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는가
레이몽 부동 지음, 임왕준 옮김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정치적인 성향으로 봤을 때 분명 난 우파는 아닌 듯하다. 국가라는 대상에 대한 지극한 반감 혹은 동질감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같은 헛소리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한 좌파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다. 신자유주의를 혐오하고, 미국을 상당히 지저분한 국가라 생각하지만, 그것들의 장점 혹은 역할에 대해서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렇담 난 뭐지? 그냥 온건사회주의자 정도? 국가니 정의니 하는 헛소리들보다는 그냥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이 최대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나가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뭐 그렇다고 내가 국가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난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에 속해 있고,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도 살기 좀 나아지지 않겠나.

현대 프랑스 사회학자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들 중 한 사람이라 불리는 저자는 책을 통해 자유주의라는 것에 대해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반감 혹은 증오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자유주의라는 것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나에게는 그의 설명이 얼핏 난해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뛰어난 학자일수록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자신의 논점을 설명하지 않던가. 저자 역시 나름 이해가 쉽도록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덕분에 그렇게 머리 아프지 않게, 어떤 부분은 재미있어하며 책을 넘겨갔다. 물론 내가 저자의 주장을 100% 동감한다는 것은 아니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의 문제 제기는 이것이다.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왜 자유주의적 사고를 기피하는가.” 이러한 문제 제기에 저자는 다양한 예와 또한 다양한 학파들을 소개하며 그 이유를 나름대로 밝히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에서 말하는 자유주의는 곧 우익적 사고를 의미하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그것은 일관되게 좌익적 사고로 여겨졌다고 말한다.

막스 베버는 자유주의에 ‘이상적인 유형’이라는 의미를 부여했고, 그것은 자유주의 사고의 핵심을 이룬다.

저자는 자유주의를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시장에 가능한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고,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분명한 이득이 있을 때만 국가의 개입을 인정한다. 또한 정치적 자유주의는 권리의 평등, 자유의 확장, 그리고 제한적인 공권력 개입을 원칙으로 한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자유주의가 바탕을 둔 철학적 자유주의는 개인에게 되도록 많은 자율권을 보장하고, 내가 타인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도 나의 존엄성을 존중해 줄 것을 기대하는 상호주의적 사고라고 정의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조금만 더 설레어 볼까?

저자는 자유주의는 계층, 국가, 자치단체, 정당 등 모든 형태의 집단이 개인을 기초로 구성되었음을 중요시하고 전체주의를 혐오한다고 강조한다. 우와~아름다운 세상이다. 그렇담 난 단언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자유주의 국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저자가 프랑스의 사회학자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떠드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저자는 “자유주의는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려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사회의 여러 규칙이 그들에게 공정하게 적용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각자의 지위나 수입이나 권리나 영향력에 따라 보상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능력과 적성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장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온건하고 일관적인 자유주의자들은 원칙적으로 불평등을 인정하지만, 그 불평등이 ‘기능적’이고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이상 불평등의 폭을 줄이면 모두가, 특히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그 수준까지만 불평등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강조한다.”고 말한다.

더더욱 우울해진다.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음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 중 윗글에 반대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불평등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평등이 과연 기능적이고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의아해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계층 간 불평등이 과연 기능적이고 정당화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땅값이 비싼 곳에서 사는 학생들이 그렇지 못한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월등히 명문대에 진학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 과연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한 거지”하면서도 진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긍할 수 있을까.

저자는 때문에 자유주의 그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지만, 그 불평등의 정당성이 훼손되고, 비 기능적인 모습일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식인들이 자유주의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즉 자유주의 그 자체가 아닌 부수적 문제들로 자유주의 자체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마르크스의 도식, 즉 세계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둘만 존재한다는 인식이 자유주의를 증오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중간계급이 분명 존재함을 강조하며, 계급이 아닌 계층의 문제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단순한 이분법이 남반구 국가들과 북반구 국가들과의 격차를 설명하는 데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협력의 관계를 오로지 적대적 관계로 설정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도식을 여전히 지식인들이 활용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왔다고 비판한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생경하고, 한 편으로는 부러운 말이기도 하다. 현재 기득권을 쥐고 있는 지식인 계층에서 과연 이러한 이분법적 설명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을까. 거의 전멸했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세속적 마르크스주의는커녕 신 니체주의나 뒤르켕주의도 보기 힘들지 않은가. 적어도 내 생각에 주류 지식인층에서는 그렇다. 저자의 비판은 대한민국에서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행동주의,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구조주의 등 개인의 자율성을 하나의 환상, 무시해도 좋은 사실, 혹은 과학적 관점에서 변별성이 없는 사실로 간주하는 사고의 경향이 대중의 수요에 부응하며 자유주의에 반하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많은 지식인이 자유주의를 배척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집단적 정서에 비추어 볼 때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돌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의 수요가 발생하고, 신념의 윤리에 따르는 지식인, 특히 유기적인 지식인이 이런 수요를 이용한다. 즉, 이 돌출적 사실이 자유주의 사회의 실패를 증명한다는 인상을 줄 때, 반자유주의적 사고가 시장에 내놓은 설명의 도식들을 이용하여 사태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것이다.”

저자는 소수집단 문제, 교육 문제, 범죄의 원인에 대한 분석 차이 등을 예로 들며 자유주의에 대한 반자유주의적 공격을 설명하고, 그것에 부당성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은 반감을 불러올지 몰라도 논리적으로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부러운 점이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유주의의 역할과 정당성 내지는 그 효과, 존재의 가치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자유주의란 단어 대신 자본주의를 집어넣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사회의 타락에 대한 지적 역시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자유주의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어떤 이념보다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자유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타락의 문제를 적절히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자유주의 자체를 전복시키려는 시도는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이다.

내가 왜 부러웠을까. 적어도 내가 알기에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가치를 주장하는 우파 내지 우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인정하고 이것을 해결하려기보다는 기득권 수호에 더욱 열심이었고, 지금도 그것은 변하지 않고 있다. 불평등의 완화에 노력하기 보다는 그것의 강화에 주력하고, 기능적인 불평등이 아니라 영구적인 불평등을 추구한다. 이따위 것들을 진정 우파 혹은 자유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는 진정한 보수 혹은 진보가 드물다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많다. 아닌 게 아니라 건전한 보수를 지향하고 어쩌고 하는 뉴라이트는 새로운 수구 세력으로 성장해 역사왜곡의 삽질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진보 세력 역시 허구 헌 날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 철폐만 외칠 뿐, 정작 촛불의 기적이 일어났을 때는 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국민들이 납득하고 동참할 수 있는 자유주의 혹은 반자유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다. 아하~ 또 다시 통재라.

저자는 확실히 우파 지식인이다. 내가 보기에 그렇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우파로 분류되는 그가 만약 지금 한국으로 이민 온다면? 내가 보기엔 얼마 못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서 그를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혹은 전기통신기본법 위반(미네르바의 죄명이었다)으로 감옥으로 가던가 말이다.

책은 분량도 많지 않고, 친절하게 글자까지 큼지막하여 읽기에 부담이 없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한국의 현실에 대입하는 내내 짜증과 아쉬움이 남았다. 도대체가 제대로 된 우파 지식인을 찾기 어려운 나라에서 무언 맨날 대한민국 만세고, 건국절이 어떻고 개소리들이냐. 국가의 정체성 운운, 국익을 우선으로 운운, 이런 잡소리 하는 사이에 역사가 왜곡되고 우리는 또 다시 미친 쇠고기를 받아 처먹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욕 나온다. 

진정한 우파 없으신가요? 제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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