하거나 몰수되지 않은 재산은 여전히 그들의 것이었고 일제가 두고 떠난 ‘적산’까지 떠안은 이들을 멈출 것은 없었다. 새롭게 진주한 새 주인 미군정은 이들이 선사하는 파티와 돈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에게 조선은 그다지 중요한 전략적 포인트가 아니었다. 일본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었다.

 

좌익과 우익의 갈등과 테러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평안도와 경상도가 상관없이 한 나라 한 민족이라 생각되던 것이 이제는 달라졌다. 40년 가까이 압제하던 일제에게 함께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념이라는 괴물에 의해 서로 죽고 죽이기에 이르렀다. 이념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세상은 조선공산당이 파렴치하게도 지폐 위조를 시도했다고 믿었다. 일제 때 경찰로 복무했던 남한 군정 경찰은 인쇄공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다. 공산당을 없애지 않으면 자신들도 북한의 친일 복무자처럼 숙청될지 모른다는 절박한 인식은 더욱 그들을 잔인하게 만들었다.” (p.71)

 

이승만이 남한의 단독정부를 세우려는 야욕을 세운 후, 미군정은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우익세력과 거의 대등한 조직력과 힘을 가지고 있던 좌익은 이제 없애버릴 대상이 되었다. 소련군이 진주한 북한에서는 친일 복무자를 처형했다. 그 위험을 피해 남한으로 내려온 자들이 각종 우익청년단과 테러조직에 가담했다. 이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좌익을 때려잡았다. “공산당, 빨갱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한반도의 남쪽에는 레드컴플렉스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미 한국전쟁 이전에 말이다.

사람은 계속해서 죽어갔다. 미군정이든, 우익이든, 김구든, 이승만이든 일반 백성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홍수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곳곳에 처리하지 못한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했다. 이 책은 그것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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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역사
마크 마조워 지음, 이순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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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발칸반도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스라엘도 그렇다. 북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도 그렇다.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곳은 이스라엘이다. 예루살렘에는 세 개의 종교 건물이 공존한다고 한다. 유대교 사원과 기독교 사원, 이슬람 사원. 멀리서 보면 한 도시 안에 세 종교가 조화롭고 평화롭게 한 데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사진을 확대해 보거나 직접 그곳을 가보면 원거리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실제를 마주한다. 곳곳에 폭탄과 총알로 인해 깊게 패인 흔적을 볼 수 있다. 같은 도시 한 가운데 세 종교가 공존해 있지만 언제라도 불씨가 당겨지면 꽝! 하고 한번에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다.

예전에 TV에서 왕따를 가하는 학생들과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을 한 데 모아 합숙을 하며 심리치유를 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시리즈로 방송이 되었는데 나는 첫째날 학생들이 한 공간에 모여있었던 그 모습이 강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말이 100%어울릴 만한 장면이었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 상 누가 왕따의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해당 학생들은 전혀 알지 못하게 했음에도 학생들은 대번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했다. 그래서 처음 보는 학생들이었음에도 가해자는 가해자들끼리, 피해자는 피해자들끼리 모여 앉았다. 이 프로그램은 왕따라는 문제에 있어서 피해자만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또한 제대로 된 심리치료와 치유가 필요하다는 의도에서 제작되었다.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데 모여 지내면서 서로의 상처와 삶을 나누고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어쨌든 결론은 서로 상처가 치유되고 좀 더 성숙한 인격체로 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프로그램의 일촉즉발의 상황이 바로 생각났다. 한 도시 안에 있지만 언제 폭탄이 날아오고 총알이 날아 올지 모르는 예루삼렘이라는 공간과 학생들이 서로 대치한 채 언제 덤벼들어 주먹을 날릴지 모르는 그 상황이 겹쳐 졌다.

