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겨울 평화 발자국 6
강제숙 글, 이담 그림 / 보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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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나름대로 알찬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부러 사람이 많은 8월초·중순을 피해 월말에 다녀왔는데요. 덕분에 차가 막혀 고생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즐거운 휴가였습니다.

 

다녀온 곳 중에는 전주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1박을 했습니다. 전주에서는 한옥마을을 찾았는데요. 경기전 앞에서 한 시민단체가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조그만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게시물을 전시해 두었는데, 각 분야별로 친일을 한 인사들과 항일 운동을 했던 인사들을 비교해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거제에도 다녀왔습니다. 통영을 지나 왔는데, 윤이상 선생님의 모습이 담긴 현수막과 전시물들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문득 그 분이 더 그리워지더군요. 거제에는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을 찾아 둘러봤습니다. 전쟁이 남긴 너무도 큰 상처들이 고스란히 다가왔습니다. 물론 편향되고 반공 일색인 설명들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나마 과거를 기억하도록 애썼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내는 모처럼의 휴가마저도, 꼭 이렇게 우울한 곳을 찾아야 하냐는 눈으로 절 바라봤지만, 이내 아내 역시 공원을 둘러보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럼요. 사랑스런 제 아내 역시 이 땅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민족이자, 조선인이니까요.

 

《끝나지 않은 겨울》은 휴가를 떠나기 전 읽었습니다. 주로 청소년,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형식이기에 금새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운이라고 하기엔 죄스러운 감정이 남아 한동안 멍하니 책을 바라봤습니다.

 

책은 정신대 할머님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김순덕 할머님, 배봉기 할머님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고 말합니다. 김순덕 할머님은 1991년 우리나라에 사는 분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증언한 분입니다. 배봉기 할머님은 전쟁이 끝났을 때 오키나와에 남았는데, 1970년대 가장 먼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힌 분입니다. 저자는 1972년 오키나와가 미군정에서 일본으로 반환되던 때, 불법체류자였기에 강제 출국을 당하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위안부’임을 밝혀야 했던 할머니를 잊을 수 없다고 적고 있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제가 감히 평화주의자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사람을 마구 죽이는 전쟁, 액션 영화도 거리낌 없이 보고, 그런 게임도 즐겼습니다. 아울러 군대에 가 살인을 배우기도 한 죄 많은 영혼입니다. 진정 제가 평화를 염원하고 전쟁을 혐오했다면 입대를 거부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전 겁 많고 어리석은 녀석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전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전 어떤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전쟁은 지구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어떤 고귀한 명분도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또한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 어린이, 노약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상 그 어떤 전쟁에서도 항상 그들은 가장 많은 피해를 겪었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가장 많이 죽어나간, 그리고 고통을 겪은 이들은 바로 여성과 어린이들이었습니다.

 

그럼 우리 역사를 다시 바라봅니다. 위안부 할머님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갖은 고통을 겪고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힘없고 나약해 그들에게 고통을 넘길 수밖에 없었던 국가라는 괴물은, 그리고 비열한 인간들은 할머님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덮으려 했습니다. 이는 비단 일본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정부라는 것 역시 이들의 고통을 조용히 묻으려 했습니다. 그런 일들은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어처구니없는 괴물의 모습입니다.

 

책의 제목과 같이 할머님들의 겨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할머님들의 집회는 1000회를 맞이하려 합니다. 그 수많은 시간동안 외친 진심어린 사죄와 보상이라는 요구에 일본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일본 정부만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 국민 모두가 할머님과 함께 했다면, 과연 일본은 지금처럼 뻔뻔히 침묵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얼마 전 기가 막힌 뉴스들을 보게 됐습니다. ‘신 한류’라는 제목으로 우리 걸그룹들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기분이 좋아야 할텐데, 왠지 모를 모욕감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일본에서 짧은 치마와 핫팬츠를 입고, 나이에 맞지 않은 섹시어필한 댄스를 추는 모습. 거기에 열광하는 일본인들. 물론 순수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생각이 꼬여버린 전 그렇게만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음악과 함께 자신들의 육체를 함께 판매하고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걸그룹 카라의 공연 모습 중 유난히 그들의 엉덩이를 부각해 돌아가는 카메라를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 그렇게 느꼈습니다.

 

70~80년대 일본 관광객들은 당당히 한국에 섹스관광을 다녔습니다. 지금도 물론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돈 좀 만진다고 일본인들이 했던 짓을 동남아와 중국에 가서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여전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전 이런 모습들이 전쟁 기간 중 성욕을 풀겠다는 이유로 조선인 처녀들을 강제로 전장으로 끌고 간 일본군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을 돈으로 유린하는 모습. 우리는 어느 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에게 또 한 번의 죄를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가가 보호해 주지 못한 할머님들의 고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모든 위안부 피해자들이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버티겠다는 속셈이고, 무정한 세월이 그것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공식적 차원으로 아무런 말도 못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히려 독도 문제와 관련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정말 무참하고 무정한 세월입니다.

 

할머님들의 겨울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요. 저자의 노력처럼 많은 이들이, 어린이들이 과거의 가슴 아팠던 기억들을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아울러 도저히 회개될 수 없는 어른들의 추악한 현실도, 똑바로 직시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서 점점 그런 잘못된 어른들이 발붙일 수 없는 땅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게 용서를 요구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고 용서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돈에 팔려 시집오는 어린 신부들을 폭행하고 살해합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급기야 분노를 참지 못해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금지시켜 버렸습니다. 사랑을 법으로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정말 부끄럽고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우리 스스로 일본인들과 다른 ‘인간다움’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할머님들의 긴 겨울도 끝낼 수 있습니다. 할머님들이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심정이 어떠할까요.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이제부터 해 보려 해요.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데 내가 산 세월은 돌아보니 내내 한겨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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