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DJ - 김대중 평전
박호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후배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흔히 요즘 젊은이들이 아무 고민 없이 살고 있다고 빈정거리는 어른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상에 어찌 그리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까.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처참한 시스템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이들에게 기성세대의 빈정거림은 사실 가소롭게 느껴진다.  


이야기는 흘러 현 시국 이야기가 나왔다.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행여 부족하다 하더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지금 이 시간 역시 엄중하다. 과거를 모두 꿰뚫어야만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기성세대들의 오만이자 엄청난 착각이다. 그러는 자신들은 정작 바로 어제 일을 마치 언제 있었냐는 듯 잊지 않았던가.

어찌하다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승만부터 지금의 이명박까지. 이야기를 하는 도중 문득 두려웠다. 예전 서울대 학생들이 뽑은 가장 복제하고픈 인물 1위가 박정희였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건 역사에 대한 망각 차원이 아닌 철학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복제라는 단어 단체가 주는 혐오감과 무참함을 넘어 왜 박정희를 복제하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다. 
 

 

다행히 후배들의 입에서 그런 무참한 언사가 나오지는 않았다. 안도하는 내 스스로가 다시 한 번 무참해졌다.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나는. 대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의 서거가 안타깝고, 이것이 웬일인지 자연스럽지가 않다는 이야기였다. 고령의 노인이, 그것도 지병을 가지고 있는 이가 떠나갔는데 무엇이 이들에겐 부자연스러웠을까.

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그런 당혹감은 비단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나 역시 체념 속의 숨긴 당혹감과 억울함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생동안 참으로 지독한 편견과 오해 속에 살아왔던 한 인간에 대한 생각이 새삼 술잔을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유 없이 후배들이 고마웠으며, 내 자신이 심하게 혐오스럽기 시작했다.

난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건만 김대중을 이야기할 때마다 내가 전라도 출신이 아님을 밝혀야 했다. 물론 어느 누구도 나에게 출신을 묻지 않았다. 자기 검열의 무참한 발로였다. 한심했다. 출신 지역에 따라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 시대가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그러한 굴레 속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부적절했다. 적당한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주 쉽게. 어떤 이를 평가할 때 그의 공과 과를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박정희에 대한 공과 과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다. 이해와 인정, 혹은 동감은 적어도 나에겐 커다란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비굴하게 고개 숙이고 있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이가 만들어낸 것과,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만들어낸 것은 분명 그 평가에 있어도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과정을 결과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믿음의 결과다.

때문이다. 내가 김대중을 박정희보다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빨갱이, 절름발이, 기회주의자, 그리고 신자유주의자. 모든 수식어들이 그에겐 적절치 않았다. 마찬가지이다. 조국 중흥의 아버지, 한국 경제 발전의 신화를 이룩해낸 애국자. 이따위 수식어 역시 박정희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사실과 바람을 혼동하는 일은 언제나 당혹감과 무참함을 동반하게 된다.

김대중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이 땅의 평화와 화해를 염원했다. 그리고 죽어서까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자신의 죽음으로 녹게 만들었다. 적어도 남북이 함께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것만으로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돌아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김대중은 서럽게 울었다.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문익환 목사의 마지막 길에서도 그는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살다 간 동지들의 죽음을 서러운 눈물로 함께 했다. 온갖 위선과 모욕이 가득 찬 추모사 따위는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마음으로 민주주의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라 말했다. 어쩜 그는 행복했던 사람이었으리라. 평생 고난과 함께 했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이 땅의 수많은 이들이 자신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도 잊은 채 하루하루 버티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그는 진정 행복한 이였다.

매일 매일 거짓과 위선 속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이들. 자신의 권리보다는 하찮은 이익을 위해 인간성을 포기해야 하는 이들. 모욕을 당하며 그 모욕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 김대중은 그들을 위해 엉엉 울다, 그렇게 돌아갔다. 그리고 남겨졌다. 이렇게 우리는 남겨지고 말았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 제대로 보고는 있는지 알 수 없다.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도, 주변을 살핀 후에 비로소 마음을 놓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전 바른 말, 적어도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말을 겁 없이 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고, 그런 이가 다시 한국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 그토록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4대강 살리기로 숨겨진 대운하 사업이 결국 이 나라 이 땅을 모조리 죽게 만들 것이란 말이 그토록 어려운 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땅에 새로운 독재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망령이 났다고 했다. 그래도 전직 대통령이란 자가 어찌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오히려 김대중을 모욕했다. 자신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을 보라. 정말 한 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제발 닥쳐라. 그 더러운 입을 다물라.

어디엘 가든 어느 누구와 있든 이 말을 빼놓을 수 없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을 위해 국가가,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여지껏 장례도 치르지 못한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슬픔과 분노에 찬 가족들과 시신을 보관하는 비용을 치르지 못해 쌓인 빚 5억 원 뿐이다. 임진강 유가족들에겐 희생자 한 명당 5억 원의 보상비가 지급된다고 들었다. 그들의 죽음 역시 안타깝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과 국가의 폭력으로 살해당한 이들에 대한 처우가 어찌 이리 다를까. 누가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체 게바라는 이 세상 어디에선가 단 한 명이라도 억압과 고통 속에 살아간다면 편안히 지낼 수 없다고 했다. 무참하다. 우리는 바로 우리의 이웃이 당하고 있는 슬픔과 눈물을 외면하며 웃고 떠든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재래시장을 누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다국적 기업과 몇몇 대기업에게 팔아넘긴 이에게 환호한다. 지극히 무참하다.

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을 읽기 쉽게 짧은 분량으로 엮어냈다. 그의 일생이 이 책 한 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그가 남긴 것이 무언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전해준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당신은 다리를 절었지만 절름발이가 아니었다. 당신을 평생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린 그 정권에 대해서도 당신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 했다. 박정희 기념관을 짓겠다는 쓰레기들에게까지 양보한 것은 지나쳤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당신은 지금 이 정권과 같이 치졸하지는 않았다. 당신은 분명 대인이었다.

당신은 당신을 평생 괴롭게 만든 빨갱이라는 굴레 속에서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북으로 향했다. 노벨상을 돈 주고 샀다는 정신 이상자들 속에서도 당신은 한마디 변명을 하지 않았다. 당신은 대인이었다. 당신은 한반도 분단체제에 균열을 일으킨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당신은 이 땅의 주인인 국민들을 위해 눈물을 아끼지 않았다. IMF의 수렁 속에 수많은 국민들이 국가를 대신하여 죽어갔음을 잊지 않았다. 그들의 희생 속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음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의 결정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당신은 대인이었다.

물론 당신은 정치인이었다. 대권을 잡겠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한 시도 잊지 않았다. 당신은 영리한 사람이었다. 타협을 할 줄 알고 적과의 포옹도 감수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은 김영삼과 같이 대권을 위해 대의를 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온갖 비리를 모두 갖춘 전과 14범이 아니었다. 당신은 친일파가 아니었다. 당신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굴복하는 하수인도 아니었다. 당신은 독재를 원하지 않았다. 당신은 대인이었다.

술자리는 이어졌다. 이윽고 난 취하고 소리 없이 울었다. 내 추태로 후배들이 웃기를 기대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내 어리석음으로 많은 이들이 즐겁기를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난 그대로 울고 말았다.

그리운 두 사람. 바보와 절름발이. 그 어디에 있든 함께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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