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평범한 노동자 - 前 민주노총 위원장의 노동에세이
이석행 지음 / 북산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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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길지만 그가 어떤 말을, 어떤 약속을 했었는지 한 번 봅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나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꿈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이 소중한 땅에 기회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나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정말, 눈물이 다 납니다. 그의 약속과 희망대로라면 지금쯤 우리는 모두 땀 흘린 만큼 대가와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살맛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 아시죠?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이죠.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장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는다면,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새삼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노동을 팔아 그 대가로 삶을 유지합니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그들이 보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단어는 여전히 국민들에게 의혹의 대상입니다.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전혀 생뚱맞게 빨갱이란 말들이 오갑니다. 세상에 자신의 임금을 올려 달라, 복지수준을 향상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빨갱이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뭐든 이념의 색깔을 씌우면 통하던 세상, 물론 지금도 레드 콤플렉스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합니다.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저자는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노동과 연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여전히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시대에, 그는 다시 희망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름다운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말합니다.

 

김진숙 동지의 목숨을 건 고공투쟁,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죽음의 행렬, 여기저기 경쟁력 강화와 국가경제의 회생을 이유로 해고당하고, 죽어나가는 노동자들. 여전히 대한민국은 노동 후진국가요, 복지 후진국가요, 인권 후진국가입니다.

 

대기업과 정부, 일부 특권층의 욕망을 위해 대다수 국민들이 희생해야 하는 불의의 시대, 이 땅의 노동자들은 오늘도 자신의 삶을 위해,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기차를 보지 못하고 소중한 생명을 빼앗긴 노동자들.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이미 다른 노동자들이 그 일을 합니다. 또 다시 신자유주의, 경쟁력 강화, 노동 유연성 강화라는 폭주 기차는 노동자들을 덮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안 해본 게 없다며, 뭐든 잘 아는 것처럼 떠벌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봤다고 자랑(!)하는 그는 정작, 노동자들의 삶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오직 대기업과 1%의 세력들을 위해 복무할 따름입니다.

 

여전히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시간, 부족한 임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노동자. 그들의 노고와 아픔과 분노를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흔들리면 우리가 흔들립니다. 그들이 아프면 우리도 아픕니다. 그들은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땀 흘려 일하면 그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일한만큼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 그 상식을 이제는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석행 전 위원장의 바람대로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거대한 자본 권력을 누르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게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더 발로 뛰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땅에 수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에 자주성을 갖고 어떤 외부 권력으로부터도 억압당하지 않는 그날까지,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복직을 위해 몇 년간의 거리 투쟁에 매달려도 되는 않을 그날까지, 수많은 이주 노동자가 강제 추방의 공포와 사회적인 차별대우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그날까지, 수많은 문화 예술 노동자가 끼니 걱정 없이, 생활비 걱정 없이 작품 활동에 전념해도 될 그날까지 나는 더 크게 연대를 외치고 더 날카롭게 권력에 쓴 소리를 날려야 하며 더 오랜 시간 투쟁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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