 

 

“발칸에는 폭력, 야만, 원시성과 같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p.19)

 

역사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발칸의 역사에 대한 책은 처음 읽게 되었다. 책의 서두에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발칸’하면 화약고, 전쟁터, 유고내전 등이 떠오른다. 학교에서도 세계사를 배울 때 제대로 발칸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예전에 공산주의 하에 있었던 국가, 못사는 나라, 내전이 심한 나라 정도다. 이 책「발칸의 역사」는 이런 부정적 의미로 각인 된 발칸의 역사를 개괄적이지만 통시적으로 접근해 설명한다. 특히, 이런 발칸지역에 대한 부정적 의미와 이미지를 심어준 주체가 바로 서구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1872년 에디르네에서는 이슬람 성직과 호쟈와 기독교 성직자의 힘으로도 마을에 출몰한 뱀파이어를 쫓아내지 못하자 투르크인 마법사를 청하여 푸닥거리를 한 뒤에야 겨우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p.113)

 

발칸지역은 여러 종교와 인종과 민족이 뒤섞인 곳이었다고 한다. 이슬람 성직자와 기독교 성직자, 투르크인 마법사가 동원되어 마을에 출몰한 뱀파이어를 쫓아내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곳이 발칸지역이었다. 지금의 종교적 인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교회에서 스님이 법문을 외며 예배의식을 시작해 원불교에서 노래를 부르고 가톨릭 신부님들이 나와 설교를 한 후 교회의 목사님이 나와 마침 기도를 하는 식이다. 지금 대한민국 어디에서 이런 예배의식이 행해지는가. 절대로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서구인들을 놀라게 한 것은 신기한 색채, 냄새, 다채로운 인종군이 빚어내는 거의 연극적이라 해도 좋을 일련의 심미적 요소들이었다.” (p.28)

 

19세기 초반부터 몰려든 서구인들의 눈에 발칸지역은 신기한 곳이었다고 한다. 책에서 소개된 여행가나 정치가들의 대부분은 영국, 앵글로색슨계 백인들이 많은데 그들은 같은 백인들이 사는 곳임에도 완전히 다른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한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발칸지역을 지나간 사람들은 너나없이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에 기록을 남겼던 것 같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다. 프라하를 여행하면서 짧은 대화라도 나눈 프라하 시민 중 열의 아홉은 “아유 재패니즈?”라고 했다. 그 다음은 당연히 “아유 차이나?”였다. 우리가 보면 대번에 중국인과 일본인을 구분하는데 말이다. 프라하에서도 수많은 일본인 관광객과 중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주로 배낭여행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차림새와 걸음걸이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는데 말이다. 19세기 서구인들에게 발칸지역은 새로운 세계였다. 그들이 늘 보던 백인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냄새도 색채도 다른 곳이었다.

 

 

“슬라브족이 발칸에 출현함으로써 고대 세계는 끝나고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되면서, 기독교계는 로마 카톨릭과 동방정교회로 나뉘는 중대한 국면을 맞는다.” (p.93)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부터 발칸인들은 이미 동서로마의 경계선을 따라 동방과 서방, 정교회와 가톨릭, 키릴 문자와 라틴 문자의 상반된 문화를 가진 모순된 역사적 과정을 밟아왔다.” (p.272)

 

