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불편한 진실 (반양장)
윤대규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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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아프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 스스로 비정상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처럼 위험하고 무모한 것이 또 있을까. 자신의 몸이 크게 다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음에도, 고통을 느끼는 감각의 상실로 인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죽음은 명백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우리의 분단 역사가 바로 그러한 모습이다. 분단 이후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니 그런 무참한 세월이 흘렀기에, 더 이상 우리는 분단을 ‘아파하거나’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남과 북이 갈라져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또한 그것이 오히려 통일보다 속 편하고 행복한 길이라는 착각마저 하고 살아간다.

 

책은 저자의 이야기처럼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정보나, 혹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기가 막힌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제목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애써 모른 척하며, 혹은 억지로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들을 꺼낼 뿐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이 사회가 처한 엄중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전히 국민들을 갈라놓고, 서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이슈가 있다. 바로 분단 문제, 북한 문제다. 새누리당조차도 입으로는 복지를 떠들고, 경제민주화를 떠드는 지금, 진보와(물론 민주당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겠지만) 보수를 구분 짓는 단 하나의 이슈는 다름 아닌 북한 문제다. 솔직히 인정하자.

 

지난 대선부터 이어진 NLL공방, 지금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태, 그리고 여전히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천안함 사건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은 반으로 쪼개져 서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혹은 서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자격이 없다고 공격하고 매도한다. 그렇다면 그 둘 중에 정말 정답은 어느 것일까. 둘 중 무조건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까.

 

여기에서 얼마 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매우 의미 있게 다가온다.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상당한 점수를 주었다. 기실 박근혜 정부가 막 출범한 직후였기 때문에, 대북정책을 제대로 펼칠 시간이 없었음에도, 또한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느낄만한 성과가 초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높은 평가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짧은 생각으로는 이것은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국민들의 바람이 담긴 것이라 본다. 제발, 전임 정부처럼 무기력하고 오만하고 시대착오적인 대북정책을 펼치지 말라는 충고, 혹은 명령인 것이다. 다시 열거하기조차 지겹지만 전임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제대로 된 남북관계의 진전이나 성과가 무엇이 있었나. 오히려 보수들이 목숨 바쳐 지켜야 할 안보만 악화되고,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국민들이 희생되어야 하지 않았나. 더구나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은 더욱 업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국민들의 메시지를 어쩌면 현 정부는 잘못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지금이다. 이산가족 상봉의 무산 이후 남과 북은 서로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그 사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우리 국민들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신중히 바라볼 여지도 사라지고 있다.

 

3대 세습을 찬성하느냐, 북한의 핵 개발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단순무식한 강요를 하며 보수는 상대방을 종북 아니면 우리 편으로 규정한다. 이는 진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 대한 인식, 혹은 북한인권이나 탈북자에 대한 인식 등을 잣대로 그들은 수구 꼴통과 우리 편을 나눈다. 이게 과연 현명하고, 또한 정답일까. 내가 보기엔 둘 다 아닌 것 같다.

 

이러한 갈라진, 그것도 엉성하고 편협하고 자기 이해에 매몰된 진영 논리에 의해,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평가되어 왔다. 또한 대부분의 정권이 대북정책을 장기적 안목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대응해왔다. 신중하고 현명한 정책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저자의 지적은 지극히 타당하다.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을 보면 대체로 일관된 원칙으로 수행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예상 밖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수습하는 차원의 임기응변식 위기관리 방식에 지나지 않았나 하는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 남북 관계는 그 현실적 특성상―그것이 최고 지도자의 의도에 의한 것이든 일선 병사의 실수에 의한 것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계속 발생하게 되어 있다. 수많은 전문가를 동원해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대북정책이 예상치 못한 조그만 사건 하나로 쓸모없이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낭비인가. 아니, 그러한 대북정책은 ‘정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북한 문제는 당연히 한반도 구성원인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무시한 대북정책, 통일논의는 동력을 상실하기 일쑤다. 때문에 냉철히 현실을 왜곡 없이 인식하고,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악의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이명박 정권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철학도 비전도 현실적 목표도 없는 대북정책, 통일논의가 얼마나 허황되고 또한 위험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해 나름의 의지를 가지고 정책을 만들어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은,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볼 때 1~3년 사이다. 그 시간이 지나버리면 관료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고, 공무원들은 솔직히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 다음 정권에 대한 준비와 조직과 개인의 ‘살 길’을 찾을 뿐이다.

 

어처구니없게 거의 모든 주요 국가기관이 동원된 부정선거로 인해 출범하자마자 ‘정통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 정부가 과연 어떠한 장기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북정책을 추진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불안한 기운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지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멍하니 상황을 바라볼 수만은 없다. 지금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 당장 추진해야 하는 일들을 하지 않고, 다만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로운 한반도조차 담보할 수 없다. 우리가 손 놓고 있는다 해서, 북한이 그리고 다른 모든 세계가 덩달아 같이 멈춰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고 있는 ‘관련국의 이해관계’ ‘북한 핵문제의 해법’ ‘북한 변화의 방향’ ‘대안적 정책제안’ ‘통찰력 있는 리더십’ 등은 북한에 대한 개인적 인식과 판단의 차원을 떠나 반드시 고민하고 또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오랜 시간동안 북한을 연구하고, 또한 고민해 온 저자의 깊은 성찰의 결과이자, 또한 지극히 당연하지만 아무도 쉽사리 말하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국제정치학, 북한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물론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읽어봐야 할 책이다. 감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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