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는 섬이다 - 김상훈 포토에세이
김상훈 지음 / 매일피앤아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선거의 계절이다.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너도 나도 국민의 머슴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떠들어댄다. 이른 바 애국자들의 계절인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누가 정말 일꾼인지, 누가 협잡꾼인지, 누가 도둑놈인지. 국민들이 바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바보다.

 

개인적으로 대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곳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우연인지, 아님 부러 그 지역을 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유감은 그 도시에 없다. 친척은 물론 내가 좋아하는 선배, 동기, 후배 중에서도 대구 출신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구는 싫다.

 

대구 출신의 한 문인이 《반성》이란 책에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돌아본 글을 담았다. 읽어보았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뜨거운 피가 뿌려지고 있을 때, 대구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는, 자신이 바로 그 시간에 있었던 공원의 그 느긋한 외면에 대해, 그는 이야기했다. 시간이 흐른 뒤, 바로 그 때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알았을 때, 그때 문인은 자신의 고향 대구에 전율을 느꼈다.

 

이 책의 저자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선거철만 되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수많은 정치지망생, 정치인들의 홍보 책 중 하나다. 하지만 조금 다른 형식을 취했다. 어차피 펴내봤자, 읽는 이들도 별로 없고, 내용도 부실할 것이 뻔한 자전 에세이 보다는 자신이 출마할 지역의 사람들, 동네 모습을 담은 포토 에세이 형식을 취했다.

 

나쁘지 않았다. 지겹다 못해 나무에 대한 극도의 죄스러움이 들 수밖에 없는 선거철 정치인들의 자서전 등에 비해 이 책은 그나마 덜 위선적이고, 덜 촌스럽고, 덜 가증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광역시 서구에서 출마하겠다고 나온 저자는 서구라는 동네의 낙후된 면, 못 사는 사람들, 때려 부수어야 할 오래된 시설물들을 카메라에 담아 항의하듯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바꿔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과연 누구를 겨냥한 항의인가? 서구 주민들에 대한 협박인가? 아니면 또 다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겨냥하며, 비난과 저주의 한탄을 늘어놓을 셈인가? 대구광역시 서구가 저자의 말처럼 낙후되고, 외로운 섬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면, 그것이 온전히 지난 두 정권의 잘못인가? 철저히 지역 투표에 반세기를 올인해 온 대구에서 감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한나라당, 아니 새누리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 가능 100%인 대구에서, 그렇다면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왜 없을까? 현 정권이 당신들이 그리도 저주하는 전라도 정권인가? 저자가 대구시 경제통상국장까지 지냈다면 아마 공직 생활을 오래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또 그것을 내세워 경제전문가 운운 하는 것 같은데, 미국 오리건주립대 정책대학원 석사까지 취득한 이로서 현 대구광역시 서구의 경제적 낙후가 온전히 누구의 책임인지, 본인은 스스로 알고 있지 않을까.

 

저자가 서구의 낙후함을 강조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 중에 오히려 나는 정감을 느낀 것들이 많았다. 서민들의 모습, 그들의 웃음, 좁은 골목길과 시장통의 정겨움까지.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어져야 할 구태에 다름 아닌 것 같다.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저자는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무조건 때려 부수고, 그 소멸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과 경제성장을 원한다면, 이미 실패의 사례는 너무나 많다. 현 정권의 고귀한 가르침 중 하나 아닌가.

 

대구를 고담시로 부르며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심한 행동이다. 대구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을 모독하는 행위다. 그러면 안 된다. 어찌 보면 대구는 이 시대, 또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이다.

 

하지만 모든 현상엔 원인과 배경과 근거가 존재한다. 왜 다른 지역 사람들이 대구를 싫어하고, 모욕을 주려 하는지, 한 번 쯤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초지일관 지역감정과 이해에 기반한 투표를 해왔던 대구가 왜 경제적으로 낙후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한다.

 

감히 대구를 모르는, 감히 저자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이런 말을 지껄인다면, 많은 이들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난 잘 모른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 달라. 정중히 사과하고, 배우겠다.

 

하지만 난 대구의 침묵과 대구의 추종과 대구의 오만과 대구의 슬픔을 느낀다. 대구 지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대구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모든 일꾼, 활동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결국 대구는 대구 사람들이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이번 총선, 대선 결과가 다시 한 번 대구 지역을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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