유럽 지도를 잠시만 살펴봐도 발칸지역의 특수성을 바로 알 수 있다. 고대 로마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발칸지역은 정확한 주인이 없었던 곳이다. 제국의 몰락과 국가의 탄생과 몰락, 민족의 이동과 종교의 변천에 따라 발칸의 땅에 발디딘 사람들은 늘 변해왔다. 그것이 발칸지역의 특수성, 그 자체다. 특히 동서로마의 경계선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그리스와 오스만제국 사이에 완충지역이 되었던 발칸지역은 그 지리적 특수성 덕분에 늘 교집합이 되었던 곳이다. 어느 한쪽에 기울어 지거나 포함되지 않고 늘 겹쳐졌던 곳이다. 이것이 1990년대 끔찍한 유고내전이 일어나고 그 이전에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일이 벌어졌던 가장 주요한 이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지금처럼 살얼음과 같은 긴장상태를 이어가는 것은 그것이 원래 팔레스타인들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힘으로 떠밀고 들어와 내쫓았고 그것이 단지 군사력과 자본에 의해 단번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이상 위험과 긴장과 싸움은 내재된 채 유지될 수밖에 없다. 비록 왕따의 가해자였지만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늬우치고 심리적 불안을 제대로 직면해 치유하기 위해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자신의 인상과 말투만 보고도 가해자임을 알아차리고 눈도 맞추지 못하는 왕따의 피해자들을 보며 내재된 폭력성이 되살아 나기도 한다.

처음부터 내재된 폭력성 자체가 민족이나 국가, 인종이나 종교에 따라 달라지거나 왕따의 가해자인 학생들은 특별히 더 폭력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 진다는 얘기다. 발칸지역은 수백년을 이어오며 겹치고 겹치고 또 겹쳐지는 역사를 반복했다. 인종의 구분, 종교의 구분, 민족의 구분이 모호한 채 유지된 것이다. 다만, 인종과 종교와 민족의 특수성은 간직한 채 어떤 사건을 계기로 불씨가 당겨지면 폭발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서구의 역사적 관점이나 미디어의 관점에서는 처음부터 발칸지역은 더 폭력적이라고 접근했다는 것이 책의 저자 ‘마크 마조의’ 교수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단지 덩치가 크고 싸움을 잘하며 성장환경이 불안정해서 왕따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과 진학만이 공교육의 전부가 된 학교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학생들을 괴물로 만들어 낸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20여 년 전 일어난 유고내전은 끔찍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사촌으로 지내던 이들이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 죽이고 죽는 일이 벌어졌다. 종교가 다른 민족의 씨를 말라버려야 한다며 남자들은 있는 대로 죽이고 여자들은 있는 대로 강간해 강제로 임신을 시켰다. 1590년도 아니고 1990년대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아직도 그 전쟁의 상흔은 남아 있다. 다만 그런 일이 벌어진 이유가 발칸지역은 원래 그런 폭력성과 잔인함이 내재된 곳인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접근하는 시각부터 달라지면 분석은 무모해진다.

 

 

“1100만 명의 용의자와 200만 명의 수감자를 가진 미국이나 거대한 수감 인구를 자랑하는 러시아와 비교하면 당대의 남동부유럽은 차라리 인간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1994년 미국의 수감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554명이었던 반면, 루마니아는 195명, 마케도니아는 63명, 그리스는 16명이었다. 또한 수감자 중 사법적 처형이 예상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발칸과 달리 미국은 해마다 수십 명의 수감자들이 전기의자나 독극물로 목숨을 잃었다.” (p.237)

 

