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 - 안견과 목효지 꿈속에서 노닐다
권정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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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가 결국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조금 허무하더군요. 300일 정도 국무총리에 있었나요? 그가 300일 동안 이루고자 했던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동안 학자로서 쌓아왔던 명성이나 존경을 내팽개치고 이명박 정권의 총리라는 권력을 얻은 결과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소설 몽유도원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 그리고 세월의 무상함. 뭐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안견과 목효지. 그리고 시와 그림을 아끼며 의로움을 지키려 했던 안평대군과 역시 야망을 위해 살생을 서슴지 않았던 수양대군. 목효지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평온한 삶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여인 초요갱.

 

책은 몽유도원도라는 그림을 배경으로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서로 상처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 물음은 선뜻 답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사실은 누구도 그 이유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었던 안평대군은 시와 음악, 그림을 사랑했던 풍류가였던 모양입니다. 그의 둘째 형 수양이 활쏘기와 사냥을 즐기던 무인의 기질을 타고 난 것에 반해 말입니다. 언제나 그의 집에는 시인과 문인들이 끊이지 않았고, 노랫소리와 시 읊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만약 왕실이 아닌 여느 양반집에서 태어났다면 한 세상 잘 노래하다 갔을 위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꾼 꿈을 안견에게 그림으로 표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안견은 ‘안평대군의 꿈이되 또한 나의 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단 삼 일만에 화폭에 그의 꿈을 담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몽유도원도입니다. 안평이 꿈꾸었던 이상의 세계. 그의 무릉도원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죠.

 

안평은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이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정치를 하고자 꿈꾸었을지 모릅니다. 몽유도원도처럼 꿈속의 이상향을 현실로 만들고자 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끼리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해야 했고, 결국 패배자가 되어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소설은 수양대군 즉 세조가 난을 일으켜 단종을 폐위하고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을 중심축으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 화가 안견과 풍수가 목효지의 꿈과 삶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긴 자들이 아닌 역사의 패배자들을 중심에 두고 그들이 꿈꾸었던 삶과 꿈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 소설은 다양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히 목효지와 안평의 모사인 이현로의 풍수대결은 흥미롭습니다. 같은 땅, 같은 곳에 대한 상이한 해석. 풍수지리를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하면서도 이를 가벼이 넘기지 않은 당시 권력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땅의 기운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 이는 풍수가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사실 인간이 자연의 뜻을 거스른 대가로 돌아온 것들은 무엇일까요.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지금의 우리들을 생각해보면 나무 한 그루, 땅 한 뙈기도 소중히 여기던 조상의 슬기가 새삼 그리워집니다.

 

조상의 잘못으로 노비가 되어버린 목효지는 자신의 풍수적 지식을 이용해 신분 상승을 꿈꿉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묘를 새로 모실 천하제일의 명당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어느 이름 모를 여인의 시신이 제대로 된 묘하나 없이 산속에 버려지는 것을 본 뒤 그는 다시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명당 자리는 무엇인지 말이죠.

 

“언젠가 소덕문 밖에 버려지는 죽은 처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들짐승 먹이로 방치된 시신을 보며 죽어 누울 곳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였소. 좋은 땅, 나쁜 땅 가리지 않고 그저 죽어 시신이 훼손을 면할 수 있는 땅 한 평, 그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손바닥만 한 땅이지 명당이 아니었단 말이오”

 

안견은 부끄러웠다. 모두들 죽음을 무릅쓰고 사지를 향해 뛰어가는데 홀로 등을 보인 채 그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육 년 전 삼각산에서의 일이 새삼스러웠다. 명당을 찾겠다고 거친 산줄기를 짐승처럼 뛰어다니는 한 사내. 풍수를 배워 노비 신세를 면했다가 다시 노비로 내쳐지고 만 지독히도 운이 없던 그 사내. 그가 이제 명당이 아닌, 가난한 백성을 위한 땅 한 평을 찾겠다고 목숨까지 내놓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남았지만, 지금까지 임기 중 이른 바 ‘회전문 인사’로 여러 요직을 거친 인물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참여연대의 보고서를 보니, 그들이 단 몇 년 만에 수십억의 재산을 불렸다고 하더군요. 수완이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름을 더럽히면서 모은 재산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제가 아직 무지한 까닭에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아직 어린 저이지만, 인생은 한 편의 그림과도 같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해봤습니다. 안평대군의 바람대로 몽유도원도는 숱한 시간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것이 아닌 일본의 국보로 보관되어 있다는 아이러니도 있지만요.

 

안평의 꿈은 사라졌고, 안견의 이름도 잊혀졌지만, 그림은 살아남아 지금도 그들의 이상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짧고도 짧은 시간 동안 마치 하루살이처럼 살다 스러져갈 우리들이 남겨야 할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수많은 재산과 명예,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들은 온전히 소중한 것일까요.

 

꿈을 잃어버린 이들의 한숨 소리가 보다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룻밤 꿈과도 같은 인생길. 모두들 아름답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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