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 - 찬란한 성공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요코다 마스오 지음, 양영철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지난 해 11월 11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명동 한 복판에 글로벌 SPA 브랜드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이 오픈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개장 당일 아침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미리 매장 앞에서 줄을 길게 늘어뜨리며 기다리고 있었고, 오픈 행사가 진행된 13일까지 매장 주위에는 항상 5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기했다. 아울러 오픈 3일 만에 매출액 36억 원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유니클로’에 대한 인기를 실감나게 했다.

 

이미 유니클로는 일본은 물론 세계가 주목하는 ‘성공 신화’의 표본이다. CEO 야나이 다다시는 이 시대의 ‘카리스마 경영자’로 불린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이미 그를 일본 최고의 갑부로 선정했다. 유니클로는 소니와 도요타 같은 쟁쟁한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15퍼센트의 이익률을 자랑하며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금은 허망해진 도요타의 신화에 이어 너도나도 유니클로의 성공을 추켜세우는 분위기다.

 

여기서 한 권의 책이 주목된다. 이미 2005년 ‘아마존 닷컴’의 잠입르포를 통해 웹 시대의 노동소외현상을 고발했던 저널리스트 요코다 마스오의 《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다. 그는 성공의 신화 속에 가려진 유니클로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곧바로 우리에게도 다가온다. 국내 의류 제조업체에게도 그의 고발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말 일본 유니클로 측은 이 책의 한국어판 발행을 중지해 달라는 출판금지가처분신청을 냈다. 그리고 올해 1월 법원의 기각으로 비로소 책은 발행될 수 있었다. 참 흥미로운 모습이다. 왜 유니클로는 그토록 이 책이 한국에서 발행되는 것을 막으려 했을까.

 

사실 일본에서 이 책이 2011년 3월 발행되었을 때에도 유니클로는 발행 금지와 피해 보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 한다. 하지만 출판사 측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취재에 의한 사실만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유니클로는 전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이를 추앙하는 책들이 국내 서점가에도 적지 않게 나와 있는 상황이고, 최근 제일모직도 유니클로를 따라 잡겠다는 목표로 SPA 사업에 뛰어들었다. SPA는 원료 조달에서 제조 및 소매까지 한 회사에서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세계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고, 또한 소비자들에게 질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 비난할 일은 물론 아니다. 배울 점이 있으면 분명 배워야 마땅하다. 특히 우리는 유난히 일본의 성공에 자극을 많이 받는 민족이 아닌가. 도요타의 허망한 사례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과연 유니클로의 성공이 어디에 기반하고 있는가이다. 만약 중국 등 해외 생산현장에서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강요한 결과로 우리가 값싼 유니클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당한가.

 

저자는 책의 말미에 유니클로가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는 브랜드 ZARA를 소개한다. 스페인의 글로벌 기업 ZARA는 유니클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유니클로의 정규직 비율이 10%인데 반해, ZARA는 80%에 달한다. 유니클로처럼 인건비를 줄여 효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눈높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생산 시스템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방식을 택한다.

 

유니클로가 중국 공장의 공개를 한사코 꺼리는 것에 반해 ZARA는 그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물론 제작 중이거나 디자인에 들어가 아직 시판하지 않는 제품을 제외하고 말이다.

 

여기에 더해 유니클로의 CEO 야나이 다다시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국내 재벌 기업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독단적이고 제왕적인 경영 스타일,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 자신만이 기업을 이끌 수 있다는 강한 신념 등은 마치 삼성 이건희 회장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에서의 장시간 저임금 노동, 직원들의 잦은 이직, 낮은 정직원 비율. 아르바이트 사원에게까지 강요하는 가혹하고도 비정상적인 근무 매뉴얼. 이는 저자가 파악하고 취재한 유니클로의 모습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국내 의류업체의 현실이다. 국내 업체들 역시 중국,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에서 저임금 노동력으로 의류를 제조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의 노동자 폭동 사태를 기억하는가. 노동 착취라는 유니클로의 의혹은, 그대로 우리 기업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적절한 임금과 공정한 노동력 위에서 질 좋은 저가 의류가 나온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것은 마치 신기루처럼 멀게만 보인다. 국제 기업들이 아시아 노동력을 착취해 이윤을 뽑아내는 현실, 그 현실을 유니클로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우리의 기업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더 이상 값싼 노동력으로 의류를 생산할 수 없는, 그 언젠가가 온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까지 올린 수익을 바탕으로 타 사업에 진출할 것인가? 아니면 북한과 같은 마지막 ‘노동 착취 낙원’을 전쟁을 해서라도 쟁취할 것인가.

 

우리는 더 이상 정의롭게 성장하고, 정의롭게 성공하고, 정의롭게 풍요를 누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가.

 

책은 유니클로라는 기업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책은 동시에 신자유주의 시대의 모든 성장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추악함을 말하고 있다. 그 누구도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내가 구입한, 당신이 구입하고 사용하고 있는 그 어떤 상품이 온전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한 것인가, 아니 관심은 있는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타인의 착취를 용인하고 눈 감는 것은, 스스로를 착취하고,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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