미국과 러시아, 발칸지역의 국가들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저자가 분석한 숫자들은 유의미하다. 종종 미국 내에서 흑인 용의자에 대한 백인 경찰의 과도한 진압과 폭행, 그리고 그런 사건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는 뉴스를 보게 된다. 유고 내전이 한창이던 1992년 미국의 LA에서는 흑인 폭동이 일어났다. 실제로 약탈과 방화가 일어났고 상점의 주인들은 허가된 총을 들고 상점을 지키기 위해 흑인청년들에게 총구를 겨눴다. 인구 10만 명당 수감자수는 미국이 압도적이다. 더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수감자 수가 압도적으로 발칸지역보다 많은 것은 단지 다 인종으로 구성된 미국 사회의 특수성으로 보아야 하나? 단지 미국보다, 서유럽보다 GDP가 낮다고 해서 더 폭력적인 국가가 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이유가 없는 추정일 뿐이다. 단지 자신들보다 못산다는 이유로 더 미개하고 미성숙한 사회라고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더욱 잘못된 것은 이런 서구의 시각에 대해 우리조차 별다른 생각없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모르면 찾아봐야 하는데, 남이 얘기해주는 대로 판단하고 싶어한다. 그게 편하고 빠르니까. 하지만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찾아봐야 한다. 발칸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발칸의 역사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좋아들 하는 미국의 역사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를 읽으면 지금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모르니까 관심이 없으니까 귀찮으니까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하긴, 뭐 자기 나라의 역사조차 관심이 없는데 말해 무엇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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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홍상현 옮김 / 이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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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도 하늘이 희뿌옇다. 벌써 일주일째인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희뿌연 하늘을 보는 건 봄이었다. 중국으로부터 날아오는 황사가 한반도를 뒤덮으면 황사에는 삼겹살이 좋다느니, 뭐가 좋다느니, 갑자기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고,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그랬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미세먼지다. 어떤 보도들에 따르면 황사보다 몇 배나 사람 몸에 좋지 않은 온갖 물질들이 섞인 것이 이번에 날아오고 있는 미세먼지라고 했다. 친절하게도 미세먼지에는 삼겹살이 효과가 없으니 어떤 음식들을 먹으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포털에는 그 음식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단번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일주일째 그러던 것이 어제 비가 오고 나면 그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도 그렇다. 아내가 임신 중이라 가뜩이나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시기인데, 미세먼지 덕에 또 다른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황사마스크를 사고 되도록 창문도 잘 열지 않고 생활하고 있지만 닫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희뿌연 안개 같은 미세먼지들이 창문 틈으로 문틈으로 조금씩 기어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서해안으로부터 직선거리로도 200km가 넘게 떨어진 대구에서도 이렇게 희뿌연 장관(?)을 연출하는 미세먼지가 독하다는 생각도 든다. 웬만해서는 날아가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특수물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미세먼지 예보를 하고 그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지만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대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 같다.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황사야 워낙 오랫동안 한반도로 불어와 이제는 없으면 허전한(?) 존재가 되었지만, 미세먼지는 아직 낯설다.

아주 조심스럽지만 노골적으로 중국 상해의 심각한 스모그를 보여주는 것으로 ‘혹시나 중국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요?’라며 슬며시 떠 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국가 차원에서 항의라도 제대로 하던지, 공문이라도 한 장 보내 역학 조사를 요구하던지 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 숨어서 눈치보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황사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스모그라는 단어도 아주 낯설게, 갑자기 듣게 되었고 황사도 그랬다. 그리고 느닷없이 미세먼지라며 호들갑을 떤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책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의 제목이 도발적이다. 죽이는가? 도 아니고 죽였는가? 다. 원서의 제목보다 더 잘 붙였다. 이미 지구가 죽었다는 말이다. 그렇다. 그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제시한 극단적인 경고를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다. 비합리적인 낙천주의는 인류의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험한 약점이기도 하다.” (p.10)

 

재기를 노리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최종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혐의가 인정되어 유죄가 되었다. 한마디로 사기꾼으로 공식 인증을 받은 것이다. 더불어 서울대 교수직도 파면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황우석은 신화와 같은 존재였다. 줄기세포, 배아복제, 난치병 치료 등으로 일약 영웅이 되었다.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만든 고(故) 잡스 형님보다 몇 갑절 값진 일을 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모두가 기대했다. 실제로 그런 연구와 학문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도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훌륭한 과학자가 나오면 다 좋은 거지 뭐.’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추호도 그가 거짓말을 한다거나 사기를 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대중의 집단적인 비합리적 낙천주의는 대단한 홍역을 초래했다. 느닷없이 영웅의 자리에서 사기꾼의 자리로 끌어 내려진 황우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둘로 나뉘었다. ‘내 저럴 줄 알았지.’ 라며 애써 발을 빼려는 무리와 ‘뭔가 음모가 있어. 그러실 분이 아니야.’라며 아직도 황우석에게서 메시아의 페르소나를 발견해 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책에서의 지적처럼 적어도 과학에 대해 비합리적인 낙천주의는 위험하다. 한 순간에 훅 갈 수 있다.

