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해주고 싶은 것들
변혜정 지음 / 영진미디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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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TV를 시청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온전히 모두 안 보는 것은 아니겠지만, 뉴스를 보기 꺼려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다른 프로그램도 애써 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뉴스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에게서 심히 불쾌한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이른 바 최루성 프로그램들을 겁낸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유달리 눈물이 많은 편이라, 억지로 눈물을 쥐어 짜내려는 의도가 다분한 프로그램임을 알면서도, 결국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 한심하기도 했다.

 

때문에 책의 저자인 변혜정 씨가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지독한 고통을 참아가며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노래를 불러준 장면을 ‘본방사수’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 저자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중증 천식과 중증 근무력증, 악성뇌종양. 사랑하는 남자와, 그 사랑의 결실로 얻은 소중한 두 아이와 함께, 지극히 평범하지만 사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살아왔던 저자.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하루하루 설명할 수조차 없는 고통과 싸워가며 그녀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들, 재원이 승원이를 지켜내고자 분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운 사실, 자신이 알 수도 없는 어느 순간 갑작스레 아이들의 곁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공포와 눈물겨운 사투를 벌인다.

 

책은 때문에 유언이자 편지이자 간절한 사랑의 눈물이다. 자신이 눈을 감은 후 언젠가 아이들이, 엄마가 그리워서, 엄마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눈물겹게 그리울 때가 온다면, 이 글들을 읽어주길 바랐다. 아이들의 성장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어미’의 마지막 선물이자, 또한 소원인 것이다. 그녀는 글을 통해 아이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또 받기를 바랐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랑, 그것마저 모성, 부성이라는 이름으로 규정짓고, 또 이를 교묘히 자본의 시스템에 접목시킨, 그런 우울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주절거리고 싶지 않다. 모성이든, 그 어떤 이름으로 정의하든 어미의 사랑은 그 자체로 자식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다.

 

억지 희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식을 위한 어미의 희생을 강요하고 미화하는 자본주의의 어두움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이념이나 사상 따위로도 감히 설명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받았던, 그리고 이젠 다시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변혜정 씨는 위대한, 특별한 혹은 아주 희한한 어머니가 아니다. 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모두의 어머니일 뿐이다. 그녀가 극심한 고통을 참아가며, 한 자 한 자 글을 남겨온 것도, 휠체어에 앉아 부축을 받으면서도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것도, 그녀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저 어머니, 부모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 다시 이 책을 꺼내들며, 먹먹함을 떠나 서러움에 힘겹다.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던 아이들을 하염없이 보내야만 했던 수많은 어머니들의 피울음이 여전히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저 무정한 바다를 바라보며 아이들이 신었던 운동화를 가슴에 안고, 그저 미안함에 서러움에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어머니들. 그들이 여전히 서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이 해줄 수 없었던 그들의 미안함이 대한민국을 갈 곳 모르게 서성이게 하고 있다. 수많은 노란 리본들의 물결 속에, 차디찬 바다 아래 잠든 아이들의 간절한 외침이 떠다닌다. 그리고 남은 어머니, 아버지들은 떠날 줄 모른다.

 

살려달라는 간절함보다, 그저 어머니로 조금만 더 머물고 싶다고 바랐던 변혜정 씨. 그리고 이젠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 오열하는 수많은 어머니들. 누군가는 유가족이라는 상황이 특권이 아니라며, 저주의 말을 퍼붓는다. 누구는 이것도 결국 잊혀질 것이라 가볍게 말한다.

 

하지만, 어찌 이 설움과 막막함이 쉽게 잊혀지고, 쉽게 더럽혀질 수 있으랴. 더 이상 어머니들에게 상처만을 주어선 안 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어머니를 만나 이 삶을 얻었지 않나.

 

뒤늦게 그녀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을 보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녀가 지금처럼 힘을 내어주길 바랐다. 재원이와 승원이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주길 바랐다. 지금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행복했듯, 앞으로 한없이 행복하기 바랐다.

 

더 이상 자식을 잃은 어미들의 슬픔을 모욕하지 말았으면 한다. 더 이상 한없는 가벼움으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손을 잡아주고, 함께 울어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자식이고, 부모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여전히 간절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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