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카의 뇌 -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36
칼 세이건 지음, 홍승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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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독자다. 그래도 시험을 위해 줄거리와 주제와 숨겨진 의미를 맞추는 일은 징그럽게 지루했다. 주변의 소설 읽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말을 듣는다. 하지만 역시 직접 느릿하게 읽는 것은 좋아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 주변의 대부분은 시험 이전에 직접 읽는 맛을 본 독자들이다. 이미 읽는 맛을 아는데 강제로 남이 선별한 글을 읽고 답을 맞추라고 하니 싫은 것이다. 그래서 그 시기를 지나 - 꼭 지나서인 것은 아니다 - 다시 즐겁게 읽는 생활로 자연히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스스로 읽는 맛을 알게 되기 전에 강제로 시험의 재료로만 글을 접했다면? 그 뒤로도 읽기가 싫은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떤 특별한 기회가 있다면 사실은 자신이 글읽기, 책읽기에 흥미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런 기회가 없다면 달라지지 않는 게 당연해 보인다. 오늘은 다른 이야기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바로 과학이다. 이야기 자리에 과학을 대입해 상상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과학과 과학책이라는 것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우연하게 다시 접하면 본연의 맛을 경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본연의 맛이라는 게 우리가 주입식으로 외운 것들과 다른 것이라면. 완전하게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 이 가정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 확인해본다.



칼 세이건의 <브로카의 뇌>는 1970년대에 다양한 곳에서 있었던 강연 내용과 기고했던 칼럼 원고들을 모아놓은 에세이집이다. 아인슈타인 평전부터 사이비과학자들, 카바 신전의 성스러운 돌, 외계 지성체까지 한편으로는 생뚱맞아 보이는 이야기거리들이 한데 섞여있다. 과학과 관련된 전문 지식들이 부분적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서문에서 콕 집어 말하는 것처럼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한국에는 먼저 출판되었던 <에덴의 용>에서 인간 지성의 발달사를 다루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칼 세이건이 쓴 뇌과학 고전으로 기대하며 책을 열었다.(표지도 꼭 예쁜 뇌과학 책처럼 생겼다.)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의 뇌과학과 비교해보고 싶었던 야망과는 달리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라는 부제에 충실한 책이다.

※※※주의. 뇌과학책이 아닙니다.※※※


여러 장에 걸쳐서 사이비과학이나 유사과학에 대해 보여주는 칼 세이건의 태도는 대단히 감동적이다. 그 시작은 사이비과학이나 유사과학이 유행하는 이유다. 우리가 세계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서 인기를 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사과학의 탄생을 우리들 자신의 욕구 발현의 방법 중 하나로 받아들인다. 다만 합리적인 방법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가정하에. 그리고 비판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떠도는 수많은 사이비과학들을 어떻게 검증해야 할까? 무려 칼 세이건이 직접 시간을 내어 검증한다! 사이비과학의 가설들을 하나하나 논리구조를 확인하고, 사실을 확인한다. 이런 일들은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말도 안되는 내용들을 격파해나간다. 하지만 분명하게 검증의 시작 부분에서는 이것이 옳을 수도 있는 하나의 가설로 대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런 모습들이 진짜 과학이라는 태도인가 싶은 것이다.




이게 무슨 우주영화 이야기인가 싶은 부분들도 있다. 행성물리학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물리학이라는 글자만으로도 고개를 돌리고 싶은데, 행성물리학이라는 학문은 더욱 생소하다. 그런데 이 스타워즈 해설서에나 나올법한 행성물리학도 책을 따라 읽다보면 정말 우리에게 닥친 중요한 일처럼 느껴진다는 게 칼 세이건의 마력이다. 행성물리학이란 지구에서 우리가 물질들을 연구하는 것처럼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에서도 공기를 조사하고, 지표를 조사하고, 내부를 조사하는 학문이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 지구의 미래를 두고 갈림길에 섰을 때 판단기준과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행성의 현재 상태가 지구처럼 생명체가 있었다가 멸종해버린 상태인건지 - 이런 경우 우리는 지구를 지금보다 더더욱 소중하게 여겨야한다 - , 또 생명체가 존재할 환경이 준비된 상태인건지. 이런 실용적인 이유 말고도 지구라는 행성이 우주의 수많은 행성 중 하나라는 것과 우리 인간도 그 안에서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의 종이라는 확장된 생각은 겸허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런 느낌들은 점점 과학을 한다는 건 이만큼 세상을 깊게 바라보는 일인건가 헷갈리는 것이다.


