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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홍상현 옮김 / 이책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오늘도 하늘이 희뿌옇다. 벌써 일주일째인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희뿌연 하늘을 보는 건 봄이었다. 중국으로부터 날아오는 황사가 한반도를 뒤덮으면 황사에는 삼겹살이 좋다느니, 뭐가 좋다느니, 갑자기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고,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그랬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미세먼지다. 어떤 보도들에 따르면 황사보다 몇 배나 사람 몸에 좋지 않은 온갖 물질들이 섞인 것이 이번에 날아오고 있는 미세먼지라고 했다. 친절하게도 미세먼지에는 삼겹살이 효과가 없으니 어떤 음식들을 먹으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포털에는 그 음식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단번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일주일째 그러던 것이 어제 비가 오고 나면 그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도 그렇다. 아내가 임신 중이라 가뜩이나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시기인데, 미세먼지 덕에 또 다른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황사마스크를 사고 되도록 창문도 잘 열지 않고 생활하고 있지만 닫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희뿌연 안개 같은 미세먼지들이 창문 틈으로 문틈으로 조금씩 기어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서해안으로부터 직선거리로도 200km가 넘게 떨어진 대구에서도 이렇게 희뿌연 장관(?)을 연출하는 미세먼지가 독하다는 생각도 든다. 웬만해서는 날아가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특수물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미세먼지 예보를 하고 그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지만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대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 같다.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황사야 워낙 오랫동안 한반도로 불어와 이제는 없으면 허전한(?) 존재가 되었지만, 미세먼지는 아직 낯설다.
아주 조심스럽지만 노골적으로 중국 상해의 심각한 스모그를 보여주는 것으로 ‘혹시나 중국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요?’라며 슬며시 떠 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국가 차원에서 항의라도 제대로 하던지, 공문이라도 한 장 보내 역학 조사를 요구하던지 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 숨어서 눈치보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황사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스모그라는 단어도 아주 낯설게, 갑자기 듣게 되었고 황사도 그랬다. 그리고 느닷없이 미세먼지라며 호들갑을 떤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책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의 제목이 도발적이다. 죽이는가? 도 아니고 죽였는가? 다. 원서의 제목보다 더 잘 붙였다. 이미 지구가 죽었다는 말이다. 그렇다. 그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제시한 극단적인 경고를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다. 비합리적인 낙천주의는 인류의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험한 약점이기도 하다.” (p.10)
재기를 노리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최종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혐의가 인정되어 유죄가 되었다. 한마디로 사기꾼으로 공식 인증을 받은 것이다. 더불어 서울대 교수직도 파면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황우석은 신화와 같은 존재였다. 줄기세포, 배아복제, 난치병 치료 등으로 일약 영웅이 되었다.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만든 고(故) 잡스 형님보다 몇 갑절 값진 일을 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모두가 기대했다. 실제로 그런 연구와 학문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도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훌륭한 과학자가 나오면 다 좋은 거지 뭐.’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추호도 그가 거짓말을 한다거나 사기를 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대중의 집단적인 비합리적 낙천주의는 대단한 홍역을 초래했다. 느닷없이 영웅의 자리에서 사기꾼의 자리로 끌어 내려진 황우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둘로 나뉘었다. ‘내 저럴 줄 알았지.’ 라며 애써 발을 빼려는 무리와 ‘뭔가 음모가 있어. 그러실 분이 아니야.’라며 아직도 황우석에게서 메시아의 페르소나를 발견해 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책에서의 지적처럼 적어도 과학에 대해 비합리적인 낙천주의는 위험하다. 한 순간에 훅 갈 수 있다.
미세먼지를 접근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사도 중국에서부터 날아온 것이니까 당연히 미세먼지도 중국의 책임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적어도 그에 선행하는 자료분석과 연구가 따르기 전에 단정 짓는 것은 과학도 아니고 미디어가 취해야 할 태도도 아니다. 그냥 쇼다.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 증가에 절반의 책임을 갖게 되는 때는 아마도 몇 십 년 이후가 될 것이다. 게다가 부유한 국가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대부분은 불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사치성 소비에서 나온 것이다.” (p.128)
책에서는 줄곧 온실가스 증가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다. 1장의 제목부터 <탈출구는 없다>이다.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지금의 온실가스 증가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주된 책임을 개발도상국, 그 중에서도 중국과 인도에게서 찾는다. 중국과 인도 중에서도 중국에 포커스를 맞춘다. 한반도 이남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 같은 경우에는 워낙 예전부터 중국의 황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왔던 터라 지금의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당연히 중국의 무분별한 성장정책과 뒤쳐진 환경정책에 방점을 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당장 매년 봄마다 중국산 황사의 괴롭힘을 받아 왔고 그에 더해 듣도 보도 못했던 미세먼지가 봄도 되기 전부터 난리를 치니 당연히 중국이 가장 위험한 기후위기의 배후세력이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미 대기 중에 있는 온실가스의 75퍼센트는 이미 경제성장을 종료한 이른바 부유한 국가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날씨예보를 보지만 실제로 믿지는 않는다. 몇 주 전 영동지방에 일주일 넘게 지속된 폭설에 대해서도 제대로 예보하지 못했다.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최첨단의 과학 장비를 갖추고도 날씨하나 제대로 못 맞추냐고 사람들은 손가락질 한다. 하지만 그런 과학을 깡그리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그렇게 빗나가는 예측보다 들어맞는 예측이 실제로는 더 많기 때문이다. 기후과학자들이 내어 놓은 주장 또한 과학이다. 성장, 발전, 선진국에 대한 알레르기가 같은 좌파, 환경론자들이 만들어 낸 프로파간다가 아니다. 과학자들이 분석해 낸 데이터다. 그렇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미 할 만큼 최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그것을 지구의 대기 중에 띄어 올린 사람들은 이미 성장을 마친 선진국들이다. 성장의 뒷배를 타고 개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올라서려는 중국과 인도는 그들을 보고 배운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은 이미 먼저 해 놓은 것을 따라한다고 주범으로 모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니가 하면 불륜 이라는 논리와 맥락상으로 일치한다.
