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미스터리 북
이상우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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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호구지책 중 하나인 잡지 제작을 하다, 파리(Paris)를 주제로 ‘포토 에세이’를 꾸미게 되었다. 전 직장 선배가 최근 유럽을 다녀왔는데, 함께 담아온 풍경을 싣기로 한 것.

 

사실 파리처럼 유명한 도시를 주제로 잡지의 한 꼭지를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워낙 많은 이들이 다녀온 곳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많은 프로 작가들이 이미 작품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럴 땐 사람들에게 낯선 그 어딘가가 더 편하다. 그만큼 부담이 덜 하니까. 분명 언젠가는 들통이 나겠지만, 그래도 짐짓 허풍과 살짝의 ‘구라’도 가능하다.

 

선배도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냥 ‘예술과 패션의 도시’ 파리로 방향을 잡으면, 그다지 폼이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헌데, 이 선배에겐 나름의 ‘컨셉’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위안과 응원 그리고 희망’이었다.

 

파리라는 도시를 단순히 겉으로만 바라본다면, 자존심 센 파리지앵 그리고 수많은 유명 건축물들, 세계 패션의 중심,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똘레랑스’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그리고 시간의 결을 바라본다면, 파리는 단순한 패션의 중심도시, 예술의 도시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파리의 상징으로 불리는 ‘에펠탑’을 보자. 당시 ‘철골 덩어리 흉물’이란 비난을 받았던 이 탑은, 1889년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 때 세워졌다.

 

39만 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어떤가. 그 중 고작 10분의 1도 되지 않는 3만 5천점을 전시하고 있지만, 요놈들만 다 보려 해도, 60킬로미터의 동선을 15시간에 걸쳐 걸어야 하는, 이 넓디넓은 곳은 본디 왕궁이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왕의 궁전’은 역시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며, ‘인민의 공동재산’으로 명의이전이 이뤄지게 된다. 누군가의 말대로 단순히 큰 박물관이 아닌 프랑스 ‘문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전당인 것이다.

 

이렇듯, 파리를 상징하는 수많은 건축물들은 저마다 ‘피와 투쟁’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뿐 만 이랴, 지금도 파리는 하루 평균 3건 이상의 시위가 벌어지는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현장’이 아닌가.

 

선배는 파리를 통해, 서울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에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공화정은 단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의 처형으로 완결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내전과, 구체제를 지키려 하는 유럽 왕정국가들의 도전을 이겨내며, ‘100년’에 걸쳐 이룬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프랑스를 보며, 수많은 어처구니들이 사라진 대한민국의 오늘에 너무 비관하지 말자는 것. 우리의 피와 눈물이 담겨 있는 ‘민주주의’가,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역시, 언젠가 기필코 이뤄낼 역사의 진보 앞에 ‘잠시’일 뿐이란 메시지를 던져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는 파리는, 더욱 더 그리울 수밖에 없다.

 

아니, 당최 ‘미스터리’ 책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왜 생뚱맞게 프랑스 혁명이야기를 늘어놓는지, 요상하게 바라보시는 분들 계시겠다. ‘내 맘이야!’가 아니라, 지난여름 읽었던 이 책이, 파리와 연결되며 나에게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시 다가왔기 때문이다.

 

책은 한국 추리소설계의 원로이자,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이상우 작가가, 정통 추리물의 재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단편들과 추리소설 장르의 이해를 돕기 위한 여러 글을 묶은 것이다. ‘세계의 명탐정 21인’을 담아, 독자들에게 유명 작가의 주인공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추리소설의 역사와, 이 장르가 여전히 탄탄한 마니아층을 거느리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를 나름의 시대적 근거에 입각해 설명하고 있다. 근면성이 돋보이는 책임엔 분명하다.

 

그런데, 왜 난 갑자기, 파리와 이 책을, 민주주의와 추리소설을 연결시키게 되었을까. 사실 내가 한 것은 아니었다. 이상우 작가의 글이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에서 다시금 의미심장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다음과 같았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발달과 추리소설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민주주의가 발달되기 전에는 과학적인 수사라는 것이 없었으며, 무고한 사람이 처벌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탄생과 더불어 태어난 추리 소설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 나치 독일과 파시즘 이탈리아는 이런 추리소설이 권력자의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추리소설 말살 정책을 썼다.

 

야만적인 정부와 무능한 경찰을 비웃어주듯 명쾌하게 범인을 검거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탐정의 활약을 그리는, 이 독특한 장르의 문학이 19세기의 민중에게는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문학이요, 오락이었다.

 

오늘날에도 이 기조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추리소설은 사회가 요구하는 문학이요, 오락으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다.”

 

이해가 차츰 가능해졌다. 내가 왜 유독 2013년, 추리소설․미스터리 장르에 심취했는지, 왜 MB정권 내내 〈CSI〉〈크리미널 마인드〉와 같은 범죄 수사물을 끼고 살았는지.

 

왜 나름대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고 자부하는 국가들, 그리고 거꾸로 겉은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상 많은 국민들이 사회 정의에 목말라 하는 국가들에서 ‘명탐정’들이 많이 탄생하고, 또 형사물, 스릴러가 인기를 얻고 있는지, 납득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실 이렇다 할 명탐정이나 멋진 경찰, 형사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당장 떠올려보면, 〈공공의 적〉강철중 형사 정도? 또한 여전히 추리․미스터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못하다. 적어도 점잔을 떨며 고상한 순수문학을 운운하는 이들에겐 그렇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혹은 그 반동기를 겪으며, 조금은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구․일본 등 유명 작가의 미스터리물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고, 국내에서도 실력 있는 추리 작가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런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글쎄, 아직은 무어라 판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느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 사회에 대해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어떻게 뒤틀리고, 기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현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친다. 이런 정부의 구호가, 왜 공허하게 들리는지, 아마도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으리라.

 

소설과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음모와 비리, 부패와 범죄가 지극히 평범하게 ‘현실’로 다가오는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아르센 뤼팽과 같은 불멸의 캐릭터가 탄생할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고독한 남자, 필립 말로나….

 

너무 비약이고, 또한 별 상관없는 주제들을 끼워 맞춘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어쩔 수 없이 파리와 미스터리․추리소설을 연결시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추리소설, 미스터리는 나의 ‘즐겨찾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부디 이것이 사회적 현상이 아닌, 순수한 ‘개인적 취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 생각해보니 우리도 멋진 캐릭터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구나. 홍길동, 전우치, 임꺽정 등이 있지 않은가!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것, 맞겠지?

 

아무튼 참 다양한 생각을 뒤늦게까지 하게 해준 책이다. 즐거운 추억 여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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