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상 다락원 일한 대역문고 고급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도승렬 옮김 / 다락원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 직장 동료에게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 작가에 대해, 작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때였는데, 순전히 제목만 보고 골라준 것이었다. 직업이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제목, 헤드카피에 따라 무엇이든 결정하는 일이 많았다. 무지의 소치요, 게으름의 유산이었다.

암튼 그 친구는 책이 너무 따분하다며, 한참 후에야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어허, 미안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재미없기에 이런 말을 하실까 생각이 들었다. 해서 기회가 된다면 꼭 고양이의 정체를 밝히리라 다짐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쓰메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도련님’이 되었다. 지난달엔가 읽은 『고민하는 힘』영향이었다. 강상중 선생은 책에서 나쓰메와 베버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었다. 선생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는 것이다. 호기심이 일었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에게 큰 영향을 준 두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래서였다. 나쓰메의 작품을 관심 있게 찾게 된 것이. 그리고 처음 접한 책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무지해서 그동안 몰랐지, 사실 나쓰메는 일본의 세익스피어,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위대한 작가였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근대에 접어들며 물질 만능주의가 되어가는 일본 사회에 통렬한 비판을 가했던 작가였다.

고전이 원래 조금 따분하다고 하지 않던가. 옛 직장동료가 그의 작품을 따분하다고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쏠쏠한 재미가 없더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정독하리라, 암~.”바람직한 자세로 책을 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책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약간은 구식인 것 같으면서도 유쾌한 문체와 인물 묘사에 대한 탁월함에 매료되었다. 일단 지루하지 않았다. 어허 통재라, 이럴 줄 알았음 그 친구에게 고양이보다는 도련님을 먼저 인사시키는 것이었는데. 아쉬웠다.

‘도련님’은 나쓰메 자신의 젊은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 나쓰메는 혈기 넘치지만 엉뚱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이었으리라. 참고로 도련님의 주인공인 그 도련님은 단지 동급생 녀석이 “네가 아무리 뻐겨 봤댔자 거기서 뛰어내리진 못할 거다. 겁쟁이, 겁쟁이. 용용 죽겠지!”라고 놀렸다는 이유만으로 초등학교 시절 학교 2층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도련님의 아버지 또한 보통은 아니었다. 우리의 도련님이 학교 사환의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도련님의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고 겨우 2층에서 뛰어내려서 허리를 삐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고 야단친다. 이에 도련님의 대답은 “그럼 요담엔 삐지 않고 뛰어내려 볼 테에요.”멋진 부자다. 브라보~.

도련님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형이 재산을 정리해 나눠주자 하릴없이 있다가 충동적으로 물리학부에 들어가 공부를 한다. 그리고 졸업 뒤 시코쿠라는 먼 섬의 수학 선생으로 발령받게 된다. 사람들에게 별명을 붙여주는 버릇이 있는 도련님은 교장은 너구리, 교감은 빨간 셔츠, 수학 주임은 고슴도치, 미술 교사는 알랑쇠, 영어 선생은 가지 꼬투리라고 정해버린다. 참고로 내 고3시절 담임은 학다리였다. 어찌나 다리가 기신지. 발길질 안 하신 게 지금도 감사하다.

이후 짧지만 결코 순탄치 않은 한 달을 보내게 되는 우리의 도련님. 정말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좌충우돌 소동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도련님은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정의의 복수를 날린 채 자신을 도련님이라 불러주는 유일한 사람인 유모 ‘기요’에게 돌아간다.

내용은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난 스포일러 정말 싫다. 한 대 콱 쥐어박고 싶다. 그래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 직접 확인하시라. 하지만 재미있다는 것은 책임지고, 또한 나름 남는 내용도 있다. 몇 가지 꼽자면, 절대 좁은 동네에서는 튀는 행동을 하지 마라, 증거가 없을 때는 일단 자중하라, 지조 없는 여자는 아무리 예뻐도 아니다 정도?

나쓰메는 소설을 통해 의리와 정직한 양심이 비웃음을 받고 권모술수와 위선이 판치는 부조리한 세상을 풍자한다. 교감이면 교감이지 왜 평교사의 애인을 빼앗나? 왜 아부하지 않고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한 사람은 늘 피해를 받나? 아 통재라. 이런 모습은 고금을 막론하고 지역을 떠나 만고불변의 진리란 말이더냐. 하늘이 울고 땅이 뒤집어질 일이로다. 아 때마침 비오려고 하네.

꼭 작금에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요즘 정치권이나 정부의 행태를 보자면, 도련님이 맞서 싸웠던 조그만 섬의 학교가 떠오른다. 찰나인 권력에 대한 무한 굴종, 그로써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애꿎은 사람들. 언제나 눈치 빠르게 줄 잘서는 인간들은 영혼을 판 대가로 호위호식하고, 정작 이 사회가 온전히 꾸려나갈 수 있도록 일하는 이들은 병신 취급 받는 작태.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미디어법을 쪽수의 힘으로 통과시키는 한나라당의 의회 폭력과 22조 원의 비용을 들여 4대 강을 뒤집겠다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지원 예산은 3조 1천억 원을 책정한 정부. 15조 원이 넘는 돈을 음식쓰레기 처리에 쳐 부으며, 정작 지난 10년 동안 1인당 5만 원도 되지 않는 금액을 썼음에도 대북 퍼주기 운운하는 찌라시들. 이 상황을 우리 도련님이 보고 있다면, 어떤 말을 할지.

어디에나 쓰레기는 있다. 영혼을 판 대가로 좋은 집에 좋은 차를 굴리며 살아가는 벌레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기억해야 할 것 하나. 쓰레기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피땀 흘려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단 돈 만 원의 행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연예인들이 장난치는 만원의 행복 빼고.

『도련님』은 1906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울림을 준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게 하고, 저열한 쓰레기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때문에 고전은 따분하더라도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시대의 빨간 셔츠, 알랑쇠 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믿어야 한다. 아직까지 이 시대는 도련님들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고슴도치가 버티고 있다.  


힘내자. 그리고 외면하지 말자. 이제 우리는 누구라도 상관없이 길거리에 나서다 방패에 찍힐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외면은 곧 불의에 대한 타협과 다르지 않다. 외면을 합리화 시키지 말자. 사정없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물론 하지만….

그렇다고 2층에서 뛰어내리진 말자. 허리 안 삘 자신 없다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