“연간 온실가스 발생이 지금 멈춘다고 해도 지난 수십 년간 배출한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 오랜 시간 남아 지구의 온도를 수 세기 동안 높일 것이다.” (p.27)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은 기후위기와 지구온난화, 온실가스 등에 대해 국제적인 협의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일단 모이는 것 자체도 힘들도 모인다 해도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아무리 이상기후가 일어난다고 해도 당장 인류에게 재앙을 안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누가 책임을 지거나 양보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온실가스 배출이 다 같은 도덕적 바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배출량이 같다고 해도 어떤 배출은 더 많거나 다른 가치를 지닌다. 아프리카의 농부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과 미국의 피부과 전문의가 주말에 라스베거스로 놀러 가려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은 같을 수가 없다.” (p.112)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거의 모두는 오늘도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살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지금 멈추어도 이미 대기 중에 존재하는 온실가스로 인해 수 세기 동안이나 지구의 온도는 점진적으로 상승한다고 하는데, 오늘도 지구의 곳곳에서는 온실가스를 더하고 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씻기 위해 보일러가 가동 되었다. 온실가스 배출. 밥을 먹기 위해 각종 조리도구와 주방기구를 사용했다. 온실가스 배출. 설거지를 했다. 온실가스 배출. 차를 타고 출근했다. 온실가스 배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컴퓨터를 하고 등등등등……. 나는 오늘도 줄곧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오늘도 다국적 기업의 OEM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열악한 제조업 환경에서 근무하는 중국의 어린 노동자들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시범경기가 한창인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애리조나에 있는 야구장으로 간 관중들도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심지어 평일 오후에도 야구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니.
중국의 어린 노동자와 미국의 메이저리그 관중과 나의 오늘 하루를 직접 비교할 수 없다. 동일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그것에 대한 가치와 도덕적 잣대는 달라야 한다는 책의 주장에는 동의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메이저리그 관중이, 라스베거스로 놀러가는 미국의 피부과 전문의의 소비성 온실가스 배출을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설득의 논리로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온실가스의 가파른 배출량을 묵과할 수 없다는 전제아래, 최대한 소비성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나가자는 전 지구적 설득과 합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분명히 국제적 협의나 협약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미세먼지가 아무리 날아오고 그것이 일주일이 지나도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정부에서는 일언반구 말도 없고 미디어라 하는 것들은 중국만 보여 준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에서 최소한 납 성분이 포함된 미세먼지를 최소한 방지하기 위해 현재 임산부들에게 황사마스크 하나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p.207)
“지구의 기후시스템은 변화된 과정을 따르고 미래에는 우리가 손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법에 대한 복종이 아닌 윤리적 의무를 주장해야 한다. 법령집에 쓰여 있는 법보다 더 높은 법에 복종해야 한다.” (p.284)
기술이 우리는 구원할 수 있을까? 이미 죽어버린 지구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나는 비관적이다. 기술은 이미 충분하다. 기술과 첨단의 과학에 대한 낙관주의가 문제이다. 책은 윤리적 의무를 강조한다. 법조문, 규정 같은 것들 보다 상위에 있는 양섬의 법, 윤리적 책무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전 지구적 공동체주의 담론은 분명 시작되어야 한다. 한 때 신자유주의 광풍을 미화하는 데 쓰인 <세계화> 같은 얼빠진 얘기 말고, 전 지구적 위기를 함께 직면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는 담론 형성이 필요하다.
“4도 더 뜨거운 지구는 2,500만 년 전 중신세 이후로 어떤 시기보다 뜨거울 것이며, 세계에는 이미 얼음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246)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가장 일선에서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는 학자들의 공통된 주제는 <4도> 이다. 머지않은 시기에 지구의 온도가 4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문명의 발전과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온실가스는 지속적이고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그것은 이미 지구의 대기에 존재한다. 중국과 인도에서 내일 당장 모든 차량의 통행을 멈추고 모든 발전소와 공장의 가동을 멈춘다 해도 지구의 온도 상승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진짜 심각하고 비관적인 예측이다. 지구의 온도가 4도 이상 상승하게 되면 일어나게 될 구체적인 재앙에 대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지금껏 본 온갖 재난영화 그 이상일 것이라는 것은 당연지사다. 얼음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이미 근래 몇 년 동안 북극의 얼음이 엄청난 속도로 녹고 있다는 뉴스는 수많은 사람들이 봤다.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위기의식은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뉴스를 본 직후에 잠깐! 그리고 바로 잊어버린다. 모르겠다. 어차피 변하지 않고 좋아지지 않을 운명 같은 것이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며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편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지구는 살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의 무관심은 정말 지구를 죽일 수도 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온전한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p.5)
하지만 이것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 아이, 내 아이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들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뭔가 필요하다. 책에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구체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뭔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도대체 어떤 놈이 지구를 죽였어?!!” 라며 범인을 색출하는 데 요점이 있지 않다.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봉착한 위기를 함께 맞으며 방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