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역사
마크 마조워 지음, 이순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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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발칸반도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스라엘도 그렇다. 북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도 그렇다.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곳은 이스라엘이다. 예루살렘에는 세 개의 종교 건물이 공존한다고 한다. 유대교 사원과 기독교 사원, 이슬람 사원. 멀리서 보면 한 도시 안에 세 종교가 조화롭고 평화롭게 한 데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사진을 확대해 보거나 직접 그곳을 가보면 원거리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실제를 마주한다. 곳곳에 폭탄과 총알로 인해 깊게 패인 흔적을 볼 수 있다. 같은 도시 한 가운데 세 종교가 공존해 있지만 언제라도 불씨가 당겨지면 꽝! 하고 한번에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다.

예전에 TV에서 왕따를 가하는 학생들과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을 한 데 모아 합숙을 하며 심리치유를 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시리즈로 방송이 되었는데 나는 첫째날 학생들이 한 공간에 모여있었던 그 모습이 강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말이 100%어울릴 만한 장면이었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 상 누가 왕따의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해당 학생들은 전혀 알지 못하게 했음에도 학생들은 대번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했다. 그래서 처음 보는 학생들이었음에도 가해자는 가해자들끼리, 피해자는 피해자들끼리 모여 앉았다. 이 프로그램은 왕따라는 문제에 있어서 피해자만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또한 제대로 된 심리치료와 치유가 필요하다는 의도에서 제작되었다.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데 모여 지내면서 서로의 상처와 삶을 나누고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어쨌든 결론은 서로 상처가 치유되고 좀 더 성숙한 인격체로 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프로그램의 일촉즉발의 상황이 바로 생각났다. 한 도시 안에 있지만 언제 폭탄이 날아오고 총알이 날아 올지 모르는 예루삼렘이라는 공간과 학생들이 서로 대치한 채 언제 덤벼들어 주먹을 날릴지 모르는 그 상황이 겹쳐 졌다.

 

 

“발칸에는 폭력, 야만, 원시성과 같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p.19)

 

역사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발칸의 역사에 대한 책은 처음 읽게 되었다. 책의 서두에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발칸’하면 화약고, 전쟁터, 유고내전 등이 떠오른다. 학교에서도 세계사를 배울 때 제대로 발칸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예전에 공산주의 하에 있었던 국가, 못사는 나라, 내전이 심한 나라 정도다. 이 책「발칸의 역사」는 이런 부정적 의미로 각인 된 발칸의 역사를 개괄적이지만 통시적으로 접근해 설명한다. 특히, 이런 발칸지역에 대한 부정적 의미와 이미지를 심어준 주체가 바로 서구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1872년 에디르네에서는 이슬람 성직과 호쟈와 기독교 성직자의 힘으로도 마을에 출몰한 뱀파이어를 쫓아내지 못하자 투르크인 마법사를 청하여 푸닥거리를 한 뒤에야 겨우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p.113)

 

발칸지역은 여러 종교와 인종과 민족이 뒤섞인 곳이었다고 한다. 이슬람 성직자와 기독교 성직자, 투르크인 마법사가 동원되어 마을에 출몰한 뱀파이어를 쫓아내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곳이 발칸지역이었다. 지금의 종교적 인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교회에서 스님이 법문을 외며 예배의식을 시작해 원불교에서 노래를 부르고 가톨릭 신부님들이 나와 설교를 한 후 교회의 목사님이 나와 마침 기도를 하는 식이다. 지금 대한민국 어디에서 이런 예배의식이 행해지는가. 절대로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서구인들을 놀라게 한 것은 신기한 색채, 냄새, 다채로운 인종군이 빚어내는 거의 연극적이라 해도 좋을 일련의 심미적 요소들이었다.” (p.28)

 

19세기 초반부터 몰려든 서구인들의 눈에 발칸지역은 신기한 곳이었다고 한다. 책에서 소개된 여행가나 정치가들의 대부분은 영국, 앵글로색슨계 백인들이 많은데 그들은 같은 백인들이 사는 곳임에도 완전히 다른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한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발칸지역을 지나간 사람들은 너나없이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에 기록을 남겼던 것 같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다. 프라하를 여행하면서 짧은 대화라도 나눈 프라하 시민 중 열의 아홉은 “아유 재패니즈?”라고 했다. 그 다음은 당연히 “아유 차이나?”였다. 우리가 보면 대번에 중국인과 일본인을 구분하는데 말이다. 프라하에서도 수많은 일본인 관광객과 중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주로 배낭여행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차림새와 걸음걸이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는데 말이다. 19세기 서구인들에게 발칸지역은 새로운 세계였다. 그들이 늘 보던 백인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냄새도 색채도 다른 곳이었다.