옆 동네 행정구역 이름도 잘 모르는데.. 밤하늘에 보이지도 않는 소행성 이름 하나 화성의 산맥 이름 하나가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칼 세이건에 따르면 확실한 소용이 있다. 어떤 여행지에 갔다가, 어떤 역사책을 읽다가 지명이나 고유명사를 접할 때 이야기가 있으면 호오거리게 된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지나 남아있는 지명이나 고유명사들이 전부 서양의 백인의 남성 과학자들뿐이라면 어떨까? 만약 미래에 지구가 멸망하고 인류가 더 넓은 우주를 무대로 생활하게 된다면 그때 남아있는 것은 그 과학자들의 이름 뿐일 것이다. 주류 기득권 범위 안에서 진지하게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모습도 상세하게 보여준다. 시야를 우주로 확장하고 그에 따른 넓은 시선으로 지명 명명에까지 관점을 적용하는 게 과학이 우리의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져 또 한번 감동이었다.


어떤 챕터를 시작해도 그 감동은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렇다. 앞으로의 과학이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전까지의 연구는 한순간에 뒤집힐 수도 있고, 지금의 주요 논의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한 시대의 최고가 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 그 자체다. 이런 미래에 대한 태도는 칼 세이건이 여러 장들에서 해왔던 과거의 과학을 들추어보는 작업과 연결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실은 칼 세이건이 했던 여러 분야의 미래에 대한 예측들이 많이 들어맞은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코스모스>도 읽지 않은 나는 <브로카의 뇌>가 칼 세이건의 첫 책이다. 신기한 것은 읽다 보면 책 후반부로 갈수록 책에 반하고, 작가에 반해가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대로 기꺼이 휘둘리면서 따라가게 되는 점이다. 분명 책을 읽기 시작했던 초반에는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이고 나와 무슨 상관이며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가 싶었다. 그런데 전혀 무관해보이던 이야기들이 결국 마지막에는 언제나 칼 세이건이 주장대로 바로 우리 시대의 일-30년 후인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더더욱 소중한-이며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이 일이 이렇게 중요하고 우리 시대의 어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과학책-사실은 칼세이건의 책-을 읽는 일을 떠올려본다. 체험해본 바로는 그건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중요도를 떠나 하나의 가설로서 진지하게 대우해주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논리와 증거가 확실하다면 주류의 주장이 전복되는 것이 당연한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접하는 일이었다. 또 소금 한톨, 뇌 하나, 벚나무 한 그루, 타이탄, 태양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상적이고 단정한 아름다움을 배우는 재미였다. 과알못을 데려다 차근차근 조곤조곤하게 과학이란 지식의 총합이나 결과가 아니고 사실은 이런 거야. 삶을 살아가는 태도이고 사고방식인 거거든. 그래서 이게 무슨 말인 거냐면 봐봐 이렇게 하는 거야. 이런 다정한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니 대충 여기가 어딘지 모르게 스며들었고 이런 경험에 대해 글로 써보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과연 이 책의 뒷부분이 정말 재밌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구성인건지, 아니면 칼세이건에 스며들어 재밌어진건지.


아주 짧은 4쪽의 서문에서 사실 나는 눈물을 찔끔 흘리고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문장 때문이었다. 지금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 속도가 정말 빠르다. 발달의 결과물들을 사용하고 혜택을 누리지만, 구체적인 원리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느낀다. 당장 나는 지금 글을 쓰면서 사용하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원리도 모른다. 가끔 궁금할 때는 있다. 아마 여기서 시간이 좀더 흐르면 컴퓨터나 인터넷같은 기술의 존재감 자체에 대해 인식하는 것 자체도 어려워지고, 그래서 어떤 궁금증을 가지는 것도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첨단의 과학과 기술과 인간은 점점 더 분리되어가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칼 세이건을 따라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약한 의문을 품고 그나마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 미래사회로 내달리는 것 같은 이 독특한 이행기를 살아갈 특권을 가진 세대는 오직 한 세대뿐이다. 바로 우리 자신! 그래서 칼 세이건의 다른 책도, 다른 과학책들도 더 읽어보려한다.

과학책방 갈다의 [칼세이건 살롱 2020] 브로카의뇌 프로그램 참여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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