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하는 용서 ㅣ 창비시선 487
여세실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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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87권이다.

시인의 첫 시집이고, 처음 읽는다.

기존의 시집보다 두툼해서 읽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보통 시집을 받으면 대충 한 번 휙휙 넘겨본다.

그런데 이 시집은 그때와 다른 느낌으로 시들이 다가왔다.

어떤 대목은 공감하는 시어들로 구성되어 있고, 어떤 시는 길을 헤매게 한다.

각 시들에 담긴 다양한 감정과 표현들은 고민하게 한다.

어떻게 그 시와 감정을 받아들여야 할지, 내가 얼마나 오독하고 있는지.


“이름을 바꾸려고 / 명리학 책을 뒤져보다가 알게 되었다/

쓸 만한 이름들은 모두 / 연락처에 있는 이름이었다”(<면역>의 부분)

이 시를 읽으면서 개명보다 작명 생각이 더 많이 났다.

괜찮아 보이는 이름은 모두 이미 있는 이름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도 모르게 방귀 뀌고 / 태연하게 지나가는 법 / 아는 것 같았다.”(<별미>의 부분)

어느 날 뱃속에 가스가 가득한 날 나도 모르게 뀌는 방귀.

소리가 나면 아내가 얼마나 구박을 주었던가. 배우고 싶다.

이런 시들은 재밌는 삶의 한 단면을 떠올려주면서 살짝 문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미워하는 사람이 미움받는 사람보다 부지런하잖니”(<묘미>의 부분)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쓸 데 없는 감정의 낭비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데 내 감정과 섞어 얼마나 미워했던가!

“햇볕이 그늘을 / 쪼개고 있었다”(<채집>의 부분)

이 시어를 읽으면서 한 줄기 빛에 갈라지는 그늘들이 떠올랐다.

얼마나 멋진 표현이자 관찰인가? 

“용서하지 않겠다는 / 다짐이 흘러내려 / 서서히 굳어갈 때에도”(<휴일에 하는 용서>의 부분)

이 시어는 어디에 방점을 두어야 할 지 계속 고민하게 한다

다짐이 강해진다는 의미인지, 그 다짐이 흘러내린다는 의미인지.

이것은 마지막 행의 “나더러 / 살으라고 / 등짝을 쳐댔다”와 엮였다.


“종이가 글씨를 퉤 뱉어낸다”(<완주>의 부분)

이 시어도 읽으면서 시선의 전환이 주는 재미를 강하게 느꼈다.

“손톱을 하나씩 뽑아내고 있는 달빛 위로 / 깃발이 휘날릴 때 / 사랑한 기억보다 오래 누워 운다”

이 시에서 ‘사랑한 기억보다 오래 누워 운다’에 대한 감정이 확 다가왔다.

그 감정의 깊이와 시간이 주는 것들을 해소하는 걸리는 시간에 대한 함축.

경험한 사람만이 이 문장의 의미가 그대로 전달될 것 같은데 착각일까?

그리고 곳곳에 드러나는 조금 잔혹한 표현들은 나의 오독을 경계하게 한다.

언제 다른 시집을 읽게 되면 이 시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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