 

 

“슬라브족이 발칸에 출현함으로써 고대 세계는 끝나고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되면서, 기독교계는 로마 카톨릭과 동방정교회로 나뉘는 중대한 국면을 맞는다.” (p.93)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부터 발칸인들은 이미 동서로마의 경계선을 따라 동방과 서방, 정교회와 가톨릭, 키릴 문자와 라틴 문자의 상반된 문화를 가진 모순된 역사적 과정을 밟아왔다.” (p.272)

 

유럽 지도를 잠시만 살펴봐도 발칸지역의 특수성을 바로 알 수 있다. 고대 로마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발칸지역은 정확한 주인이 없었던 곳이다. 제국의 몰락과 국가의 탄생과 몰락, 민족의 이동과 종교의 변천에 따라 발칸의 땅에 발디딘 사람들은 늘 변해왔다. 그것이 발칸지역의 특수성, 그 자체다. 특히 동서로마의 경계선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그리스와 오스만제국 사이에 완충지역이 되었던 발칸지역은 그 지리적 특수성 덕분에 늘 교집합이 되었던 곳이다. 어느 한쪽에 기울어 지거나 포함되지 않고 늘 겹쳐졌던 곳이다. 이것이 1990년대 끔찍한 유고내전이 일어나고 그 이전에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일이 벌어졌던 가장 주요한 이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지금처럼 살얼음과 같은 긴장상태를 이어가는 것은 그것이 원래 팔레스타인들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힘으로 떠밀고 들어와 내쫓았고 그것이 단지 군사력과 자본에 의해 단번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이상 위험과 긴장과 싸움은 내재된 채 유지될 수밖에 없다. 비록 왕따의 가해자였지만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늬우치고 심리적 불안을 제대로 직면해 치유하기 위해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자신의 인상과 말투만 보고도 가해자임을 알아차리고 눈도 맞추지 못하는 왕따의 피해자들을 보며 내재된 폭력성이 되살아 나기도 한다.

처음부터 내재된 폭력성 자체가 민족이나 국가, 인종이나 종교에 따라 달라지거나 왕따의 가해자인 학생들은 특별히 더 폭력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 진다는 얘기다. 발칸지역은 수백년을 이어오며 겹치고 겹치고 또 겹쳐지는 역사를 반복했다. 인종의 구분, 종교의 구분, 민족의 구분이 모호한 채 유지된 것이다. 다만, 인종과 종교와 민족의 특수성은 간직한 채 어떤 사건을 계기로 불씨가 당겨지면 폭발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서구의 역사적 관점이나 미디어의 관점에서는 처음부터 발칸지역은 더 폭력적이라고 접근했다는 것이 책의 저자 ‘마크 마조의’ 교수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단지 덩치가 크고 싸움을 잘하며 성장환경이 불안정해서 왕따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과 진학만이 공교육의 전부가 된 학교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학생들을 괴물로 만들어 낸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20여 년 전 일어난 유고내전은 끔찍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사촌으로 지내던 이들이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 죽이고 죽는 일이 벌어졌다. 종교가 다른 민족의 씨를 말라버려야 한다며 남자들은 있는 대로 죽이고 여자들은 있는 대로 강간해 강제로 임신을 시켰다. 1590년도 아니고 1990년대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아직도 그 전쟁의 상흔은 남아 있다. 다만 그런 일이 벌어진 이유가 발칸지역은 원래 그런 폭력성과 잔인함이 내재된 곳인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접근하는 시각부터 달라지면 분석은 무모해진다.

 

 

“1100만 명의 용의자와 200만 명의 수감자를 가진 미국이나 거대한 수감 인구를 자랑하는 러시아와 비교하면 당대의 남동부유럽은 차라리 인간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1994년 미국의 수감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554명이었던 반면, 루마니아는 195명, 마케도니아는 63명, 그리스는 16명이었다. 또한 수감자 중 사법적 처형이 예상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발칸과 달리 미국은 해마다 수십 명의 수감자들이 전기의자나 독극물로 목숨을 잃었다.” (p.237)

 

미국과 러시아, 발칸지역의 국가들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저자가 분석한 숫자들은 유의미하다. 종종 미국 내에서 흑인 용의자에 대한 백인 경찰의 과도한 진압과 폭행, 그리고 그런 사건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는 뉴스를 보게 된다. 유고 내전이 한창이던 1992년 미국의 LA에서는 흑인 폭동이 일어났다. 실제로 약탈과 방화가 일어났고 상점의 주인들은 허가된 총을 들고 상점을 지키기 위해 흑인청년들에게 총구를 겨눴다. 인구 10만 명당 수감자수는 미국이 압도적이다. 더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수감자 수가 압도적으로 발칸지역보다 많은 것은 단지 다 인종으로 구성된 미국 사회의 특수성으로 보아야 하나? 단지 미국보다, 서유럽보다 GDP가 낮다고 해서 더 폭력적인 국가가 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이유가 없는 추정일 뿐이다. 단지 자신들보다 못산다는 이유로 더 미개하고 미성숙한 사회라고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더욱 잘못된 것은 이런 서구의 시각에 대해 우리조차 별다른 생각없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모르면 찾아봐야 하는데, 남이 얘기해주는 대로 판단하고 싶어한다. 그게 편하고 빠르니까. 하지만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찾아봐야 한다. 발칸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발칸의 역사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좋아들 하는 미국의 역사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를 읽으면 지금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모르니까 관심이 없으니까 귀찮으니까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하긴, 뭐 자기 나라의 역사조차 관심이 없는데 말해 무엇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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