미세먼지를 접근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사도 중국에서부터 날아온 것이니까 당연히 미세먼지도 중국의 책임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적어도 그에 선행하는 자료분석과 연구가 따르기 전에 단정 짓는 것은 과학도 아니고 미디어가 취해야 할 태도도 아니다. 그냥 쇼다.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 증가에 절반의 책임을 갖게 되는 때는 아마도 몇 십 년 이후가 될 것이다. 게다가 부유한 국가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대부분은 불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사치성 소비에서 나온 것이다.” (p.128)

 

책에서는 줄곧 온실가스 증가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다. 1장의 제목부터 <탈출구는 없다>이다.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지금의 온실가스 증가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주된 책임을 개발도상국, 그 중에서도 중국과 인도에게서 찾는다. 중국과 인도 중에서도 중국에 포커스를 맞춘다. 한반도 이남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 같은 경우에는 워낙 예전부터 중국의 황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왔던 터라 지금의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당연히 중국의 무분별한 성장정책과 뒤쳐진 환경정책에 방점을 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당장 매년 봄마다 중국산 황사의 괴롭힘을 받아 왔고 그에 더해 듣도 보도 못했던 미세먼지가 봄도 되기 전부터 난리를 치니 당연히 중국이 가장 위험한 기후위기의 배후세력이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미 대기 중에 있는 온실가스의 75퍼센트는 이미 경제성장을 종료한 이른바 부유한 국가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날씨예보를 보지만 실제로 믿지는 않는다. 몇 주 전 영동지방에 일주일 넘게 지속된 폭설에 대해서도 제대로 예보하지 못했다.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최첨단의 과학 장비를 갖추고도 날씨하나 제대로 못 맞추냐고 사람들은 손가락질 한다. 하지만 그런 과학을 깡그리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그렇게 빗나가는 예측보다 들어맞는 예측이 실제로는 더 많기 때문이다. 기후과학자들이 내어 놓은 주장 또한 과학이다. 성장, 발전, 선진국에 대한 알레르기가 같은 좌파, 환경론자들이 만들어 낸 프로파간다가 아니다. 과학자들이 분석해 낸 데이터다. 그렇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미 할 만큼 최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그것을 지구의 대기 중에 띄어 올린 사람들은 이미 성장을 마친 선진국들이다. 성장의 뒷배를 타고 개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올라서려는 중국과 인도는 그들을 보고 배운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은 이미 먼저 해 놓은 것을 따라한다고 주범으로 모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니가 하면 불륜 이라는 논리와 맥락상으로 일치한다.

 

 

“연간 온실가스 발생이 지금 멈춘다고 해도 지난 수십 년간 배출한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 오랜 시간 남아 지구의 온도를 수 세기 동안 높일 것이다.” (p.27)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은 기후위기와 지구온난화, 온실가스 등에 대해 국제적인 협의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일단 모이는 것 자체도 힘들도 모인다 해도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아무리 이상기후가 일어난다고 해도 당장 인류에게 재앙을 안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누가 책임을 지거나 양보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온실가스 배출이 다 같은 도덕적 바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배출량이 같다고 해도 어떤 배출은 더 많거나 다른 가치를 지닌다. 아프리카의 농부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과 미국의 피부과 전문의가 주말에 라스베거스로 놀러 가려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은 같을 수가 없다.” (p.112)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거의 모두는 오늘도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살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지금 멈추어도 이미 대기 중에 존재하는 온실가스로 인해 수 세기 동안이나 지구의 온도는 점진적으로 상승한다고 하는데, 오늘도 지구의 곳곳에서는 온실가스를 더하고 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씻기 위해 보일러가 가동 되었다. 온실가스 배출. 밥을 먹기 위해 각종 조리도구와 주방기구를 사용했다. 온실가스 배출. 설거지를 했다. 온실가스 배출. 차를 타고 출근했다. 온실가스 배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컴퓨터를 하고 등등등등……. 나는 오늘도 줄곧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오늘도 다국적 기업의 OEM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열악한 제조업 환경에서 근무하는 중국의 어린 노동자들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시범경기가 한창인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애리조나에 있는 야구장으로 간 관중들도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심지어 평일 오후에도 야구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니.

