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서경식.타카하시 테츠야 지음, 김경윤 옮김 / 삼인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잘 알려진 재일조선인 지식인 서경식과 「일본의 전후 책임을 묻는다」로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타카하시 테츠야 동경대 교수의 대담집. 1998년부터 99년까지 1년 동안 진행된 대담을 담았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10년 전, 재일조선인 지식인과 일본 지식인의 대담을 다시 살펴보려는 것일까. 매일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사이에서 왜 이 오래되고 작은 책을 다시 끄집어 낸 것일까. 그것은 당시 두 지식인의 고민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대화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서경식 선생과 타카하시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광기어린 폭력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가해자가 진정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시간이라는 것에 기대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잊혀 지길, 그들의 기억이 사라지길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폭력”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전후 책임론이 시간이 갈수록 퇴색되고, 이제는 전쟁을 정당화하고, 당시 전범을 비롯한 전쟁 가해자들을 다시금 영웅으로 미화하려는 현재 일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사실 과거사 청산, 정신대, 독도 및 식민 지배 정당화 발언 등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잊혀 질 만하면 터지는 일본 정치인, 관료들의 망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를 향한 끊임없는 도발 등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고 책임지려 하기 보다는 이를 정당화하고 무마하려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보수 단체들이 앞장서 역사 비틀기를 시도해 “기억의 소멸”에서 “새로운 기억의 주입”을 시도하고 있다. 

서경식 선생과 타카하시 교수는 “페이지 넘기듯이 역사를 청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역사가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이 갱신해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역사의 청산 역시 순서대로 하나하나 결말을 지어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국가 권력도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역사 왜곡을 시도해왔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 같다. 과거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일본 정부는 만족할지 모른다.

이 책을 다시 꺼낸 이유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 했다. 이는 일본의 변함없는 역사적 망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절박한 것은 바로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 정부와 집권 여당, 그리고 이른바 건전한 보수라 자처하는 뉴라이트 등이 벌이고 있는 작태들엔 분노를 넘어 허탈함이 밀려온다. 자신들의 권력이 마치 영원한 것처럼 갖은 추태를 보여 가며, 역사를 마음대로 세탁한다.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었다고 알아서 단정 지으며, 이를 다시 우향우 하겠다고 벼르고, 반강제적으로 역사교과서를 수정하고 퇴출 작업을 진행한다. 교육과학기술부라는 곳이 과거 민주화 운동을‘데모’수준으로 모욕하고, 오히려 군사독재 정권들을 미화하는 내용을 일선 학교에 내려 보내 홍보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서울시교육청이란 곳은 고교생을 대상으로 뉴라이트 진영의 보수인사들의 현대사 특강을 진행한다. 그들이 다른 가공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이미 각종 과거사위원회의 통폐합 법안을 제출한 한나라당은 제주 4.3 사건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위원회를 없애고, 여타 과거사 위원회도 대부분 없애버리려 한다. 그동안 일본이 해왔던 역사 뒤틀기를 정확히 벤치마킹한 모습이다.  

다시 돌아보자.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공언하며 정권을 획득한 정부가 오히려 과거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잘못된 기억을 다시금 꺼내려 하고 있는 모습. 잃어버린 10년 이후 다시 거꾸로 가는 20년이 되어 가는 것일까.

책을 통해 두 명의 지식인이 말하려 했던 것은,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잘못된 과거를 대충 덮어버리고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논리로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불편하고 때론 고통스럽더라도 과거의 철저한 인식과 책임 규명, 그리고 사죄와 때론 처벌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일시되거나(죽음이라는 기준으로), 피해자의 증언이 오히려 역사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는 오류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책임 규명 없이 미래를 온전히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기대라는 것.

불편했던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책임 규명대신 오히려 잘못된 것을 옳은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지금의 우리 모습. 희망은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증언과 소통의 시대를 단절과 망각의 시대로 되돌리려는 이들에 대한 정당하고 당당한 저항이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적어도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범죄는 막아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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