중국의 어린 노동자와 미국의 메이저리그 관중과 나의 오늘 하루를 직접 비교할 수 없다. 동일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그것에 대한 가치와 도덕적 잣대는 달라야 한다는 책의 주장에는 동의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메이저리그 관중이, 라스베거스로 놀러가는 미국의 피부과 전문의의 소비성 온실가스 배출을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설득의 논리로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온실가스의 가파른 배출량을 묵과할 수 없다는 전제아래, 최대한 소비성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나가자는 전 지구적 설득과 합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분명히 국제적 협의나 협약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미세먼지가 아무리 날아오고 그것이 일주일이 지나도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정부에서는 일언반구 말도 없고 미디어라 하는 것들은 중국만 보여 준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에서 최소한 납 성분이 포함된 미세먼지를 최소한 방지하기 위해 현재 임산부들에게 황사마스크 하나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p.207)

“지구의 기후시스템은 변화된 과정을 따르고 미래에는 우리가 손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법에 대한 복종이 아닌 윤리적 의무를 주장해야 한다. 법령집에 쓰여 있는 법보다 더 높은 법에 복종해야 한다.” (p.284)

 

기술이 우리는 구원할 수 있을까? 이미 죽어버린 지구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나는 비관적이다. 기술은 이미 충분하다. 기술과 첨단의 과학에 대한 낙관주의가 문제이다. 책은 윤리적 의무를 강조한다. 법조문, 규정 같은 것들 보다 상위에 있는 양섬의 법, 윤리적 책무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전 지구적 공동체주의 담론은 분명 시작되어야 한다. 한 때 신자유주의 광풍을 미화하는 데 쓰인 <세계화> 같은 얼빠진 얘기 말고, 전 지구적 위기를 함께 직면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는 담론 형성이 필요하다.

 

 

“4도 더 뜨거운 지구는 2,500만 년 전 중신세 이후로 어떤 시기보다 뜨거울 것이며, 세계에는 이미 얼음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246)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가장 일선에서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는 학자들의 공통된 주제는 <4도> 이다. 머지않은 시기에 지구의 온도가 4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문명의 발전과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온실가스는 지속적이고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그것은 이미 지구의 대기에 존재한다. 중국과 인도에서 내일 당장 모든 차량의 통행을 멈추고 모든 발전소와 공장의 가동을 멈춘다 해도 지구의 온도 상승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진짜 심각하고 비관적인 예측이다. 지구의 온도가 4도 이상 상승하게 되면 일어나게 될 구체적인 재앙에 대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지금껏 본 온갖 재난영화 그 이상일 것이라는 것은 당연지사다. 얼음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이미 근래 몇 년 동안 북극의 얼음이 엄청난 속도로 녹고 있다는 뉴스는 수많은 사람들이 봤다.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위기의식은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뉴스를 본 직후에 잠깐! 그리고 바로 잊어버린다. 모르겠다. 어차피 변하지 않고 좋아지지 않을 운명 같은 것이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며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편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지구는 살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의 무관심은 정말 지구를 죽일 수도 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온전한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p.5)

 

하지만 이것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 아이, 내 아이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들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뭔가 필요하다. 책에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구체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뭔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도대체 어떤 놈이 지구를 죽였어?!!” 라며 범인을 색출하는 데 요점이 있지 않다.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봉착한 위기를 함께 맞으며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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